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약취절도죄(책략절도)와 사기죄의 구별기준, 삼각사기와 절도죄의 구별>】《절도죄와 사기죄의 구별에 있어서 처분행위가 갖는 역할과 기능(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22도12494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 [절도죄와 사기죄의 구별이 문제된 사건]
【판시사항】
[1] 형법상 ‘절취’의 의미 및 사기죄에서 처분행위가 갖는 역할과 기능 /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어야 하는지 여부(적극)
[2] 피해자 갑은 드라이버를 구매하기 위해 특정 매장에 방문하였다가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10분쯤 후 피고인이 같은 매장에서 우산을 구매하고 계산을 마친 뒤, 지갑을 발견하여 습득한 매장 주인 을로부터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내 것이 맞다.”라고 대답한 후 이를 교부받아 가지고 간 사안에서, 을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행위를 절취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한 사례
【판결요지】
[1] 형법상 절취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기망의 방법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처분행위를 하도록 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에는 절도죄가 아니라 사기죄가 성립한다.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된다. 한편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져 어떠한 재산상의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하여 재산적 이득을 얻을 것을 요하고,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어야 한다.
[2] 피해자 갑은 드라이버를 구매하기 위해 특정 매장에 방문하였다가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10분쯤 후 피고인이 같은 매장에서 우산을 구매하고 계산을 마친 뒤, 지갑을 발견하여 습득한 매장 주인 을로부터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내 것이 맞다.”라고 대답한 후 이를 교부받아 가지고 간 사안에서, 을은 지갑을 습득하여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갑을 위하여 이를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었으며, 이러한 처분 권능과 지위에 기초하여 지갑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지갑을 교부하였고 이를 통해 피고인이 지갑을 취득하여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으므로, 을의 행위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피고인의 행위를 절취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에 대한 주위적 공소사실인 절도 부분을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하면서 예비적 공소사실인 사기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4호, 김현우 P.499-511 참조]
가. 공소사실의 요지
⑴ 주위적 공소사실 - 절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매장 안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매장 바닥에 떨어뜨린 지갑(운전면허증 1매, 주민등록증 1매, 우체국체크카드 1매, 현금 5만 원권 1매가 들어 있는 시가 미상의 남성용 반지갑)을 매장 주인이 습득하여 옆에 있던 피고인에게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고 묻자, “내 것이 맞다.”라고 말하면서 매장 주인으로부터 위 지갑을 건네받아 가져가 피해자의 지갑 1점을 절취하였다.
⑵ 예비적 공소사실 - 사기
피고인은 피해자가 매장 안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매장 바닥에 떨어뜨린 지갑(운전면허증 1매, 주민등록증 1매, 우체국체크카드 1매, 현금 5만 원권 1매가 들어 있는 시가 미상의 남성용 반지갑)을 매장 주인이 습득하여 옆에 있던 피고인에게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고 묻자, “내 것이 맞다.”라고 대답하여 이에 속은 매장 주인으로부터 위 지갑을 건네받아 편취하였다.
나. 하급심 경과
⑴ 검사는 피고인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반지갑을 절취하였다는 이유로 절도죄로 약식명령을 청구하였고, 이에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이 발령되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정식재판을 청구하였으나, 제1심에서도 그대로 절도죄가 인정되어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⑵ 피고인이 항소하여 진행된 원심에서, 예비적으로 ‘피고인이 반지갑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이에 속은 매장 주인으로부터 반지갑을 건네받아 편취하였다.’는 이유로 사기죄의 공소사실을 추가하는 내용의 공소장변경이 이루어졌다. 이에 원심은 ‘피고인이 피고인을 반지갑의 소유자라고 착각한 매장 주인의 행위를 이용하여 반지갑을 취득한 이상, 이를 두고 피고인이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주위적 공소사실인 절도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위와 같은 매장 주인의 행위는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예비적 공소사실인 사기죄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다. 쟁점
⑴ 이 사건의 쟁점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매장 주인이 피고인을 위 반지갑의 진정한 소유자라고 믿고 반지갑을 교부한 것이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매장 주인의 행위로 인하여 반지갑의 사실상의 지배가 이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 사기죄가, 그렇지 않다면 ‘책략절도’의 법리에 따라 절도죄가 성립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매장 주인에게 위 반지갑을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이다.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가 인정된다 해도, 이 사건은 피기망자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로서,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삼각사기’의 법리에 따라 매장 주인에게 ‘피해자를 위해 반지갑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가 인정되어야 한다.
⑵ 결국 핵심쟁점은 ① 절도죄와 사기죄의 구별에 있어서 처분행위가 갖는 역할과 기능, ② 약취절도죄와 사기죄를 구별하는 기준이다.
⑶ 형법상 절취란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자기 이외의 자의 소유물을 점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를 배제하고 자기 또는 제3자의 점유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06. 9. 28. 선고 2006도2963 판결 등 참조). 이에 반해 기망의 방법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처분행위를 하도록 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에는 절도죄가 아니라 사기죄가 성립한다.
⑷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된다(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한편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져 어떠한 재산상의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하여 재산적 이득을 얻을 것을 요하고,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어야 한다(대법원 1991. 1. 15. 선고 90도2180 판결, 대법원 1994. 10. 11. 선고 94도1575 판결 등 참조).
⑸ 매장 주인이 매장에 유실된 손님(피해자)의 반지갑을 습득한 후 또 다른 손님인 피고인에게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라고 묻자, 피고인은 “내 것이 맞다”라고 대답한 후 이를 교부받아 가져갔다. 검사는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를 주위적으로 절도로, 예비적으로 사기로 기소하였다.
⑹ 대법원은, 매장 주인이 반지갑을 습득하여 이를 피해자를 위해 처분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를 취득하였고, 이러한 권능 내지 지위에 기초하여 반지갑의 소유자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반지갑을 교부한 것은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주위적 공소사실인 절도 부분을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하면서 예비적 공소사실인 사기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수긍하였다.
3. 사기죄와 책략절도의 구별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4호, 김현우 P.499-511 참조]
가. 구별 기준
기망의 방법에 의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재물을 교부하게 하여 그 점유를 취득하는 것은 절취가 아니라 사기에 해당하나, 기망행위가 있더라도 그것이 점유 침탈의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고 기망으로 인하여 재물의 교부, 즉 점유의 이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사기죄가 아니라 절도죄가 성립한다.
‘책략절도’란 이처럼 외관상 피고인의 기망에 의하여 피해자가 재물을 교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가 부정되어 절도죄가 인정된 사례들을 강학상 유형화한 것이다.
즉, 처분행위의 유무가 책략절도죄와 사기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⑴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가 인정된다.
⑵ 대법원 2003. 5. 16. 선고 2001도1825 판결
사기죄에 있어서 ‘재물의 교부’란 범인의 기망에 따라 피해자가 착오로 재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범인에게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재물의 교부가 있었다고 하기 위하여 반드시 재물의 현실의 인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재물이 범인의 사실상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 그의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에 놓인 경우에도 재물의 교부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나. 책략절도에 관한 선례
⑴ 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15 판결(‘책 절도 사건’)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책을 잠깐 보겠다고 하며 동인이 있는 자리에서 보는 척하다가 가져갔다면 위 책은 아직 피해자의 점유하에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절도죄가 성립한다.
⑵ 대법원 1994. 8. 12. 선고 94도1487 판결(‘금은방 사건’)
피고인이 피해자 경영의 금방에서 마치 귀금속을 구입할 것처럼 가장하여 피해자로부터 순금목걸이 등을 건네받은 다음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도주한 것이라면 위 순금목걸이 등은 도주하기 전까지는 아직 피해자의 점유하에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절도죄로 의율 처단한 것은 정당하다.
⑶ 대법원 1996. 10. 15. 선고 96도2227, 96감도94 판결(‘축의금 접수 사건’)
피해자가 결혼예식장에서 신부 측 축의금 접수인인 것처럼 행세하는 피고인에게 축의금을 내어놓자 이를 교부받아 가로챈 사안에서, 피해자의 교부행위의 취지는 신부 측에 전달하는 것일 뿐 피고인에게 그 처분권을 주는 것이 아니므로, 이를 피고인에게 교부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단지 신부 측 접수대에 교부하는 취지에 불과하므로 피고인이 그 돈을 가져간 것은 신부 측 접수처의 점유를 침탈하여 범한 절취행위라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중략) 이를 사기죄로 보아야 한다는 상고논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
⑷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9도3139 판결(‘오토바이 시운전 사건’)
피고인이 피해자들 운영의 오토바이 판매점에서 시운전을 빙자하여 피해자들로부터 오토바이를 교부받아 그대로 가져간 사안에서, 원심이 피해자들의 오토바이 교부행위는 사기죄의 성립에 필요한 처분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조치는 정당하다.
※ 다만 자전거를 살 의사도 없이 시운전을 빙자하여 자전거를 교부받고 시운전을 하는 척 하다가 그대로 도망한 사안에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인정한 사례도 있다(대법원 1968. 5. 21. 선고 68도480 판결).
다. 사기죄에서 ‘처분행위’의 의미와 기능
⑴ 위 사안들에 대해 절도죄가 인정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의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위 전원합의체 판례는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를 ① 처분행위를 통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객관적 요건), ② 피기망자의 처분행위에 대한 인식(주관적 요건)으로 구분하고 있다.
⑵ 객관적 요건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처분행위를 통한 재물의 교부가 이루어져야 한다. ‘재물의 교부’란 범인의 기망에 따라 피해자가 착오로 재물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범인에게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재물의 교부가 있었다고 하기 위하여 반드시 재물의 현실의 인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고, 재물이 범인의 사실상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 그의 자유로운 처분이 가능한 상태에 놓인 경우에도 재물의 교부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3. 5. 16. 선고 2001도1825 판결). 이에 더하여, 처분효과의 직접성 역시 중요한 요소로 고려될 수 있다. 처분효과의 직접성은 사실상의 지배가 이전됨에 있어 추가적인 피교부자의 행위가 개입되지 않았을 경우 인정된다.
⑶ 주관적 요건으로서 처분의사의 의미에 관하여는 위 전원합의체 판례에서 구체적으로 판시하고 있다. 처분의사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기망자가 처분행위에 따른 결과까지 인식할 것을 필요로 하지는 않고, 피기망자에게 어떠한 행위를 한다는 인식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⑷ 요컨대, 위와 같은 처분행위의 의미에 비추어, 사기죄와 책략절도의 구별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객관적․규범적으로 재물의 사실상 지배가 교부자에서 피교부자에게로 이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사실상 지배의 이전 여부) 및 지배 이전에 있어 교부자의 재물 교부행위 외에 피교부자의 행위가 개입되었는지 여부(처분효과의 직접성)이다. 그러나 외관상의 재물 교부행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고, 그에 대한 교부자의 의사(처분의사)를 해석해 보아야 한다.
⑸ 이러한 기준에 따라 위 나.항에서의 ‘책략절도’의 선례들을 살펴보면, 위 사안들은 사실상 지배의 직접적인 이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① 유형: ‘오토바이시운전 사건’)(대법원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은 ‘오토바이 시운전 명목으로 교부받아 운전하여 도주한 행위가 사기죄가 아닌 절도죄가 된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의 교부행위가 그 당시의 전후 사정으로 볼 때 처분권의 이전이라는 외관을 가지는 처분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교부자의 교부행위가 아니라 피교부자의 추가적인 행위가 개입되어 점유가 침탈된 경우(② 유형: ‘책 절도 사건’, ‘금은방 사건’), 피해자의 처분의사가 없었던 경우(③유형: ‘축의금 접수 사건’)에 해당하여 ‘사기죄’가 아닌 ‘절도죄’가 인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삼각사기와 절도죄의 구별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4호, 김현우 P.499-511 참조]
가. 삼각사기의 의미
⑴ 사기죄의 성립에 있어서 피기망자와 처분행위자는 일치해야 하지만, 피기망자와 피해자가 반드시 일치할 것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피기망자와 피해자가 다른 경우를 이른바 ‘삼각사기’라고 하는데, 이 사건 역시 기망의 상대방이 된 매장 주인과 반지갑의 소유자인 피해자가 다른 경우로서 이에 해당한다. 삼각사기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기망자에게 ‘피해자 소유의 재물을 피해자를 위해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 피기망자가 이를 처분하였다 해도 이는 ‘선의의 도구를 이용한(즉 간접정범에 의한) 절도죄’가 성립할 뿐이다.
⑵ 즉, 피기망자와 피해자 사이에 위와 같은 관계가 요구되는 것은 삼각사기와 선의의 도구를 이용한(즉 간접정범에 의한) 절도죄와의 구별을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甲이 가게에 들어가 손님 A(처분자의 지위가 아님)에게 B의 물건을 자기의 물건이니 집어달라고 하고 이에 속은 A가 그 물건을 집어주자 가지고 간 경우, 甲의 행위는 간접정범에 의한 절도죄가 된다. 그러나 乙이 B의 물건을 보관하여 가지고 있던 C(처분자의 지위에 있음)에게 자신이 B라고 속이고 그 물건을 받아간 경우에는 삼각사기에 해당하여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나. 삼각사기에서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의 의미와 범위
피기망자와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삼각사기와 간접정범에 의한 절도죄를 구별하는 기준은 피기망자에게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이다. 이러한 ‘처분 능력’에 대하여, 피기망자에게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권한설)와 피기망자가 피해자의 재산을 사실상 처분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족하다는 견해(지위설)가 대립한다. 판례는 당초 처분행위자에게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 처분행위자의 처분권한이 반드시 법적 권한임을 요하지는 않고,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사실상의 지위에 있으면 족하다고 판시하여 오고 있다.
⑴ 대법원 1982. 2. 9. 선고 81도944 판결(권한설)
사기죄는 다른 사람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로 인한 처분행위로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는 것으로서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하여도 그로 인한 재산상 처분행위가 없을 때에는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인데 위 판시와 같은 등기공무원의 행위는 재산상 처분권한 있는 자의 처분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것이므로, 피고인의 위 판시 소위 중 부동산 편취 부분은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
⑵ 대법원 1989. 7. 11. 선고 89도346 판결(사실상의 지위설)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져 어떤 재산상의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하여 재산적 이득을 얻을 것을 요하고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이나 지위에 있어야 하며 기망, 착오, 처분, 이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 피고인이 타인을 위하여 채무를 대신 변제하고 다만 위조된 채권양도계약서를 근거로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아 타인으로부터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하려고 한 사안에 대하여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이나 지위에 있어야” 한다고 판시함으로 피기망자의 처분권한이 반드시 법적 권한임을 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 사례이다.
⑶ 대법원 1994. 10. 11. 선고 94도1575 판결(사실상의 지위설)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피기망자가 착오에 빠져 어떠한 재산상의 처분행위를 하도록 유발하여 재산적 이득을 얻을 것을 요하고, 피기망자와 재산상의 피해자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피기망자가 피해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피해자를 위하여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이나 지위라 함은 반드시 사법상의 위임이나 대리권의 범위와 일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의사에 기하여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서류 등이 교부된 경우에는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설사 피해자의 진정한 의도와 어긋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위와 같은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사기죄의 성립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
5.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4호, 김현우 P.499-511 참조]
가. 사실관계
⑴ 피해자는 2021. 5. 16. 11:50경 드라이버를 구매하기 위해 ‘○○유통’을 방문하였다가, 갈색 남성용 지갑을 떨어뜨렸다. 피고인은 같은 날 12:00경 위 ‘○○유통’에서 우산을 구매하고 계산을 마친 뒤, 위 반지갑을 발견하여 습득한 ‘○○유통’의 주인으로부터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느냐?”는 질문을 받자, “내 것이 맞다.”라고 대답한 후 이를 교부받아 가지고 갔다.
⑵ 한편 피고인은 상고기간이 도과한 후 서면을 제출하면서 ‘피고인은 매장 주인이 건네주는 피해자의 지갑을 피고인의 지갑으로 오인하여 가지고 간 것이므로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는 취지로도 주장하였다. 그러나 매장 주인이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지갑이 피고인의 것인지 물었을 때 피고인은 이미 우산 값 계산을 마친 뒤 자신의 지갑을 가방에 집어넣은 상태였던 점, 피해자의 지갑은 ‘검정색 민무늬 지갑’인 반면 피고인의 지갑은 ‘대각선 체크 격자무늬의 엠보싱이 있는 검정색 지갑’ 또는 ‘갈색 민무늬 지갑’이어서 서로 색깔이나 외형상 차이가 크므로 피해자의 지갑을 자신의 지갑으로 오인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 피고인은 피해자의 지갑이 자신의 것이 맞다고 한 후 매장주인으로부터 지갑을 건네받고는 구매한 우산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바로 뛰어서 현장을 벗어난 점, 피고인은 사건 당일 바로 우체통에 지갑을 넣었다고 진술하였으나, 우체국 확인 결과 위 지갑은 이 사건 이틀 후인 2021. 5. 18. 우체국에 접수되었으므로 피고인이 2021. 5. 17.에 지갑을 우체통에 넣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나. 이 사건의 사기죄 성립 여부
⑴ 처분행위의 존재
① 재물편취죄에서의 처분행위는 ‘사실상의 지배 이전’을 의미하고, 그것만으로 처분행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처분효과의 직접성’이 추가적인 구별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다. 책략절도의 사안은 대부분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재물을 교부하였더라도 여전히 피해자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피고인의 추가적인 행위가 개입되어 비로소 점유가 침탈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매장 주인은 피고인에게 반지갑을 완전히 교부하였고, 그로 인해 피고인이 이에 대한 처분권을 취득하였다. 더욱이, 피고인이 이러한 처분권을 취득함에 있어서 어떠한 추가적인 행위도 개입되지 않았으므로, 처분효과의 직접성 역시 인정된다.
② 매장 주인에게 반지갑을 처분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처분의사는 피기망자에게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인정된다. 이 사건에서 매장 주인은 습득한 반지갑을 피고인에게 교부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매장 주인에게 처분의사가 인정된다.
⑵ 처분할 수 있는 지위
① 피기망자의 ‘처분능력’에 관하여 다수의 대법원 판례의 입장인 ‘지위설’에 의하면, 피기망자가 피해자의 재산을 사실상 처분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처분능력이 인정된다. 이 사건에서 매장 주인은 고객인 피해자가 분실한 반지갑을 취득함으로써, 이를 진정한 소유자인 피해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매장 주인이 명시적으로 피해자로부터 권한이나 지위를 위임받은 사실이 없다고 해도, 반지갑을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점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의사에도 부합한다.
② 더욱이, 대법원 1994. 10. 11. 선고 94도1575 판결에서는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지위가 인정되는 이상 피기망자의 처분행위가 피해자의 진정한 의도와 어긋나는 경우에도 여전히 그 지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③ 따라서 매장 주인에게 ‘지갑을 진정한 소유자에게 반환할 수 있는 지위’가 인정되는 이상, 매장 주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지갑을 피고인에게 처분하였다 해도, 사기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
다. 대상판결의 결론
이 사건에서 매장 주인이 피고인에게 지갑을 건네줌으로써 사실상의 지배가 이전되었으므로 처분행위가 인정되고,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의 취지에 따라 매장 주인이 지갑을 교부하는 행위를 인식하였으므로 처분의사도 인정된다. 이에 더하여, 삼각사기에서 ‘처분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는 ‘사실상의 지위’도 포함하는 것이므로, 매장 주인이 피해자를 위해 지갑을 처분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 사기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은 수긍할 수 있고, 대법원 역시 같은 이유로 상고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마. 대상판결의 요지
⑴ 대법원 2017. 2. 16. 선고 2016도13362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설시한 바와 같이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는 사기죄와 절도죄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 사건에서는 종전에 책략절도가 인정되었던 사안들과는 다르게, 매장 주인이 피고인에게 반지갑을 교부하는 행위 자체로 사실상의 지배 이전이 이루어졌고, 매장 주인에게 그러한 의사가 있었음이 인정된다. 즉, 매장 주인의 반지갑 교부행위는 사기죄에서의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반지갑을 교부받은 피고인의 행위를 절취행위로 평가할 수는 없다.
⑵ 또한, 이 사건은 피해자와 피기망자가 다른 경우로서,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기망자인 매장 주인에게 피해자의 반지갑을 처분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가 인정되어야 한다. 매장 주인에게 이를 처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피해자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사실상의 지위’만으로 충분하다는 대법원의 입장에 비추어 보면, 매장 주인이 반지갑의 처분권을 취득함과 동시에 그러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⑶ 이처럼 대상판결은 절도죄와 사기죄의 구별에 있어서 처분행위의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하고, 동시에 삼각사기에서 ‘처분할 수 있는 권능 내지 지위’의 범위를 재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