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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해설<가사소송>】《(인공수정, 유전자형 배치와 친생추정)혼인중 출생 자녀는 혈연관계 없어도 친생되는지 여부(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므0000 전원합의체 판결)》〔윤경 변호사 더..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0. 5. 3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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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해설<가사소송>】《(인공수정, 유전자형 배치와 친생추정)혼인중 출생 자녀는 혈연관계 없어도 친생되는지 여부(대법원 2019. 10. 23 선고 20160000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안의 요지

 

. 피고 1의 사실관계

 

(1) 원고는 소외인과 1985. 8. 2.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였다.

원고는 소외인과 결혼 후인 1992년경 ○○○병원에서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

이에 소외인은 원고의 동의를 얻어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시술을 통한 인공수정 방법으로 임신한 다음(일자 1 생략) 위 병원에서 피고 1을 출산하였다.

 

(2) 피고 1의 출생기록에 붙어 있는 피고 1의 출생 직후 사진 중 인적사항이 기재된 부분의 오른쪽 상단에 체외수정(In Vitro Fertilization)의 약자인 'IVF'가 쓰여 있다.

 

(3) 원고는 1993. 3. 29. 피고 1의 출생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채 자신과 소외인의 자녀로 피고 1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4) 원고와 소외인은 부부갈등으로 인해 2013. 6. 28.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서를 제출하였다.

피고 1은 원고와 혈연관계가 없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위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 무렵 원고와 소외인이 다투는 과정에서 원고가 피고 1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를 알게 되었다.

 

(5) 원고와 소외인은 혼인 이후 이 사건 소 제기 무렵까지 피고 1과 함께 동거해 왔다.

이때까지 원고가 피고 1과의 친자관계에 대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였다고 볼만한 사정은 없다.

 

(6) 이 사건 제1심 법원과 원심 법원은 피고 1○○○병원에서 제3자의 정자 제공에 의한 시험관시술을 통해 출생하였는지, 이때 원고가 동의를 하였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위 병원에 사실조회를 하였으나, 위 병원은 의료기록 보존기간이 지나 진료기록이 없다고 회신하였다.

 

(7) 원고가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을 한 이후인 2013. 7. 28. 피고 1 등과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녹취록(을 제4호증)에 따르면, 원고는 피고 1에 대한 인공수정 당시 자신이 무정자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위 병원에서 피고 1을 낳기로 동의하였으며, 그에 따라 피고 1에 대해서는 딸로 대하며 피고 1의 결혼 시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음을 알 수 있다.

 

. 피고 2의 사실관계

 

(1) 소외인은 혼외 관계를 통해 피고 2를 임신하여 (일자 2 생략) 피고 2를 출산하였다. 원고는 1997. 8. 6. 원고와 소외인의 자녀로 피고 2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2) 원고는 늦어도 피고 2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던 2008년경에는 병원 검사를 통하여 피고 2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그런데도 원고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 오랜 기간 피고 2가 친생자로 출생신고된 사실에 관하여 문제 삼지 않은 채 피고 2와 동거하면서 아버지로서 피고 2를 보호ㆍ교양해 왔다.

 

(4) 원고는 2013년경 소외인과 협의이혼 과정에서 '미성년자인 피고 2의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며, 피고 2의 양육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월 50만 원씩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각서를 공증하였다.

 

(5) 피고 2는 원고와 혈연관계가 없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위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 무렵 원고와 소외인이 다투는 과정에서 원고가 피고 2는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를 알게 되었다.

 

(6) 원고와 소외인은 이혼소송에까지 이르러 결국 2015. 10. 30. 이혼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하였다.

 

2. 판시사항

 

남편의 무정자증으로 다른 사람의 정자로 인공수정해 태어난 자녀도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혈연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친생추정이 적용 또는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혼인기간 중 출생한 자녀는 원칙적으로 법적인 부자관계라는 대법원 기존 판례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3. 판결요지

 

. 아내가 혼인 중 인공수정으로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의 친자관계

 

(1) 인공수정 자녀에 대한 친생추정 규정 적용 여부

 

민법은 부모와 자녀의 친자관계 성립에 관하여 혈연에 기초한 친생자관계(844조 이하에서 친생자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와 당사자의 의사에 기초한 양자관계(866조 이하에서 양자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친생자관계는 출생에 의하여 발생하는 부모와 자녀 관계로서, 부모가 자연적인 성적 교섭으로 임신한 자녀를 출산한 경우를 전제로 하므로 부모와 출생한 자녀 사이에는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원칙이다.

 

친생자관계에서도 모자관계와 부자관계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에 의하여 그 관계가 명확히 결정되는 모자관계와 달리, 부자관계는 그 관계 확정을 위한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다.

민법은 혼인 중에 아내가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는 친생추정 규정(844조 제1. 이하 '친생추정 규정'이라 한다)을 두고 있다.

혼인외 출생자의 경우에는 생부가 인지하거나(855조 제1) 자녀가 부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863)를 제기하여 친생자관계의 존재를 확정하는 방법으로 법률상 친자관계를 창설할 수 있는데, 이때 부와 자녀 사이에 혈연관계가 존재하는지가 증명의 대상이 되는 주요사실을 구성한다(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11537판결, 대법원 2015. 6. 11. 선고 20148217 판결 등 참조).

 

피고 1에 대한 이 사건 청구의 쟁점은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이하 '인공수정 자녀'라 한다)를 출산한 경우 출생한 자녀의 친자관계를 어떠한 기준으로 인정해야 하는가이다(인공수정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여기에서는 위와 같은 '3자 정자제공형 인공수정' 이외의 사안은 다루지 않는다).

 

현행 민법에는 인공수정 자녀의 친자관계 성립에 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1958. 2. 22. 민법 제정 당시에는 아내가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임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에 관한 규정을 둘수 없었다.

 

그러나 친생자와 관련된 민법 규정, 특히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체계, 민법이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법적 지위에 관하여 친생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 기본적인 입법 취지와 연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제도 등에 비추어 보면,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친생추정규정을 적용하여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먼저 친생추정 규정의 의미에 관하여 본다.

 

모자관계는 출산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친자관계가 성립하는 이른바 자연적 친자관계인 반면, 부자관계는 자연적 사실의 유무를 알 수 없어 법률이 인정하는 경우에만 친자관계가 성립한다는 의미에서 법률적 친자관계이다.

친생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출산한 경우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있다.

나아가 민법은 혼인 중의 임신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하여(844조 제2, 3)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혼인 중 임신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친생추정 규정은 친자관계의 과학적 확인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것이라는 사회적ㆍ법률적 배경을 기초로 혼인 중 출생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친생추정 규정은 그 자체로 진실한 혈연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법률상 친자관계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률상 친자관계를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제도의 원칙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헌법재판소 1997. 3. 27. 선고 95헌가14, 96헌가7 결정 등 참조), 이를 위해 민법은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형성된 부자 사이의 친자관계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두고자 친자관계의 부인권을 남편과 아내에게 인정하고 있다(847. 이하 '친생부인의소 규정'이라 한다).

 

그러나 친생부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너무 길게 인정하거나 그 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자녀의 신분관계를 조속히 확정해야 할 필요성과 신분관계를 둘러싼 법률관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으므로, 민법은 친생부인의 소는 남편 또는 아내가 친생부인의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제기하여야 한다는 제소기간을 정하고 있다(847조 제1).

 

이와 같이 원고적격과 제소기간을 제한하는 친생부인의 소 규정에 따라 친생추정의 효력은 법률에서 인정하는 다른 추정에 비하여 강한 효력을 갖는다.

친생부인이 되지 않아 친생자로 추정되는 한 생부가 혼인외 출생자로서 인지할 수도 없고 자녀가 생부를 상대로 인지를 청구할 수도 없으며, 제소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 추정이 진실에 반하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추정을 번복할 수 없다.

 

민법은 이와 같이 친생추정 규정과 이에 대한 번복방법인 친생부인의 소 규정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고, 친생부인을 할 수 없게 된 경우 자녀의 법적 지위가 종국적으로 확정된다.

따라서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부자관계는 민법 규정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고 그 혈연관계를 개별적ㆍ구체적으로 심사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 민법은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규범적으로 친자관계라는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그와 같이 형성된 가족관계에 강한 법적 보호를 부여한다.

이처럼 일반적ㆍ제도적 측면에서 자녀의 복리를 보호하면서도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형성된 신분관계를 부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합리적인 방법과 기간을 정하여 신분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친자관계 확정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이익을 조정하는 것이 민법의 기본적 태도이다.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한 친생추정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부부와 자녀의 법적 지위와 관계되는 것으로서 '법률적인 친자관계를 진실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부부ㆍ자녀의 이익''친자관계의 신속한 확정을 통하여 법적 안정을 찾고자 하는 자녀의 이익'을 사회 현실이나 전통 관념에 맞게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이해관계인들의 기본권,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헌법적 결단을 고려하여 결정할 문제로서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마623 결정 참조).

민법은 친생추정 규정과 친생부인의 소 규정을 통하여 혼인 중 임신하여 출생한 자녀에 대한 친자관계 설정 기준에 관한 입법적 결단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친생추정 규정을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하는 이유에 관하여 본다.

 

법해석의 목표는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추구하는데 있다.

이를 위하여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법률을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문언의 통상적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는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제정ㆍ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ㆍ논리적 해석방법을 추가적으로 동원하여 법해석의 목표에 맞는 타당한 해석을 할 수 있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81035 판결, 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34591 판결, 대법원 2016. 11. 25. 선고 201537815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입법 당시 예정하지 않은 현상도 입법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현행 법제도의 구조에 편입시켜 보다 타당한 해결책을 도모하여야 한다.

 

친생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친생추정 규정은 문언상 임신하게 된 구체적 경위에 따라 친생추정의 적용을 제한하거나 자연적 방법이 아닌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친생추정 규정 형식은 2017. 10. 31. 법률 제14965호로 개정될 때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밖에 민법의 다른 규정을 보더라도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이를 제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공수정 자녀에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법률 문언이 허용하는 법해석의 범위 내에 있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라고 정하여 개인의 자율적 의사와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가족생활을 보호하고 있다.

친생추정 규정은 이러한 헌법 원칙을 바탕으로 부부가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이를 기초로 형성되는 가족관계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여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다.

인공수정 자녀가 출생하게 된 배경이 된 혼인관계, 그리고 혼인 중 인공수정 자녀가 출생함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친자관계 등의 가족관계도 이처럼 존중받아야 할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에 기초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혼인 중 출생한 다른 자녀와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혼인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족생활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가 인공수정 자녀라는 이유로 달라지지 않는다.

임신하게 된 구체적 경위에 따라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한 법적 지위가 달라진다고 볼 법적 근거가 없다.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성적 교섭에 의해 출생한 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여 법적 보호의 공백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혼인 중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적 교섭이나 생물학적 혈연관계만을 친자관계 성립의 근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인공수정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아버지를 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다.

이는 인공수정 자녀의 법적 지위를 불안하게 함으로써 민법이 친생추정 규정을 두게 된 제도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어 부당하다.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생물학적 혈연관계만을 우선시할 경우에는 더욱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

정자를 제공한 제3자가 익명인 경우에는 정자제공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정자제공자는 자신의 정자로 태어날 아이에 대해서 아버지로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예상할 수 없어 아버지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익명으로 정자를 제공한 것 외에 자녀의 임신과 출생에 대해서 아버지로서의 신분을 귀속시킬 만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혈연관계가 있다는 점만으로 정자제공자를 곧바로 법률상 아버지로 취급하거나 그에게 법률상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처럼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부자관계를 정하지 않으면 사실상 부자관계를 정할 수 없게 되거나 민법이 예상하지 않은 부자관계를 성립하도록 하는 등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

 

요컨대,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적용되는데,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입법 취지,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헌법적 보장 등에 비추어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도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 자녀의 복리는 친자관계의 성립과 유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므로,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이 적용되는지를 따질 때에도 자녀의 복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자녀의 복리는 단순히 자녀에게 보호ㆍ교양의 보장이라는 친자관계의 실질을 제공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이에 상응하는 법적인 친자관계를 형성해 줌으로써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에 따라 부모가 자녀의 발전을 위한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자녀의 복리를 지속적으로 책임지는 부모에게 자녀와의 신분관계를 귀속시키는 것이 자녀의 복리에 도움이 된다.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자관계가 생기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인공수정 자녀를 양육해 왔던 혼인 부부에게 커다란 충격일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가족관계를 형성해 온 자녀에게도 회복하기 어려운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과정과 이를 둘러싼 가족관계의 실제 모습에 비추어 보더라도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에 사회적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인공수정의 경우 자연적인 성적 교섭이라는 요소가 없는 대신 인공수정 또는 수정란의 이식이라는 보조행위가 존재한다.

아내가 제3자의 정자를 통한 인공수정 방법으로 자녀를 임신하는 데에 남편이 동의하는 경우 부부는 인공수정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더라도 자녀에 대해서 공동으로 책임진다고 예상하였을 것이고 그 동의에 따라 출생한 자녀와 친자관계를 형성하게 된다고 보아야 한다.

남편은 아내가 인공수정으로 인한 임신과 출산을 하는 과정에 동의함으로써 참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출생한 자녀는 부부 사이의 자연적인 성적 교섭으로 임신ㆍ출산한 자녀와 마찬가지로 부부 사이에 혼인 중 출생한 자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친자관계를 바탕으로 인공수정 자녀는 부부 사이의 자녀로서 그들과 실질적인 친자관계의 모습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사회적으로도 이와 같이 형성된 친자관계는 자연적인 성적 교섭으로 출생한 자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부의 친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도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부부와 법적 친자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법적 안정과 평화를 깨뜨려 인공수정 자녀를 법적 보호가 없는 공백상태로 만드는 것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2) 인공수정 자녀에 대한 친생부인 허용 여부

 

() 위에서 보았듯이 친생부인의 소 규정은 법률적 친자관계를 진실에 부합시키고자 하는 이익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그러나 혈연관계가 없는 자녀가 출생하였다는 점이 밝혀진 경우에는 친생추정 규정 적용의 전제가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민법은 남편과 아내가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합리적인 기간의 범위 내에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1997. 3. 27. 선고 95헌가14, 96헌가7 결정 등 참조).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인공수정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는 이유는 '동의'를 함으로써 임신ㆍ출산 과정에 참여한 부부 사이에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헌법과 민법을 비롯한 전체 가족법 체계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의 가정생활과 신분관계를 보장해 주면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가족관계의 실체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인공수정 자녀를 임신하여 출산하는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인공수정 자녀가 남편과 아내의 성적 교섭으로 임신한 것이 아니고 이에 따라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은 모두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할 때에 이미 고려한 사항들로서, 인공수정 자녀가 출생할 당시 남편이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전제사실을 바탕으로 친생추정 규정을 통하여 인공수정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는 것은 남편이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을 보장하고 이를 실현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남편에게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편의 기본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친생부인의 소는 자연적인 성적 교섭으로 임신ㆍ출산한 자녀에 대해서 성적 교섭 과정이 없다는 것과 이에 따라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없다는 것을 요건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요건으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친생자관계는 생물학적인 혈연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인공수정을 통한 친자관계의 형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이는 민법이 친생추정 규정과 친생부인의 소 규정을 두어 혈연 이외의 다른 요소도 고려하여 친생자관계를 정하고자 한 취지나 목적에 합치되지 않는다.

 

() 정상적으로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사이에서 인공수정 자녀가 출생하는 경우 남편은 동의의 방법으로 자녀의 임신과 출산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것이 친생추정규정이 적용되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하였다가 나중에 이를 번복하고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인공수정 동의와 관련된 현행법상 제도의 미비, 인공수정이 이루어지는 의료 현실, 민법 제852조에서 친생자임을 승인한 자의 친생부인을 제한하고 있는 취지 등에 비추어 이러한 동의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던 사정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친자관계가 부정된다거나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

 

현행법은 인공수정 동의에 관한 법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동의서 작성이나 동의서 보관 기간 등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 등을 갖추고 있지 않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이라 한다)은 의료기관이 필요한 설명을 하고 체외수정 시술대상자와 그 배우자의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24조 제1), 그 설명ㆍ동의 내용이 주로 배아 생성의 목적 등 시술과 관련된 내용이어서 친자관계의 성립에 관한 동의가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기는 경우 동의 여부를 명백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생명윤리법에 따른 동의서나 법적 부모의 확정과 관련된 남편의 동의 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의료기록이 작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보존기간이 10년 정도로 제한되어 있어 이와 같은 자료가 없어질 우려도 있다(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20조 제4항에 따르면 동의서 보존기간도 10년으로 정해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의서 작성이나 그 보존 여부에 따라 친자관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도 명확성과 안정성이 요구되는 신분관계의 특성에 비추어 타당한 해결방법이 아니다.

따라서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부인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따라 해석하되 어느 경우에나 자녀의 복리에 반하거나 민법이 친생추정 규정을 둔 입법 취지가 몰각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부부가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는 남편의 동의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는 다른 명확한 사정에 관한 증명이 없는 한 남편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이하 '윤리지침'이라 한다)에 따르면, 3자의 정자를 사용한 정자 제공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상 부부에 한하여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고 타인의 정자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남편이 비가역적인 무정자증으로 판단되는 등 달리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임신할 수 없다는 점이 확진되어야 한다.

또한 윤리지침은 시술 대상 부부에게 윤리지침과 관련 법률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부부가 이를 모두 수락하고 동의한 다음 시행되어야 한다고 정하면서, 시술 대상 부부는 정자 제공 시술로 태어난 출생아를 정상적으로 양육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출생아가 모든 경우에서 친자와 동일시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자 제공 시술을 하는 의료현실에 비추어 보면, 혼인관계에 있는 아내가 남편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인공수정 자녀를 임신ㆍ출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곤란하다.

 

동의서 작성이나 그 보존 여부가 명백하지 않더라도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이후 남편이 인공수정 자녀라는 사실을 알면서 출생신고를 하는 등 인공수정 자녀를 자신의 친자로 공시하는 행위를 하거나,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실질적인 친자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공수정 자녀를 자신의 자녀로 알리는 등 사회적으로 보아 친자관계를 공시ㆍ용인해 왔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동의가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취급하여야 한다.

 

민법 제852조는 자의 출생 후에 친생자임을 승인한 자는 다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정하면서 친생부인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가 자녀에 대해서 친생자임을 승인하면 이후 친자관계는 확정되고 이로써 친자관계라는 신분관계가 신속하게 안정화되며 이를 통하여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편이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출생신고를 하거나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실질적인 친자관계를 유지해 오는 것과 같이 친자관계를 공시ㆍ용인하는 행위를 한 경우 이는 인공수정 자녀의 출생 전 과정을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남편이 그러한 사실을 전제하면서 인공수정 자녀를 자신의 자녀로 승인하는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그 후 남편이 친생부인을 주장하는 것은 민법 제852조의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행위로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여부

 

민법 제844조 제1항에 따른 친생추정을 번복하기 위해서는 부부의 한 쪽이 민법 제846, 847조에서 정하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 확정판결을 받아야 한다.

부부의 한 쪽이 친생부인의 소가 아닌 민법 제865조에서 정하는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통해서 친생자관계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것은 부적법하다(대법원 1984. 9. 25. 선고 8484 판결, 대법원 2000. 8. 22. 선고 2000292 판결 등 참조).

 

위에서 본 친생추정 규정의 문언과 체계, 민법이 혼인 중 출생한 자녀의 법적 지위에 관하여 친생추정 규정을 두고 있는 기본적인 입법 취지와 연혁,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제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부부와 자녀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이익의 구체적인 비교 형량 등을 종합하면,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하는 것으로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과 관련된 기본 규정으로 삼고 있는 민법의 취지와 체계에 반한다.

 

() 친생추정 규정은 혈연관계의 존부를 기준으로 그 적용 여부를 달리하고 있지 않다.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사후적으로 밝혀진 경우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합치되지 않는다.

 

() 1..(1)()에서 보았듯이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여 자녀의 출생 시 법적 보호의 공백을 없애고자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친자관계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진실한 혈연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법률상 친자관계를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시킬 수 있도록 친생부인의 소를 인정하면서도 제소기간을 두어 자녀의 신분관계를 조속히 확정하여 법률관계의 안정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민법의 입법 취지와 규정형식에 비추어 보면,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거나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아 누구든 언제든지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친생자로 추정되는 부자관계를 다툴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전제로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켜 법적 지위의 공백을 방지하고자 하는 친생추정 규정 본래의 입법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친생추정 규정을 통하여 형성된 법률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어 견고해진 경우 이와 같이 형성된 자녀의 지위에 대해서는 누구든 쉽게 침범할 수 없도록 하여 자녀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보장할 사회적 필요성도 있다.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친생추정 규정을 바탕으로 장기간 형성된 친자관계,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혼인관계 등 사회생활의 기초가 되는 가족관계를 일시에 불안정한 상태로 만든다.

친자관계를 장기간 불안한 상태로 두는 것은 민법이 친생추정 규정을 두어 형성하고자 하였던 친자관계의 모습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고 안정을 요하는 신분질서의 본래 성격과 맞지 않는다.

 

()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한 친생추정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부부와 자녀 등 이해관계인들의 기본권과 혼인ㆍ가족생활에 관한 헌법적 결단을 고려하여 결정할 문제로서 원칙적으로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헌법재판소 2015. 4. 30. 선고 2013헌마623 결정 등 참조).

결국 친자관계는 입법자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현실과 전통 관념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최근 유전자검사 기술의 발달로 과학적 친자감정이 가능해졌다.

이혼과 재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혼인관계가 파탄된 상태에서 아내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자녀를 임신하여 출산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처럼 제정 민법에서 친생추정 규정을 도입할 당시와는 사회적ㆍ법률적 상황이 변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부자 사이의 친생자 추정에 관한 근본규정인 친생추정 규정 자체를 무의미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친생추정 규정이 헌법에 반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신분관계를 포함한 가족관계는 기본적으로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혈연관계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혼인과 같이 사회적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가족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친자관계에 한정하더라도 오늘날에는 혈연뿐만 아니라 가족공동생활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형성된 친자관계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므로 이를 보호할 필요성도 커졌다.

이는 과학적 검사기법의 발달로 혈연관계를 쉽게 확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서 친생자를 추정하는 원칙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친자관계 관련 법률을 개정하면서도 친생추정 규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혈연관계가 없는 경우 친생부인권을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이때에도 재판상 친생부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를 친자관계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부부, 자녀와 생부로 한정하고 있다. 부자간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해서 누구든지 아무런 제한 없이 친자관계의 존부를 다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비교법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아내가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는 것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일 개연성이 높다는 점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관계를 기초로 실질적인 가족관계가 형성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가족관계가 친생부인의 소의 제소기간이 지날 때까지 유지되는 등 오랜 기간이 지나 사회적으로도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이러한 가족관계와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므로 이를 누구든지 쉽게 번복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헌법재판소 2015. 3. 26. 선고 2012헌바357 결정 등 참조).

 

(2)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가족관계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부부관계나 가족관계 등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친생추정을 받는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게 하거나 이에 대한 공적인 확인을 받기 위해서는 결국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한 경우 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이 친자관계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혼인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가족관계는 헌법상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하는데도 이와 같은 관여를 넓게 허용하게 되면 오히려 국가가 보장해야 할 혼인과 가족관계를 국가나 제3자가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헌법 취지에도 반한다.

 

혈연관계의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관계를 정하는 것은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하고 있던 부부 사이에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자녀가 혼인 중에 남편에 의해 임신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게 하거나 이것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친생자관계가 확정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누구든지 함부로 자녀의 법적 지위를 다툴 수 있으므로 가정의 평화 역시 불안하게 된다.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관계를 정하게 되면, 친자관계와 관련된 소가 제기되는 경우 친생자관계가 아님을 객관적,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친자감정을 하거나 부부간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조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부부의 내밀한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 3자가 다른 사람의 가정에 뛰어들어 다른 사람의 아내가 출산한 자녀에 대하여 자기 자식이라고 주장하면서 친자감정 등을 요구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 가정의 평화는 유지되기 어렵다.

혈연의 진실을 위한다는 이유로 부부 그리고 가족 내부의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제3자의 개입을 널리 허용하는 것은 가정의 평화유지를 중요한 입법 목적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에 어긋난다.

 

이러한 사생활 침해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부부 사이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 형성된 사생활도 침해된다.

이들은 모두 사생활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특히 자녀의 사생활은 자녀의 복리와도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더욱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보호해야 할 사생활은 그것이 과거의 것이었다거나 현재 부부관계가 해소되었다는 이유로 그 보호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 부부가 이혼을 하는 등 현재 가족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사정을 이유로 이러한 사생활 침해가 정당화되지 않는다.

 

부부의 혼인관계가 종료되어 가정이 해체되는 사정이 있더라도 자녀의 신분관계의 법적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당연히 없어진다고 볼 수 없다.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나 자녀 개인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친자관계 자체를 보호하는 기능도 있다.

가정의 해체 후에도 종전 가족구성원들은 기존에 형성된 법률관계를 기반으로 온전하고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계속해 나갈 법적 이익을 가진다.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가운데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인간생활의 가장 본원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다.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이 독립적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혼인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국가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형성된 가족생활을 존중하고 인격적ㆍ애정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가족관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헌법재판소 2000. 4. 27. 선고 98헌가16 등 결정, 헌법재판소 2005. 2. 3. 선고 2001헌가9 등 결정 등 참조).

혼인과 가족관계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은 자제하여야 한다.

 

(3) 법리적으로 보아도 혈연관계의 유무는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사유에는 해당할 수 있지만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범위를 정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

 

민법은 친생추정 규정을 두면서도 남편에게 친생부인의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므로 남편이 친생부인의 사유를 알지 못하는 한 친생부인의 소의 제소기간은 진행하지 않는다.

 

이는 진실한 혈연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법률적인 친자관계를 진실에 부합시키고자 하는 남편에게 친생추정을 부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친생부인의 소가 적법하게 제기되면 부모와 출생한 자녀 사이에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존재하는지가 증명의 대상이 되는 주요사실을 구성한다.

결국 혈연관계가 없음을 알게 되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소기간이 진행하고, 실제로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은 친생부인의 소로써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게 하는 사유이다.

 

이처럼 혈연관계 유무나 그에 대한 인식은 친생부인의 소를 이유 있게 하는 근거 또는 제소기간의 기산점 기준으로서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유이다.

이것이 친생추정이 처음부터 미치지 않도록 하는 사유로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조차 없도록 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전제사실로 보는 것은 원고적격과 제소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는 친생부인의 소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현행 민법의 해석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친생부인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는데도 제소기간이 지나도록 이를 행사하지 않아 더 이상 이를 다툴 수 없게 된 경우 그러한 상태가 남편이 가정생활과 신분관계에서 누려야 할 인격권, 행복추구권,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헌법재판소 2015. 3. 26. 선고 2012헌바357 결정 등 참조).

민법 규정에 반하는 해석을 동원하면서까지 남편에게 친생부인의 기회를 다시 부여하여야 할 만큼 특별한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 사실관계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1) 소외인은 혼외 관계를 통해 피고 2를 임신하여 (일자 2 생략) 피고 2를 출산하였다. 원고는 1997. 8. 6. 원고와 소외인의 자녀로 피고 2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2) 원고는 늦어도 피고 2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던 2008년경에는 병원 검사를 통하여 피고 2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그런데도 원고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 오랜 기간 피고 2가 친생자로 출생신고된 사실에 관하여 문제 삼지 않은 채 피고 2와 동거하면서 아버지로서 피고 2를 보호ㆍ교양해 왔다.

(4) 원고는 2013년경 소외인과 협의이혼 과정에서 '미성년자인 피고 2의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며, 피고 2의 양육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월 50만 원씩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각서를 공증하였다.

(5) 피고 2는 원고와 혈연관계가 없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위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 무렵 원고와 소외인이 다투는 과정에서 원고가 피고 2는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를 알게 되었다.

(6) 원고와 소외인은 이혼소송에까지 이르러 결국 2015. 10. 30. 이혼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하였다.

 

4. 판례 해설

 

먼저, 피고 1에 대한 친생자관계 존부에 관하여 살펴보면, 소외인이 원고와 혼인 중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인 피고 1은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원고의 친생자로 추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원고는 피고 1을 자신의 자녀로 승인하였으므로, 원고가 피고 1에 대해서 친생부인을 구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원고는 소외인과 혼인 후 병원 검사를 통하여 무정자증 진단을 받아 자연적인 성적 교섭으로는 자녀를 출산할 수 없음을 인식한 상태에서 소외인이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피고 1을 임신ㆍ출산하는 데에 동의하였다.

의료기록 보존기간이 지나 원고가 어떠한 형태로 동의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원고가 결혼 후 장기간 자녀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무정자증 진단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소외인이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피고 1을 임신ㆍ출산하는 데에 동의하였다.

원고의 동의는 단순한 의료시술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피고 1과 친자관계를 설정하려는 의사로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원고는 피고 1이 출생한 (일자 1 생략)부터 9일 후인 △△일 피고 1의 출생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원고와 소외인의 자녀로 피고 1의 출생신고를 마쳤다.

원고는 자신이 무정자증으로 자녀를 출산할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의 동의로 소외인이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피고 1을 임신ㆍ출산하였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피고 1에 관한 출생신고를 하였다.

이를 통하여 원고가 피고 1과 친자관계를 형성하려는 의미에서 동의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고는 피고 1을 자신의 자녀로 승인하고 출생신고를 통하여 사회적으로도 공시하였다.

 

() 원고는 피고 1이 출생한 이후 2013년경 소외인과 협의이혼을 신청하기까지 약 20년이 넘는 동안 피고 1과 동거하면서 실질적인 친자관계를 형성해 왔고 이와 모순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협의이혼을 신청한 직후까지도 피고 1에 대해서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원고는 피고 1이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장기간 피고 1을 보호ㆍ교양하는 등으로 실질적인 친자관계를 형성함으로써 피고 1을 자신의 친생자로 승인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음으로 피고 2에 대한 친생자관계 존부르 살펴보면, 유전자형 배치의 경우에도 친생자 추정의 효력은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고, 원고와 피고 2 사이에는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다만 적어도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 이전에 입양의 실질적 요건이 모두 갖추어져 원고와 피고 2 사이에는 양자관계가 유효하게 성립되었다.

원고와 피고 2 사이에 파양에 의하여 양자관계를 해소할 필요가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

따라서 원고의 피고 2에 대한 친생자관계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

 

그러나 소외인이 원고와 혼인 중에 피고 2를 임신하여 출산한 이상 피고 2는 민법 제844조 제1항에 따라 원고의 친생자로 추정되고, 사후적으로 유전자형이 배치된다는 사정이 밝혀진 경우에도 여전히 친생추정이 미친다.

따라서 원고가 친생추정을 받는 피고 2에 대하여 친생부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 친생자임을 부인하는 판결을 받지 않은 이상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로써 친생자관계의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것은 부적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