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마장동 고깃집 “본앤브레드 스픽이지(Born&Bred Speakeasy)” 시식체험기(2)】《Course 1~5: 시작은 섬세하게, 미각을 깨우는 시간》〔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5. 6. 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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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 고깃집 본앤브레드 스픽이지(Born&Bred Speakeasy)” 시식체험기(2)】《Course 1~5: 시작은 섬세하게, 미각을 깨우는 시간》〔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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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22가지가 나온다고요?’

셰프의 첫 인사가 끝나고 난 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고기 오마카세라 들었을 뿐, 이렇게 정찬에 가까운 코스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시계의 초침은 멈추고, 그 순간부터 시간은 고기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 Course 1~5: 섬세하게 시작된 혀의 여행

 

셰프가 두툼하면서 마블링이 섬세하게 새겨진 샤또브리앙채끝을 숯불 위에 올려 놓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조용한 지하 공간, 은은한 조명, 불판 위에 조심스레 올려지는 샤또브리앙과 채끝.

그 풍경만으로도, 오늘은 특별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처음에 내놓은 스타터 요리는 갈비탕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 지금까지 먹어온 그런 갈비탕이 아니다

인삼 등 각종 한약재와 주름버섯 등을 넣고 푹 고은 고깃국물이다.

고기로 속을 채운 주름버섯이 꼬치로 꿰어져 나오는데, 아주 맛있고 부드럽다.

국물은 그냥 후루룩 마셨는데, 아주 고소하고 감칠 맛이 있다.

진하지만 전혀 기름지지 않고,

한 모금 마시자 위장이 조용히 눈을 뜨는 듯했다.

 

두 번째는 자두 위에 아주 엷게 저민 숙성 생고기(하몽이나 프로슈토처럼 얇지만, 전혀 짜지 않고, 돼지고기가 아니라 소고기임)를 올린 음식이다.

그 위엔 꽃잎 몇 점이 내려앉았다.

가차 없이 한 입에 넣어버렸다.

달고 시큼한 과일의 맛과 짙은 육향이 어우러지자, 마치 여름 저녁 숲속에서 열리는 비밀스러운 연회 같았다.

 

세 번째는 트러플 육회와 캐비어.

소의 견갑골을 접시 삼아 등장한 이 요리는 시각과 미각의 경계를 허물었다.

육회 위엔 트러플이, 그 위엔 캐비어가, 그리고 오이고추가 살짝 얹혔다.

손으로 집어 통째로 입에 넣자, 캐비어의 짠맛, 트러플의 향, 육회의 감칠맛이

한 음표씩 쌓여 오케스트라를 이루었다.

나는 그 순간, 미각이란 것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와인.

‘Pio Cesare Barolo DOCG 2018’.

루비빛 와인잔을 기울이자, 장미와 블랙체리, 감초와 삼나무 향이 차례로 밀려왔다.

처음엔 날카롭고 드라이하던 맛이,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럽고 우아하게 입안을 감쌌다.

마치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결국은 사랑하게 되는 사람처럼.

 

네 번째는 샤토브리앙(chateaubriand)’.

 

예전에 샤토브리앙이 와인인줄 알고 잘난 척하다가 실수한 적이 있다.

수년 전 레스토랑에서 초대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각자 메인 요리를 주문하던 중 담당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샤토브리앙도 제공하는데, 그건 어떠신지요?”

 

내가 잘난 척하며 말했다.

, 그건 됐습니다. 와인은 제가 직접 고를 겁니다. 보르도보다는 부르고뉴를 더 좋아하거든요. 와인 리스트를 가져다주세요.”

 

순간 왠지 모를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당시에 난 무슨 실수를 저지렀는지 전혀 몰랐다.

그날 처음으로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은 와인이 아니라 특별하게 요리한 프랑스식 쇠고기 안심살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의 안심 중 가운데 가장 두껍고 연한 중앙부위인데,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인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이 좋아하던 아주 귀한 부위라서, 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미디엄 레어로 구어진 샤토브리앙위에 호주산 블랙 트러플을 가득 올려놓았다.

“It didn’t just melt in the mouth. It whispered something before it disappeared.”(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사라지기 전, 고기가 나에게 속삭였다. “기억해줘. 이 맛은 쉽게 잊히지 않을 테니까.”)

 

다섯 번째 요리는 유자 머스타드를 올린 채끝.

샤또브리앙의 단아한 고요함과는 다른 결의 매력.

지방의 탄력, 고기의 밀도, 그리고 유자의 상큼함이 춤을 추듯 입안을 돌았다.

두 조각을 번갈아 먹으며 나는 고기라는 존재가 가진 폭넓은 세계에 감탄했다.

 

그날 저녁, 마장동의 지하는

하루를 위로받는 미각의 안식처였다.

한 점의 고기가 말해준 것들,

그 섬세한 속삭임들은 아직도 내 입가에 남아 있다.

고기는 단순히 익혀 먹는 음식이 아니다.

때론,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기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