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역마살】《이 나이에도 여행을 꿈 꿀 때만은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아니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3. 5. 2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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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이 나이에도 여행을 꿈 꿀 때만은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아니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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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화창하고,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다.

걷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예전에는 걷기를 좋아해서 주말마다 걸었는데, 지금은 근력운동을 주로 하고 있다.

유럽 트래킹을 위한 체력을 키우고 있다.

더 늙기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전에 말이다.

 

역마살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운동화를 꺼내 손질했다.

신발끈도 새로 교체했다.

 

딸과 사위로부터 여행 모자 2개를 선물 받았다.

지난 번 이집트 여행에서는 페도라와 볼캡을 주로 썼다.

이번에는 준제이(Juun. J) 벙거지 모자와 카타르찌(Catarzi) 모자다.

이런 모자를 소화하기에는 내 연식이 너무 오래되었다.

한국에서는 노망난 노인의 주책바가지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감히 쓸 수 없지만, 외국이라면 나를 알아볼 사람이 없지 않겠는가.

낯선 해외에서는 누리는 익명성은 그런 편안함을 선사한다.

 

모자를 꺼내고 신발을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역마살이 발동하면서 괜히 설레고 심장이 콩콩 뛴다.

난 항상 두근거리고 설레고 싶다.

가슴이 뛰고, 자꾸 생각나고, 이 순간 기대되는 그 느낌이 바로 설렘이고 두근거림이다.

설레는 일이 있으면, 삶이 행복하고 재미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에 비해 삶이 너무 단조롭다.

영화를 보아도, 등산을 해도, 외식이나 쇼핑을 해도 이제는 젊은 시절에 비해 감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나이에도 여행을 꿈 꿀 때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아니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

 

낯선 곳 그 하늘의 오후의 분위기가 그립다.

그 곳에서는 다른 햇살이 스며들고, 공기의 질감은 부드러워진다.

그곳에서 마주친 파아란 하늘은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살랑거리는 바람은 내 귀를 간지럽힌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어디선가 풍겨오는 향긋한 커피내음은 내 호기심과 설렘을 자극한다.

그래서 난 새롭게 배낭을 꾸린다.

돌아와 다음 여행을 그리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다른 여행을 생각하며 잔뜩 부풀어 오를 것이다.

 

마법같은 여행을 꿈꾸는 것 자체가 내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끝없이 여행을 꿈꾼다.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음식, 햇살, 그 나른함, 알 수 없는 매혹, 호기심과 설렘 속에서 마주치는 그 모든 것을 상상해 본다.

 

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 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C. P. Cavafy)'이타카(Ithaka)’ 중에서 -

 

더 나이들기 전에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고 싶고, 더 늙기 전에 미지의 낯선 곳으로 여정을 떠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그날 하루의 삶을 신기한 모험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경험하는 것,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것, 그 삶의 여행을 즐겁게 회상하는 것, 이런 것들이 인생의 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