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형식논리에만 집착하거나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진실과 마땅함을 따라야 한다.]【윤경 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5. 10. 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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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논리에만 집착하거나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진실과 마땅함을 따라야 한다.]【윤경 변호사】

 

<여인을 안은 스님>

 

중국 당나라 헌종 때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가 있었다.

그는 원래 선비가 되려했다. 우연히 한 선사를 만났다.

선사는 과거를 보러가는 그를 보고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느니 부처님을 보러 가시지요”라고 말했다.

깨달음을 얻은 단하선사는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는 일화가 많았다.

한번은 젊은 도반(道伴)과 함께 강을 건너기 위해 강어귀에 도착했다.

멀리서 젊은 여인이 다가왔고, 곱게 차려입은 그녀는 물에 젖을까 싶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먼저 조심스레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물살이 거칠다 보니 여인이 그만 넘어졌다.

 

단하는 즉시 강에 뛰어 들어 물살과 함께 흘러가는 그녀를 번쩍 들어 가슴에 안고 강을 건넜다.

여인은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고맙다는 말도 없이 서둘러 사라졌다.

 

두 승려는 한참을 걸었다.

누가 먼저 말을 건낼 것도 없이 적막과 함께 오랜 시간을 그렇게 걷기만 하다가 도반인 승려가 단하에게 뒤늦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가에서는 여인을 멀리하라하여 음욕을 금기시하는데 어찌하여 여인을 안고 강을 건너 청청한 불가의 계율을 깨트리셨습니까? 오늘 한 행동은 옳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무슨 말을 할지 모릅니다.”

 

말없이 듣기만 하던 단하스님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저는 냇가에서 이미 여인을 내려놓았는데, 스님은 어째서 아직도 안고 계십니까?”

 

원칙과 현실이 상반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여인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접촉하는 것은 승려로서 문제가 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의도’이다.

단하선사는 그 상황에서의 여인을 ‘자비와 베품’의 대상으로 보았고, 다른 스님은 ‘금기와 욕망’의 대상으로 보았다.

“여자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는 계율”의 취지를 분명히 파악한다면, 경직된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상을 태운 선사>

 

단하 선사와 관련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어느 겨울 날 단하선사가 낙양의 혜림사에 도착했다.

이날은 유난히도 추웠는데, 단하선사가 지닌 옷도 많지 않았다.

선사는 몸을 따뜻하게 할 무엇이 없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중 나무로 만든 불상이 눈에 들어 왔다.

선사는 나무 불상을 끌어내려 불을 붙인 후 그 온기로 몸을 녹였다.

 

마침 밖에서 들어 온 승려가 이를 보고 경악했다.

불상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자 분노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선사는 흥분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승려를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난 이 불상에서 사리가 나오도록 하는 거라네”

 

승려는 선사의 궤변에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얼른 반박했다.

“나무 불상에서 무슨 사리가 나옵니까?”

 

그러자 단하선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리도 나오지 않는데 이걸 태운들 뭔 상관인가?”

 

단하선사는 형식만을 중시하다가 거기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선사의 개방적이고 거침 없는 사고방식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더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