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스(sneakers)】《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 자체가 힐링(healing)이다. 가볍고 부드러운 신발 밑창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발바닥의 감촉만 느낀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성공을 거둔 어느 사업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몹시 심해지는 두통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그는 의학적인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녀 봐도 문제의 원인을 찾을 낌새가 보이지 않던 차에 마침내 한 의사가 해냈다.
그 의사는 많은 의학서적과 논문을 뒤진 끝에 그 원인을 찾아 냈다.
그러고 그 해결책을 제시했다.
"좋은 소식은 제가 두통을 치유해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나쁜 소식은 그러자면 거세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자분은 고환이 척추의 밑받침을 누르고 있는 희귀한 병을 앓고 계십니다. 그것 때문에 두통이 그토록 심한 것입니다. 두통에서 벗어나려면 거세를 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사업가는 충격을 받고 낙담했다.
하지만 수술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술을 마쳤을 때 정신은 맑아졌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길을 걸어가던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느껴졌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였다.
남성복 상점을 지나치던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새 옷이 필요한 거야."
그는 상점으로 들어가서 판매원에게 물었다.
"새 양복을 하나 샀으면 합니다."
판매원이 사업가를 눈으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자, 봅시다. 길이 44 맞으시죠?"
사업가가 웃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판매원이 대답했다. "그게 제 일인걸요."
사업가는 옷을 입어보았다. 완벽하게 맞았다.
사업가가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며 흡족해하고 있는데, 판매원이 물었다.
"새 셔츠는 필요 없으십니까?"
사업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지요!"
판매원은 사업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팔은 34에 16, 중간 정도의 목 사이즈시군요."
사업가는 놀랐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익숙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제 일인걸요."
사업가는 셔츠를 입어보았다. 이번에도 완벽하게 맞았다.
판매원이 물었다. "구두도 사시는 건 어떻습니까?"
사업가는 신이 나서 그러자고 했다. "자, 봅시다. 275군요."
사업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판매원이 다시 대답했다. "그게 제 일인걸요."
사업가는 신발을 신어보았고, 신발은 완벽하게 맞았다. 그는 상점 안을 편안하게 돌아다녔다.
판매원이 물었다. "내친 김에 속옷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사업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요.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판매원이 물러서서 사업가의 허리 쪽을 가늠하고 나서 말했다. "36이시군요."
사업가가 '드디어 걸렸구나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아니에요. 나는 열여덟 살부터 34를 입어왔다고요."
충격을 받은 판매원이 고개를 저었다.
"34는 도저히 입으실 수 없습니다! 그 사이즈를 입었다가는 고환을 압박해서 그게 또 척추 밑 부분을 누르고, 결국은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게 될 텐데요!"
자신의 발에 맞는 스니커스는 아주 중요하다.
난 몇 년 전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걸으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온몸을 열어 세상의 온갖 소리와 냄새, 촉감을 만끽한다.
자연과 교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느린 몸짓이고 자유로운 전진이다.
편한 신발을 신고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걸으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이것처럼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남자들 중에는 무언가 특정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희귀한 동전을 모으고, 어떤 사람은 만년필을 수집한다.
LP판이나 벼루를 모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림이나 수석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에는 강박적으로 물건을 모으는 남자들이 참 이상하게 보였다.
지금은 내가 그 이상한 남자들 대열에 꼈다.
걷기를 즐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운동화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편한 신발을 신고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걸으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걸을 때 내게 잘 맞는 운동화는 굽이 없이 밑창이 얇고 가벼운 스니커스다.
지면의 질감과 감촉이 그대로 발바닥에 느껴져서 좋다.
걸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냥 호흡을 하면서 움직이는 것뿐인데도, 마치 편안하게 앉아서 명상을 하는 느낌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 자체가 힐링(healing)이다.
가볍고 부드러운 신발 밑창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발바닥의 감촉만 느낀다.
한 걸음씩 내딛는 순간 마음을 괴롭히는 고민들은 멀어지고, 발목을 붙들던 걱정들은 힘을 잃는다.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