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내 발냄새를 사랑하는 또르와 즐거운 빈둥거림】《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3. 12. 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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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냄새를 사랑하는 또르와 즐거운 빈둥거림】《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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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카톡으로 아래와 같은 유머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같은 나이 또래를 쳐다보면서, 자신은 '저렇게 늙진 않았겠지?' 하고 생각을 한다.

어느 날 이빨 치료를 위해 치과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벽에 걸려 있는 의사의 치과대학 졸업장 패가 있었는데 그 패에 적혀 있는 의사의 이름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갑자기 약 30여 년전 고등학교 시절 나와 같은 반이었던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키가 크고 멋지게 잘 생겼던 그 소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당시에 내가 멋있다고 좋아했던 그 친구인가 하고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치과의사를 본 순간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대머리에다 회색 머리에 주름살이 깊게 나 있는 이 사람이 내 동급생이기에는 너무 늙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검진이 끝난 후 그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YX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까?”

 

치과의사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 다녔습니다. 그때 참 재미있었고 우쭐대며 다녔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언제 졸업했습니까?”

 

의사가 반문하였다.

“1989, 그런데 왜 그러시죠?”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내가 맞짱구를 쳤다.

그럼, 우리 반이었네!”

 

그러자 대머리에다 주름살이 가득하고 늙어빠진 회색 머리의 그가 나를 자세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잘 생각이 안납니다만, 혹시 그 때 어떤 과목을 가르치셨는지요?”

 

중년은 발자국 소리 없이 찾아 온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초췌하고 늙수구레한 자신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동창회에 가면 더 놀란다.

저렇게 늙어 빠진 친구가 내 동창이라니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활력있고 건강해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등이 구부정하고, 하얀 백발에 힘이 없는 목소리와 불안한 걸음걸이를 하거나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친구들이 이제는 더 많이 보인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말로는 쉬어야 한다면서 몸을 혹사해 왔다.

국가를 위해 내 인생을 바쳤던 30-40대는 물론 변호사 활동을 한 50대에도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주말 중 하루는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했다.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의 우리 세대들이라면 아마도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고, 지금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난 요즘 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기울이면서 몸을 피로하지 않게 만들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예전에는 몸이 피로해도 잠을 줄여가면서 일을 했다.

늘 너무 바빴고,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물론 그로 인한 보상과 대가는 충분히 따라왔지만, 대신 인생의 재미와 행복을 얻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요즘엔 몸이 피로하고 힘들면 일단 쉰다.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는다.

또르와 장난치면서 노는 것이 좋다.

언제가 내가 오기를 문 앞에서 기다리는 또르는 자기 자리에 내 슬리퍼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엎드려 휴식을 취한다.

그것도 다른 가족들의 슬리퍼가 아닌 내 슬리퍼만 찾는다.

아니 내 발냄새가 그렇게 좋은걸까?

 

귀엽고 예쁜 또로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꼬끝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의 촉감을 느끼고, 나뭇잎의 향기도 맡는다.

운동할 시간도 무조건 비워놓는다.

 

그러면 해야할 일도 못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다.

회사의 누군가 대신 더 탁월하고 월등하게 처리해 주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나 없이도 세상은 원만히 돌아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빈둥거리는 것에 죄책감을 가졌지만, 지금은 그런 휴식시간이 너무 좋다.

빈둥대는 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멍 때리는 시간 동안 마음 속에서는 오히려 많은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쌓아온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하여 소화해 내고 있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하지 말고, 그런 시간을 즐겨보자.

오히려 바쁠 때보다 더 큰 그림 속에서 인생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당신이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