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노년에 접어든 또르와의 봄나들이】《레스토랑의 창가로 스며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은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이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3. 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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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접어든 또르와의 봄나들이】《레스토랑의 창가로 스며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은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이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또르가 가져다준 이 축복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로.》〔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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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또르와 산책을 한다.
산책로 근처의 애견 동반 레스토랑에서 브런치와 함께 향긋한 커피 한잔 마시고, 약 1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똑같은 곳을 반복해서 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매번 산책 장소를 바꾼다.

오늘은 안양 예술공원에 왔다.
서울에서 먼 곳 같지만, 주말 오전에는 서초동에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애견 레스토랑이 예쁘면서도 봄 냄새가 물씬하다.
사실 애견동반 레스토랑은 서울 시내보다는 서울 근교에 더 예쁘고 좋은 시설이 굉장히 많다.

봄이 안 온 줄 알았는데, 레스토랑의 창가로 스며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은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어젯 밤 꿀잠을 잤는데도,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니 졸음이 다시 쏟아지면서 병든 닭 마냥 고개가 푹 떨어진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시원한 바람이 볼을 스치자, 팔을 쭉 뻗어 두 손 가득 하늘을 담는다.
상큼한 바람에 코끝이 차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너무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런 사소한 즐거움과 기쁨이 항상 아쉽다,

2015. 3. 5.생인 또르도 만 9살이 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54세다.
어린 아이로만 알았던 또르가 벌써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노년의 건강관리에도 신경써 주어야겠다.

또르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애교와 귀여움이 날로 발전한다.
서재나 신탁에 앉아있으면, 어느새 또르가 발밑으로 다가와 앞발로 내 다리를 툭툭 건드린다.
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낮은 톤으로 낑낑 소리를 낸다.
그 애처로운 표정과 간절한 마음이 담긴 신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하던 일을 멈추고 또르를 안아준다.  
또르의 귀여운 애교에 간이라도 다 빼주고 싶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다가 연속적인 점프와 얼굴 핥기 신공으로 내 혼을 쏙 빼놓는다.
정말 귀엽고 예뻐 죽겠다.

또르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 중에서 가장 먼저 내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처음 갓 태어난 또르를 집에 데려올 때는 그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만 있었을 뿐 언젠가 찾아올 이별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각오를 미처 다지기도 전에, 두려움이 먼저 찾아온다.

두려움은 지나칠 만큼 행복한 순간에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매일 아침 침대 위 내 옆에서 세상만사 아무 걱정 없이 포근한 모습으로 잠든 또르를 볼 때,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옆으로 살며시 다가와서는 체온이 닿도록 내 무릎 위로 올라와 털썩 앉을 때,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내 품으로 달려올 때, 자기 전 침대 옆에서 내 손등을 열심히 핥아댈 때.
그 순간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핑돈다.

둘째 아이가 말한다.
“우리가 먼저 가는 것보다 나아요.”

그래 맞는 말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직 내 손길이 필요한 또르를 세상에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또르가 내게 특별하듯, 나도 또르에게는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또르가 가져다준 이 축복과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로.
그리고 나보다 6배 더 빠르게 흐르는 또르의 시간에 6배의 행복만을 꾹꾹 담아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