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1차 수술 포기】《수술마취 중에 경련을 일으킨 또르》 〔윤경 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9. 11. 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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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수술 포기】《수술마취 중에 경련을 일으킨 또르》 〔윤경 변호사

 

늦게 귀가하여 들어서니 또르가 나에게 달려와 꼬리를 흔들고 배를 발라당 까보이며 반기더니 이내 제 집으로 들어가 힘 없이 눕는다.

 

또르가 하루 종일 소변을 본 흔적이 없다.

패드가 모두 깨끗하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즉시 병원에 데려가 방광에 찬 오줌을 배출시켰다.

 

의사 선생님이 다음 날 오전에 방광결석제거수술을 하자고 한다.

오전 11시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은 1시쯤 끝난다고 한다.

 

그런데 마취에 들어간 또르가 경련을 일으켰단다.

의사선생님이 혹시 잘못될지 모른다면서 수술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한다.

지금 미루면 다음 번 발병 때는 검사 없이 즉시 수술을 해야하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고민하다가 수술을 1주일 후로 미루었다.

또르의 생명을 담보로 위험을 감수하기 싫다.

큰 일이 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나에게 이 조그만 솜뭉치 덩어리가 시련을 준다.

마음이 심란하고 일 손이 잡히지 않는다.

 

또르를 데리고 집에 들어 왔다.

마취에서 깬 또르가 다시 활기를 찾았는지 잘 논다.

 

반려견을 키워 보기 전까지는 반려견에 애정을 쏟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한때는 반려견을 지나치게 위하고 강아지를 아기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죽은 깜비와 함께 15년간 애환을 나누면서 느낀 경험은 소중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어떤 종류의 삶에 대해 함부로 논할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법관 시절 힘들고 괴로울 때는 깜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깜비를 볼 때마다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서울대 잔디밭에 앉아 푸르른 신록과 구름이 떠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재 서울시민의 숲의 벤치에 앉아 오만 가지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기쁨인지 몰랐다.

 

그런데 건강하던 깜비가 쓰러진 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다.

힘 없이 누워 있다가도 안아주면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얼굴을 핥았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물 한모금 삼키지 못할 때 강아지가 건강하게 뛰놀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그때는 몰랐다.

깜비 생각을 하면 울컥한다.

 

깜비가 떠난 공백이 너무 크고 허전해서 또르를 들였다.

다시는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 또르와의 시간을 충실히 보내려 한다.

깜비를 잃은 슬픔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