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자아도취】《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하면서 거울을 본다. 우울증이 감쪽 같이 사라진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이마에 보톡스를 맞고 나서 거울을 자주 들여다 본다.
얼굴의 온갖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미세한 주름을 찾기 시작한다.
이마 보톡스을 맞고 나서 생긴 반사적 행동이다.
그 전에는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다.
이제는 눈가의 주름, 눈 밑의 주름, 팔자주름, 잡티 등이 눈에 확 들어온다.
화장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전에는 아침에 면도를 한 후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화장대에서 화장품 3개를 살짝 훔쳐 왔다.
수십 개의 화장품 중 쓰던 것 몇 개 없어졌다고 해서 티가 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크림과 수분보습크림으로 보인다.
쓰던 것이라서 그런지 내용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먼저 아이크림을 손바닥에 성질껏 듬뿍 짜낸 다음 양 손을 힘껏 비빈다.
그런 다음 세수하듯이 두 손을 얼굴 전체에 감싸고 문지른다.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화장품도 통 크게 듬뿍 발라 세 번 덧칠을 했다.
거울을 보았다.
얼굴이 반지르르한게 물광이 난다.
효과가 있다.
이래서 화장을 하나 보다.
건조해서 말라 터진 입술도 윤기가 흐른다.
우울할 때는 화장품을 듬뿍 바르고 거울을 쳐다 보아라.
기분이 좋아진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거울이기 때문이다.
지지리도 못생긴 사람이 거울을 보는 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지만,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을 거울 앞에서 보낸다.
나도 모르게 애프터 쉐이브 로션 병을 마이크 삼아 심수봉의 히트곡을 멋들어지게 부르고 있다.
‘거울 들여다보기 놀이’는 매우 흥미진진한 쌍방향 놀이다.
자아도취에 빠지는 순간 온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반사체가 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미친 놈처럼 실실 미소를 쪼갠다.
도취에 빠져 안경을 벗기도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얼굴을 거울에 바짝 갖다 댄다.
어떤 거울들은 너무나 친절해서 그 속에 비친 당신을 조각 같은 얼굴에 어딘가 끌리는 듯한 매력남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거울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조명이 어두운 술집 화장실 거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거울들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밝게 조명이 비추고 있어 그 속에 비친 당신의 모습은 마치 눈을 감겨주고 코 속의 털을 다듬어 줄 장의사를 기다리고 있는 창백한 시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흔히 타월장이라고 부르는, 양쪽으로 열리는 문에 거울이 붙어있는 장을 이용하면 자신의 옆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리 권할 만한 놀이는 아니다.
내 머리통 옆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옆에서 본 머리는 전면에서 본 머리의 모양에 도저히 들어맞지 않을 것처럼 두상이 튀어나온 외계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 보는 일에 아주 숙달되어 있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우표 크기 정도의 거울을 들여다 보며 얼굴 전체를 완전히 탈바꿈 시키는 마술을 부린다.
거울이 없어도 식탁용 나이프나 커피 잔에 비친 모습을 보고 화장을 고칠 수 있는 놀라운 초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울적하고 외로울 때는 아이크림을 얼굴에 듬뿍 바르고 거울을 보며 가끔씩 자아도취에 빠져라.
장시간 그윽한 눈빛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야에 들어 온 그 대상에 사랑을 느껴라.
그 모습을 다시 쳐다보고 싶어 안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아도취’다.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일의 장점은 그 대상에게 진실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밀당’도 필요 없다.
이런 자아도취에 빠지면 대체로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우울증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