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스런 맹견 ‘또르’]【윤경 변호사】
<맹인견 이야기>
평일 아침 7시 30분 이었다.
출근을 위해 옷을 차려 입은 듯 보이는 한 맹인 부인이 자신의 안내견과 함께 필라델피아 중심가를 걸아가고 있었다.
길을 건너 그녀 쪽으로 걷고 있을 때 나는 그 안내견이 갑자기 월넛가(Walnut street)의 인도에 멈춰 서서 길잡이 역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곤란해 하는 표정이 역력한 부인이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제 앞에 뭐가 있나요?”
그즈음 나는 그녀가 내 대답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니요, 부인. 당신 앞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요.”
순간 그녀는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제 아이가 더 이상 걸으려 하지 않아요. 마치 앞에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꼼짝달싹하지 않는군요.”
내가 내려다보자 안내견은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듯 입에서 뭔가를 떨어뜨렸다.
나는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 들었고, 이내 그것이 부인의 귀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한 쪽 귀에는 똑같은 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이 개가 부인의 귀걸이를 입에 물고 있었답니다. 이 개는 부인께 이 귀걸이를 돌려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랬나 보네요.”
그러고는 자신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물어본 후 안내견과 함께 가던 길을 재촉했다.
나도 내 갈 길을 갔다.
그때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앞이 흐려졌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이브 우드(Eve A. Wood)' 여사가 쓴 “희망”이라는 책에 나온 맹인견 이야기다.
<또르가 내 시험에 들다.>
이 글을 읽다가 갑자기 마음이 찡해지면서 내 발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또르에게 눈이 갔다.
또르는 어떨까?
정말 내 마음의 100만분의 1만큼이라도 나를 생각할까?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으며, 그 선을 넘어 함부로 상대의 마음을 시험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에 상처를 받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다.
그래도 해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큰 아이를 서재로 불러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거짓 비명을 질러 댔다.
세상에!!!
또르가 나를 지키려고 큰 아이에게 멍멍 짖어 댄다.
에구, 귀여운 또르.
9개월 된 강아지가 우렁찬 목소리에 당당하고 늠름하기까지 하다.
호랑이도 물리칠 맹견이다.
충성스런 놈!!!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너의 남은 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지켜주마.
첫 눈이 내린 이 밤 정말 흐믓하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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