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된 사고보고서의 가상모범예시문]【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5. 9. 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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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기록된 사고보고서의 가상모범예시문]【윤경변호사】

 

지난 번에 냈던 보고서가 미흡하다고 해서 다시 사건 개요를 설명드리려 합니다.

그 보고서에서는 ‘서투른 계획’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만 적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다음의 내용이면 충분하리라 믿고 몇 자 더 적어 보겠습니다.

 

저는 통신기사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날에 25미터의 탑 꼭대기에서 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업을 끝내고 나서야 그 탑에 여러 번 오르는 동안 가져온 장비가 140kg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필요가 없는 장비를 손으로 옮기기 보다는 통에 담아서 꼭대기 기둥에 달려 있던 도르래에 걸어내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지상으로 내려가서 밧줄을 확실히 묶어두고 꼭대기로 올라가서 장비를 통 속에 채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 밧줄을 풀고서는 쥐고 있었습니다.

140kg의 장비가 너무 빨리 내려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지요.

 

제 몸무게가 70kg밖에 안 된다는 것은 지난번 보고서에 이미 말했습니다.

놀랄 새도 없이 저는 확 끌어 올려졌고, 밧줄을 그냥 놓으면 될 것을 정신이 없어서 그냥 꼭 쥐고 있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저는 엄청난 속도로 탑 위쪽을 향해 끌어올려졌습니다.

 

12미터쯤 되는 높이에 이르렀을 때 저는 내려오고 있는 통과 마주쳤습니다.

두개골과 빗장뼈가 부러진 게 그 때문입니다.

그 후에도 속도가 약간 줄기는 했지만 저는 계속 위로 올라갔고, 오른쪽 손가락들이 도르래에 깊숙이 낄 때까지 멈추지 못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 쯤에는 정신이 들어서 고통 속에서도 밧줄을 좀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거의 동시에 장비를 담은 통이 땅을 쳐서 밑바닥이 뚫리는 바람에 장비가 다 쏟아졌습니다.

장비를 덜어낸 통은 10kg도 채 나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몸무게는 70kg입니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겠지만, 저는 탑의 꼭대기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12미터 되는 높이에 이르러 다시 올라오고 있는 통과 마주쳤습니다.

두 발목이 부러지고 종아리가 찢어진 게 다 그 때문입니다.

통과의 조우 덕분에 속도가 느려져서 장비 더미 위에 떨어졌을 때 그 완충 때문에 부상이 완화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척추 3개에 금이 가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통 속에서 장비 위에 누워 있으면서 25미터 위에 있는 빈통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또 정신이 까무룩해져서 밧줄을 손에서 놓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