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지는 듯 이기고 부드러운 듯 강인하라.]【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4. 11. 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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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듯 이기고 부드러운 듯 강인하라.]【윤경변호사】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협상테이블에서의 윈윈(win-win) 전략은 비단 비즈니스(business) 세계뿐 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적용되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아무 짓도 안했는데 떡 하나라도 더 얹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주는 것 없어도 사사건건 얄미운 밉상이 있다.

사람의 ‘인상’과 ‘능력’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개인의 인상, 분위기, 태도 등이 중요한 업무능력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관련 소송이나 부동산경매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유로 부동산 디벨로프먼트(development)나 부동산 사모펀드, 부동산 컨설팅(consulting) 관련된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K 이사, 그를 처음 만나고 나는 잠시 당황했다.

그동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목소리만 듣고 상대방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주요한 특징을 알아 맞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K 이사의 경우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전화와 문자로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도 한 번도 40대 팀장급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 오는 그의 목소리는 늘 상냥하고 친절했으며, 실무를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보아 30대 초반의 재기발랄한 대리쯤 되는 것으로 혼자 철석 같이 믿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물을 대하고 나니 생각보다 연륜이 있는 얼굴이어서 놀랐고, 자리에 앉자마자 “아무쪼록 많이 도와주세요. 저희 대표님께서 잘 배우고 오라고 하셨어요.”라고 포문을 여는 데 한 번 더 놀랐다.

 

직장인들이 바이블처럼 외우는 ‘비즈니스의 ABC’와는 동떨어진 말이었다.

직장인들은 타회사 사람들이나 의뢰인들과의 미팅에서는 다음 같은 사항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교육받는다.

첫째,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이며, 프러페셔널(professional)하다는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한다.

둘째, 회의 어젠더(agenda)를 잘 정리하고, 요구사항을 조율할 때는 주도권을 갖는다.

셋째, 히든카드(hidden card) 또는 주요 정보를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들로 둘러싸여 있는 나에게 K 이사의 일성(一聲)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분위기 전환용의 ‘립서비스(lip service)성 발언’이라는 게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겸손한 태도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업계 트렌드(trend)에도 빠삭했고, 무엇보다도 그날 미팅에서 논의해야 할 요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간혹 본인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생소한 용어가 등장해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물어 보았으며, 혹시 그것들이 협상의 중요한 포인트와 연관이 되지 않는지 놓치지 않고 체크했다.

 

그의 겸손하고 수용적인 태도는 자칫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는 협상 테이블의 긴장감을 완화시켰고, 한편으로는 우리측에서 어떻게든 뭔가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휘어지는 부드러움’이 ‘날카로운 단단함’을 이긴다.>

 

꼭 자기의 이익을 쟁취해야 하는 거래가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호의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심어주어 손해 볼 일은 없다.

무엇보다 협상 테이블에는 양자가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나온다.

다행이 부딪치지 않으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단단한 두 존재가 만나 재수 없게 충돌이라도 한다면 윈윈(win-win)은커녕 양쪽 모두 깨져버리는 국면을 맞이할지 모른다.

 

한쪽에서 강하고 깐깐하게 나오면, 상대방도 당연히 경계하고 안테나를 세우기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

호감을 갖고 호의적인 분위기로 협상을 이끌면 훨씬 더 부드럽고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지는 듯 이기고 부드러운 듯 강인하라.”는 K 이사의 협상법이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세고 강한 것을 물리치는 데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휘어지는 부드러움’이 ‘날카로운 단단함’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