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판례<범죄이용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하면서 계좌개설신청서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행위가 은행에 대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지 여부>】《다른 사람에게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계좌개설을 신청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기재하고,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이를 사실로 받아들여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지 여부(소극) /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가 정한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에서 말하는 ‘범죄’의 의미, 이에 대한 인식의 정도 및 이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 위 ‘범죄’에 관한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7151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다른 사람에게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계좌를 개설하면서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에게 이에 관한 사항을 허위로 답변한 행위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보관한 행위 등이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로 기소된 사건]
【판시사항】
[1] 계좌개설 신청인이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 등에 관한 사실을 허위로 기재하였으나,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의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신청인에게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소극)
[2]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에서 말하는 ‘범죄’의 의미 및 이에 대한 인식 정도 /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등의 행위를 할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지 여부(적극) 및 이때 거래 상대방이 접근매체를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또는 피고인이 인식한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려하여야 하는지 여부(소극)
[3]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에서 정한 ‘범죄’는 공소사실에 특정되어야 하는지 여부(적극) 및 특정 정도
【판결요지】
[1] 상대방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일정한 자격요건 등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그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에 관해서는 신청서에 기재된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자격요건 등을 심사·판단하는 것이므로, 업무담당자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아니한 채 신청인이 제출한 허위 신청사유나 허위 소명자료를 가볍게 믿고 수용하였다면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계좌개설 신청인이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 등에 관한 사실을 허위로 기재하였으나,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의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그 계좌개설은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계좌개설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2] 전자금융거래법은 전자금융거래의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여 전자금융거래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을 입법 목적의 하나로 하고 있고(제1조),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가 접근매체를 발급할 때에는 이용자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임을 확인한 후에 발급하도록 규정하며(제6조 제2항), 접근매체의 양도 등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제6조 제3항, 제49조 제4항). 이는 전자금융거래에서 거래지시를 하거나 이용자 및 거래내용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접근매체를 이용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용·관리되도록 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2015. 1. 20. 법률 제13069호로 개정되기 전의 전자금융거래법은 제6조 제3항에서 접근매체를 양도하거나 양수하는 행위(제1호), 대가를 주고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가를 받고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행위(제2호), 접근매체를 질권의 목적으로 하는 행위(제3호), 위 각 행위를 알선하는 행위(제4호)를 금지하고, 제49조 제4항에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5. 1. 20.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행위에 추가하고(제6조 제3항 제2호),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또는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신설하여(제6조 제3항 제3호)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였다(제49조 제4항). 이러한 개정 취지는 다른 사람 명의의 금융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각종 범죄에 이용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전자금융거래법의 입법 목적과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의 신설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조항이 규정하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에서 말하는 ‘범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로서 형법 등 형벌법규에 규정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접근매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에 이용될 것을 인식하였다면 위 조항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다.’고 볼 수 있고, 접근매체를 이용하여 저질러지는 범죄의 내용이나 저촉되는 형벌법규, 죄명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하다.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등의 행위를 할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고, 거래 상대방이 접근매체를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또는 피고인이 인식한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
[3]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에서 정한 ‘범죄’는 피고인이 목적으로 하거나 인식한 내용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등을 위하여 공소사실에 특정될 필요가 있다. 위 조항의 신설 취지 등에 비추어 공소사실에 ‘범죄’에 관하여 범죄 유형이나 종류가 개괄적으로라도 특정되어야 하나, 실행하려는 범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하여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8호, 이길범 P.546-561 참조]
가.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사실은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여 계좌에 연결된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법인을 설립한 다음, 법인 명의의 계좌를 피해 금융기관들에서 각 개설함에 있어, 법인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가장하여 사업자등록증 등 법인 명의 계좌의 개설에 필요한 서류를 피해 금융기관들의 각 담당직원에게 제출하면서 법인 명의 계좌의 개설을 신청하였다. 피고인은 그 과정에서 담당직원으로부터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등의 안내를 받고 이를 준수할 것처럼 행세하였다. 위와 같은 피고인의 기망에 속은 피해 금융기관들의 각 담당직원은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주었다. 이로써 피고인은 위계의 방법으로 피해 금융기관들의 계좌 개설업무를 방해하였다.
나. 제1심 및 원심의 판단
⑴ 제1심 (= 유죄)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하였고, 제1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⑵ 원심 (= 직권파기, 무죄)
원심은 피고인이 피해 금융기관들의 담당직원에게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등에 관하여 서면으로 허위의 답변을 기재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여 이를 믿은 담당직원들이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주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피해 금융기관들의 계좌 개설업무가 방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다. 쟁점
⑴ 이 사건 쟁점은, 피고인이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법인 명의로 계좌개설을 신청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기재하고,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이를 사실로 받아들여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피고인의 행위가 위계로써 금융기관의 계좌 개설업무를 방해한 것으로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즉, ① 다른 사람에게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계좌개설을 신청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기재하고,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이를 사실로 받아들여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는지 여부(소극), ②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가 정한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에서 말하는 ‘범죄’의 의미, 이에 대한 인식의 정도 및 이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할 사항, 위 ‘범죄’에 관한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가 위 판결의 핵심쟁점이다.
⑵ 상대방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일정한 자격요건 등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그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에 관해서는 신청서에 기재된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자격요건 등을 심사ㆍ판단하는 것이므로, 업무담당자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아니한 채 신청인이 제출한 허위 신청사유나 허위 소명자료를 가볍게 믿고 수용하였다면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927 판결,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8도2537 판결 등 참조). 따라서 계좌개설 신청인이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 등에 관한 사실을 허위로 기재하였으나,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의 요구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그 계좌개설은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계좌개설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⑶ 전자금융거래법의 입법 목적과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의 신설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조항이 규정하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에서 말하는 ‘범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로서 형법 등 형벌법규에 규정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접근매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에 이용될 것을 인식하였다면 위 조항의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다’고 볼 수 있고, 접근매체를 이용하여 저질러지는 범죄의 내용이나 저촉되는 형벌법규, 죄명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하다.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등의 행위를 할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고, 거래 상대방이 접근매체를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또는 피고인이 인식한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
한편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에서 정한 ‘범죄’는 피고인이 목적으로 하거나 인식한 내용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등을 위하여 공소사실에 특정될 필요가 있다. 위 조항의 신설 취지 등에 비추어 공소사실에 ‘범죄’에 관하여 범죄 유형이나 종류가 개괄적으로라도 특정되어야 하나, 실행하려는 범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하여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⑷ 원심은, ① 피고인이 피해 금융기관들의 담당직원에게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등에 관하여 서면으로 허위의 답변을 기재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여 이를 믿은 담당직원들이 회사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주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피해 금융기관들의 계좌 개설업무가 방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하고, ②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에서 규정한 ‘범죄에 이용’은 범죄의 실행을 전제로 하므로 위 조항 위반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으로 ‘실행완료 또는 실행 중이거나 실행이 예상되는 범죄의 실체가 있을 것’을 필요로 하고, 위 조항 위반죄의 공소사실에는 이용될 범죄에 관한 내용이 다른 범죄와 구별될 정도로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 공소사실에는 피고인이 인식한 이용될 범죄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피고인이 보관한 체크카드는 경찰의 수사협조자가 대포통장 등 접근매체 수거조직을 검거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한 것이어서 실제 범죄에 직접 사용되거나 범죄의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없음이 분명하여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하였다.
⑸ 대법원은, ① 피고인이 계좌를 개설하면서 작성한 예금거래신청서나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는 내용의 진실성이 담보되는 서류라고 볼 수 없고, 제출된 관련 서류들도 법인 명의 계좌개설시 기본적으로 구비하여야 할 서류들로 보일 뿐, 계좌 명의자인 각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거나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등의 진실한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닌 점, 이 사건에서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금융거래 목적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추가로 그에 관한 객관적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적절한 심사절차를 진행하였음에도 피고인이 그에 관하여 허위 서류를 작성하거나 문서를 위조하여 제출함으로써 업무담당자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하여 계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은 찾아보기 어려운 점 등의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결국 이 사건 각 계좌가 개설된 것은 피해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아 계좌개설 신청인인 피고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원심이 그 이유 설시에 일부 부적절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피고인의 행위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본 결론은 정당하다고 수긍하여 이 부분 상고를 기각하는 한편, ② 피고인이 현금카드 등을 성명불상자들에게 대여한 경위, 광고내용, 진술내용과 전과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 접근매체가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 등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이를 대여·보관하였다고 볼 여지가 많고, 피고인이 보관한 접근매체가 경찰의 수사협조자가 이른바 대포통장 등 접근매체 수거조직을 검거하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어서 피고인의 인식과 달리 실제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이용될 가능성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정은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점, 한편 이 부분 공소사실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라고만 기재되어 있고 범죄의 유형이나 종류가 개괄적으로라도 특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공판절차의 진행상황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검사가 이 부분 공소사실에서 범죄의 유형이나 종류를 개괄적으로 특정하지 않았다고 하여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원심판결 중 이와 달리 판단한 이 부분을 파기·환송하였다.
3.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8호, 이길범 P.546-561 참조]
가.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있어서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ㆍ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고(대법원 1992. 6. 9. 선고 91도2221 판결, 대법원 2005. 3. 25. 선고 2003도5004 판결 등 참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있어서 업무를 ‘방해한다’ 함은 사람의 업무수행을 저해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0도3231 판결 등 참조). 업무방해죄의 성립에는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함을 요하지 않고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면 족하며, 업무수행 자체가 아니라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에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9도4772 판결 등 참조).
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관련 대법원 판례
⑴ 서론
① 형법 제314조 제1항은 위계에 의하여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는데, 업무를 방해하는 다른 행위태양인 ‘허위사실의 유포’, ‘위력’의 개념이 비교적 명확한 데 비해 ‘위계’는 그 개념이 다의적이고 포괄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에 사술이 가미된 모든 행위를 업무방해에서 말하는 ‘위계’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 된다.
② 대법원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인정함에 있어 ‘보호받는 업무’의 범위를 제한하거나 ‘위계와 결과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등으로 업무방해죄의 성립 범위를 제한하는 해석을 해 왔다.
⑵ ‘위계’의 개념을 제한한 해석 (대법원 2007. 6. 29. 선고 2006도3839 판결)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형법 제314조 제1항 소정의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위계’라 함은 행위자의 행위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오인ㆍ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을 말하므로, 인터넷 자유게시판 등에 실제의 객관적인 사실을 게시하는 행위는, 설령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업무가 방해된다고 하더라도, 위 법조항 소정의 ‘위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⑶ 불충분한 심사로 인한 경우
대법원은 상대방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일정한 자격요건 등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그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에서 허위의 신청사유나 소명자료가 수용된 것이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로 인한 것이었는지, 나름대로 충분히 심사한 결과이었는지에 따라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달리 판단하고 있다.
㈎ 업무방해죄를 인정한 사안 (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927 판결)
대법원은, 주한외국영사관의 비자발급업무에 있어 신청인인 피고인이 허위의 재직증명서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증명서를 첨부서류로 제출하고, 대사관 영사부 직원의 확인 전화에 가짜 상사를 내세워 재직 사실을 허위로 답변하게 한 사안에서,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가 아니라 신청인의 위계행위에 의하여 업무방해의 위험성이 발생된 것이어서 이에 대하여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고 판시하였다.
㈏ 업무방해죄를 부정한 사안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8도2537 판결)
대법원은, 교수 임용 업무에 있어 가사 피고인의 위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제출한 이력서와 제출한 성적증명서에 서로 모순이 있어 임용심사업무 담당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로 인하여 피고인의 신청을 믿은 것이므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⑷ 업무의 범위에 관한 판단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목적과 관계 규정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기존 비실명자산의 거래자가 위 긴급명령의 시행에 따라 이를 실명전환하는 경우 금융기관으로서는 실명전환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거래통장과 거래인감 등을 소지하여 거래자라고 자칭하는 자의 명의가 실명인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하고 또 그것으로써 금융기관으로서의 할 일을 다하는 것이라 할 것이고, 그가 과연 금융자산의 실질적인 권리자인지 여부를 조사ㆍ확인할 것까지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실명전환사무를 처리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는 실명전환을 청구하는 자가 권리자의 외관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그의 명의가 위 긴급명령에서 정하고 있는 주민등록표상의 명의 등 실명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일 뿐이지, 나아가 그가 과연 금융자산의 실질적인 권리자인지 여부를 조사ㆍ확인하는 것까지 그 업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기존의 비실명예금을 합의차명에 의하여 명의대여자의 실명으로 전환한 행위는 위 긴급명령에 따른 금융기관의 실명전환에 관한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⑸ 면접 과정에서의 업무방해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도8506 판결)
대법원은, 면접업무에 있어 조작되지 않은 필기시험 점수에 의할 경우 면접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점수조작행위에 의하여 면접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하였다면, 점수조작행위는 면접위원으로 하여금 면접시험 응시자의 정당한 자격 유무에 관하여 오인ㆍ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는 위계에 해당하고, 면접위원이 점수조작행위에 관하여 공모 또는 양해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위계에 의하여 면접위원이 수행하는 면접업무의 적정성 또는 공정성이 저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4. 범죄이용 목적 계좌개설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8호, 이길범 P.546-561 참조]
가. 계좌개설 업무와 보이스피싱의 출현으로 인한 금융감독기관의 규제
⑴ 신종범죄(이른바 보이스피싱)의 출현으로 인한 금융감독기관의 규제
㈎ 전화를 통하여 신용카드 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알아낸 뒤 이를 범죄에 이용하는 전화금융사기 수법이 등장하면서 위와 같은 범행에 대포통장(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비정상적인 통장)이 이용되었다. 초기에는 노숙자 등 금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접근하여 계좌를 개설하도록 한 후 대가를 지불하고 접근매체를 양도받는 방식으로 대포통장이 개설되었으나, 이후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유령법인을 설립한 후 해당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개인 명의의 계좌보다는 법인 명의의 계좌에 대하여 더욱 큰 공적 신뢰가 부여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금융감독원은 2012. 11.경 보이스피싱, 대출사기 등 피해 예방을 위해 ‘대포통장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하였다.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은 보이스피싱과 대출사기, 자금세탁 등 금융범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대포통장에 대해 사전방지 단계, 사용억제 단계, 사후제재 단계로 구분하여 수립되었는데, 그 중 사전방지 단계로 계좌개설 시 금융거래목적 확인제도를 개선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단기간 다수계좌 개설자, 외국인으로서 여권(또는 여행자증명서)만을 소지한 자 및 미성년자로부터 통장개설 요청 시 제출받던 여러 서식을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로 통합하고, 계좌개설 업무 시 서류 징구의 목적을 명확히 하며, 계좌개설 목적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계좌개설을 거절하도록 하였다. 2015. 7.경부터는 동일인 다수계좌 개설시 신원 및 개설목적 확인강화를 이유로 모든 신규계좌 개설 시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징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금융기관은 통장의 개설에 있어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와 이에 대한 증빙자료를 제출받고 있고, 금융거래목적 확인이 어렵거나 불명확한 경우 계좌개설을 거절할 수 있다. 계좌개설을 위해 제출하게 되어 있는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에는 금융거래의 목적, 타인으로부터 통장대여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에 관한 사항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또한 각 금융기관에서는 급여계좌, 법인 계좌, 사업자금 계좌 등 계좌의 종류ㆍ용도별로 금융거래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도 예시하고 있는데, 이 사건과 같은 법인 명의 계좌인 경우에는 물품공급계약서(계산서), 재무제표, 부가가치세증명원, 납세증명서 등을 증빙자료로 예시하고 있기도 하다.
㈐ 금융감독기관은 2020. 1. 1.부터는 특정인의 명의가 대포통장에 이용된 경우, 해당 명의로의 계좌개설이 일정 기간 제한되도록 하고 있고, 금융위원회는 2018. 12. 부터 금융회사의 신규계좌 중 대포통장이 0.1% 이상이면 개선권고를, 0.2% 이상이면 개선계획 제출을 명하도록 행정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⑵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 등 이 사건 지침의 법적 성격
㈎ 금융감독원의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과 그에 따른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의 징구 등 일련의 지침들(이하 ‘이 사건 지침’이라 한다)의 법적 성격은, 행정기관이 일정한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특정인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지도, 권고, 조언 등을 하는 행정작용인 행정지도(행정절차법 제2조 제3호)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정책 및 금융감독에 관한 포괄적 권한을 보유(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17조 참조)하고, 구체적인 감독 업무의 집행은 금융감독원이 수행한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라 한다)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전기통신금융사기 발생 대비 및 피해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및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 그러나 이 사건 범행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위와 같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권한과 관련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의 규정을 제외하고는 현행법령상 이 사건 지침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률상의 근거 규정을 찾기 어렵다. 금융행정기관이 대외적 효력을 가지는 즉 일반 국민이나 금융기관에 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정한 권한을 행사하려면 법률유보의 원칙상 법령상의 구체적 수권 규정이 필요하다. 특히 금융감독과 관련하여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가 행사하는 권한들은 영업의 자유, 재산권 행사, 계약의 자유, 법인 의사결정의 자유, 기업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에 상당한 제한을 수반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명확하고 엄격한 법적 근거를 요구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계좌개설 시 그 계좌가 전기통신사기 범행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이 계좌개설 신청자의 금융거래목적을 확인할 수 있으려면 이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법률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행법령상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자금세탁행위 및 공중협박자금 조달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융기관이 금융거래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은 보이지 않는다.
㈐ 더욱이 이 사건 지침은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들에 대하여 지침 내지는 지도 형식으로 하달된 것으로 행정규칙 제정권을 가진 금융위원회가 고시의 형식으로 발령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사건 지침은 기본적으로 금융기관들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징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의 이 사건 지침은 대외적 구속력이 있는 법규적 효력을 갖는 행정규칙(법령보충적 행정규칙)이라고는 볼 수 없는바, 이는 행정지도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 그러나 위와 같이 이 사건 지침을 금융기관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한 행정지도로 본다고 하더라도 감독기관이 하달한 이 사건 지침이 은행들에 사실상 구속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는 법령상 금융기관을 지도, 감독하는 감독기관으로서 금융기관이 그들에 대한 시정명령, 과징금, 과태료 부과 권한까지 가진 이들 감독기관의 지침 내지 지도사항을 불이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실제로 은행 등 금융기관은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지침을 행정처분에 준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고, 대부분 은행 등은 2012. 11. 1.부터 이 사건 지침에서 정한 양식에 따라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다만 이 사건 범행 이후인 2022. 1. 4. 개정되어 시행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법률 제18672호)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행 등 단순 사기 범행도 중대범죄에 해당하므로[개정 법률은 중대범죄에 대하여 종전 열거하여 규정하던 방식에서 일정한 법정형(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 이상의 범죄를 중대범죄로 규정하였다], 보이스피싱 등 사기 범행조직에 대포통장을 개설하여 건네주는 행위도 자금세탁행위(방조)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인다. 또한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 법률안이 2024. 2. 1.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는바, 위 개정 법률안에는 고객이 계좌개설을 신청하는 등의 경우에 금융회사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를 위하여 금융거래의 목적을 확인하도록 하고, 증빙서류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며, 확인결과 금융거래목적이 전기통신금융사기와 관련되어 있거나 증빙서류를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 등에는 계좌개설 거절, 기존계좌 해지, 이체ㆍ송금ㆍ출금 한도 제한 등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됨으로써 비로소 그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⑶ 대포통장 개설로 인한 금융회사 등의 책임
통신사기피해환급 법령에 따르면, 은행 등 금융회사는 일정한 경우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등을 위한 조치를 소홀히 하거나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하여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용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① 금융위원회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최소화를 위하여 은행 등에 ‘전자금융거래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산인력, 전산시설 및 전자적 장치 등의 개선 또는 보완에 관한 사항’을 권고ㆍ요구 또는 명령하거나 그 개선계획의 제출을 명할 수 있고, 은행 등 금융회사가 이를 제출ㆍ이행하지 않은 경우 금융회사 및 임직원에 대하여 주의ㆍ경고ㆍ견책 또는 감봉의 제재가 내려질 수 있다(법 제2조의2 제2항). ② 금융회사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를 위하여 이용자가 대출을 신청하는 등의 경우에는 본인확인조치를 하여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법 제2조의4). ③ 금융회사는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하여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금융회사에 대하여 사기이용계좌의 지급정지 등 전기통신금융사기의 피해구제를 신청한 경우 또는 피해구제 신청을 받은 금융회사가 피해금이 송금ㆍ이체된 사기이용계좌의 해당 금융회사에 대하여 지급정지를 요청한 경우, 수사기관 또는 금융감독원 등으로부터 사기이용계좌로 의심된다는 정보제공이 있는 경우에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사기이용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면 즉시 해당 사기이용계좌의 전부에 대하여 지급정지 조치를 하여야 하고, 금융회사가 이를 위반하여 지급정지를 이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법 제4조). 금융위원회는 2018. 12.부터 금융회사의 신규계좌 중 대포통장이 0.1% 이상이면 개선 권고를, 0.2% 초과(개정 후에는 0.4% 초과)하면 개선계획 제출을 명하도록 행정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나. 견해의 대립 및 결론
⑴ 범죄이용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 은행에 대하여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는지에 관하여 무죄설과 유죄설의 견해가 대립한다.
⑵ 살피건대, 이 사건 범행 당시 계좌개설업무에 있어 금융거래목적 확인의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었고, 이 사건 지침의 법적 성격이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단순한 행정지도에 불과한 사정은 인정된다. 그러나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가 발령한 이 사건 지침이 금융기관들에 사실상 구속력이 있고, 금융기관들이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이 사건 지침을 수용하여 계좌개설을 할 때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에 금융거래의 목적과 통장대여요청 여부에 대하여 답변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위 금융거래목적 확인 업무도 계좌개설 업무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이 이 사건 지침이 금융기관들의 업무로 편입된 이상, 이 사건 지침의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금융기관의 금융거래목적 확인 업무는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⑶ 금융기관은 이러한 법령에 따른 금융기관 또는 임직원에 대한 행정적 제재와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사기이용계좌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 경우 계좌개설을 거부할 수 있으므로 계좌개설과 관련하여 사기이용계좌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지를 심사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앞서 본 바와 같이 최근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금융기관의 금융거래목적 확인의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마련된 이상, 금융기관에 금융거래목적 확인의무 및 이에 따른 계좌개설, 거래 해지 등의 법률상 의무가 있고, 이에 따라 금융기관에 금융거래목적 확인에 대한 심사권한이 있음은 명백하다.
⑷ 다만 금융기관의 계좌개설 업무에 대한 업무방해죄 성립 여부도 대법원이 판시하고 있는 심사업무에 있어 업무담당자의 불충한 심사 법리(이하 ‘대상법리’라 한다)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상법리는 위계 공무집행방해죄 법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허가처분 등 신청사유의 진위 여부에 관하여 업무담당자에게 심사의무가 있는 경우에 적용되는 법리이다. 대법원은 대상법리를 설시하기에 앞서 보호대상인 업무가 ‘신청을 받아 자격 요건을 심사하여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인 경우에 적용된다는 취지를 모두에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는 업무방해의 위험발생가능성을 유발할 수 있는 인자가, ① 신청인의 신청행위뿐 아니라 ② 업무담당자의 심사의무 이행행위도 존재하게 되므로, 업무담당자가 심사의무를 불이행하였다면 신청자의 위계 신청행위만으로 업무방해의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보지 않는다.
⑸ 다만 업무담당자가 심사의무를 이행하였고, 신청자의 위계 정도가 심사의무를 다하여도 발견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그로 인한 업무방해의 위험발생을 긍정한다. ‘구체적인 각 사안에서 범인이 사용한 위계의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피고인이 제출한 허위의 신청사유나 소명자료가, ① 업무담당자가 쉽게 허위를 발견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면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킨 것이 아니고, ② 업무담당자가 충분히 심사하더라도 쉽게 허위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는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킨 것이라는 것이라고 본다.
⑹ 금융기관의 계좌개설 업무도 신청인의 신청을 받아 자격요건을 심사하여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이다. 사기업인 금융기관에 실질적인 조사의 권한은 없다고 하더라도,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뿐만 아니라 그 진실성과 정확성을 확인할 다른 서류들의 제출을 요구하고 확인을 하는 정도는 심사할 수 있고, 이 사건 지침을 금융기관이 수용한 이상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는 이를 심사할 의무도 있었다고 할 것이다.
⑺ 따라서 ‘위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좌개설 당시 신청인의 구체적인 신청행위의 내용과 태양에 따라 구분하여 달리 판단하여야 한다. 계좌개설 신청인의 신청행위가 은행의 계좌개설신청 심사업무담당자 나름의 충분한 심사에도 불구하고 오인ㆍ착각에 이를 정도에 이른 경우에 한하여 ‘위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야 한다.
⑻ ‘단순히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에 소극적으로 허위 답변을 한 행위만 있는 사안’에서는, 은행의 업무담당자는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에 기재된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계좌개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므로 이에 부합하는 ‘금융거래목적 증빙서류’ 등의 소명자료의 제출 요구 및 이에 대한 확인을 하여야 한다. 업무담당자가 위와 같은 조치 없이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아니한 채 신청자가 기재한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만을 가볍게 믿고 이를 수용하였다면,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로 인한 것이므로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부정할 여지가 크다.
⑼ 반면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에 허위 답변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부합하는 허위의 금융거래목적 증빙서류를 제출하는 등의 사안’에서는, 사안에 따라 다르겠으나, 업무방해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들의 사안과 같이 업무담당자가 그 신청사유 및 소명자료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하여 그 신청을 수리하게 될 정도에 이르렀다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심사업무에 있어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 법리를 판시한 대법원판결 사례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청사유 및 소명자료가 유사한 신청행위라도 구체적인 심사기준 및 정도, 심사의 방법 및 경위, 제출된 서류의 구체적인 내용 등 사안에 따라 ‘위계’ 여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5.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8호, 이길범 P.546-561 참조]
가. 대상 사건의 결론
⑴ 대상판결에 나타난 사실관계에 의하면, 피고인은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이 미리 마련한 양식인 예금거래신청서나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에 금융거래목적을 ‘사업거래중’ 또는 ‘법인통장개설’이라고 기재하고, 접근매체 양도 의사 유무에 관한 질문사항에는 ‘아니오’로 답변하는 등 소극적인 행위만을 하였다.
또한 피고인이 위와 같이 법인 명의의 계좌개설을 신청하면서 제출한 관련 서류들은, 계좌 명의자인 회사의 사업사실 등록을 증명하거나 회사가 상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성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한 사업자등록증, 법인등기사항증명서, 법인인감증명서, 정관뿐이었다. 이들 서류 외에 피해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피고인에게 금융거래목적 등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자료제출을 요구하였다거나 이를 확인하였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⑵ 피고인이 법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면서 작성한 예금거래신청서나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는 내용의 진실성이 담보되는 서류라고 볼 수 없고, 제출된 관련 서류들도 법인 명의 계좌개설 시 기본적으로 구비하여야 할 서류들로 보일 뿐, 계좌 명의자인 각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거나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등의 진실한 금융거래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 이 사건에서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금융거래목적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추가로 그에 관한 객관적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적절한 심사절차를 진행하였음에도 피고인이 그에 관하여 허위 서류를 작성하거나 문서를 위조하여 제출함으로써 업무담당자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하여 계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⑶ 결국 이 사건 각 법인 명의 계좌가 개설된 것은 피해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아 계좌개설 신청인인 피고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으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금융기관에 계좌개설을 신청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기재하였더라도,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기재된 계좌개설 신청인의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 준 경우, 그 계좌개설은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계좌개설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법리를 판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