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저녁 면도】《아빠의 까칠한 수염에 대단한 면역력을 가진 또르》〔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0. 11. 8.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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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면도】《아빠의 까칠한 수염에 대단한 면역력을 가진 또르》〔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오래 사용한 면도기의 날이 닳은 것 같아 새 면도기를 주문했다.

또르의 배에 따가운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매일 아침 면도를 한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 편이라서 어쩌다 수염을 깍지 못하면, 거뭇거뭇 자란 수염 때문에 초췌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다.

 

수염을 깍지 않으면 위험한 흉기를 가진 범죄자 취급을 당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어릴 적 아빠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술 마시고 들어와 자는 아이를 부둥켜 안고 마구 마구 뽀뽀를 퍼부어대는 것!

 

짧은 수염은 사포(sand paper)와도 같다.

뽀뽀는 얼굴에 사포를 힘차게 문질러대는 엄청난 고문이다.

아이들은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는 것을 넘어, 깊게 긁힌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단다.

 

면도를 하지 않은 채 침대에서 그녀에게 다가가면, 흉악범을 대하듯 내게 말한다.

당신, 수염!”

 

면도란 이런 위험한 흉기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지금은 대신 또르의 배에 뽀뽀한다.

또르는 내가 부르면 다가와 배를 발라당 까보이며 눕는다.

녀석의 배에다 입대고 -하고 바람을 불어 넣으면, 좋아서 흥분한다.

또르의 배에다가 내 얼굴을 파묻고 비벼대면 기분이 좋아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의 감촉이 느껴진다.

 

또르의 배 부위는 털이 전혀 없고 아주 얇은 분홍색의 살로만 덮여 있다.

거기에 얼굴을 문지르면 수염 때문에 무척 아플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이 내 뽀뽀를 그대로 받아준다.

 

아프다는 시늉을 전혀 하지 않지만, 당연히 아프지 않겠는가?

내가 턱수염을 내 팔에 대고 비벼도 아픈데 말이다.

 

이젠 저녁에도 또르의 배에 얼굴을 파묻기 전에 면도를 한다.

 

그래도 아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