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얼굴이 전혀 변하지 않은 동안(童顏)의 또르】《나이가 들면서 흰눈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둘째 아이가 뽑겠다고 달려든다. “놔둬라,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3. 1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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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전혀 변하지 않은 동안(童顏)의 또르】《나이가 들면서 흰눈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둘째 아이가 뽑겠다고 달려든다. “놔둬라, 키우는데 평생 걸렸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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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호수공원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은 후 또르와 산책을 했다.
1주일 전에 비해 햇살이 더 따뜻하고, 기온도 올라갔다.
꽃이 이미 핀 벚나무도 보인다.
또르도 신이 났는지, 주변에 인기척만 들리면 힘차게 짖어댄다.

9살이 된 또르의 얼굴은 1살 때와 다름이 없이 여전히 동안(童顏)이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면서 늙어 보이는데,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동안을 유지한다.
어릴 적 얼굴이 죽을 때까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

동안인 사람은 노화가 더디게 일어나는 걸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느 정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알고리듬을 통해 얼굴의 나이를 계산하는 연구들이 중년기와 노년기의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다수 진행되었는데 얼굴이 젊어 보이는 사람은 생물학적 나이도 더 어리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유전적 요인, 생활습관, 환경적 요인 등은 모두 우리의 외모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얼굴 피부는 외부에 직접 노출되기 때문에 이는 외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햇빛, 스트레스, 식습관, 수면부족, 음주, 흡연 등 피부 노화를 가속하는 요인은 또한 생물학적 노화 속도에 영향을 주는 인자이기도 하고 하다.
따라서 얼굴 나이는 우리의 생물학적 나이와 상당히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얼굴이 늙어보이는 사람은 팔다리가 가늘고 배가 나오거나, 고양이처럼 어깨가 말려 들어가고, 거북목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즉 신체적으로로 건장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동안(童顏)은 타고난 체질(또는 성형수술, 시술) 등의 조건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얼굴이 늙어보인다고해서 생물학적 노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영화 “탑건: 매버릭(Top Gun: Maverick), 2022”에서 나온 주인공 탐 크루즈(Tom Cruise)를 보면, 내 나이 또래임에도 얼굴이 동안이다.
동안답게 건장한 근육질의 몸매에다가 활력있고, 육중한 스태미너가 스크린을 꽉 채우면서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런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탑건에서 탐 크루즈(매버릭)의 라이벌인 아이스맨 역할을 맡았던 발 킬머(Val Kilmer)가 깜짝 출연한 장면이다.
속편에서 그는 해군 제독이 되었다가 은퇴한 상태였는데, 매버릭에게 조언자로 나서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작 세 살 차이인 톰 크루즈가 60세로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동안인 데 반해, 발 킬머는 후두암 투병 등으로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탓에 외모 차이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발 킬머는 후두암 진단을 받고 기관 절개술을 한 이후에 말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 영화에서도 발성이 어려워 주로 컴퓨터 타이핑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설정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깐씩 힘겹게 목소리를 내는 장면도 있었는데, 예전 음성을 재료로 AI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건강을 잃은 만큼 얼굴의 노화도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영화 “세인트(The Saint), 1997”에서 주인공 발 킬머의 멋진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완전 노인이 된 발 킬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발 킬머는 전성기 때의 모습으로 팬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내려놓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꺼이 단역을 맡았다.
여전히 패기왕성한 동료 배우 앞에서 늙고 병약해진 자신의 육신이 더욱 초라하게 비칠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겸허한 용기는 탐 크루즈의 위세보다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프랑스의 잔 모로(Jeanne Moreau)라는 여배우는 인터뷰를 하면서 사진기자가 자신의 얼굴을 찍으니까, 나중에 잡지에 실을 때 자기 얼굴의 주름살을 절대로 보정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 주름살을 만드는데 수십년이나 걸렸다고,
거기에는 자신이 역사가 담겨있다고,
그것은 세월이 만들어준 훈장이라고 말이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 보톡스 시술이나 주름살 제거술을 하는 요즘, 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Aging”은 ‘나이를 먹다’와 ‘나이가 들다’라는 두 가지로 번역되는데, 뉘앙스가 다르다.
‘나이’가 전자에서는 목적어가 되고, 후자에서는 주어가 된다.

난 나이가 들고 싶다.
‘옷감에 물이 들다’, ‘단풍이 들다’처럼 ‘들다’라는 말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서서히 숙성되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인간이 나이 드는 과정도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