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정박효과(Anchoring Effect)’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5. 4. 3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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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효과(Anchoring Effect)’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윤경변호사】

 

집을 구입하거나 주식을 사면서 “싸다”, “비싸다”는 판단을 할 때 우리의 두뇌는 언제나 비교대상을 찾는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두뇌가 이성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교할만한 적당한 정보나 수치를 찾아내지 못하면 두뇌는 곧바로 생략모드로 들어간다.

상황의 일부분에만 주목하거나 제멋대로 아무 정보나 골라잡는 것이다.

물론 이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며 불투명한 상황에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준점을 찾는 과정이다.

그 기준점을 심리학에서는 ‘닻(Anchor)’이라 부르며, 어떤 값을 추정할 때 닻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것을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정박효과는 1974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가 행한 실험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들은 먼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유엔에 가입한 아프리카 국가는 몇 개국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1에서 100까지의 숫자가 적힌 회전판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게 했다.

물론 회전판의 바늘은 돌아가다가 아무 숫자에서나 멈추게 되어 있었다.

 

실험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바늘이 높은 숫자에 멈춘 것을 본 참가자들은 유엔에 가입한 아프리카 국가 숫자도 높게 대답했고, 반대로 낮은 숫자에 멈춘 것을 본 참가자들은 국가 숫자도 적게 불렀다.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와 국가 개수가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를 바탕으로 답을 고르는 기괴한 행태를 연출한 것이다.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가 ‘닻’으로 작용한 셈이다.

 

얼핏 보기에 닻은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판단에 ‘상당한 왜곡’을 낳은 주범이다.

닻으로 인해 사람들은 종종 불합리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정박효과는 워낙 강력해서 전문가조차 혼란에 빠뜨린다.

1987년 미국 대학교수인 그레고리 노스크래프트(Gregory Northcraft)와 마거릿 닐(Margaret Neale)은 대학생그룹과 부동산전문가그룹을 상대로 각각 부동산 가격을 평가하게 했다.

판단근거로 나눠 준 자료는 오로지 공시가격만 담고 있었다.

그런데 아마추어나 다름 없는 대학생이든 부동산전문가이든 공시가격, 즉 닻 수치를 기준으로 가격을 평가한다.

 

법관 조차도 정박효과(Anchoring Effect)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화해나 조정기일에서 쌍방이 제시한 금액을 닻으로 삼는 경우가 발생한다.

원고의 청구금액이 터무니 없는 고액임에도 그 금액을 기준으로 조정금액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박효과의 함정에 가장 많이 빠지는 것은 주식투자를 할 때이다.

주가가 ‘3만 원’을 기록했다가 ‘1만 5천 원’이 되면, 사람들은 반값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저가매수를 시작한다.

‘3만 원’이란 숫자가 닻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이 떨어진다면 하락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하락한 당시의 가격이 시장가격인 것이며, 결코 ‘3만 원’이 ‘기준가격(or 적정가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가격이 반토막났으므로 “저가매수”를 해야 한다고 외치는 증권전문가야 말로 정박효과(Anchoring Effect)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