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명(耳鳴, 귀울림)이 남긴 가르침】《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슴 뭉클한 음악에 눈물을 흘리고, 감동 깊은 뮤지컬을 관람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파묻히는 등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https://yklawyer.tistory.com/category/%EB%B3%80%ED%98%B8%EC%82%AC%20%EC%9C%A4%EA%B2%BD/%EC%88%98%ED%95%84
2주 전에 생긴 이명(耳鳴, 귀울림)이 1주 전부터는 들리지 않는다.
다행스럽고 고맙다.
어느 날 아침 기상하기 직전 선잠 속에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오른 쪽 귀에서 낮은 주파수의 “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져서, 처음에는 보일러 진동소리가 침대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또 들리는 것이다.
물론 일어나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그 소리가 완전히 없어진다.
일어나기 직전 선잠을 잘 때만 그런 증상이 1-2분 동안 잠시 나타난다.
겁이 덜컹 났다.
즉시 이비인후과에 가서 청력검사 등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청력기관 등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일시적 현상으로 보이니, 일단 지켜보자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장 큰 원인은 나이가 들면서 난청이 생기면 뇌가 가짜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청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나에게 이명이 생겼다.
물론 이명(耳鳴)이 며칠 만에 사라졌고,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아 다행이지만,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어 낮 동안의 활동시간에도 이명이 나타난다면 그건 아주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100세까지 수십 년을 더 살텐데 무얼 걱정하느냐고 하지만, 50세의 경우 ‘지난 50년’과 ‘앞으로 살아갈 50년’은 삶의 질이 전혀 다르다.
주변에 70세 중반이 넘어가신 분들을 보면, 벌써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병고에 시달리는 분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뿌듯한 느낌과 성취감에 사로잡혔고, 주말에 쓸데 없이 놀러다니거나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일이 최우선이었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무언가를 연달아 성취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이든 지금은 다르다.
살다 보면, 사람은 변한다.
힘든 고통이나 역경에 처했을 때 사람은 가장 크게 변한다.
극한 상황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사람은 인생관이 변하기 마련이다.
근데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또 있다.
바로 나이가 드는 것이다.
죽음을 앞 둔 노년기로 접어 들면, 또다시 인생관이 저절로 바뀌기 시작한다.
젊어서는 그토록 중요했던 일들이 이젠 그리 대단치 않아진다.
생각해 보자.
평생 동안 성실하고 열심히 야근을 해왔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직장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구?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끔은 너무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당신이 언제 죽을 것 같은가?
50년 후? 10년 후? 아니면 6개월 후?
갑자기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아무도 우리가 얼마나 살 것인지 모른다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계속 미루고만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슴 뭉클한 음악에 눈물을 흘리고, 감동 깊은 뮤지컬을 관람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파묻히는 등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의 대부분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쏟고 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기로 다짐했다면, 삶은 평온하고 행복해진다.
이젠 자식들과 좋은 시간도 많이 보내고 싶다.
내년 추석은 연휴 폭탄이다.
사위들, 딸들과 함께 ‘시칠리아’나 ‘튀니지’로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다.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우리 딸들이 아빠에 대한 좋은 추억으로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
그럴지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