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삶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말년에 늙고 병든 몸을 갖게 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이젠 구두 뒤축을 땅에 깊숙이 박고 꼿꼿이 서서 ‘체력 저하’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주말에 또르와 산책을 했다.
브런치로 유황오리진흙구이와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나에게 또르와의 주말산책은 ‘걷기 등을 목표로 한 운동’이 아니다.
그저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맛있는 음식과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화창한 날씨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끼며 쉬고 싶을 뿐, 힘들게 땀을 흘리며 걷고 싶지 않다.
지난 금요일 친구들 몇 명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 중 어떤 친구는 3주간 부부가 함께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자유여행으로 돌고 온 지 1주일 지났다고 한다.
현재 튼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또 다른 친구는 이번 주 수요일에 회계사 친구와 함께 1달간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그 체력과 건강이 정말 부럽다.
청장년기의 삶은 노년기가 되면서 격차가 점점 크게 벌어진다.
그 격차를 가장 심화시키는 것이 바로 ‘체력’과 ‘건강’이다.
말년의 삶을 자신 없게 만드는 것이 갑작스런 ‘체력 저하’다.
노년기의 우울함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난 이제 ‘평일 야근’도 ‘주말 출근’도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평일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할 ‘체력’이 어느 순간 ‘뿅’하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평생 일만 해왔으니, 지금은 좀 쉬어도 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늙어서까지 힘들게 일만 하면서 살기에는 너무 억울하잖아?”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나를 위로한다.
말년에 늙고 병든 몸을 갖게 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이젠 구두 뒤축을 땅에 깊숙이 박고 꼿꼿이 서서 ‘체력 저하’에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늙은 숫자사가 젊은 사자들에게 쫓겨나 황야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시청한 적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음은 흐름의 이치, 내어줌과 받아들임을 보여주려는 신의 무한한 자애로움인듯하다.
젊음이 사라진 자리가 허전하고 아쉬울 때가 있지만, 이제는 젊고 강한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인생의 순리이자 자연의 법칙이다.
겨울은 봄에게 계절을 내주고, 지는 태양은 떠오르는 태양에게 하늘을 내주어야 한다.
언젠가는 죽음과 노화에 순응할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저항하고 싶다.
이제는 자연의 이치대로 흐르고, 만나고, 덮어주고, 내어주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욕망에 마음 일부를 빼앗긴 대가로 이 고된 거스름의 여정을 때론 밟나 보다.
오늘도 몸을 일으켜 휘트니스 센터로 향한다.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강한 의욕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