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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계약교섭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파킹거래’를 요청한 자의 매수거부가 계약교섭부당파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1다216773 판결)》〔윤경 변호사 더..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4. 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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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계약교섭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파킹거래를 요청한 자의 매수거부가 계약교섭부당파기에 해당하는지 여부(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1216773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피고로부터 어음의 매수보관을 부탁받아 원고가 제3자로부터 어음을 매수하였는데, 피고가 원고로부터 위 어음을 매수하기를 거부한 사안에서, 피고의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건]

 

판시사항

 

[1]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 상대방이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2]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성립을 기대하고 이행을 위하여 지출하였거나 지출할 것이 확실한 비용이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해당할 수 있는 경우

 

[3] 갑 증권회사의 직원이 을 증권회사의 직원에게 병 증권회사가 갑 회사로부터 매수하여 보관하고 있던 정 주식회사 발행의 기업어음을 을 회사가 매수하여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자, 을 회사의 직원이 을 회사는 위 어음을 매수하여 5영업일간 보관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고, 그 직후 을 회사가 위 어음을 매수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위 어음이 부도처리되자, 을 회사가 갑 회사를 상대로 주위적으로는 매매대금 등의 지급을 구하고, 예비적으로는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갑 회사가 을 회사로부터 위 어음을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 등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갑 회사가 위 어음에 관한 매매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은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에 해당하므로, 을 회사가 위 어음을 매수하는 데 지출한 매매비용 등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

 

[2] 계약 교섭 단계에서는 아직 계약이 성립된 것이 아니므로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이행행위를 준비하거나 이를 착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서, 설령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기의 위험 판단과 책임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행의 착수가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고 바로 위와 같은 이행에 들인 비용의 지급에 관하여 이미 계약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성립을 기대하고 이행을 위하여 지출하였거나 지출할 것이 확실한 비용은 계약체결을 신뢰하여 발생한 손해로서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해당할 수 있다.

 

[3] 갑 증권회사의 직원이 을 증권회사의 직원에게 병 증권회사가 갑 회사로부터 매수하여 보관하고 있던 정 주식회사 발행의 기업어음을 을 회사가 매수하여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자, 을 회사의 직원이 을 회사는 위 어음을 매수하여 5영업일간 보관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고, 그 직후 을 회사가 위 어음을 매수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위 어음이 부도처리되자, 을 회사가 갑 회사를 상대로 주위적으로는 을 회사가 위 어음을 매수할 당시 갑 회사와 을 회사 사이에 5영업일이 지난 후에는 위 어음을 갑 회사에 이전하기로 하는 내용의 매매계약 또는 이러한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기로 하는 매매예약이 체결되었거나 위 어음에 관한 매매위탁 또는 위임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매매대금 등의 지급을 구하고, 예비적으로는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에 따른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갑 회사와 을 회사 사이에 갑 회사가 을 회사로부터 위 어음을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 등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갑 회사가 을 회사에 위 어음에 관한 매매계약이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또는 신뢰를 부여하여 을 회사가 그 신뢰에 따라 병 회사로부터 위 어음을 매수하였는데도 갑 회사가 상당한 이유 없이 위 어음에 관한 매매계약 체결을 거부하였고, 이는 신의성실 원칙에 비추어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갑 회사는 을 회사가 위 어음을 매수하는 데 지출한 매매비용과 지연손해금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한 사례.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2366-2368 참조]

 

. 사실관계

 

BNK투자증권은 피고로부터 이 사건 어음을 매수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피고의 직원은 원고의 직원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BNK투자증권으로부터 이 사건 어음 100억 원 상당을 매수하여 보관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원고의 직원은 매수 후 5영업일간 보유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위 대화 직후 원고는 BNK투자증권으로부터 이 사건 어음 100억 원 상당을 약 98억 원에 매수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 어음을 지급보증한 회사가 자신이 지급보증한 사채를 만기에 상환하지 못하였다는 등으로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오자, 피고는 원고의 이 사건 어음 매수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 후 실제로 이 사건 어음을 지급보증한 회사는 디폴트가 선언되었고, 이 사건 어음에 관하여서도 그 만기일에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못하였으며, 이에 이 사건 어음은 최종적으로 부도처리 되었다.

 

이에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어음의 매매대금 약 98억 원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면서, 주위적 청구원인으로는 매매계약을, 3예비적 청구원인으로는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을 주장하였다.

 

원심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매매계약이 실제로 체결되지는 않았다고 보아 주위적 청구는 기각하였으나, 피고가 계약교섭을 부당하게 중도파기하였다고 보아 제3예비적 청구는 인용하면서 피고의 책임을 70%로 제한하였다(상고기각).

 

. 쟁점

 

위 판결의 쟁점은,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인정요건과 손해배상의 범위이다.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268061 판결 참조).

계약교섭 단계에서는 아직 계약이 성립된 것이 아니므로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이행행위를 준비하거나 이를 착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서, 설령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기의 위험 판단과 책임에 따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행의 착수가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고 바로 위와 같은 이행에 들인 비용의 지급에 관하여 이미 계약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성립을 기대하고 이행을 위하여 지출하였거나 지출할 것이 확실한 비용은 계약체결을 신뢰하여 발생한 손해로서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해당할 수 있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612305 판결 참조).

 

피고(증권회사)의 직원이 제3자로부터 기업어음을 매수하고자 하면서 피고 내부 보유한도 제한을 회피하고자, 원고(다른 증권회사)의 직원에게 피고가 매수하려는 일부 기업어음을 원고가 매수하여 일정 기간 동안 보관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위 부탁에 따라 원고가 기업어음을 매수하였는데, 기업어음이 부도처리되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주위적으로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원고가 매수한 기업어음에 관한 매매계약 등이 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매매대금 등의 지급을 구하면서 예비적으로는 매매계약의 체결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계약교섭의 부당파기에 따른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대법원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피고가 원고로부터 원고가 매수한 기업어음을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 등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으나, 피고가 위와 같은 매매계약의 체결을 거부한 것은 계약교섭의 부당파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원고가 기업어음을 매수하면서 지출한 매매대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3. 대상판결의 검토 (=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인정요건과 손해배상의 범위)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2366-2368 참조]

 

. 계약교섭 부당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불법행위책임에 해당함

 

과거에 강학상으로는 민법 제535(계약체결상의 과실)를 넓게 해석하여, 계약교섭 부당파기 또한 위 규정의 적용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위 규정은 문언 그대로 계약이 원시적 불능으로 무효인 경우의 신뢰이익배상에 관한 책임에 한정되고, 그 이외에 계약체결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는 불법행위로 해결한다고 정리되었다.

 

. 매매계약의 체결은 인정하기 어려운 사안임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510929 판결 : 계약이 의사의 불합치로 성립하지 아니한 경우 그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당사자가 상대방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상대방이 계약이 성립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을 이유로 민법 제535조를 유추적용하여 계약체결상의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다.

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560451 판결 :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1. 6. 15. 선고 9940418 판결, 2004. 5. 28. 선고 200232301 판결 등 참조).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에 관한 민법 제535조는 계약의 목적이 불능인 경우를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계약의 목적이 불능이었다고 볼 수 없는 이 사건에는 민법 제535조가 직접 적용될 수 없다 할 것이다.

 

매매계약은 낙성계약이고, 피고가 원고로부터 이 사건 어음을 매수하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표시되었으므로, 매매계약의 체결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도 충분히 들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대금의 액수와 이행기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기업어음은 만기일까지 계속 전전 유통되는데, 만기 전에 어음이 거래될 때의 대금액은 만기일까지 남은 기간이 비례하는 할인율을 액면금에 곱하여 산정한다.

따라서 피고가 원고로부터 이 사건 어음을 매수할 시점이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면, 매매계약의 요소인 대금액도 구체적으로 정해졌다고 할 수 없어서, 매매계약의 체결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 피고가 계약교섭을 부당하게 중도파기했다고 봄이 타당함

 

원고와 피고 사이의 거래, 즉 이른바 파킹거래는 종전부터 있어 왔던 형태의 거래이다.

 

게다가 증거로 제출된 메신저 대화 내용에 명백히, 피고 직원이 원고 직원에게 늦어도 특정 일자까지는 다시 매수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 있었고, 원고는 이를 믿고 이 사건 어음을 매수한 것이다.

 

이러한 경위로 원고가 매수한 이 사건 어음의 부도 위험이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피고가 이 사건 어음을 매수하지 않는 것은 반사회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원심은 피고의 책임을 70%로 제한하였으므로, 나머지 30%는 원고가 손해를 감수하여야 한다.

원심은 그 근거로, 이 사건 어음 부도 자체에는 피고의 책임이 없는 점, 원고도 전문가로서 어음 보유에 따른 위험을 분담하여야 공평한 점, ‘파킹거래라는 비정상적 거래행위에 가담한 원고도 손해를 분담함이 상당한 점을 들었다.

대상판결은 원심의 위 판단도 수긍하였다.

 

4.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884-916 참조]

 

. 일반적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 인정 여부

 

 종래의 통설은 독일의 학설 및 판례에 좇아 일반적 계약체결상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였으나,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부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첫째 불법행위법은 피해자 보호에 비교적 충분하다.  과실로 인한 순수재산손해도 행위의 위법성만 인정되면 전보될 수 있고  판례는 피용자의 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면책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거래상의 주의의무가 발생하는 시점인 거래상 접촉이라는 기준은 매우 불명확하여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 셋째 학설에서 논의되는 각 유형은 제535, 불법행위, 채무불이행 등 기존의 이론에 의하여 충분히 적절하게 규율할 수 있다.

 

 판례는 불법행위책임의 요건인 위법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는바, 위 부정설과 같은 태도인 것으로 이해된다.

위법행위는 불법행위의 핵심적인 성립요건으로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사회통념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포함할 수 있는 탄력적인 개념이다.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 위법성은 관련 행위 전체를 일체로 보아 판단하여 결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ㆍ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2. 9. 선고 9955434 판결 등 참조).

소유권을 비롯한 절대권을 침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침해행위의 양태,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그 정도에 비추어 그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이 소유권 등 물권을 침해하지 않은 경우에도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 개념을 활용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타인의 성과물을 도용하였다는 이유로 위법성을 인정한 대법원판결도 이에 속한다. , 대법원은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 8. 25.  20081541 결정 참조).

 

 또한 대법원은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에 관한 사례에서 일정한 요건하에 불법행위의 성립을 긍정해 왔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32301 판결 등 참조).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21. 6. 30. 선고 2019268061 판결 : 갑 사단법인이 을 국립대학교의 연구원과 협력하여 수행한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 번역 사업에서 위선지 만학지의 일부에 관한 교감ㆍ표점 작업이 되어 있는 원문과 이를 번역한 번역문으로 이루어진 번역본 초고를 작성하였다가 위 협력 사업이 중간에 종결되자 을 대학교 연구원에 번역본 초고를 폐기할 것과 이를 서적 출판 등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후 을 대학교 연구원이 병 등과 번역을 위한 계약을 체결한 다음 이들의 번역 작업을 거쳐 위선지의 번역서를 출판사인 정 주식회사를 통해 출판하자, 갑 법인이 위 출판행위가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며 국가 및 병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갑 법인의 번역본 초고가 작성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 및 높은 수준의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갑 법인의 번역본 초고는 을 대학교 연구원과의 협력관계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번역 계약의 체결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갑 법인의 노력과 투자에 의해 작성된 것이고, 갑 법인이 협력 사업 종료 후 번역본 초고의 폐기와 사용금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하기도 하였는데, 만일 을 대학교 연구원 등이 위와 같은 사정을 인식하고서도 갑 법인의 번역본 초고를 무단으로 이용하여 위선지 번역서를 작성ㆍ출판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더욱 큰 점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사정들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이를 기초로 을 대학교 연구원 등의 행위가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단계에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에 있었던 갑 법인이 가지게 된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침해하고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판단하였어야 하는데도, 이와 달리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판결에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 유형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계약 외적 법익이 침해된 경우

 

 예컨대 원고가 피고 상점의 점원에게 원하는 양탄자를 가리키며 꺼내서 보여 달라고 하자 점원이 그 양탄자를 양탄자 속에서 빼내기 위하여 다른 양탄자를 옆에다 세워 놓았다가 그것이 넘어지면서 원고를 다치게 한 경우(양탄자 사건), 물건을 사러 온 원고가 피고 백화점 통로에 놓여져 있던 바나나껍질에 미끄러져서 크게 다친 경우(바나나껍질 사건), 14세인 원고가 어머니를 따라 슈퍼마켓에 와서 어머니가 계산대에 줄을 서 있는 동안 계산대 근처에 놓여 있는 채소 잎에 미끄러져서 다친 경우(3자 상해) 등을 들 수 있다.

 

 독일 최고법원은 위 각 사례에서 점원의 과실에 대한 증명책임(양탄자 사건), 사용자인 피고 백화점의 면책가능성(바나나껍질 사건), 소멸시효(3자 상해) 문제 때문에 피해자에게 더욱 유리한 계약책임에 관한 법리가 적용될 수 있도록 계약체결상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였다.

 

 우리 민법에서는 불법행위로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고, 불법행위 법리에 의하여 피해자가 보호되지 않는 경우에까지 기존의 이론체계를 무너뜨려가면서 피해자를 특별히 보호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 : 항을 나누어 살펴본다.

 

5.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884-916 참조]

 

. 의의

 

계약 자유의 원칙은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따라서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도중에 교섭을 중단하는 것은 자유이고, 교섭을 파기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만일 이 경우 교섭을 파기한 사람이 일정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사자들은 그 위험 때문에 협상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리게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상 조건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면하기 위하여 조속히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약 자유의 원칙에도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실제로는 계약을 체결할 마음이 없으면서도 상대방을 교섭에 끌어들인 뒤 나중에 그 교섭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거나, 상대방에게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를 부여하여 놓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파기하는 행위 등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원칙인 신의 성실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법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계약 자유의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일정한 경우에 계약 교섭을 부당하게 파기한 자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추세이다.

 

.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에 대한 우선적 구제책

 

 계약의 성립

 계약체결의 강제

 예비적 합의

 

. 계약의 성립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 문제는 대부분 교섭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 발생하기 때문에 계약을 파기당한 상대방은 우선적으로 계약의 성립을 주장하여 그 이행 또는 이행거절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가 문제 된 대법원 판결들의 사안을 보면, 원고가 주위적으로 계약의 성립을 주장하며 채무의 이행 또는 채무불이행(이행거절)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의 합치

 

계약이 성립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들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의사 합치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은 계약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을 것이 요구되고, 이러한 의사의 합치는 당해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모든 사항에 관하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그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민법이 정한 전형계약의 경우에는 각 계약의 의의 조항에서 각 계약의 주요한 내용을 도출할 수 있다. 예컨대 매매계약에서 목적물과 대금(563), 임대차계약에서 목적물과 차임(618), 도급계약에서 완성해야 할 일과 보수(644) ]에 관하여는 구체적으로 의사의 합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는 있어야 하며(그러나 계약의 중요한 사항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에 계약의 성립을 항상 부정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고용계약의 경우에 보수는 중요한 사항에 해당하지만 보수에 관한 약정이 없더라도 고용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할 수 있다. 656조 제1항이 보수 또는 보수액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관습에 의하여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당사자에게 계약에 구속되려는 의사가 있다면 계약의 성립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매매계약에 따라 물건이 인도된 경우에는 당사자들에게 계약에 구속되려는 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매매대금을 확정하거나 확정할 방법을 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약의 성립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시가나 거래관행 등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대금을 결정하여야 한다), 한편 당사자가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표시한 사항에 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은 성립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51650 판결).

 

 계약서 작성의 의미

 

 계약서의 작성은 원칙적으로 계약의 성립요건 또는 효력발생요건이 아니다. 그것은 계약의 성립을 증명하는 증거일 뿐이다.

 

 그러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법상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당사자들이 계약의 대강에 관하여 합의를 하고 나중에 계약의 세부적 내용을 포함하는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하였는데 그 의사가 계약서의 작성이 있을 때까지는 효력을 발생시키지 않겠다는 것인 경우에는 계약서가 작성되어야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11, 지방재정법 제63조 참조. 대법원 2004. 1. 27. 선고 200314812 판결은, “구 지방재정법(1988. 4. 6. 법률 제4006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52조의5,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하여 이 법 및 다른 법령에서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예산회계법 제6(계약)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른 준용조문인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70조의6 1, 2항은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그 위임을 받은 공무원이 계약을 하고자 할 때에는 계약의 목적, 계약금액, 이행기간, 계약보증금, 위험부담, 지체상금 기타 필요한 사항을 명백히 기재한 계약서를 작성하여 그 담당공무원과 계약상대자가 계약서에 기명날인함으로써 계약이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구 지방재정법시행령(1978. 12. 26. 대통령령 제922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58조 제1호에 의하여 준용되는 구 예산회계법시행령(1983. 3. 28. 대통령령 제1108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75조는 계약서에는 담당공무원이 반드시 기명날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각 규정의 취지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사경제의 주체로서 사인과 사법상의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위 법령에 따른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는 등 그 요건과 절차를 이행하여야 할 것이고, 설사 지방자치단체와 사인 간에 사법상의 계약 또는 예약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위 법령상의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계약 또는 예약은 그 효력이 없다.”라고 판시하였다.

 

 그 밖의 경우에는 비록 공사대금이 거액이고 일의 완성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도급계약이라 하더라도 계약서의 작성은 계약의 성립요건이 아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2항은 건설공사에 관한 도급계약의 당사자는 그 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도급금액, 공사기간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항을 계약서에 명시하여야 하며, 서명날인한 계약서를 서로 교부하여 보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행정적 감독의 차원에서 중요한 사항을 미리 명시함으로써 분쟁을 미리 막으려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도급계약에 있어서도 서면의 작성을 계약의 성립요건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 계약 체결의 강제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도중 일방이 교섭을 파기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이 계약의 체결을 강제할 수 있다.

 

 청약의 구속력

 

민법 제527조는 계약의 청약은 이를 철회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여 청약의 구속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 취지는, 청약을 받은 상대방은 계약의 체결을 기대하고 그 준비를 할지도 모르는데 만일 청약자가 일방적으로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민법에서는 청약의 구속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청약자가 승낙의 의사표시가 있기 전에 청약을 철회하고 일방적으로 계약 교섭을 파기한 경우에도 상대방은 승낙의 의사표시를 하여 계약을 성립시킨 뒤 계약에 따른 청구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약의 구속력을 원용하는 것은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에 대한 효과적인 구제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청약자가 철회권을 유보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청약의 구속력이 없고, 청약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에 응하는 승낙만 있으면 곧 계약이 성립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의사표시여야 하므로(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실제로 청약의 구속력을 원용하여 계약 체결을 강제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예약

 

 장래에 일정한 계약을 체결할 것을 미리 약정하는 계약을 예약이라 하는데, 이는 보통 편무·쌍무예약과 일방·쌍방예약으로 구분된다. 후자의 경우에 예약권리자는 본계약을 성립시킬 수 있는 예약완결권(형성권)을 갖는 데 비하여 전자의 경우에 예약권리자는 단지 본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만 갖는다. 어느 경우이든 예약이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장래 체결될 본계약의 내용이 확정되어 있거나 확정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 1993. 5. 27. 선고 934908 판결 등 : 매매의 예약은 당사자의 일방이 매매를 완결할 의사를 표시한 때에 매매의 효력이 생기는 것이므로 적어도 일방예약이 성립하려면 그 예약에 터 잡아 맺어질 본계약의 요소가 되는 매매 목적물, 이전방법, 매매가액 및 지급방법 등의 내용이 확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민법은 일방예약에 관하여만 규정하고 있는데(564, 567), 당사자의 의사가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일방예약으로 추정된다. 일방·쌍방예약의 경우에는 예약완결권자가 예약완결권을 행사함으로써 본계약을 성립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 문제는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편무·쌍무예약의 경우에는 예약권리자가 본계약의 체결을 청구하더라도 상대방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본계약의 체결을 거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예약권리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본계약에 관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승소판결이 확정되면 본계약이 성립하게 된다(민사집행법 제263조 제1항 후단).

 

 다만, 예약이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장차 체결될 본계약의 내용이 확정되어 있거나 확정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앞에서 살펴 본 계약의 성립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라면 예약의 성립 또한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예약의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본계약체결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예약권리자는 이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사도급계약의 도급인이 될 자가 수급인을 선정하기 위해 입찰절차를 거쳐 낙찰자를 결정한 경우 입찰을 실시한 자와 낙찰자 사이에는 도급계약의 본계약체결의무를 내용으로 하는 예약의 계약관계가 성립하고, 어느 일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본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경우 상대방은 예약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예약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통상의 손해를 한도로 하는데, 만일 입찰을 실시한 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낙찰자에 대하여 본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경우라면 낙찰자가 본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었던 이익, 즉 이행이익 상실의 손해는 통상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므로 입찰을 실시한 자는 낙찰자에 대하여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경우 낙찰자가 본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은 일단 본계약에 따라 타방 당사자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급부인 낙찰금액이라고 할 것이나, 본계약의 체결과 이행에 이르지 않음으로써 낙찰자가 지출을 면하게 된 직·간접적 비용은 그가 배상받을 손해액에서 당연히 공제되어야 하고, 나아가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을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취지상, 법원은 본계약 체결의 거절로 인하여 낙찰자가 그 이행과정에서 기울여야 할 노력이나 이에 수반하여 불가피하게 인수하여야 할 사업상 위험을 면하게 된 점 등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손해액을 산정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41659 판결 :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공사도급계약의 수급인을 선정하기 위한 입찰절차에서  주식회사를 낙찰자로 결정하였으나 정당한 이유 없이 본계약 체결을 거절한 사안에서,  조합이 본계약체결의무 위반으로  회사에 배상할 손해에 본계약이 체결되어 이행되었을 경우  회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이행이익이 포함된다고 본 원심판단 부분은 정당하나,  회사가 본계약 이행을 하지 않게 됨으로써 면하게 된 여러 노력이나 사업상 위험 등에 관하여 아무런 고려를 하지 않은 채,  회사가 입찰에 참가하기 위해 건축사사무소에 작성을 의뢰하여 받은 내역서의 일부인 공사원가계산서에 이윤으로 기재된 금액을 그대로  회사가 본계약인 공사도급계약의 체결과 이행으로 얻을 수 있었던 이익으로 인정한 부분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한 사례.

 

 우수현상광고

 

 우수현상광고에 의한 계약체결권의 취득

 

 계약 교섭자가 우수현상광고에 의하여 계약 체결권을 취득한 경우에는 그 뒤 현상광고자가 계약 교섭을 파기하더라도 현상광고자에 대하여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다. 즉 제678조에 의하면 우수현상광고의 경우에 우수자로 판정된 자는 보수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는바, 만일 그 보수가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라면[675(현상광고)가 정한 보수는 반드시 금전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사회적·경제적 이익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 우수자로 판정된 자는 현상광고자에 대하여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수현상광고의 법리를 원용하여 계약의 체결을 강제하거나 그 위반으로 인한 이행이익의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에 대한 효과적인 구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판례가 대법원 2002. 1. 25. 선고 9963169 판결 및 그에 따른 재상고심판결인 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257119 판결인데, 그 사안은 다음과 같다.

피고(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산하의 청담교회는 1993. 6. 6. 교육관 신축 및 본당 기능 재계획 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라 한다)에 관한 설계를 公募하면서 최우수작으로 판정된 자에게 이 사건 공사에 관한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1993. 7. 30. 위 공모에 응모하여 1993. 8. 10. 최우수작으로 판정되었다. 그 후 원고와 위 교회 사이에 설계대금에 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설계계약이 체결되지 못하고 있던 중, 위 교회는 1993. 11. 11. 원고에게 8,000만 원의 설계대금을 제시하였고 이에 원고는 1993. 11. 15. 위 교회에게 9,168만 원의 설계대금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대금에 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결국 위 교회는 1993. 11. 17. 원고에게 같은 달 20.까지 교회의 안을 수용하지 아니하면 원고가 이 사건 공사에 관한 설계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을 통보하기에 이르렀고, 원고는 위 기한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아니하였다.

이 사안의 경우, ‘기본 및 실시설계계약의 본질적 요소인 설계대금에 관하여 아무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사건 우수현상광고에서 당선자가 보수로서 받는 '기본 및 실시설계권'이란 당선자가 광고자에게 우수작으로 판정된 계획설계(건축물의 배치, 평면, 입면, 단면 등의 계획을 입안한 설계)에 기초하여 기본설계(계획설계를 기초로 하여 작성되는, 실시설계의 기본이 되는 설계로 통상 배치면, 평면도, 입면도, 일반단면도, 설계설명서, 공사비개산서 등을 포함한다) 및 실시설계(기본설계를 기초로 하여 작성된, 당해 건축물의 건축허가신청 및 공사의 실시에 필요한 설계도면 및 문서)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므로, 광고자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응할 의무를 지게 되어 당선자 이외의 제3자와 설계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됨은 물론이고, 당사자 모두 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며, 만약 광고자가 일반 거래실정이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보여지는 사항을 계약내용으로 주장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사를 추진할 수 없는 등으로 인하여 계약이 체결되지 못하였다면 당선자는 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는 법리를 밝힌 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원고는 그가 응모한 설계가 청담교회로부터 최우수판정을 받은 후 청담교회의 요청에 따라 일부 설계변경에 따른 설계도면을 작성하는 등 구체적인 설계에 나아간 사실, 청담교회는 설계대금에 대한 교섭 과정에서 원고와의 그 금액 차이가 1,100여만 원에 불과함에도 합의의 도출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아니한 채 교섭 2달만에 교회의 안을 수용할 것을 원고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그 교섭을 포기한 사실, 그러는 사이에 청담교회의 주임사제 인사이동과 건축자금의 염출이 용이하지 않게 된 사정 등으로 이 사건 공사계획 자체가 현재까지 수년간 유보되기에 이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그렇다면 원고와 피고재단 사이에 설계계약이 체결되지 못한 것은 피고가 광고자로서 계약 체결을 위한 성실한 노력을 별다른 이유 없이 중단하였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사를 제대로 수행할 자력이 없었던 점에 기인한 것임을 엿볼 수 있다.”라고 판단하여 결국 피고에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현상광고자가 계약체결의무를 위반한 경우

 

 이와 같이 우수현상광고계약을 원인으로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자가 부당하게 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경우 당선자는 어떠한 권리를 갖는지가 문제된다.

 

 먼저, 당선자는 광고자에게 청약의 의사표시를 한 뒤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계약의 체결 자체를 강제할 수 있는가? 생각건대 광고에서 장차 체결할 계약의 내용을 미리 정하였거나 그 결정 기준 또는 방법을 정한 경우가 아닌 한, 이는 부정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의 중요한 내용이 원고의 일방적인 의사 또는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정하여지게 되는데, 이는 사적 자치 원칙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 판례 사안의 경우에도 피고는 현상광고에서 장차 체결될 설계계약의 본질적 내용인 설계대금을 정하였거나 그 결정 기준 또는 방법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는 피고에 대하여 설계계약의 체결에 관한 승낙의 의사표시를 구하는 소를 제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당선자는 광고자에게 계약체결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는 신뢰손해(계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믿음으로 인하여 생긴 손해)의 배상이라는 견해와 이행이익(계약이 체결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배상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당선자는 그의 선택에 따라 이행이익의 배상을 청구하거나 또는 그에 갈음하여 신뢰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되, 다만 신뢰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액을 이행이익의 한도로 제한하여야 한다.

 

 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을 살펴보면,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본래의 채권의 소멸시효기간과 같다고 할 것인데, 본래의 채권이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어서 문제이다. 즉 이를 일반적인 채권으로 보아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고 할지(162조 제1) 아니면 계약이 체결되었을 경우에 취득하게 되는 채권과 실질적이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아 그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된다고 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대법원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257119 판결).

 

그래서 위 판례 사안에서, 계약이 체결되었을 경우 원고가 취득하게 될 채권인 설계대금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3년임을 고려하여(163조 제3: 설계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 원고의 계약체결청구권은 3년의 소멸시효에 걸리고 따라서 피고의 계약체결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 또한 3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고 하였다. 한편 그 소멸시효는 채무불이행시부터 진행한다(대법원 1995. 6. 30. 선고 9454269 판결 등. 본문의 판례 사안의 경우 대법원은 이미 원고가 수용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바 있는 피고 제시안에 관하여, 3일 안에 수용의사를 표시하라고 통고하고, 원고가 이를 수용하지 아니하면 이 사건 공사에 관한 설계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을 통보한 것은 피고로서 채무 이행의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그 이행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다음 날부터 또는 그 통보에서 정한 원고의 회신시한 다음 날인 1993. 11. 21.부터 진행한다는 원심판결을 정당하다고 하였다).

 

 특정인들에게만 알린 경우

 

우수현상광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광고행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예컨대 조형물을 제작하려는 발주자가 특정인들에게만 시안의 제작을 의뢰하면서 그 중 최우수로 판정된 사람과 조형물 제작·납품·설치계약을 체결하겠다고 알린 경우에는 우수현상광고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발주자의 시안 제작 의뢰행위 속에 최우수로 판정된 사람에게 계약체결권을 부여한다는 의사표시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당선자는 발주자에 대하여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경우에 우수현상광고에 관한 법리를 유추적용할 수는 없는지 문제된다. 위와 같은 원칙론에 의하면 당선자는 뒤에서 살펴 볼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불법행위 이론에 의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는 통설 및 판례가 신뢰손해의 배상만을 인정하고 있고 이행이익의 배상을 부정하고 있다. 반면에 우수현상광고에 관한 법리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면 당선자는 원칙적으로 이행이익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우리 판례 중에는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의 사안이 이에 해당하는데, 아쉽게도 그 사안의 원고는 주위적으로 조형물 제작·납품·설치계약의 성립을 전제로 하여 채무불이행(이행거절)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예비적으로 계약교섭의 부당 파기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각 청구하였을 뿐 이러한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의뢰자에게 당선자와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의사가 분명히 있었던 이상, 그것을 널리 광고하였는지 아니면 특정의 몇 명에게만 의뢰하였는지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유추적용을 긍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 예비적 합의

 

 의의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한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계약 체결을 위해 성실하게 교섭하기로 합의하는 등 장차 체결할 계약에 대하여 예비적 합의를 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상 당연히 허용된다. 예컨대 장기간의 협상 도중에 그 동안 합의된 사항 및 아직 합의되지 않은 사항을 기록하고 앞으로의 협상 계획을 정하며 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상호 성실하게 교섭하기로 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실제 거래계에서는 가계약서’, ‘양해각서’, ‘계약의향서(Letter of Intent)’ 등의 여러 가지 명칭이 사용되는데, 명칭에 따라 법률효과가 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효과는 개별적인 사안별로 해석을 통하여 판단한다.

 

 한편 성실교섭의무를 내용으로 하는 예비적 합의는 묵시적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본질적 내용이나 중요한 내용에 관하여는 합의가 되었으나 그밖에 합의가 필요하다고 표시한 사항에 관하여 아직 합의가 안 이루어진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은 아직 성립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경우라도 그 나머지 사항에 관하여 성실하게 교섭하기로 하는 예비적 합의는 묵시적으로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할 것이다. 이는 당사자들이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하였는데 그 때까지는 계약에 구속되지 않기로 하는 의사가 있어서 아직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

 

 예비적 합의의 내용 중 협상의 진행 과정에서 드는 비용의 분담에 관한 조항, 협상 과정에서 공개되는 비밀의 유지의무에 관한 조항, 협상중에 다른 제3자와 경쟁적 협상을 병행하지 않을 것을 정한 조항 등은 쉽게 법적 구속력을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계약의 체결을 위해 성실하게 교섭하기로 하는 조항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이는 결국 의사표시의 해석 문제인데, 예컨대 일방이 상대방에게 협상의 대상인 계약의 이행을 미리 시작할 것을 요청하여 상대방이 이에 응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instruction to proceed) 법적 구속력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음을 밝힌 경우에는(non-binding clause) 그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

 

 한편 단순히 계약의 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기로 하는 조항이라면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데, 이 경우에도 계약을 체결하여야 할 법적인 의무는 없으나(대법원 1994. 3. 25. 선고 9332668 판결 참조), 성실하게 교섭하기로 하는 의사는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여기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지 여부는 역시 의사표시의 해석 문제라 할 것이다.

 대법원 1994. 3. 25. 선고 9332668 판결 : 이 판결은, 피고 회사의 대표이사가 피고 회사에 대한 소유 및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피고 회사의 주주이던 원고측이 피고 회사의 전사장인 원고를 약정일로부터 향후 6년 이상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모든 예우를 사장과 동일하게 한다는 내용등이 기재된 위 약정서에 서명날인을 요구하자 마지 못해 위 약정서의 말미에 최대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부기하고 서명날인한 사안에서, “어떠한 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의 기재가 있는 문면에 최대 노

력하겠습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가 위와 같은 문구를 기재한 객관적인 의미는 문면 그 자체로 볼 때 그러한 의무를 법적으로는 부담할 수 없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 이행을 사실상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무를 법률상 부담하겠다는 의사이었다면 굳이 최대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문구를 삽입하였다면 그 문구를 의미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당사자가 그러한 표시행위에 의하여 나타내려고 한 객관적인 의사는 그 문구를 포함한 전체의 문언으로부터 해석함이 상당하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위반의 효과

 

예비적 합의 중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항을 위반한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면 당사자 일방이 법적 구속력 있는 성실교섭의무를 위반하여 결국 계약이 체결되지 못한 경우 상대방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역시 성실교섭의무의 구체적 내용(협상중 제3자와 병행적 협상을 하지 않을 의무, 거래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감추지 않을 의무, 정당한 이유 없이 협상을 거절하지 않을 의무, 이미 합의된 부분의 변경을 요구하지 않을 의무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한다고 하여 계약의 체결 자체를 강제할 수는 없다.

 

이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밖에 없는데, 성실하게 교섭하였더라면 계약이 체결되었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행이익의 배상을 인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밖의 경우에는 신뢰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비적 합의서에 당사자들이 계약을 체결하는데 실패하면 그들은 서로간에 더 이상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 경우, 그 조항은 성실하게 교섭을 한 경우를 예정한 것이지 불성실하게 교섭한 결과 계약 체결이 실패한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위와 같은 조항은 예비적 합의서의 다른 조항 예컨대 당사자들은 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모든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항과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책임배제조항이 있는 경우에도 당사자 일방이 예비적 합의에 따른 성실교섭의무를 위반하여 결국 계약이 체결되지 못하였다면 상대방은 예비적 합의 위반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6.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책임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884-916 참조]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책임에 대하여 대법원은 2001년에 처음으로 그 책임의 성질 및 요건을 명확히 설시하였고, 그 뒤에 구체적인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판결이 잇따라 선고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 책임에 관한 법리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 대법원 1993. 9. 10. 선고 9242897 판결

 

 사안

 

피고(학교법인 우석학원) 1989. 4. 초경 경력직 사무직원의 공채를 위하여 그 채용계획을 수립하고 4. 10. 전북일보에 전주우석대학장 명의로 사무직원 모집공고를 낸 다음 4. 20. 사무직원 채용을 위한 공개 시험을 실시하여 원고를 포함한 39명이 응시하였다. 피고는 5. 1.경 원고를 포함한 9명의 응시자를 최종 합격자로 결정하고 그들에게 합격 통지를 하면서 ‘1989. 5. 10. 자로 발령하겠으니 이력서, 인사기록카드 등 구비서류를 5. 8.까지 제출하여 달라는 통지를 하였다. 원고는 위 통지에 따라 인사기록카드, 이력서, 졸업증명서, 학업성적표, 신원증명서, 경력증명원, 채용신체검사서 등을 제출하였는데, 피고는 약속대로 9명 전부를 5. 10. 자로 발령하지 못한 채 이를 지체하다가 6. 1.자로 2, 8. 1. 자로 3명만 발령하였다. 이에 원고가 발령 문제를 위 대학 총무처와 학장에게 문의하자 그들은 학교 재정이 어려워 순차 발령하겠다고 하고, 또 그 해 11월 말경에는 1990. 1. 1. 자로 발령하겠다고 통지하는 등 여러 번 발령을 미루어 오다가 1990. 5. 28.경 학교 재정을 이유로 원고를 피고의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다고 최종 통지를 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의 행위가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며 그 동안 피고의 임용만을 기다리면서 다른 일에 종사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 및 위자료의 배상을 청구하였다.

 

 판단

 

대법원은 피고는 원고를 피고의 사무직원 채용 시험의 최종 합격자로 결정하고 그 통지와 아울러 ‘1989. 5. 10. 자로 발령하겠으니 제반 구비서류를 5. 8.까지 제출하여 달라는 통지를 하여 원고로 하여금 위 통지에 따라 제반 구비서류를 제출하게 한 후, 원고의 발령을 지체하고 여러 번 발령을 미루었으며, 그 때문에 원고는 피고가 1990. 5. 28. 원고를 피고의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다고 통지할 때까지 피고의 임용만 기다리면서 다른 일에 종사하지 못하였는바,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원인은, 피고가 자신이 경영하는 전주우석대학의 재정 형편, 적정한 직원의 수, 1990년도 입학 정원의 증감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채용할 직원의 수를 헤아리고 그에 따라 적정한 수의 합격자발표와 직원채용통지를 하여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므로, 그렇다면 피고는 불법행위자로서 원고가 위 최종합격자 통지와 계속된 발령 약속을 신뢰하여 피고의 직원으로 채용되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취직의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판시하면서, 피고에 대하여 원고의 발령 통지를 받은 날부터 채용 불가 통지를 받은 날까지 도시일용노임을 기초로 한 일실수입 손해(과실상계 40%) 및 위자료 100만 원의 배상을 명한 원심판결을 옳다고 하였다.

 

 판결의 내용 분석

 

이 판결은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책임에 관하여 그 법리를 정면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에 해당하는 사안을 불법행위책임으로 의율하였다. 한편 이 판결은 뒤에서 보는 일련의 대법원 판결들과는 달리 피고가 적정한 수의 합격자 발표와 직원채용통지를 하여야 하는데도 이를 게을리 한 점에서 직접 위법성 및 과실을 인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판결의 사안은 뒤에서 보듯이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 유형 중 신뢰의 야기 자체가 위법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 대법원 2001. 6. 15. 선고 9940418 판결

 

 사안

 

실제 사실관계는 복잡하지만 이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건설업체인 원고들은 부산 광안리 광안대로 공사의 공동낙찰수급체를 형성한 다음 그 중 강교공사를 담당할 하수급체를 물색하다가, 원고 갑이 피고에게 하수급의사를 타진하자 1994. 12. 7. 피고는 견적서(공사대금 252억 원), 이행각서, 건설공제조합의 하도급보증서(보증기간 1994. 12. 8.부터 1995. 12. 7.까지)를 제출하였다. 원고들은 1994. 12. 8. 입찰에 참가하여 낙찰을 받고 같은 달 16. 조달청과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뒤 원고들과 피고는 하도급 공사대금에 관하여 협상을 하였으나 결국 결렬되어 원고는 다른 회사와 공사대금 395억 원에 하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의 교섭 중단이 불법행위라는 이유로 다른 회사와 하도급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추가로 부담하게 된 공사대금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판단

 

대법원은 어느 일방이 교섭 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자유 원칙의 한 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라고 법리를 밝힌 뒤, 이 사안에서는 원고들이 피고에게서 견적서, 이행각서, 하도급보증서를 제출받았다는 점만으로 하도급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될 것이라는 상당하고도 정당한 기대나 신뢰가 원고들에게 부여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들의 입찰 참가가 피고와의 하도급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에 기초하여 행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피고의 계약 체결 거절이 상당한 근거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하였다.

 

 판결의 내용 분석

 

이 판결은 결론적으로는 피고의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하였지만,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가 어떠한 경우에 불법행위가 되는지에 관하여 그 요건을 명확히 한 점에 큰 의의가 있다.

 

.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사안

 

피고(사단법인 한국무역협회) 1996. 1.경 통상산업부(뒤에 산업자원부로 변경)와의 협의 아래 무역센터 부지 안에 수출 1,000 $ 달성을 기념하는 영구조형물을 건립하기로 하고 그 건립 방법에 관하여 분야별로 5인 가량의 작가를 선정하여 조형물의 시안 제작을 의뢰한 후 그 중에서 최종적으로 1개의 시안을 선정한 다음 그 선정된 작가와 이 사건 조형물의 제작·납품·설치계약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피고는 1996. 3.경 원고 등 조각가 4인에게 시안의 작성을 의뢰하면서 제작비로 500만 원씩을 지급하였는바, 당시 원고 등에게 시안이 선정된 작가와 조형물 제작·납품·설치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으나 제작비, 제작시기, 설치 장소를 구체적으로 통보하지는 않았다. 피고는 1996. 6. 24. 작가들이 제출한 시안 중 원고가 제출한 시안을 당선적으로 선정하고 1996. 8. 16. 원고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무역센터 확충사업에 관한 세부설계작업이 지연되는 등의 사유로 위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였고, 장관의 잦은 교체 등으로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자 1998년 이후에는 위 사업에 관한 예산도 배정하지 아니 하다가, 결국 1999. 5. 하순경 사업부지 확보 및 사업비 조달의 곤란, 국가 경제 어려움에 따른 수출 1,000 $ 기념 사업의 의미 퇴색 등을 이유로 이 사건 조형물 건립 사업을 취소하고, 1999. 6. 8. 원고에게 이를 통지하였다. 한편 피고는 해양수산부가 해상왕 장보고 재조명·평가사업을 추진하자 그 일환으로 당시 신축중이던 아셈컨벤션센터 앞에 위 컨벤션센터 건설회계에 이미 책정되어 있는 예산을 이용하여 해상왕 장보고 상징조형물을 건립하기로 하고, 이 사건 조형물 건립 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여 2000. 5. 경 그 제작·설치를 완료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의 교섭 파기가 불법행위라고 주장하며  추정 총 제작비 20% 상당의 창작비 3억 원 손해  피고의 공모에 응하여 시안을 제작하는 데 소요된 비용을 포함하여 이 사건 조형물의 제작을 준비하기 위하여 지출한 비용 상당의 손해  위자료의 배상을 청구하였다.

 

 판단

 

먼저 불법행위책임의 발생에 관하여,  9940418 판결이 설시한 법리를 밝힌 뒤 비록 원·피고 사이에 이 사건 계약에 관하여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에 이르지는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계약의 교섭 단계에서 피고가 원고 등 조각가 4인에게 시안의 작성을 의뢰하면서 시안이 선정된 작가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할 것을 예고한 다음 이에 응하여 작가들이 제출한 시안 중 원고가 제출한 시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원고에게 그 사실을 통보한 바 있으므로 당선 사실을 통보받은 시점에 이르러 원고로서는 이러한 피고의 태도에 미루어 이 사건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원고는 그러한 신뢰에 따라 피고가 요구하는 대로 이 사건 조형물 제작을 위한 준비를 하는 등 행동을 하였을 것임에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가 원고와는 무관한 자신의 내부적 사정만을 내세워 근 3년 가까이 원고와 계약 체결에 관한 협의를 미루다가 이 사건 조형물 건립 사업의 철회를 선언하고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한 채 다른 작가에게 의뢰하여 해상왕 장보고 상징조형물을 건립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라고 판단하였다.

이어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그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일방이 신의에 반하여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교섭을 파기함으로써 계약 체결을 신뢰한 상대방이 입게 된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로서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다고 믿었던 것에 의하여 입었던 손해 즉 신뢰손해에 한정된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신뢰손해란 예컨대 그 계약의 성립을 기대하고 지출한 계약준비비용과 같이 그러한 신뢰가 없었더라면 통상 지출하지 아니하였을 비용 상당의 손해라고 할 것이며, 아직 계약 체결에 관한 확고한 신뢰가 부여되기 이전 상태에서 계약교섭의 당사자가 계약 체결이 좌절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출한 비용 예컨대 경쟁입찰에 참가하기 위하여 지출한 제안서, 견적서 작성 비용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다. 한편 그 침해행위와 피해법익의 유형에 따라서는 계약 교섭의 파기로 인한 불법행위가 인격적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그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에 대하여는 별도로 배상을 구할 수 있다.”라고 법리를 밝힌 뒤 이 사건과 같은 피고의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는 조형물 작가로서의 원고의 명예감정 및 사회적 신용과 명성에 대한 직간접적인 침해를 가한 불법행위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그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이를 금전으로 위자할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지만, 원고가 재산적 손해라고 주장하는 추정 총 제작비 20% 상당의 창작비 3억 원의 손해()는 결과적으로 이 사건 계약이 정당하게 체결되어 그 이행의 결과에 따라 원고가 얻게 될 이익을 상실한 손해와 같은 성질의 것이어서 계약 교섭이 중도에 파기되었을뿐 종국에 가서 적법한 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이 사건에 있어서 원고로서는 계약의 이행을 청구할 수도 없고 또한 그 불이행책임을 청구할 아무런 법적 지위에 놓여 있지 아니하게 된 이상 계약의 체결을 전제로 한 이와 같은 손해의 배상을 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또한 이 사건 조형물의 제작을 준비하기 위하여 지출하였다는 비용() 중 피고의 공모에 응하여 시안을 제작하는데 소요된 비용은 아직 피고로부터 계약 체결에 관한 확고한 신뢰가 부여되기 이전 상황에서 지출된 것으로서 원고로서는 그 대가로 500만 원을 지급받는 것에 만족하고 그 공모에 응하여 당선되지 않더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지출한 비용에 불과하여 이 사건에서 용인될 수 있는 신뢰손해의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도 없다.”라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내용 문석

 

이 판결은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에 있어 손해배상의 범위를 명확히 한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이행이익의 배상을 부정한 점 및 위자료를 인정한 점이 주목된다.

 

.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32301 판결

 

 사안

 

원고는 경쟁입찰을 거쳐 1995. 12. 28. 피고(국방과학연구소)와 사이에 중형 아음속풍동장비(공군조종사들이 실제 비행 상황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모형비행장비) 공사계약을 공사대금 175 6,300만 원, 완공일 1998. 12. 28.로 정하여 체결하였다. 원고는 이에 따라 이 사건 공사를 진행하던중 1997. 11.경 이른바 IMF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 상승으로 이 사건 공사에 필요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이 사건 공사계약에서 정한 계약금액으로는 정상적인 공사의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그 무렵부터 피고에게 계약금액의 증액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계약금액 증액과 관련한 예산이 반영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니 계약기간 내에 이 사건 공사가 완료될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원고에게 전달하면서, 내부적으로 계약금액의 증액을 검토한 결과 피고의 재무실에서는 일응 원고가 신청한 금액에서 20억 여 원을 삭감한 45 8,500여 만 원의 증액 요인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고의 계약 담당 부서인 재무실은 원고에게 위 결과를 통보하고 계약금액 증액을 위한 수정계약 체결 절차를 밟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원고의 담당 직원 A가 피고의 재무책임원 B 및 원고 대표이사 C 공동 명의로 된 수정계약서를 작성하고 원고 대표이사 직인을 날인하여 1998. 12. 21. 피고의 재무실 내자과 계약 담당 실무자 D에게 교부하였고, 이 사건 공사계약에서 정한 공사완공일인 1998. 12. 28.  D에게서 피고의 재무책임원 B의 직인이 날인된 1998. 12. 28. 자 이 사건 수정계약서를 교부받았다. 그 수정계약서에는 피고는 추가예산이 확보되면 원고의 청구에 따라 계약금액을 조정하고 조정된 금액을 원고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1999년 들어 피고의 소장 및 관련 책임자들이 모두 교체된 이후 피고는 이 사건 수정계약은 적법하게 성립하지 않았고 달리 원고의 공사비용 조정 요구에 응할 근거가 없거나 계약금액을 조정하고 싶으면 전임자들과 해결하라는 이유로 종전의 태도를 급격히 바꾸었고, 마침내 1999. 6. 30. 전후에 공문으로 당초의 공사계약에 따른 잔금만을 수령해 갈 것을 요구한 다음 다시 1999. 11. 5.경 공문으로 원고가 보관중인 이 사건 수정계약서를 돌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원고는 잔여 공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지출하게 된 공사비용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판단

 

먼저 불법행위책임의 발생에 관하여,  9940418 판결이 설시한 법리를 밝힌 뒤 ·피고 사이의 계약 교섭이 1년여라는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충실하게 이루어졌고, 피고가 계약 교섭 개시 단계에서부터 일관하여 원고의 공사비용 조정 요구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원고에게 지급할 추가 공사비용의 범위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원고에게 표명하고 위 추가 공사비용 항목을 포함한 1999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한 점, 교섭기간 중 피고의 대표자는 원고의 대표이사와 만난 자리에서 추가 공사비용 지급을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표시하면서 추가공사비용의 지급을 전제로 잔여 공사 이행을 원고에게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실무자들 사이의 협상을 거쳐 피고 내부적으로 45 8,500만 원의 공사비용 증액이 타당하다는 결론까지 내리고 이를 원고에게 통고하였으며, 특히 그 계약의 유효한 성립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사건 공사가 완성된 1998. 12. 28. 피고의 추가 예산이 확보되면 계약금액을 조정하여 이를 원고에게 지급한다는 취지의 이 사건 수정계약서에 피고의 재무책임원의 직인을 날인하여 이를 원고에게 교부까지 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피고는 원고에 대하여 이른바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환율상승에 따른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하여 원고가 계약 교섭 이후 잔여 공사의 완성 시점까지 최초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할 당시의 예상과 달리 추가로 지출할 수밖에 없게 된 공사비용을 지급할 것이라는 신뢰 내지 기대를 확실하게 부여하였다고 할 것이다. 한편 국회는 위 추가 공사 비용 항목이 포함된 피고의 1999년도 예산안에 대하여 총액을 감액한 채 승인하기는 하였으나 위 추가 공사비용 항목 자체를 예산안에서 제외하거나 이를 특정하여 불승인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피고가 예산 확보에 실패하였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피고가 국회의 예산 승인 후 국방부로부터 승인된 예산 범위에서 사업별·과제별 예산을 조정하라는 지시에 따라 스스로 사업별·과제별 예산을 조정할 수 있게 된 때에 이미 추가예산을 확보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단지 구체적인 예산집행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워 위 추가 공사비용을 확정하여 지급하기 위한 협상 내지 조정에 전혀 응하지 아니하였는바,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라고 판단하였다.

이어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하여, “계약 교섭 단계에서는 아직 계약이 성립된 것이 아니므로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이행행위를 준비하거나 이를 착수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할 것이므로 설령 이행에 착수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기의 위험 판단과 책임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만일 이행의 착수가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고 바로 위와 같은 이행에 들인 비용의 지급에 관하여 이미 계약 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중 일방이 계약의 성립을 기대하고 이행을 위하여 지출한 비용 상당의 손해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에 해당한다.”라고 법리를 밝힌 뒤, “피고가 원고에게 배상하여야 할 손해는 바로 원고가 잔여 공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지출하게 된 공사비용이라고 할 것이고, 그 수액은 적어도 계약 교섭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피고가 내부적으로 공사비 증액 금액으로 인정하였던 45 8,500만 원을 초과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판결의 내용 분석

 

이 판결은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에 있어서 손해배상의 범위와 관련하여 위 200153059 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차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정당하게 믿고 계약의 이행을 준비하거나 미리 이행에 착수한 경우에 그로 인한 비용 상당의 손해도 일정한 요건 아래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점에 큰 의의가 있다.

 

. 대법원 2004. 9. 13. 선고 200428870 판결

 

 사안

 

피고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평화의 공원에 상징조형물 천년의 문을 건립한다는 방침에 따라 설립된 재단으로서, 공모를 통하여 2000. 2. 16. 원고가 출품한 한국의 고리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2000. 3. 27. 원고와 천년의 문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원고와 피고는 총공사비를 잠정적으로 300억 원 수준으로 보고 설계용역비를 18억 원(부가가치세 별도)으로 정하되 나중에 공사비가 확정되면 확정된 공사비를 기준으로 다시 설계용역비를 정하기로 합의하였으며,그 뒤 피고는 공사비가 적어도 500억 원(부가가치세 별도) 이상은 될 것을 전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원고에게 500억 원 이상의 공사비가 소요되는 설계를 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추가공사비의 확정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2001. 3. 28. 재원부족, 시의성 상실 등을 이유로 천년의 문 건립사업을 백지화하였다.

 

 판단

 

대법원은 피고가 추가적인 공사비가 확정되지 아니하여 원고와 사이에 공사비에 대한 추가합의에 이르지는 아니한 상태에서 자신의 내부적인 사정을 내세워 천년의 문의 건축사업을 백지화하고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공사비가 추가확정될 것을 전제로 설계를 한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피고의 위와 같은 행위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자유의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한 뒤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적어도 500억 원 정도의 공사비에 따른 설계용역비를 추가로 지급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그 신뢰에 따라 원고가 행동하였으나 피고가 상당한 이유 없이 천년의 문의 건축사업을 백지화하여 원고에게 손해를 입혔는지 여부에 관하여 심리를 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손해배상액을 산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7.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앞에서 살펴 본 우선적 구제책이 없는 경우에도 계약을 부당하게 파기당한 상대방은 계약을 부당하게 파기한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계약 자유의 원칙은 반드시 고수되어야 할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고 사법 전체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한 제약을 받는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타당하다.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 사안은 크게 두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신뢰를 야기한 것 자체가 위법·유책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계약 교섭을 파기하는 것이 위법·유책한 경우이다.

 

. 이 경우 손해배상책임의 법적 근거 내지 성질

 

 이에 대하여는  계약책임설,  불법행위책임설,  3의 책임유형설의 대립이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 문제를 불법행위로 해결하고 있다. 다만 그것은 원고가 책임의 근거로 불법행위를 주장했기 때문이고, 다른 법적 구성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불법행위책임설이 타당하다.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문제는 본질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하여 계약 체결 자유의 원칙에 한계를 긋는 문제이기 때문에 불법행위책임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민법은 불법행위에 관하여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에(‘위법행위’) 이러한 사안을 불법행위책임으로 구성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 신뢰의 야기가 위법·유책한 경우

 

 당사자가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교섭을 시작하거나 계속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약 체결에 관한 신뢰를 갖게 하였거나, 계약 체결에 장애가 되는 사정이 이미 존재하거나 장래 생길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고의 또는 과실로 그 사정을 잘못 말하거나 밝히지 않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약 체결에 관한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위법하고 유책하다. 따라서 신뢰를 부당하게 야기한 자는 상대방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이 손해배상책임의 성질은 불법행위책임이고, 요건에는 정형이 없다. 계약 체결에 대한 신뢰의 야기가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면 충분하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가해행위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라 할 것인데, 잘못된 신뢰의 야기(가해행위)가 없었더라면 상대방은 계약 준비행위를 하거나 다른 계약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재산적 손해는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믿음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 즉 신뢰손해에 한정될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 즉 이행이익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원래 불법행위법상의 손해라 함은 당해 불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이익의 상태와 위법행위로 말미암은 현실의 상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인데, 이 경우 가해행위 즉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신뢰의 야기가 없었다면 계약의 체결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은 위 불법행위가 없었을 경우의 피해자의 이익의 상태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해배상액은 이행이익의 한도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뢰손해의 배상의 경우에 배상액을 이행이익의 한도로 제한하는 것은 이른바 과잉배상 금지의 원칙에 근거한 것인데, 이 유형의 경우에는 가해행위 즉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신뢰의 야기가 없었다면 계약의 체결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이행이익 즉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한도로 제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사 손해배상액을 이행이익의 한도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이행이익을 정당하게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 교섭의 파기가 위법·유책한 경우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데 대한 신뢰의 야기 자체에는 위법성 또는 귀책사유가 없다 하더라도, 일단 상대방이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갖게 된 뒤에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교섭을 파기하는 것은 위법행위에 해당한다.

물론 교섭을 파기하는 것이 위법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하여 전혀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법성을 확장적으로 해석하여 법규에 직접 위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보아 허용되지 않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하면, 자신의 행태에 의하여 야기된 신뢰를 정당한 이유없이 배반하는 것은 불법행위를 성립시킨다고 보아야 한다.

 

 손해배상책임의 성립요건

 

신뢰를 야기한 데에는 별 문제가 없더라도,  상대방에게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에 따라 행동하였는데  그 뒤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교섭을 중단 내지 파기하는 것은 위법하다. 바꾸어 말하면 당사자는 상대방이 계약 체결에 관한 정당한 신뢰를 갖기 전에는 교섭을 자유롭게 파기할 수 있지만, 일단 상대방이 계약 체결에 관한 정당한 기대를 갖게 된 후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교섭을 파기할 수 없는 제한을 받게 된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 상대방이 계약 체결에 관한 정당한 신뢰를 갖게 된 것인지, 교섭을 중단 내지 파기하는 데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가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정당한 신뢰의 형성

 

이것은 단순한 내적 심리 상태가 아니라 객관적 사정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판례를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계약 체결에 관한 정당한 신뢰가 형성된 것으로 인정된다.

 당사자 쌍방이 교섭 끝에 계약의 중요한 점 및 기타 주요 사항에 관하여 상당한 부분 합의를 이루고 계약서 작성의 일시,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정한 경우이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는 계약 체결을 위해 성실하게 교섭하기로 하는 예비적 합의가 묵시적으로 있는 것으로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당사자 일방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응모하여 합격자 또는 당선자로 선정·통보된 경우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대법원 1993. 9. 10. 선고 9242897 판결). 다만 앞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경우 중에는 우수현상광고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계약이 체결될 것을 전제로 급부의무의 이행을 야기·조장하거나(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32301 판결; 대법원 2004. 9. 13. 선고 200428870 판결) 체결될 계약과 양립할 수 없는 기존 이익의 포기를 야기·조장한 경우이다.

 

그러나 공사를 수주하기 위하여 견적서를 제출하는 경우와 같이 단지 청약의 유인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계약 체결에 관한 정당한 신뢰를 부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2001. 6. 15. 선고 9940418 판결).

 

 파기의 부당성

 

계약 교섭을 중단 내지 파기한 데 상당한(정당한) 이유가 없어야 한다. 이는 위법성을 나타내는 징표이기 때문에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측에서 주장, 증명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교섭을 파기당한 측에서는 교섭을 파기한 측에서 어떠한 이유로 교섭을 파기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교섭을 파기한 측에서는 그 이유를 해명하여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민법이 계약의 구속력에서 책임 없이 벗어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사정이 발생한 경우이다. 예컨대 계약의 주된 내용이 될 의무가 교섭 중에 귀책사유 없이 이행불능이 된 경우(390조 단서)를 들 수 있다. 상대방의 급부의 목적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증여계약의 구속력은 크게 완화되어 있으므로(555), 무상계약의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파기의 부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법이 개별적으로 정하고 있는 사정변경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이다. 예컨대 대출계약의 교섭 중에 차주가 파산한 경우에는 대주는 교섭을 그만둘 수 있다(599).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변경이 생긴 경우이다. 우리 대법원은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한 후에는 사정변경으로 인한 해제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아직 계약이 성립하지 않아 구속력이 없는 단계에서는 사정변경의 원칙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정변경이 주관적(예컨대 단순한 심경의 변화)이거나 내부적(예컨대 예산 부족, 자금 부족)인 경우에는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정변경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경우에는, 신뢰의 야기 자체가 위법하다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정변경을 이유로 교섭을 파기하는 것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상대방이 스스로 계약 체결에 대한 신뢰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상대방이 거래관행상 인정되는 상당한 기간 내에 계약 체결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3자와 교섭을 병행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계약 교섭의 파기가 위법·유책한 것으로 평가되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면 그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가해행위(교섭의 부당한 파기)와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가 될 것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32301 판결).

 

 이행이익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이와 관련하여 먼저 이행이익 즉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 문제 된다. 이에 관하여 대법원 2003. 4. 11. 선고200153059 판결은 정면에서 이를 부정하였고, 학설도 대체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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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손해의 배상 청구

 

교섭을 부당하게 파기당한 자는 이행이익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 또는 이행이익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그에 갈음하여, 신뢰손해 즉 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믿음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적극적 손해 : 계약 체결을 믿고서 지출한 비용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교통비, 숙박비 등 교섭비용이나 영업 장소 이전에 따른 초청장 인쇄비, 영업을 위해 임차한 건물의 차임 등 계약준비비용 등이다. 이는 이른바 신뢰손해로 불리는데, 적극적으로 비용을 지출한 경우이기 때문에 증명이 용이하다.

계약의 체결을 믿고서 계약의 이행행위를 준비하거나 이행에 착수한 경우라면 어떠한지에 관하여 보면, 아직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이상 미리 계약의 이행행위를 준비하거나 이행에 착수하는 것은 이례적이고 이는 자기의 위험판단과 책임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하여야 할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여야 한다. 다만 위와 같은 이행의 준비나 이행의 착수가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32301 판결).

그러나 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신뢰가 부여되기 이전 상태에서 계약 체결을 믿고서 지출한 비용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계약 교섭이 좌절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그래서 예를 들어 경쟁입찰에 참가하기 위하여 지출한 제안서나 견적서의 작성비용 등은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

는다.

 

 소극적 손해 : 계약의 체결을 믿고서 다른 기회를 포기함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가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직장에 취직할 것으로 믿고 기존의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취업의 기회를 잃음(대법원 1993. 9. 10. 선고 9242897 판결)으로 인해 입은 손해, 어업권 소멸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피조개종패를 살포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손해배상액이 이행이익의 한도로 제한되는지 문제되는데, 이른바 과잉배상 금지 원칙에 의하면 계약 교섭이 부당하게 파기된 경우 상대방은 계약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계약이 체결된 경우보다 더 나은 법적인 지위에 놓여서는 안 되므로, 이 경우 손해배상액은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이행이익)의 한도로 제한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계약이 해제되어 채권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이러한 법리를 밝히고 있다. 즉 채권자는 이행이익의 배상에 갈음하여 신뢰손해 즉 계약의 유효한 성립을 믿음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손해배상액은 이행이익 즉 채무가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의 한도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2002. 6. 11. 선고 20022539 판결 등].

 

 정신적 손해의 배상 청구

 

침해행위와 피해법익의 유형에 따라서는 계약 교섭의 파기로 인한 불법행위가 인격적 법익을 침해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그러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 또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된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53059 판결. 이 판결은 계약 교섭의 부당한 파기가 조형물 작가로서의 원고의 명예감정을 침해하였다고 하여 이러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인정하였다).

 

 과실상계

 

손해의 발생에 피해자의 과실이 있다면 과실상계를 하여야지(763, 396) 여기에 제535조 단서를 유추적용 하여 손해배상책임 자체를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교섭을 파기당한 당사자에게 있어서 계약이 체결되리라고 경솔하게 믿은 과실이 부정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소멸시효 및 사용자책임

 

소멸시효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 가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다(766).

그리고 피용자의 과실에 대한 사용자책임에 관하여는 제756조가 적용된다.

 

라. 이행이익손해와 신뢰이익손해

 

 의의

 

 손해의 내용을 이루는 침해이익에 따른 손해의 분류이다.

이는 손해배상의 범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예컨대 어떠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하여 손해배상의 범위가 신뢰이익손해라고 할 때, 그것은 책임의 근거에 비추어 볼 때 손해의 성질이 신뢰이익손해라는 것뿐이고, 손해가 배상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제393조에 따라 다시 결정된다.

 

 어떠한 손해가 이행이익손해에 해당하는 동시에 신뢰이익손해에도 해당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작물 공급을 주문받은 자(수급인)가 그 계약에 따라 제작물을 상당 부분 완성하였는데 그 이후 주문자(도급인)의 귀책사유로 인한 채무불이행으로 그 계약이 해제된 경우, 수급인이 그 계약의 이행으로서 그때까지 물건의 제작에 투입한 비용은, 계약의 이행에 따른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측면에서는 이행이익손해에 해당하지만, 다른 한편 도급인의 계약이행을 믿고 지출한 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신뢰이익손해에도 해당한다.

 

 이행이익손해가 반드시 신뢰이익손해보다 큰 것은 아니다. 손해의 크기와는 무관한 구분이다.

 

 그 구분의 실익에 관하여는 무익한 구분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민법이 명문으로 이 구분을 채택하고 있고(535), 이론적으로도 이 구분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근거를 그 책임의 내용에 반영한다는 점도 있어서 그 유용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 이행이익손해

 

 의의

 

 이행이익 :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채무가 그 내용대로 이행되는 데 대하여 채권

자가 가지는 이익이다.

 

 이행이익손해의 배상 : 채무가 그 내용에 좇아 이행되었다면 존재하였을 상태를 수립하는 것을 지향. 예컨대 매도인이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였을 경우에 매수인이 가지는 목적물의 가격상승 또는 전매의 이익, 목적물을 이용하여 얻을 이익, 목적물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목적물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이익 등. 채무가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도 어차피 지출하였을 비용(예컨대 계약비용, 이행준비비용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행이익손해의 배상이 인정되는 경우

 

 채무불이행책임 : 지연배상 또는 전보배상은 이행이익손해의 배상에 속한다

 타인 권리의 매매로 인한 담보책임

 

. 신뢰이익손해

 

 의의

 

 신뢰이익 : 당사자가 일정한 사태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행한 재산적 결정이 그대로 적절한 것이 됨에 관한 이익이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신뢰이익손해의 배상이 인정되는 유형에 따라 다소 다르다.

 

 계약의 유효를 믿음으로 인하여 입게 된 손해 (= 계약의 무효·취소·해제)

 

 의의 : 계약의 유효를 믿고 지출한 비용 또는 다른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입은 손

. 예컨대 계약비용, 이행준비비용, 계약에 따라 이미 이행한 급부 등이다.

 

 인정되는 경우

 

 원시적 불능으로 계약이 무효인 경우(535)

 

 그 밖에 계약이 무효인 경우(750)

 

 계약이 취소된 경우. 특히 경과실로 착오에 빠진 자가 착오를 이유로 취소한 경우(535조 유추적용 vs 750)

 

 계약이 해제된 경우(551) :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이 해제된 경우에는 이행이익손해의 배상이 원칙이지만, 채권자는 이에 갈음하여 계약의 소급적 무효로 인한 신뢰이익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한도 : 이행이익을 넘지 못한다. 계약이 유효하여 채무가 제대로 이행된 경우보다 더 나은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되기 때문(과잉배상금지)

 

 계약의 체결을 믿음으로 인하여 입게 된 손해 (= 계약교섭의 부당파기, 750) : 계약의 체결을 믿고 지출한 비용 또는 다른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입은 손해이다. 경우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도 가능하다.

 

 목적물에 하자가 없다고 믿음으로 인하여 입게 된 손해(하자담보책임) : 목적물에 하자가 없다고 믿고 지급한 대금 중 하자에 상응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