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속물】《자기 안의 속물근성을 인정하면 오히려 길이 보인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1. 6. 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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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자기 안의 속물근성을 인정하면 오히려 길이 보인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고백할 게 있다.
의도와 다르게 난 오해받고 있다.
내가 일부러 속이려 한 것은 아니나, 어느 날 진실이 밝혀지면 난 두 손을 철사줄로 꽁꽁 묻힌 채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 끌려갈까봐 잠을 설친다.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글을 쓰다보니 가끔 어떤 사람들은 나를 성인군자로 착각하는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름 사회에 보탬이 되는 보람있는 삶을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속물근성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
 
대학 시절 공대 다니던 친구와 기숙사 한 방을 쓴 적이 있다.
부친이 부산의 개업의사였던 그 친구는 사회부조리나 사회발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누구나 한 번쯤 보는 철학서나 교양서적의 제목조차 몰랐다.
늘 경제신문이나 패션잡지를 가까이 하는 멋쟁이였는데, 노는 것과 자기 공부에만 열심인 그 친구가 한없이 이기적으로 보였다.
 
한 번은 술을 마시다가 대놓고 비난을 했다.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거니?”
난데 없는 독설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는 너는 뭘 위해 사는데?”
“적어도 너처럼 개념 없이 살진 않아. 젊은이라면 적어도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정도는 갖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니?”
그러자 그는 다시 쏘아붙였다.
“네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 난 자기 자신의 삶도 책임 못 지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그 순간 난 속으로 외쳤다.
“속물!”
 
그 후 친구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졸업을 마친 후 미국 유학을 떠났고, 전공을 바꾸어 경영학을 공부한 다음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가 창업을 하여 규모가 큰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불우한 소년들을 후원하는 장학재단도 설립했다.
오래 전의 예상대로라면 그는 부유한 아버지 덕에 흥청망청 돈을 쓰며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속물이라는 단어를 싫어 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속물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현실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현실적인 속물이 된다는 것은 순수한 이상이나 꿈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다.
단지 현명한 속물은 꿈을 무지개 너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이 닿은 곳부터 찾기 시작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 속물이 되면, 중년 이후에는 덜 불행해진다.
일찌감치 속물이 되면, 나이가 들어서는 그 모든 ‘속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우아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저절로 순수해진다.
보다 너그러워지고, 마음을 비울 줄 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새소리나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 한송이에도 감동한다.
 
그러니 젊은 시절에 잠시 현명한 속물이 되어 현실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좀 더 실용적으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당신이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은 젊은이라면, 그 뜨거운 열정이 식기 전까지 누구나 갖고 있는 본성에 스스로 솔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제 당신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막연한 죄책감을 홀가분하게 벗어 버려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오직 현실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젊은이들만이 가진 특권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