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윤경 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9. 11.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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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윤경 변호사

 

조직생활을 하는 동안 뚝심 있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을 보았다.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일 뿐 만 아니라 아이디어까지 넘친다.

정년퇴직을 하면 그들은 자기 사업을 벌일 것이고 거기서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조직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자기 사업에서도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조직 내에서 엄청난 뚝심을 발휘하면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던 사람이 정년 퇴직 등으로 조직을 떠난 후 자기 사업을 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정말 너무 많이 보았다.

조직 내에서 보였던 그 열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지금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고들 있다.

 

반면 소심하고 머뭇거리는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을 하다가 40대 중반에 갑자기 사표를 내고 조그만 회사를 차린 사람들도 보았다.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자 그는 점점 자신감 있고 강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 사람들이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성격이었음을 아는 나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분명 연기도 약간 있겠지만, 계속 연기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짜가 되는 법이다.

우리는 진짜가 될 때까지 어떤 모습을 꾸며댄다.

타고난 본성이나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환경과 지위에 부합하는 태도와 품성에 빠르게 적응한다.

 

나 역시 젊은 법관시절에는 개념이 없고, 아주 방탕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데다가 심지어 당시의 범생이들이 그럿듯 이기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사법연수원 교수를 하면서 그 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 자책감과 함께 새로운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르칠 자격이 없는 속이 시커먼 늑대가 오랜 기간 양의 가죽을 쓰고 지내다 보니 이제는 양의 가죽이 피부에 늘어 붙었다.

이제는 아무도 보지 않는 한 밤중에 잃어버린 옛 본성을 찾아 타락한 늑대울음을 내려고 해도 울부짖음이 나오지 않는다.

 

13년 전 우연히 발령받은 ‘사법연수원 교수’라는 자리가 나를 이토록 다르게 변화시킨 것이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