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긴장되는 건강검진】《연식이 오래되어 부식되고 기름때가 찌든 차량이 되어 버렸지만, 그나마 그럭저럭 잘 달리고 있다는 점만으로 감사하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1. 5. 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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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는 건강검진】《연식이 오래되어 부식되고 기름때가 찌든 차량이 되어 버렸지만, 그나마 그럭저럭 잘 달리고 있다는 점만으로 감사하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내일 건강검진을 받는다.
매년 받는 정기검진이지만, 겁이 난다.
녹슬고 기름때가 낀 장기마다 ‘폐차 연령’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금식을 해야하기 때문에 굶었다.
배고픔을 참기 위해 “인플레이션 이야기”란 제목의 책을 힘차게 뽑아들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보고자 했지만, 차돌된장찌개 생각만 난다.  

예전보다 체력이 딸리는 것은 분명하다.
야근을 하면 이제는 예전과 달리 아주 졸립고 피곤하다.
노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 온다.

젊음이 부러운 나이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몸으로 때우기 힘들어진다.
밥 먹듯 야근을 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은 젊은이들만 가진 비범한 능력인 것이다.
급 우울해진다.

늙어갈수록 삶의 절정을 넘긴 존재의 쓸쓸함을 느낀다.
예전 같지 않은 건강, 퇴색 되어가는 얼굴, 깊이 패인 주름과 늘어진 뱃살, 사라진 낭만, 소외감, 노후에 대한 걱정 등이 뒤범벅이 된다.

하지만 젊음이 부럽다고 해서 고생스러웠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속으로 생각한다.
절대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돌아가 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내가 지금의 기억과 생각을 고스란히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아무리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한들 나는 또다시 그때처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나’였으니 말이다.

다시 그 시절의 방황, 가난, 고통, 젊은 시절의 열정이 가져다준 좌절과 슬픔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삶의 어느 단계에나 선물이 숨어있다.
정말 젊은 시절이 좋았던가?
사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젊고 아름답고 건강하고 순수한 꿈이 있다는 것 외에는 대다수의 청춘들은 고민과 좌절의 시간을 보낸다.
불안한 미래를 위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청춘들의 젊음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이제는 세월을 거치며 단단해 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내 자신이 좋고, 세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웬만한 일들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게 되어 편안하고 행복하다.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도 가지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경험하고 그 풍경들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 추억의 단편들이 몸으로 배어 나와 사계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을 이루는 감성적이고 가슴 뛰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긴 세월을 살아온 고목이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듯, 자라나는 세대가 힘들 때 마음 놓고 푸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늙고 싶다.
삶의 고통과 역경,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도 웃어 넘기는 여유와 포용력을 가진 따뜻하고 유쾌한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행복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질 때 좀더 제대로 느끼는 감정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야생화에서, 바쁜 업무에 치이면서도 입에 댄 향긋한 커피 한잔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먹은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에서도 깊은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