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골키퍼의 헛삽질】《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참지 못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1. 7. 1. 18:46
728x90

골키퍼의 헛삽질】《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참지 못한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페널티킥에서 한 사람은 공을 골대 안으로 넣어야 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막아야 한다.

 

심리학자 미하엘 바렐리(Michael Bareli)는 축구선수들이 페널티킥을 찰 때 왜 경험을 통해 학습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실험을 하였다.

 

바렐리 연구팀은 286번의 실제 페널티킥을 분석하였다.

골대의 위쪽 3분의 1 지점으로 공을 찬 선수는 100% 성공했다.

그런데 위 지점을 향해 공을 찬 경우는 전체의 13%에 불과했다.

 

왜 그럴까?

낮은 볼은 골키퍼에게 잡히기 쉽고, 높은 볼은 골대를 넘어가기 쉽다.

그런데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 입장에서는 골키퍼가 막는 게 골대를 넘기는 것보다 덜 창피하다.

선수들은 체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높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페널티킥은 체면성공확률간의 싸움이다.

 

그렇다면 골키퍼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들 중 2분의 1은 왼쪽으로 몸을 날리고, 나머지 2분의 1은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다.

모든 공의 3분의 1이 중앙으로 날아온다는 분석결과가 있는데도 골키퍼들이 중앙에 멈춰서 있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같은 관중들은 골키퍼가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한쪽 구석으로 몸을 날리면 열광한다.

아주 극적인 장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혀 의미 없는 짓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그냥 가운데 버티고 있어야 더 많은 공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이때는 구석으로 공을 차면 도저히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페널티킥에서 골키퍼가 이길 가능성은 낮다.

분명한 것은 통계에 따르면 구석으로 몸을 날릴 때보다 중간에 머물렀을 때 공을 막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멋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을 차는 선수들이 거의 본능적으로 볼을 낮게 차게 되는 것처럼 골키퍼가 멋지게 몸을 날리는 건 역시 스포츠 관점보다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가만히 서 있다가 골을 먹은 골키퍼는 팀과 관중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스스로 견딜 수 없다.

그렇지만 골키퍼가 왼쪽 구석으로 몸을 날리는데 공이 오른쪽 구석으로 날아가 박히면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관중을 의식하고 체면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골키퍼들이 중앙에 그대로 서 있는 경우는 드물다.

틀린 방향이라도 몸을 날리는 것이 덜 괴롭기 때문이다.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행동을 실행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가만 있지 못하고, 왜 행동에 나서는 것일까.

 

이는 오랜 진화와 관련이 있다.

사냥꾼과 채집가들이 살던 환경에서는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큰 보상을 받았다.

원시조상들은 숲 속에서 무서운 이를 드러낸 호랑이 모습처럼 생긴 그림자가 나타나면 가만히 앉아서 심사숙고한 것이 아니라 도망가던지 아니면 즉시 공격을 감행했다.

우리 모두가 한때 너무 자주 도망치고 빠르게 반응하면서 살던 종족의 후손들이다.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우리는 가만히 기다리기 보다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지금은 원시시대가 아니다.

 

전략의 개념을 창안한 독일의 장군 클라우제비츠는 행동을 유보할 수 있는 대의는 단 한 가지, 행동을 함에 있어 좀 더 유리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적당한 순간이나 적당한 행동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분명하지 않으면, 제발 아무 것도 감행하지 말아야 한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방안에서 차분히 앉아 기회를 엿보지 못하는데 있다.”고 말했다.

 

워렌 버핏 역시 투자에서는 빠른 행동은 실적과는 전혀 무관하다. 섣부른 행동보다는 최적의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기회가 올 때까지 유동성(현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기 전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기회를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