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그때는 몰랐다.]【윤경 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5. 11. 2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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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그때는 몰랐다.]【윤경 변호사】

 

지난 주말 ‘또르’와 서울대 캠퍼스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로 옆 잔디밭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나무 밑에 죽은 ‘깜비’의 유골함이 있다.

 

지난 봄 유골함을 묻고 그 위에 큰 돌 2개를 올려 놓았는데, 그 돌들이 그대로 있다.

그 유골함을 보니 갑자기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진다.

 

15년 전 깜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반려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다.

사람도 먹기 힘든 세상에 인간에 대한 애정도 표현 못하는 사람들이 애완견에게 비싼 옷을 사 입히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정말 싫었다.

 

그런데 15년간 깜비와 함께 하면서 그 녀석이 남긴 묘한 감정은 정말 표현하기 어렵다.

그 작은 생명체가 주고 간 사랑과 유대감, 상실과 슬픔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내 이런 말과 행동이 강아지를 키워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주책없고 호들갑스런 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법관 시절 힘들고 괴로울 때는 깜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잔디밭에 앉아 신록이 우거진 숲과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떠오른다.

그때는 그게 기쁨인지 몰랐다.

 

건강하던 깜비가 쓰러진 후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 안타까웠다.

힘 없이 누워 있다가도 안아주면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얼굴을 핥았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물 한모금 삼키지 못할 때 강아지가 건강하게 뛰놀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명이 흐드러지게 만발할 때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있을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것인데 그때는 몰랐다.

깜비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난다.

생각해보면 깜비에게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

 

‘깜비’가 떠난 공백이 너무 크고 허전했다.

집에 들어오면 현관문을 박박 긁어대며 나를 반겨주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서재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발 끝에 걸리던 녀석이 없어 나도 모르게 두리번 거린다.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면 자기에게도 먹을 것을 달라고 꼬리를 치며 숫제 발걸음도 못 떼게 발치에 엉기던 녀석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에게 “깜비 밥 주었니?”하면서 인사를 건넸는데, 아이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 말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실감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아 앞으로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또르를 가족으로 맞이했고, 깜비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다.

 

살아오면서 가장으로서 상당히 강인한 의지력과 생존력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내 마음을 이렇게 나약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그 조그만 생명체 하나가 나에게 삶의 진실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간 것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