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역경과 고통은 삶의 일부분이지만,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5. 9. 2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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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과 고통은 삶의 일부분이지만,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윤경변호사】

 

<고통은 사람을 단련시키지만, 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통은 예외 없이 찾아 온다.

역경과 고통은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통 없이는 인생이 형성되지 않는다.

 

고통은 사람을 단련시킨다.

위기가 오면 관계도 성장한다.

슬픔을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한층 더 깊은 관계를 맺고 그들을 존중하게 되며, 남들의 고통에 대해서 관용적이게 된다.

삶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건강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고통과 역경을 영광스런 일로 치장하거나 운명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는 없다.

어떤 위험들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함으로써 고통을 초래할 필요는 없다.

 

모든 불행이 비켜가기를 바랄 수는 없겠지만 만약 입맛에 맞게 골라 잡을 수 있다면, 운명의 시련이 ‘젊은 시절’에 찾아오기를 기원해라.

역경과 고통이 인생의 약이 될 수 있는 제일 유리한 때이니 말이다.

 

<위기를 겪고 나면 더 약해진다.>

 

고난과 위기가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역경과 시련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말은 니체가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회사는 위기를 겪으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해진다.

매출은 줄어들고, 능력 있는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고, 언론은 악의적인 논평을 한다.

현금유동성이 줄어들고, 대출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회’란 ‘같은 위기에 빠진 다른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파산할 것이고, 일부는 예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며, 그 전보다 상황이 나아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극소수’는 위기 속에서 ‘강해져서’ 빠져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위기가 사람들을 ‘강하게’ 만든다고 보는 것은 시각적인 착각이다.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은 사람은 운이 좋은 자들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위기는 위기일 뿐 강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은 아니다.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위기를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

 

끔찍한 일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몸은 질병에 걸리거나 다치기 전보다 더 건강해지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강해져서’ 귀환하는 병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그들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이 그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크게 변화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전쟁터에 나가거나 위기를 다시 마주쳤을 때 안전한 것은 아니다.

 

고통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귀중한 경험을 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한 인생관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소중한 수확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

 

위기를 극복하거나 운 좋게 벗어났다면, 다시는 그런 위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면, 이제는 다시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