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했던 아버지](윤경변호사 법무법인바른)
<“아버지가 걷고 싶은 속도로 걸으세요. 내가 아버지에게 맞출께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있는 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가 창피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심하게 다리를 절고, 게다가 키가 매우 작았다.
우리가 함께 길을 걸을 때면 아버지는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나는 원치 않은 주목을 받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아버지를 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그런 내 기분을 알아채고는 마음이 괴로웠겠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걸음걸이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의 발은 절뚝거렸고, 내 발은 성미가 급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걸어가면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나설 때마다 아버지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가 걷고 싶은 속도로 걸어라. 그럼 내가 너에게 보조를 맞추마.”
우리가 평소에 걸어서 오가던 길은 지하철 역까지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셨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장에 출근했다.
다른 모든 직원이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도 아버지 만큼은 반드시 사무실에 나가 있곤 했다.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출근을 했다.
사나운 날씨는 아버지를 가장 힘들게 했다.
길이 눈이나 얼음으로 덮혀 있으면 아버지는 도움을 받아도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아이들이 타는 것 같은 눈썰매 위에 앉았고, 그러면 누나들과 내가 썰매를 끌고 거리를 통과해 지하철 타는 곳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일단 그 곳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양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맨 아래 계단까지 내려갔다.
그 곳은 따뜻한 터널공기 때문에 얼음이 바닥에 깔릴 염려가 없었다.
어른이 그런 수치심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선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인가.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용기에 놀랄 따름이다.
어쨌든 아버지는 그렇게 했다.
한 번도 괴로워 하거나 불평하지 않고서.
아버지는 자신을 동정받아야 할 사람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운 좋고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한 조그마한 질투심도 나타낸 적이 없다.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아버지를 대했지만, 아버지 스스로는 자신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은 오로지 ‘선한 마음’이었으며, 만일 그런 마음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이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좋은 기준이라고 믿게 되었다.
건강한 사람들이 당연히 누리는 많은 활동이 아버지에게는 불가능했지만, 아버지는 몇 가지 방법으로 그런 활동에 참여하려고 했다.
물론 스포츠를 즐길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야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열성팬이었고 야구경기장에 나를 자주 데려 갔다.
내가 군에 입대하여 휴가를 받아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사무실에 꼭 들르라고 말했다.
거기서 아버지는 나를 세워놓고 자랑스럽게 동료직원들에게 소개했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걸을 때만큼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지만, 내 자신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나도 이 아이처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충만한 삶을 살았음을 만인에게 보여준 후 아버지는 요즘이라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삶의 마지막 몇 달 동안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눈을 감으셨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불편한 다리에서 오는 부담에서 벗어나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출근길을 떠난 것이다.
나는 자주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버이 날은 아니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걸을 때 같이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했다는 걸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까?
만일 아버지가 알고 있었다면,
내가 얼마나 그 일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고,
내가 얼마나 가치 없는 인간이며,
내가 얼마나 그 일을 후회하는지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죄송할 따름이다.
내 마음이 선하지 않을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한다.
사소한 일로 불평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운을 질투할 때도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균형을 잡기 위해 내 손으로 아버지의 팔을 잡고 이렇게말한다.
“아버지가 걷고 싶은 속도로 걸으세요. 내가 아버지에게 맞출께요.”
-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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