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따라서,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여행(29)】《나지르 지반베기 메드레세와 훗자 나스레딘(Hoja Nasreddin) 동상 옆에서》〔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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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 하우즈 광장의 바람은
옛 이야기처럼 살랑인다.
연못가를 따라 걷다 보면,
화려한 무늬 타일로 장식된 나지르 지반 베기 메드레세가
햇살에 반짝이며 고요히 앉아 있다.
시간이 이곳에 누운 듯,
그 벽면 하나하나에
지난 세월의 속삭임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 앞,
당나귀 위에 익살스럽게 앉아 있는 사내 하나.
훗자 나스레딘.
그는 웃고 있다.
누구를 향한 웃음일까.
세상의 위선을 향한 조롱일까,
아니면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유쾌한 격려일까.
지나가는 아이가 그의 코를 쳐다보고 킥킥 웃고,
여행자는 그의 곁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그 순간을 찍는 건,
사진기가 아니라 마음이다.
당나귀 위의 철학자,
말보다 웃음으로 사람을 꿰뚫는 이.
그 앞에 서면,
삶은 잠시 진지함을 내려놓고
여유라는 웃음을 배우게 된다.
어느 날 사람들이 훗자에게 물었다.
"왜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십니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앞을 보고 싶고, 당나귀는 자꾸 앞을 보고 싶어 하니까. 서로 타협한 거지."
세상은 늘 정답을 요구하지만,
진짜 해답은 타협 속에 있다.
나만 옳은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부딪힌다.
그의 거꾸로 된 자세는,
어쩌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법일지도.
훗자는 어느 잔치에 누더기 옷을 입고 참석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음식을 주지 않았다.그는 집으로 돌아가 비단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돌아왔다.
환대받으며 음식을 받자,
그는 음식 그릇을 옷깃에 대고 말했다.
"자, 옷아. 많이 먹어라."
우리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옷을 보고 있다.
직함, 학벌, 외모, 가진 것들.
그것이 누군가의 존재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훗자는 오래 전, 잔치에서 보여주었다.
아이가 물었다.
“훗자 아저씨, 저 별은 무슨 별이에요?”
훗자가 하늘을 가리키자,
아이는 손가락만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별이에요?”
훗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을 가리켜도, 보는 사람은 손끝만 본단다.”
본질은 멀리 있지만, 우리는 늘 가까운 껍질에 집착한다.
누군가의 말 속 의미보다 말투에,
길의 끝보다 발밑 돌멩이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럴 때면
그의 손가락을 따라 진짜 하늘을 올려다보자.
훗자 나스레딘은
한 번도 우리를 꾸짖지 않았다.
그는 대신, 웃었다.
너무 똑똑해서 어리석어진 우리를 향해
너무 바빠서 못 본 진실을 향해.
그리고 오늘도 라비 하우즈 광장 앞,
당나귀에 올라 탄 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삶이 너무 진지하다면,
그건 분명 어딘가 잘못된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