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대주의 이행거절권,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신의성실의 원칙, 소비대차계약체결 이후 발생한 차주의 사정변경에 따른 대주의 대여의무이행거절 가부>】《금전소비대차계약의 성립 이후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대주가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지 여부(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7다224302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판시사항】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에 차주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이 생겨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 사정변경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대여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 대주가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지 여부(= 적극)
【판결요지】
민법 제2조 제1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하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라고 정한다. 이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으로서 법질서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원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민법 제536조 제2항에 정한 ‘선이행의무를 지고 있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한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경우’란 선이행채무를 지게 된 채권자가 계약 성립 후 채무자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악화 등의 사정으로 반대급부를 이행받을 수 없는 사정변경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선이행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사유는 당사자 쌍방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나아가 민법 제599조는 “대주가 목적물을 차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때에는 소비대차는 그 효력을 잃는다.”라고 정한다. 위 규정의 취지는 소비대차계약의 목적물이 인도되기 전에 당사자의 일방이 파산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어져 당초의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아니한 사정변경을 반영한 것이다.
위와 같은 규정의 내용과 그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보면,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에 차주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이 생겨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 사정변경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대여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에 대주는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가. 사실관계
⑴ 피고들은 재개발조합과 재개발사업에 관한 공사도급가계약을 체결하면서, 피고들이 재개발조합에 사업추진경비(400억 원 한도 + 무이자) 및 조합운영비를 대여해주기로 하였다. 피고들은 위 공사도급가계약에 따라 재개발조합과 금전소비대차계약서(대여금액: 400억 원)를 작성하였다.
⑵ 피고들은 재개발조합에게 사업추진경비 및 조합운영비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여 왔는데, 이후 재개발조합의 내분이 격화되었고, 재개발사업은 지질조사를 위한 굴착작업을 한 것 이외에는 달리 진행된 내용이 없고,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한 행위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상태이다.
⑶ 재개발조합은 피고들에게 사업추진경비 명목의 금원 대여를 요청하였는데, 피고들은 재개발사업의 지연 및 그에 따른 사업비 증가 등을 이유로 위 대여요청을 거절하였다.
⑷ 원고는 재개발조합에 대한 확정된 지급명령에 기하여 재개발조합의 피고들에 대한 사업추진경비 등 약정금지급청구권에 관하여 압류ㆍ추심명령을 받은 다음, 이를 추심하기 위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⑸ 이 사건 소송 계속 중 피고들은 재개발조합에 공사도급가계약의 해제를 통보하였다.
⑹ 원심은 피고들이 재개발조합에 대하여 사업추진경비 및 조합운영비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나. 쟁점
⑴ 원심판결은, ①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과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서만으로 소비대차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할 수 없고, ② (설령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보더라도)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서면요청과 이에 대한 원고들의 승낙이 없는 이상 약정금채권․채무의 효력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없으며, ③ (설령 채권․채무의 효력이 발생하였다고 보더라도) 피고들은 이를 이행거절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⑵ 이에 원고는 위 각 판단에 대하여 모두 다투면서, 특히 ‘적어도 조합운영비에 대해서는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만으로 소비대차계약이 성립하였으며,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서면요청과 이에 대한 피고들의 승낙 없이도 위 계약에 기한 약정금채권의 효력이 곧바로 발생한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⑶ 따라서 먼저 ①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권에 관하여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의 체결과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서의 작성만으로 소비대차계약이 성립하였다고 할 수 있는지, 이와 관련하여 조합운영비 약정금채권과 그 외 사업추진경비 약정금 채권을 달리 볼 필요가 있는지, ② 위 단계에서 사업추진경비에 관한 소비대차계약이 성립하였다고 판단될 경우 이로써 곧바로 각 약정금채권의 효력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는지, 이와 관련하여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서면요청과 이에 대한 피고들의 승낙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③ 위 단계에서 약정금채권의 효력이 발생하였다고 판단될 경우, 이 사건 재개발사업의 진행 상황과 이에 따른 대여금반환청구권의 행사 가부를 이유로 피고들이 위 채무의 이행을 거절한 것이 정당한지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공사도급가계약 체결 및 소비대차계약서 작성에 의한 소비대차계약의 성립 여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9호, 윤혜원 P.257-282 참조]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의 체결과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서의 작성에 의하여 400억 원을 대여한도로 하는 사업추진경비 소비대차계약이 성립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이와 같은 소비대차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하여 곧바로 모든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권의 효력이 확정적으로 발생한다고 할 수는 없고, 원심의 판단과 같이 위 약정금채권의 효력이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서면요청 내지 이에 대한 피고들의 승낙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4.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권의 효력 발생 여부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29호, 윤혜원 P.257-282 참조]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 제16조 제9항에서 협의를 요한다고 별도로 명시한 설계비 및 행정용역비와 조합운영비를 제외한 일반적인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권의 경우,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서면요청이 있으면 이로써 그 내용이 확정되어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조합 운영비 약정금채권에 관하여 보면, ①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 제16조 제1항의 사업추진경비에 조합운영비가 포함되어 있는 점, ②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서의 경우에도 조합운영비 약정금채권과 그 외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권을 나누어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조합운영비 약정금채권의 경우에도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서면요청이 있어야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조합운영비 약정금채권의 경우에는 그 외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권과는 달리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의 체결만으로 매달 기한의 도래에 따라 효력이 발생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① 이 사건 공사도급가계약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② 계약당사자들의 의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러하다.
5.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366-1368 참조]
가. 이행거절권의 발생 여부와 그 행사의 당부
피고들은 이 사건 대여거부의 이유로 ‘일정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가와 분양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성 악화’를 내세웠고, 재판 과정에서도 조합운영비를 포함한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무 일체를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유로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의 존재를 내세웠다.
나. 일반론
⑴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소비대차계약의 효력 내지 대주의 권리와 관련하여서는 민법 제536조 제2항, 제559조 및 제601조를 참조할 수 있다.
● 민법 제536조(동시이행의 항변권)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이행하여야 할 경우에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전항 본문과 같다.
● 민법 제599조(파산과 소비대차의 실효) 대주가 목적물을 차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때에는 소비대차는 그 효력을 잃는다.
● 민법 제601조(무이자소비대차와 해제권) 이자없는 소비대차의 당사자는 목적물의 인도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생긴 손해가 있는 때에는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
⑵ 다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 각 규정이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
① 먼저 민법 제536조 제2항은 쌍무계약에만 직접 적용되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계약은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으로 편무계약에 해당한다.
② 다음으로 민법 제599조는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만 직접 적용되나,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경우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
③ 마지막으로 민법 제601조는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 있어서의 해제권을 인정하나, 이 사건의 경우 해제권이 직접 문제되지 않았을뿐더러,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이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상 민법 제601조에 따라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만을 별도로 해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④ 결국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간의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 있어, 재개발사업이 지연되어 추후 대여금반환청구권의 행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민법 제536조 제2항, 제599조 및 제601조를 유추적용하거나 그 입법 취지를 확장함으로써 시공사 측에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다.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⑴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의 원칙은 모두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민법상 대원칙에 대한 예외로 모두 신의칙에 근거한다.
⑵ 불안의 항변권(민법 제536조 제2항)은 선이행의무 있는 당사자도 상대방의 불이행이 예상되는 경우 동시이행항변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행거절권능이다(권리행사저지사유).
◎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5541 판결
[1]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상 선이행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와 대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채무가 아직 이행기에 이르지 아니하였지만 이행기의 이행이 현저히 불투명하게 된 경우에는 민법 제536조 제2항 및 신의칙에 의하여 그 당사자에게 반대급부의 이행이 확실하여질 때까지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대가적 채무 간에 이행거절의 권능을 가지는 경우에는 비록 이행거절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행거절 권능의 존재 자체로 이행지체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3] 이행거절의 권능은 어디까지나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권능에 지나지 아니할 뿐 당초에 약정된 변제기를 변경시키거나 변제기의 정함이 없는 채무로 그 성질을 변경시키는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설사 이행거절 권능을 가지는 매수인이 이를 행사하지 않고 대금채무를 이행하였다고 할지라도 납부기한 전에 선납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⑶ 대금지급거절권(민법 제588조)은 계약에 따른 의무이행이 완료되더라도 권리박탈의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인정되는 이행거절권능으로, 주로 동시이행관계에서 문제될 수 있으나 당사자가 선이행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본질은 담보책임에 가깝다(권리행사저지사유).
⑷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체결 후 사정변경이 발생하고 계약의 이행이 신의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경우 계약관계의 해소(해제ㆍ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ㆍ해지의 요건
⑴ 대법원 판례
◎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①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②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③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라 함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으로서,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을 포함되지 않는다.
⑵ 판례의 태도
위 판례들이 서로 다른 요건을 설시한 것은 아니다.
위 요건 ①, ②는 실질적으로 요건 ③을 판단하는 하나의 사정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사정변경 해제ㆍ해지의 인정 여부는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⑶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칙이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다44368 판결, 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다85881 판결,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1다5578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등. 다만 이들 판결에서는 결론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하는 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그 요건을 충족하였는지를 검토하였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이유로 계약의 해제나 해지를 인정한 예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에서 견본주택 건축을 목적으로 체결된 임대차계약에서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여 대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실천적인 법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사정변경의 요건으로는 ① 계약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③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 요구된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등). 각각의 요건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
우선 변경된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 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에서도 “환율의 변동가능성은 이 사건 각 통화옵션계약에 이미 전제된 내용이거나 그 자체이고, 원고와 피고는 환율이 각자의 예상과 다른 방향과 폭으로 변동할 경우의 위험을 각자 인수한 것이지,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됨을 계약의 기초로 삼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경우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마. 견해의 대립
⑴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의 재산상태에 현저한 변경이 생겨 대주의 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 대주에게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한다.
⑵ 긍정설이 타당하다.
민법 제599조에서 대주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파산선고의 존부 자체가 계약 실효의 중요한 이유가 되나, 차주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파산선고의 존부 자체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차주의 재산상태 악화가 계약 실효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따라서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의 재산상태에 현저한 변경이 생겨 대주의 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에도, 위 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대주에게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⑶ 다만 이행거절권의 실제 발생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마다 당사자들의 의사, 사정변경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따져보아야 할 것인데,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의 피고들에게도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이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⑷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의 가부 (= 적극)
㈎ 사정변경의 원칙의 이론적인 근거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있다.
그 용어에도 불구하고 계약준수가 원칙이고,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제, 해지 등은 예외일 뿐이다.
계약체결 이후에는 사정이 변경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신의칙상 도저히 보아 넘기기 어려운 경우에만 사정변경의 원칙으로 계약관계 해소를 인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7다224302 판결은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에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여 대주가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근본적으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대주의 이행거절권을 인정하였다.
위 판결은 ‘①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 차주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으로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 사정변경이 생기고, ②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대여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 대주는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민법 제536조 제2항, 민법 제599조 등이 선이행의무를 진 경우에 있어서의 불안의 항변권, 당사자 일방이 파산한 경우에 있어서의 소비대차계약의 실효 등을 정하고 있기는 하나, 위 각 규정은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가 파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이 생겨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된 경우 등에 대하여는 예정하고 있지 않다.
결국 위 각 규정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금전소비대차계약의 대주를 보호하고 당해 계약의 당사자 간 형평성을 도모하기에 불충분하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위 판결은 위 각 규정의 내용과 그 입법 취지를 참조하되, 근본적으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대주의 이행거절권을 인정하였다.
㈐ 위 판결은 위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의 원칙 중 ‘불안의 항변권’에 가장 가까운 사례지만, 피고들이 동시이행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불안의 항변권’을 유추적용하여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을 인정한 최초의 판시이다.
5.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366-1368 참조]
⑴ 일반적으로 시공자가 재개발조합에 거액의 사업추진경비를 대여하는 것은 재개발조합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재개발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을 전제로 한다.
⑵ 피고들이 재개발조합의 대여요청을 거절할 당시 이미 재개발사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피고들이 재개발조합에 사업추진경비나 조합운영비를 대여하더라도 장차 대여금반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위태롭게 되는 등의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
⑶ 대상판결은 이 경우 피고들로 하여금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대여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은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므로 피고들은 재개발조합에 대하여 사업추진경비 및 조합운영비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