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은 우리의 관심을 끌까? 누구에게나 “Peeping Tom”(훔쳐보는 탐)의 심리가 있다.】《관심 있는 상대방의 ‘사생활’을 모르면, 결코 친밀해 질 수 없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누구에게나 “Peeping Tom”(훔쳐보는 탐)의 심리가 있다.>
“Peeping Tom”이란 영어 단어가 있다.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 훔쳐보기 좋아하는 사람, 캐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고다이바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걸 몰래 엿 본 ‘Tom’이라는 젊은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11세기 초 영국 중서부에 있는 코번트리(Coventry) 지역의 봉건 영주인 레오프릭 백작(Leofric, Earl of Mercia)은 주민들에게 가혹하고 잔인했지만, 그에게는 정반대 성격의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레이디 고다이바(Lady Godiva)’다.
동명의 초콜릿 브랜드 이름도 있다{고다이바(고디바) 초콜릿}.
고다이바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정책을 개선해 줄 것을 부탁한다.
백작은 아내의 말을 번번이 무시하다가 자꾸 조르는 아내에게 황당한 제안을 한다.
부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 거리를 달리면 농민들의 소작료를 감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고다이바는 남편이 내민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 일은 곧 코벤트리의 농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농민들은 그녀의 숭고한 뜻을 존중해 레이디 고다이바가 벌거벗고 마을을 도는 동안 마을 사람 누구도 그녀의 몸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레이디 고다이바가 벌거벗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런 그녀에게도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벌거벗은 고다이바는 자신이 약속을 이행하였음을 입증할 만한 ‘증인’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라면서 마을 한가운데서 서성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타고 큰길로 통하는 모든 골목을 하나 하나 지났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다시 또 한번 더 돌려고 하자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늙은 말 이실노스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아,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레오프릭은 약속을 지켰다.
그 고다이바(Lady Godiva)가 실존인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Tom”이란 인물이다.
킹스헤드 호텔에서 재단사로 근무하는 Tom이라는 미천한 젊은이가 아름다운 영주 부인의 나신이라는 매혹적인 말에 이끌려 마을 사람들과의 합의를 깨고 커튼을 슬쩍 들추어 마을을 도는 벌거벗은 영주 부인을 훔쳐보았다.
Tom은 그 즉시 눈알이 빠져 죽었다기도 하고, 혹은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믿음을 저버린 나쁜 Tom!
그 이후 “peeping Tom”(엿보는 탐)은 관음증을 나타내는 관용구가 되었다.
그런데 1886년에 블록샘이란 자가 워릭셔 동물학·고고학 클럽에서 한 연설을 통해 “Peeping Tom”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11세기 경의 코벤트리의 주택에는 창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일상사가 따분해 지는 것은 바로 블록샘 같은 자가 설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심 있는 상대방의 ‘사생활’을 모르면, 결코 친밀해 질 수 없다.>
SNS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의외의 사실에 놀랐다.
사람들은 좋은 글에도 반응을 보이지만, 특정인의 사생활을 적은 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사생활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나 역시 관심 있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슬쩍 엿보는 것이 좋다.
아주 오래 전 부산지방법원 배석판사 시절에는 항상 재판부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1년 내내 식사를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니, 합의부 판사들끼리 얼마나 친해졌겠는가?
그런데 내가 모셨던 어떤 부장님(부장판사)은 1년 내내 식사 도중 그 많은 말씀을 하시면서도,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주로 그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정치이야기나 처리 중인 사건 이야기가 전부였다.
소화도 안 되고, 정말 따분했다.
막상 1년 후 다른 재판부로 옮기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난 그 부장님이 어디에 사시고 어떤 취미가 있으며 아이들이 몇 명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함께 지낼 때는 아주 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업무상 헤어지고 보니 그 분은 내 뇌리 속에서 너무 쉽게 잊혀져 갔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생활의 보호는 아주 중요한 문제지만, 친한 사이에서는 사생활의 공유가 오히려 서로의 ‘신뢰’와 ‘친밀감’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한다.
자신이 관심이 있거나 친한 사이에서는 서로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사생활의 노출은 ‘적절한 한계’를 그어야 할 것이다.
사생활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인 모양이다.
너무 과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적당하면서 절제된 호기심’이 그리 나쁜 건만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