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동 고깃집 “본앤브레드 스픽이지(Born&Bred Speakeasy)” 시식체험기(1)】《지하로 내려가야 비로소 올라가는 맛의 품격》〔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수십 년간 서울에 살면서도 마장동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었다.
고깃집이라면 흔히 강남이나 종로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에게 ‘마장동’은 조금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곳은 대한민국 축산물 유통의 심장부이자 고기의 본산(本山)이라 불리는 동네였다.
이번 가족모임은 큰사위의 생일을 맞아 특별한 공간에서 함께하기로 했고, 우리가 예약한 곳은 다름 아닌 "Born & Bred Speakeasy"였다.
다섯 층짜리 건물. 겉보기엔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1층 라운지에서 잠시 대기한 뒤,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은 지나치게 소박했고, 벽면엔 아무 장식도 없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This must be part of the performance."
(이건 연출의 일부일 것이다.)
스픽이지(Speakeasy),
1920년대 금주법 시대의 미국에서 유래한 말.
술이 불법이던 시절, 비밀스럽게 속삭이며 들어가야 했던 underground bar의 전통.
오늘날에는 숨겨진 입구와 은밀한 분위기의 고급 공간을 뜻한다.
그 이름이 주는 긴장감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출이다.
지하로 내려가니, 비밀스러운 문 하나를 지나 깊숙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다른 세계로 들어섰다.
10인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따뜻한 조명. 절제된 고급스러움.
이날은 우리 가족 6명이 전부였다. 온전히 우리만을 위한 공간.
총 3시간 30분.
그 시간 동안 4명의 직원이 식사에 집중하며 우리를 서빙했다.
셰프 한 명은 한 접시 한 접시 직접 요리를 나눠주며 설명을 곁들였고,
남성 직원 한 명은 와인을 디캔팅하며 잔을 비우지 않도록 정성껏 챙겼다.
여성 직원 두 명은 물, 소금, 접시 하나까지 빈틈없이 살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성 직원이 와인을 한 방울씩 천천히 디캔팅하던 모습이었다.
“He pours the wine as if it breathes.”
(그는 마치 와인이 숨을 쉬는 것처럼 따랐다.)
Wine Pairing, 오늘의 라인업이다.
시작은 고급 샴페인 빌레까르 살몽 Billecart-Salmon Brut Sous Bois.
오크통에서 숙성된 깊은 풍미가 입을 깨운다.
이어지는 와인은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보석 바롤로 와인,
Pio Cesare Barolo DOCG 2018.
장미향과 감초, 부드러운 타닌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세 번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강렬함을 품은
오스틴 호프 Austin Hope Cabernet Sauvignon 2021.
깊고 진한 과일향, 힘 있고 당당한 질감.
마지막은 황금빛 피날레,
헝가리의 전설적인 디저트 와인 Château Dereszla Tokaji Aszú 5 Puttonyos 2019.
꿀, 살구, 오렌지 껍질의 농축된 고요한 달콤함.
이렇게 네 병의 와인이
총 22가지 요리와 함께
정교한 흐름을 이루며
우리의 밤을 천천히 채워갔다.
입구는 허름했지만, 그 아래는 고기와 와인, 정성과 품격이 뒤섞인 세계였다.
스픽이지는 단지 숨겨진 입구나 어두운 조명을 뜻하지 않는다.
진짜 의미는,
“당신이 마음을 열고 들어와야만 만날 수 있는 깊이”이다.
이제 22코스 오마카세의 정체,
그리고 셰프의 철학이 고기에 스며드는 순간들을
하나하나 음미해보려 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