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를 따라서,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여행(35)】《중앙아시아 최고의 모스크로 손꼽히는 ‘비비하눔 모스크’》〔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입맞춤의 흔적, 비비하눔 모스크를 걷다
멀리 아득한 돔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중앙아시아 최고의 모스크,
비비하눔 모스크였다.
첫눈에 위압적이다 싶을 만큼 거대한 규모.
하지만 그 거대한 석조 궁전에는
한 여인의 사랑과 한 제왕의 분노, 한 건축가의 욕망이 얽힌 전설이 숨어 있다.
사랑과 질투로 지어진 사원. 비비하눔
그 이름은 티무르가 사랑한 중국계 왕비의 이름이다.
그녀는 남편이 인도 원정을 떠나 있는 동안,
그의 귀환을 앞두고 거대한 선물처럼 사원을 짓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완공 시한은 빠듯했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도 이 압도적인 구조물을
기한 내에 완성시킬 자신이 없었다.
그는 몰래 왕비를 연모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대가로 내건다.
“내가 입맞춤을 받을 수 있다면, 반드시 완공해 보이겠습니다.”
왕비는 고민 끝에 그의 입술을 허락했고,
그 입맞춤은 그녀의 뺨에 선명한 자국으로 남는다.
티무르가 돌아왔다.
사원의 규모와 웅장함에 감탄한 것도 잠시,
왕비의 뺨에 남은 입맞춤 자국을 발견하자
그는 격노했다.
결국 건축가는 처형됐고,
왕비는 이후 베일(차도르)을 쓰고 살아야 했다고 전해진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그저 이슬람의 예배처가 아니라,
권력과 사랑, 질투와 희생이 새겨진 비극의 건축물이었다.
돌 아래 숨은 성서의 흔적
모스크의 한가운데엔
무겁고도 견고한 석조 쿠란 받침대가 놓여 있다.
과거 이 자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쿠란 경전(651년 제작)이 있었지만,
19세기 러시아 침공 때 약탈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졌고,
지금은 타슈켄트의 하자티 이맘 모스크에 보관되어 있다.
그 돌은 지금도
예배자들의 손길을 받으며
침묵 속에서 기도처럼 무게를 견디고 있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그곳은 과거가 살아 있는 돌의 서사시였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아름답고도 슬픈 흔적이었다.
돌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로 지은 건축은 사랑보다 더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