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판례<대포통장과 횡령죄>】《제3자명의 사기이용계좌(대포통장) 명의인이 그 계좌에 입금된 보이스피싱(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을 인출한 경우 횡령죄 성립 여부(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대포통장을 양도한 계좌명의인과 횡령죄>》〔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사기이용계좌의 명의인이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금을 횡령한 사건]
가.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그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실상의 관계에 있으면 충분하고 피고인이 반드시 민사상 계약의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 위탁관계는 사용대차․임대차․위임․임치 등의 계약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한하지 않고 사무관리와 같은 법률의 규정, 관습이나 조리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횡령죄의 본질이 위탁받은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 송금의뢰인이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자금을 송금․이체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그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계좌명의인(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그 자금에 대하여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계좌명의인은 수취은행에 대하여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이때 송금의뢰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송금․이체의 원인이 된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송금․이체에 의하여 계좌명의인이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 계좌명의인은 송금의뢰인에게 그 금액 상당의 돈을 반환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계좌명의인이 송금․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계좌명의인이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러한 법리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계좌명 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다. 한편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
⑴ 계좌명의인이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게 예금계좌에 연결된 접근매체를 양도 하였다 하더라도 은행에 대하여 여전히 예금계약의 당사자로서 예금반환청구권을 가지는 이상 그 계좌에 송금․이체된 돈이 그 접근매체를 교부받은 사람에게 귀속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접근매체를 교부받은 사람은 계좌명의인의 예금반환청구권을 자신이 사실상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예금 자체를 취득한 것이 아니다. 판례는 전기통신금융 사기범행으로 피해자의 돈이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되었다면 이로써 편취행위는 기수에 이른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사기범이 접근매체를 이용하여 그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의미일 뿐 사기범이 그 돈을 취득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⑵ 또한 계좌명의인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 사이의 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 한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가 아니다. 사기범이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돈을 송금․ 이체하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기범이 그 계좌를 이용하는 것도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의 실행행위에 해당하므로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를 횡령죄로 보호하는 것은 그 범행으로 송금․이체된 돈을 사기범에게 귀속시키는 결과가 되어 옳지 않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가. 공소사실
피고인들은 2017. 2. 12.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피고인 1이 SC제일은행에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예금계좌(이하 '이 사건 계좌'라 한다)의 예금통장과 위 계좌에연결된 체크카드 1개, OTP카드 1개 등을 교부하여 전자금융거래에 관한 접근매체를 양도하였다.
이후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2017. 2. 13. 09:00경 공소외인에게 전화하여검사를 사칭하면서 “당신 명의로 은행 계좌가 개설되어 범죄에 이용되었다. 명의가 도용된것 같으니 추가 피해 예방을 위해 금융기관에 있는 돈을 해약하여 금융법률 전문가인 피고인 1에게 송금하면 범죄 연관성을 확인 후 돌려주겠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에 속은공소외인은 2017. 2. 14. 11:20경 이 사건 계좌에 613만 원(이하 '이 사건 사기피해금'이라한다)을 송금하였는데, 피고인들은 같은 날 11:50경 별도로 만들어 소지하고 있던 이 사건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그중 300만 원을 임의로 인출하였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① 이 사건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공소외인에 대한 사기범행을 방조하고, ② 이 사건 사기피해금 중 300만 원을 임의로 인출함으로써 주위적으로는 이 사건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재물을, 예비적으로는 공소외인의 재물을 횡령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이에 대하여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모두 무죄로 판단하였다.
사기방조의 점은 피고인들이 이 사건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될 것임을 인식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이다.
횡령의 점은 이 사건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물론 공소외인과 사이에도 이 사건 사기피해금의 보관에 관한 위탁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주위적 및 예비적 공소사실 모두 무죄이다.
다. 쟁점
⑴ 이 사건 쟁점은,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경우,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여부(한정 적극) 및 이때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가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도 횡령죄가 되는지 여부(소극)이다.
⑵ 피고인 甲, 乙이 공모하여, 피고인 甲 명의로 개설된 예금계좌의 접근매체를 보이스피싱 조직원 丙에게 양도하였고, 사기피해자 丁이 丙에게 속아 위 계좌로 송금한 사기피해금 중 일부를 별도의 접근매체를 이용하여 임의로 인출하였다.
검사는 피고인들이 사기피해자가 송금한 금원을 인출한 행위를 횡령죄로 기소하였다.
1심과 2심은 피고인들과 사기피해자 사이에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다.
⑶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착오송금에 관한 이전의 대법원 판례(대법원 1968. 7. 24. 선고 1966도1705 판결,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975 판결, 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6도3929 판결,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도3045 판결 등)에 비추어 횡령죄의 성립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3. 횡령죄 일반론
가. 횡령죄의 주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
⑴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한다.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그 재물의 점유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위탁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대법원 2005. 9. 9. 선고 2003도4828 판결, 대법원 2007. 5. 31. 선고 2007도1082 판결, 대법원 2010. 6. 24. 선고 2009도9242 판결 등).
그러나 반드시 위탁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1985. 9. 10. 선고 84도2644 판결).
사용대차, 임대차, 위임 등의 계약에 의하여 설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무관리, 관습, 조리, 신의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대법원 1987. 10. 13. 선고 87도1778 판결, 대법원 2006. 1. 12. 선고 2005도7610 판결,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등).
그 위탁관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상의 관계이면 충분하고, 피고인이 반드시 민사상 계약의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3도2077 판결).
위탁자에게 유효한 처분을 할 권한이 있는지 또는 수탁자가 법률상 그 재물을 수탁할 권리가 있는지 여부를 불문한다(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5도2413 판결).
⑵ ‘보관’은 점유보다 넓은 개념으로 사실상 점유나 소지뿐만 아니라 법률상 관리․지배 처분이 가능한 상태도 포함한다(대법원 2000. 8. 18. 선고 2000도1856 판결).
판례는 타인의 금전을 보관하는 자가 보관방법으로 이를 은행 등의 금융기관에 예치한 경우에도 보관자의 지위를 가진다고 본다(대법원 1983. 9. 13. 선고 82도75 판결, 대법원 2000. 8. 18. 선고 2000도1856 판결, 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8도8279 판결,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도10531 판결,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4도 11244 판결 등).
또한 타인의 금전을 보관하는 자가 제3자 명의의 예금계좌에 예치한 경우에도 그 계좌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면 역시 보관자의 지위를 갖는다고 본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5도7861 판결).
예금채권의 법률상․사실상 지배는 성질상 위탁된 금전 자체의 지배와 동일시할 수 있다.
⑶ 횡령죄의 본질은 위탁된 타인의 재물을 위법하게 영득하는 데 있으므로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등).
보관하고 있는 재물에 관하여 위탁관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재물이 타인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그 재물에 대한 타인의 소유권을 형법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보관하고 있는 재물이 타인에게 귀속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경우임에도 그와의 위탁관계를 인정하여 횡령죄로 보호하는 것은 모순이다.
나. 법률상 원인 없이 수취한 돈을 소비한 행위에 대하여 횡령죄 성립을 인정한 판례
판례는 송금인이 착오로 계좌를 잘못 기재하는 등 송금절차상의 착오로 의도하지 않은 계좌로 송금한 경우나 송금행위 자체에는 착오가 없었으나 돈을 지급할 아무런 원인 없이 돈을 송금한 경우에 계좌명의인인 수취인이 이를 임의로 소비한 사안에서 횡령죄 성립을 인정한 바 있다(‘착오송금’ 사안)
[① 대법원 1968. 7. 24. 선고 66도1705 판결 : 송금절차의 착오로 피고인의 은 행 개인계좌에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소비한 사안 ②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975 판결 : 부동산 매수인이 대금을 전액 지급하였음에도 매도인에게 추가 송금한 것을 매도인이 이를 임의 소비한 사안 ③ 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6도3929 판결 : 거래관계에 있던 회사 사이에서 업무상 착오로 전자어음이 발행되어 입금된 것을 수취인이 임의소비한 사안 ④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 피해자 회사의 직원이 계좌이체 과정에서 실수로 피고인의 은행계좌로 돈을 잘못 송금하고, 피고인은 위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사용한 사안으로 거래관계가 없더라도 신의칙상 보관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할 뿐 횡령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파기한 사안 ⑤ 대법원 2016. 12. 1. 선고 2016도6643 판결 : 채무자가 채권양도를 승낙하였음에도 채권양도인에게 채무금을 송금하였는데 채권양도인이 이를 임의로 사용한 사안에서 채권양도로써 채권은 양도인으로부터 양수인에게 이전되어 양도인에게는 채권을 추심하거나 변제를 수령할 권한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안].
4. ‘사기이용계좌’ 명의인의 사기피해금 임의인출행위에 관한 판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18호 배정현 621-645 참조]
가. 계좌명의인이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
대법원은 계좌명의인이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하여 은행에 대한 사기죄, 절도죄, 사기피해자에 대한 장물취득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⑴ 은행을 피해자로 한 사기죄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10도3498 판결은 수취인이 은행에 대하여 예금반환을 청구함에 따라 은행이 수취인에게 그 예금을 지급하는 행위는 계좌이체금액 상당의 예금계약의 성립 및 그 예금채권 취득에 따른 것으로서 은행이 착오에 빠져 처분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은행을 피해자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⑵ 은행에 대한 절도죄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도8776 판결은 ‘대포통장’의 계좌명의인이 금전의 인출을 시도한 행위는 자신의 명의로 된 은행계좌를 이용한 것이어서 애초 예금계좌를 개설한 은행의 의사에 반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절취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⑶ 사기피해자에 대한 장물취득죄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6256 판결은 본인 명의의 계좌를 성명불상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사기범행을 방조하였다는 사실로 사기방조죄로, 사기피해자로부터 그 계좌로 송금된 돈을 인출함으로써 장물을 취득하였다는 사실로 장물취득죄로 기소된 사안이다. 위 판결은 사기방조죄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유지하면서, 장물취득죄에 대하여는 본범의 사기행위는 본범에게 편취금이 귀속되는 과정 없이 사기방조범인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피고인의 예금계좌로 송금받아 취득함으로써 종료되는 것이고, 그 후 피고인이 자신의 예금계좌에서 위 돈을 인출하였어도 이는 예금명의자로서 은행에 예금반환을 청구한 결과일 뿐 본범으로부터 위 돈에 대한 점유를 이전받아 사실상 처분권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출행위를 장물취득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 횡령죄로만 기소된 경우
횡령죄로만 기소된 사안에서, 돈을 송금한 사기피해자 또는 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 성립을 인정한 하급심판결은 대부분 그대로 확정되어 왔다.
대법원은 별다른 법리 설시 없이 ①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한 바 있고(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4도11897 판결 등), ② 성명불상의 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 성립을 부정한 원심을 수긍한 바도 있다(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1도14691 판결).
다. 횡령죄 외에 사기죄(공범 포함)로도 기소되어 사기죄가 유죄로 판단된 경우
⑴ 대법원 2011. 2. 10. 선고 2010도17016 판결
위 판결은 처음부터 계좌가 사기범행에 사용될 것임을 알고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사기방조죄를 유죄로 인정하였으나, 횡령죄에 대하여는 사기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하였다.
⑵ 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도3045 판결
위 사건의 원심은 사기방조죄를 유죄로, 횡령죄를 무죄로 판단하였다.
2017도3045 판결은 사기방조죄에 관한 상고이유를 배척하는 한편 자신 명의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사기범행을 방조한 자에 대해서는 접근매체 양도 이후에 이루어진 사기피해금 인출행위에 대하여는 따로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횡령죄에 관한 원심의 판단에 불가벌적 사후행위 등에 관한 법리 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하였다.
라. 판례의 태도
횡령죄 성립 여부와 관련한 상고이유를 판단한 대법원판결의 태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5. 대법원 2017도3045 판결, 2017도3894 판결의 적용 범위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18호 배정현 621-645 참조]
가. 불가벌적 사후행위
대법원 2017도3045 판결, 2017도3894 판결은 전자통신금융사기(이른바 보이스피싱 범죄)의 범인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피해자의 돈을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받은 후 사기이용계좌에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는 사기죄(공범) 외에 따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고, 이는 사기범행에 이용되리라는 사정을 알고서도 자신 명의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사기범행을 방조한 종범이 사기이용계좌로 송금된 피해자의 돈을 임의로 인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그 취지는 사기의 범인(공범 포함)이 사기범행의 결과 편취한 돈을 보유하는 것은 사기피해자의 소유권을 침해한 위법한 상태가 계속된 것에 불과하지 사기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사기범행으로 편취한 돈을 인출한 행위는 이미 유죄로 판단된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포함되거나 사기범행이 예정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사기(방조)죄가 성립하는 것과 별도로 횡령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가벌적 사후행위라는 취지이다.
피해자가 다르면 새로운 법익침해가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판결은 우선 공소사실상 사기피해자가 횡령 피해자로 되어 있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계좌명의인이 선행된 사기범행에 가담하였다고 평가된 경우, 즉 사기죄의 범인(공범 포함)임이 소송에서 증명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사기죄로 기소되지 않은 경우에도 사기범행에 가담하였는지를 심리하여 횡령죄 성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
사기의 공범으로는 기소되지 않고 사기이용계좌에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해서만 횡령죄로 기소된 경우에도 법원이 사기범행에 가담한 사실(사기범행에 이용되리라는 사정을 알고도 자신 명의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한 사실)을 인정한 후 2017도3045 판결, 2017도3894 판결을 원용하면서 계좌명의인과 사기피해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횡령죄를 무죄로 판단한 하급심도 보인다.
이 문제는 ① 사기죄로 처벌되는지와 무관하게 기망에 의해 타인의 재물을 점유하게 된 경우에는 위탁관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인지, ② 선행 범행에 가담하였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음에도 후행의 재물처분행위만을 기소할 수 있는지, 후행의 처분행위만을 기소한 경우 법원이 공소장에 기재되지 않은 부분을 고려하여 후행의 처분행위를 ‘불가벌’이라고 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 문제이다.
계좌명의인이 자신의 계좌에 자신과는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돈(제3자의 사기로 인한 사기피해금 등)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한 행위에 대하여만 횡령죄로 기소된 경우 계좌명의인이 그 돈의 송금인을 기망하여 돈을 송금하게 한 것인지 또는 제3자의 사기범행에 가담하였는지 여부를 직권으로 심리하여 그에 따라 횡령죄 성부를 판단할 것은 아니다.
법원이 횡령죄에 대한 심리 도중 피고인이 처음부터 타인을 기망하여 그의 재물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보이더라도, 사기죄가 성립하는 경우, 즉 사기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판단된 경우가 아닌 한 그 타인과의 위탁관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6. 계좌명의인이 그 계좌에 입금된 사기피해금을 임의로 인출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 여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18호 배정현 621-645 참조]
가.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 성립
계좌명의인이 인출한 돈은 당연히 사기피해금과 동일한 돈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임을 전제로 한다.
또 사기이용계좌에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피고인은 사기죄(공범 포함)로는 처벌되지 않은 경우(사기죄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거나 기소되었어도 무죄로 판단된 경우)임을 전제로 한다. 사기죄로도 동시 기소(병합심리 포함)되어 주된 범행인 사기죄가 유죄로 판단된 경우에는 사기피해금 인출행위에 대하여는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따로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이 경우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
사기피해자(송금인)와 계좌명의인 사이에 신의칙상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에 사기피해금이 송금되었어도 사기피해자가 그 돈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였다거나 그 돈을 접근매체를 양수한 사기범의 돈으로 볼 수는 없다.
계좌명의인과 접근매체 양수인 사이에는 보호할 만한 위탁관계가 없으므로 접근매체 양수인을 피해자로 볼 수 없다.
나. 사기죄로의 기소된 경우 처벌 여부와 횡령죄
대상판결의 쟁점은 사기이용계좌에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피고인은 사기(방조)죄로는 처벌되지 않은 경우(기소조차 되지 않았거나 기소되었어도 사기범행이 증명되지 않아 무죄로 판단된 경우)임을 전제로 한다.
사기죄로도 동시 기소되어 주된 범행인 사기죄가 유죄로 판단된 경우에는 대법원 2017도3045 판결, 2017도3894 판결이 설시한 법리에 따라 이후의 사기피해금 인출행위에 대하여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따로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이 사건과 달리 횡령죄로 기소되기 전에 사기죄로 별도 기소된 경우 에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사기의 공소사실이 유죄로 되면 횡령의 공소사실(편취한 재물을 소비․처분한 사실)은 사기죄에 흡수되어 별도로 성립할 수 없고, 사기죄가 무죄로 된 경우에만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사기와 횡령의 공소사실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런데 판례는 A, B 공소사실이 양립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경우, 규범적으로는 양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하여 공소장 변경을 허가해야 한다고 하거나, A 공소사실에 대한 약식명령의 기판력이 B 공소사실에 대한 미친다고 보아 면소를 선고한 조치가 옳다고 한 바 있다(대법원 1998. 6. 26. 선고 97도3297 판결,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도3950 판결).
만일 사기이용계좌에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하여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로 기소하기 전에 별도로 그 사기피해금의 편취행위와 관련하여 사기범행의 공범으로 기소되었던 경우에는 횡령의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하거나(형사소송법 제327조 제3호), 면소판결(형사소송법 제326조 제1호)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기이용계좌에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하여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로 기소된 경우 처리방안은 다음과 같다.
6. 대상판결의 내용분석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18호 배정현 621-645 참조]
⑴ 대상판결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자기 명의 계좌의 통장을 양도한 후, 그 계좌에 송금된 사기피해금을 임의로 인출한 사안에서,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자기 명의의 계좌에 돈이 송금․이체되었어도 그 돈이 자기가 수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돈을 그대로 보관하여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보관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고, 따라서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송금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함을 분명히 하면서, 그러한 법리는 송금․이체된 돈이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으로 인한 사기피해금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하였다.
⑵ 한편, 이 경우에도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⑶ 대상판결은 피고인들에게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함을 부가함으로써 대법원 2017도3045 판결의 적용 범위를 밝혔다.
이때 ‘사기방조죄 성립’은 사기방조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판단된 경우를 의미함은 물론이다.
그 의미를 사기방조죄로 기소되지도 않았음에도 계좌명의인의 접근매체 양도행위가 사기범행을 방조한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심리․판단하여 그에 따라 횡령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는 있다는 의미로 새길 수 없다.
대상판결 선고 이후 대법원은 자기 명의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한 자가 그 계좌에 입금된 사기피해금을 인출한 행위에 대하여 횡령죄로만 기소되고 접근매체를 양도한 행위와 관련하여 사기방조죄로는 기소되지 않았음에도 원심이 피고인이 사기범행에 이용되리라는 사정을 알고서 접근매체를 양도한 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하여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 사안에서, 대상판결을 원용하면서 원심판결에는 횡령죄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도12199 판결, 대법원 2019. 4. 3. 선고 2018도7955 판결 등).
⑷ 결론적으로, 계좌명의인은 착오로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계좌명의인이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러한 법리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한편 甲의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
첫째, 보이스피싱 범인은 계좌명의인의 예금반환청구권을 자신이 사실상 행사할 수 있어 그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의미일 뿐 예금 자체를 취득한 것이 아니다.
둘째, 계좌명의인과 보이스피싱 범인 사이의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에게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사기피해금 중 300만 원을 임의로 인출한 행위는 피해자 공소외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횡령의 점에 관하여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피해자로 삼은 주위적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와 달리 공소외인을 피해자로 삼은 예비적 공소사실도 무죄로 판단한 데에는 횡령죄에서의 위탁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
보이스피싱 사기죄는 보이스피싱 범인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제3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송금 또는 이체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범행 이전에 보이스피싱 범인은 제3자에게 대가를 제공하고 제3자 명의의 예금계좌를 개설하거나 기존의 예금계좌가 있는 경우 그 예금계좌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도록 예금통장, 현금카드, 도장 등(접근매체)을 받아놓는다.
그리고 피해자로부터 제3자 명의의 통장으로 돈이 송금․이체되면 보이스피싱 범인은 제3자로부터 받아놓은 접근매체를 사용하여 제3자 명의의 예금계좌에서 돈을 인출한다.
그런데 대상판결의 사건에서는 제3자가 별도로 만든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피해자가 송금한 돈을 보이스피싱 범인 모르게 인출하였다.
중요한 것은 제3자는 보이스피싱 밤인이 사기범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기방조의 죄책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제3자가 사기방조의 죄책을 진다면 제3자의 예금인출 행위는 또 다른 형법적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계좌에 송금된 돈을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계좌명의인이 무단 인출한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한 전원합의체판결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에 대해 별개의견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범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하고, 반대의견은 보이스피싱 피해자 및 보이스피싱 범인 모두에 대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