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나를 부끄럽게 만든 두 친구의 카톡 메시지】《노화로 인한 급격한 체력저하가 인생의 추락이나 좌절로 느껴진 순간에 온 친구들의 죽비(竹扉)》〔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11. 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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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끄럽게 만든 두 친구의 카톡 메시지】《노화로 인한 급격한 체력저하가 인생의 추락이나 좌절로 느껴진 순간에 온 친구들의 죽비(竹扉)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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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동년배들에 비해 나이 들어가는 것을 상당히, 아니 매우 힘들어하는 편이다.

한해 한해 달라지는 체력저하때문이다.

 

몸이 힘들면, 정신력도 꺽인다.

의지가 흔들리고, 투지가 녹아내린다.

할 일이 태산같이 남아 있는데, 이런 몸으로는 더 이상 목표를 향해 나아가거나 완수할 능력이 다했다고 생각한다.

수행능력에 대한 믿음, 자신감, 자기효능감은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무력감, 낮은 자존감은 우울한 기분으로 이어진다.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

근육도 많이 생겼고, 뱃살이 빠지기 시작하자 식스팩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체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 늙어가는 것을 누군가는 끔찍하게 받아들인다.

특히 노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급격한 신체의 변화는 인생의 추락이나 좌절로 인식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과거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라의 주필대(周必大)이로당시화(二老堂詩話)’에서 노인의 열 가지 좌절(노인십요 老人十拗)을 이야기하고 있다.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희어진다. 30년 전의 일은 모두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죄다 이빨 사이에 낀다.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울 때는 눈물이 흐르지 않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도 성호사설에서 노인십요를 인용하면서 몇 가지를 추가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잘 보이는데,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면 희미하게 보인다. 바로 옆에서 하는 말은 알아듣기 어려운데, 조용한 밤에는 비바람소리(耳鳴 귀울림)가 들린다. 자주 허기가 지지만, 밥상을 마주하면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 다산 정약용은 노년일쾌사(老年一快事, 늙은이의 한 가지 유쾌한 일에서 이런 노년의 변화를 매우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대머리가 되니 빗질하는 수고로움이 없어서 좋고, 이가 없으니 치통의 괴로움이 사라져서 좋고, 눈이 어두우니 문장 대신 풍광으로 눈을 채워서 좋고, 귀가 안들리니 세상 시비로부터 멀어져서 편안하고, 구구한 시격과 시율에서 벗어나 붓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있어서 좋고,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경쟁을 하지 않고 여유 있게 소일할 수 있어서 좋다.”

다산 선생은 늙음에 비관하거나 침몰하지 않고 이를 유쾌하게 긍정적으로 승화시켰다.

노년의 수용이고, 순응이다.

 

지금 남미 배낭여행을 하는 두 친구들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이다.

그들의 도전과 용기에 감명을 받았지만, 노년의 삶에 대한 그들의 달관한 자세가 또다시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나이 들어갈수록 긍정의 자세, 수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세계 인구의 10%만이 하루 10달러 이상을 소비하고, 80%는 하루 소비 2달러 이하의 삶을 산다는 통계가 있다.

돈만 가지고 평가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는 그런 현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몸에 걸친 옷에도 감사하고 숨 쉬는 공기에도 감사하다.

우리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지금 앉은 이 자리가 바로 꽃자리인 것이다.

 

긍정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안 보이던 것들도 보이게 되는 법이다.

그게 바로 두 친구가 내게 깨우쳐준 노년의 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