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체】《건축가 김중업의 필체가 추사체 이상으로 아름답고 예쁘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내 필체를 본 지 오래 되었다.
이제는 서명 이외에는 필기구로 글을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필기구로 글자를 쓰는 일은 이제 매우 귀찮기도 하고, 아주 불편하기까지 하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 더 익숙해 졌고, 이제는 그것도 귀찮아 음성인식을 사용하여 글을 쓰는 일도 점점 많아진다.
무엇보다도 졸필이어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김중업 건축박물관에서 그의 노트를 보았다.
건축가 김중업은 1922년생이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도 멋지지만, 더 멋진 것은 그의 필체다.
노트에 적은 글씨와 그림을 보면, 시와 그림에도 능통한 예술가적 기질을 엿볼 수 있다.
글씨가 정말 예쁘다.
추사체처럼 ‘김중업체’라고 부르고 싶다.
노트의 내용을 읽어보면, 1950년대에 이미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으로 음악을 감상할 정도로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군수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유학을 하고, 625전쟁 중인 1952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사무소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덕에 일본어는 물론 프랑스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훌륭한 건축가가 존재했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을 겪는 와중에도 이런 독창적인 분들이 있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지금의 한글맞춤법과 다르게 쓰던 옛날 분의 필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예쁘고 보기 좋다.
필체에 홀딱 빠졌다.
건축가 김중업의 다른 업적과 달리 왜 그의 필체가 추사체 이상으로 아름답고 예쁘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을까?
내가 김중업 필체의 매력에 빠져버린 나머지 나 혼자만 눈에 꽁깍지가 씌여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