변호사 윤경/수필

[김훈 작가의 돈 이야기]【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6. 3. 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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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돈 이야기]【윤경변호사】

 

<어머니의 후회>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이 돈 모으는 일이란다. 평생 돈이나 모으면서 인생을 허비한다면 정말 슬프지 않겠니?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무척 많은데 말이야."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집은 아주 부자였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 세간을 실어 날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 댁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 댁까지 쳐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그는 할머니가 그런 사람들에게 돈다발을 건네주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할머니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부터 어머니가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질 무렵에야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와 잠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렀고, 그는 일류 대학에 진학을 했다.

학비가 많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꼬깃꼬깃한 지폐들을 하나씩 펴서 그에게 주었다.

"너는 돈 걱정하지 마라.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렴."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단정한 용모에 멋지게 차려입은 그를 사람들은 부잣집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시장에 나가 일을 했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창피하게 생각했다.

"어머니, 이제 시장 일 그만두세요. 저 사람이 시장에 가면 얼굴을 못 들겠다고 하네요. 저희 체면 좀 생각해주세요."

 

"그래, 알겠다."

어머니는 며칠 후부터 다른 시장에 나가 일 하기 시작했다.

 

그와 아내는 멋진 신세대 부부였다.

화려한 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을 즐겼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즐거웠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넉넉한 월급을 받게 된 그는 돈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은 쓰라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어릴 적 가르침을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랐다.

그와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여전히 인생을 즐겼다.

그는 승진을 거듭했고, 돈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의 가족이 밖으로 돌아다니며 멋들어지게 사는 동안, 어머니가 집안일을 도맡았다.

여전히 시장에 나가 일하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그는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을 동시에 들었다.

우선, 기쁜 소식은 그의 첫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졸업한 대학이었다.

내 아이가 후배가 되다니···.

 

나쁜 소식은 회사의 해고 통보였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낮게 가라앉은 회색빛 하늘과 진눈깨비였다.

당장 급한 것은 아이의 학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부부는 통장을 펼쳐보았다.

예상한 대로였다.

그동안 아낌없이 쓰고 즐겼으니 잔고가 있을 턱이 없었다.

아이 학비도 그렇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 회사에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돈을 모으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이라고 믿었다.

 

다음 날 아침, 식욕을 잃고 그가 멍하니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들고 나와 그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통장이었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과 국을 다시 떠주며 천천히 말했다.

"얘야, 미안하구나. 내 어리석은 생각이 너까지 이렇게 만들 줄은 몰랐어. 내 생각이 바뀌었다고 몇 번이나 네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만···."

 

아주 오래 전 김훈 작가의 “자전거여행”과 “칼의 노래”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글의 묘사가 너무 솔직하고 생생해서 마치 내가 실제 체험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 그분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꺼내 읽고 있는데, 178-190쪽에 “돈 1, 돈 2, 돈 3”이라는 제목의 산문이 연달아 실려 있다.

세상의 소란이나 명리와는 담을 쌓고, 조용히 숨어서 세상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글로 멋지게 표현해내는 그런 분은 “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분답게 돈에 대한 생각을 아무런 가식없이 솔직하고 순수담백하게 표현했다.

내가 예상했던 바와 전혀 다른 생각이 실려 있다.

근데 밉지 않다.

속물인 내가 봐도 그 근저에는 전혀 속물근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