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사정변경의 원칙, 계속적계약의 종료사유, 계속적 채권관계, 계속적 계약의 합의해지요건, 계약이행보증금의 감액, 계약이행보증금과 손해배상청구와의 관계>】《계속적 계약의 해지와 계약이행보증금(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판시사항】
[1] 계약의 합의해지의 의의 및 요건 / 계약의 합의해지가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적극) 및 이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 / 계약당사자의 일방이 계약해지에 관한 조건을 제시한 경우, 조건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합의해지가 성립하는지 여부(적극)
[2] 당사자 사이에 계약을 종료시킬 의사가 일치되었으나 계약 종료에 따른 법률관계가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이고 위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이 없는 경우, 합의해지가 성립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3] 계약 당시 당사자 일방의 책임으로 계약이 해지되면 계약이행보증금이 상대방에게 귀속된다고 정한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는지 여부(적극) / 위 계약과 관련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채무불이행과 별도의 행위를 원인으로 손해가 발생하여 불법행위 또는 부당이득이 성립한 경우, 그 손해가 예정액에 포함되는지 여부(소극) 및 계약 당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로 예정한 것은 손해를 발생시킨 원인행위의 법적 성격과 상관없이 위 예정액에 포함되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판결요지】
[1] 계약의 합의해지는 계속적 채권채무관계에서 당사자가 이미 체결한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 계약의 합의해지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하므로 계약당사자 일방이 계약해지에 관한 조건을 제시한 경우 조건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2] 당사자 사이에 계약을 종료시킬 의사가 일치되었더라도 계약 종료에 따른 법률관계가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경우 그러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고, 이 경우 합의해지가 성립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3] 계약 당시 일방의 책임으로 계약이 해지되면 계약이행보증금이 상대방에게 귀속된다고 정한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은 위약금으로서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경우 다른 특약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손해가 예정액에 포함된다. 그 계약과 관련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채무불이행과 별도의 행위를 원인으로 손해가 발생하여 불법행위 또는 부당이득이 성립한 경우 그 손해는 예정액에서 제외되지만, 계약 당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로 예정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를 발생시킨 원인행위의 법적 성격과 상관없이 그 손해는 예정액에 포함되므로 예정액과 별도로 배상 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가. 사실관계
⑴ 원고와 피고 사이의 시내버스 외부광고 대행계약과 이행보증금 약정
피고 서울특별시 버스운송사업조합은 입찰공고를 통하여 선정된 원고 회사와 2012. 12. 20. 시내버스 외부광고 대행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계약기간은 2013. 1. 1.부터 2015. 12. 31.까지 3년간으로 하고, 매체사용료는 3개월 단위로 선납하기로 하였다.
원고는 계약사항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3개월분의 매체사용료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행보증금으로 예치하기로 하고, 계약 해지 시 잔여계약기간에 관계없이 이행보증금은 피고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정하였는바, 이에 따라 원고는 보증보험증권을 피고에게 제출하였다.
⑵ 이 사건 계약의 해지 경과
원고는 2014. 6. 12.경 이 사건 계약에 따라 매체 사용료에 대한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피고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계약위반,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사업권을 반납하겠다고 통지하였다. 피고는 원고가 요청한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통지하였고, 이에 원고는 2014. 7. 1. 피고에게 계약해지를 통지하였다.
⑶ 피고의 계약 해지
한편 피고는 원고가 선급하여야 하는 3개월분 매체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자 2014. 6. 23. 원고에게 매체사용료 지급을 촉구하며 2014. 6. 26.까지 매체사용료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계약해지 조항에 따라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하고 이행보증금을 환수하겠다고 통지하였다. 이후 피고는 2014. 7. 15. 유사한 내용의 통지를 하였고, 2014. 7. 23. 이 사건 계약의 해지를 확정 통보하고 이후 보험금을 지급받았다.
나. 쟁점
⑴ 당사자들의 청구
당사자들은 각자 상대방의 귀책사유에 따라 자신의 2014. 7. 1.자 해지통지 및 2014. 7. 23.자 해지통지로써 계약이 해지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는 피고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피고의 보증보험금 지급청구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구하였고, 예비적으로 이행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하는 것을 전제로 감액된 금액에서만 보증보험금 지급청구권이 존재한다는 확인을 구하였다. 피고는 이 사건 이행보증금은 위약벌에 해당하여 감액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이에 추가로 계약해지일 이후 원고가 얻은 이익을 부당이득 또는 손해배상으로 반환할 것을 청구하였다.
⑵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 계약의 해지 사유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 또한 이행보증금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이 사안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
3. 계약관계의 해지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970-973 참조]
가. 의의
⑴ 당사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의하여 계속적 계약관계를 장래를 향하여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⑵ 임대차계약, 고용계약, 위임계약 등에서와 같이 계약으로부터 생기는 채권·채무의 내용을 이루는 급부가 일정 기간 계속하여 행하여지게 되는 경우 이는 이른바 계속적 계약에 해당한다(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등 참조).
⑶ 개별 사안에서 계약당사자 사이의 약정이 계속적 계약인지 여부는 계약 체결에 이르게 된 경위와 사정, 당사자의 의사, 계약의 목적과 내용, 급부의 성질, 이행의 형태와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20다297430 판결).
나. 법정해지권의 발생
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임대차에 관하여 제640조 등)
⑵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해지권
① 제544조 내지 제546조가 계속적 계약의 해지에도 적용되는지 문제 된다.
② 긍정설은 민법이 각종의 전형계약에서 해지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법정해지권의 발생을 인정하여야 할 경우를 망라하고 있지 않으므로 계속적 계약에서도 채무불이행이 있으면 일반적으로 해지권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반면 부정설은 제544조 내지 제546조에는 해지에 관하여 언급이 없고, 민법은 그 조항들이 유추적용 되어야 할 만한 경우에 관하여는 각종의 계약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주로 쌍무계약의 상환적 채무를 염두에 둔 제544조 내지 제546조를 해지에 유추적용 하는 것은 1회의 이행지체와 최고만으로 계약의 소멸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고 한다.
③ 계속적 계약에서도 민법이 각종의 계약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외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는 제544조 내지 제546조를 유추적용 하여 해지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계약의 해제가 주된 채무의 불이행의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약의 해지 또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두5948 판결).
⑶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지권
① 판례는 이를 긍정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계속적 보증에 관하여 대법원은 “계속적 보증계약에 있어서 보증인의 주채무자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등 보증인으로서 보증계약을 해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보증인으로 하여금 그 보증계약을 그대로 유지존속케 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바람직하지 못하므로 그 계약해지로 인하여 상대방인 채권자에게 신의칙상 묵과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하는 등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보증인은 일방적으로 이를 해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계속적 보증계약을 해지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보증을 하게 된 경위, 주채무자와 보증인간의 관계, 보증계약의 내용, 채무증가의 구체적 경과와 채무의 규모, 주채무자의 신뢰상실 여부와 그 정도, 보증인의 지위변화, 주채무자의 자력에 관한 채권자나 보증인의 인식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37937 판결 등).
② 나아가 최근의 대법원 판례는 계속적 공급계약의 해지가 문제 된 사안에서도 “계속적 계약은 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으로서, 당해 계약의 존속 중에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인하여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상대방은 그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장래에 향하여 그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다 할 것이다. 한편 계속적 계약 중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일정 규모의 설비가 필요하고 비교적 장기간의 거래가 예상되는 계속적 공급계약의 해지에 있어서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경위,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관계, 공급계약의 내용, 공급자가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설치한 설비의 정도, 설치된 설비의 원상복구 가능성, 계약이 이행된 정도, 해지에 이르게 된 과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59629 판결 :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가 乙 도시가스 주식회사와 체결한 도시가스 공급계약이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 파괴 등을 이유로 한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해지에 의하여 적법하게 해지되었는지 문제 된 사안에서, 乙 회사는 계약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아파트에 도시가스를 공급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신뢰를 전제로 계약 직후 상당한 비용을 들여 아파트 외부 경계까지 도시가스 배관공사를 하고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에 아파트 단지 내 정비사업비용을 지급한 점, 甲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역시 아파트 부지에 정압기를 설치하는 것에 동의하는 내용의 부지사용동의서를 작성해 주는 행위 등을 통하여 乙 회사에 위 계약이 상당기간 지속되리라는 점에 대한 신뢰를 부여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를 이유로 하는 계약의 해지가 인정된다고 하기 어려운데도, 이와 달리 본 원심판결에 계속적 계약의 해지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③ 한편,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 일방의 의무 중 여러 부분이 이미 이행되고 상당한 기간이 흐른 경우 상대방이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효력을 소멸시킬 때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에 따른 효과를 장래에 향하여 발생시키는 제550조의 ‘해지’만 가능할 뿐 제548조에서 정한 ‘해제’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20다297430 판결).
다. 합의해지
계약의 합의해지는 계속적 채권채무관계에서 당사자가 이미 체결한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킬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계약으로서,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계약의 효력을 장래에 향하여 소멸시키기로 하는 내용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 계약의 합의해지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나,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70884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은 합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하므로 계약당사자 일방이 계약해지에 관한 조건을 제시한 경우 그 조건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43044 판결, 대법원 2009. 7. 23. 선고 2008다1477 판결 등 참조).
한편 당사자 사이에 계약을 종료시킬 의사가 일치되었더라도 계약 종료에 따른 법률관계가 당사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경우 그러한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고, 이 경우 합의해지가 성립하였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1994. 9. 13. 선고 94다17093 판결, 대법원 2004. 6. 11. 선고 2004다11506 판결,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이 사건 계약을 합의해지하는 경우 이행보증금의 귀속은 당사자들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그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이 사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다) 등 참조].
4. 계속적 계약의 해지 (= 계약위반과 사정변경 및 합의해지) [이하 사법 56호 장보은 P.331-367 참조]
가. 계속적 계약의 종료 사유
⑴ 우선 당사자들이 계약에서 정한 해지사유가 발생하거나 일방 당사자의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 상대방은 일정한 요건하에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법원 1995. 3. 24. 선고 94다17826 판결, 대법원 2000. 6. 9. 선고 98다45553, 45560, 45577 판결 등).
⑵ 그 외에도 계속적 계약에서는 그 특수성에 기인한 해지권이 인정된다. 신뢰관계가 파괴되는 등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거나 계속적 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 성립 당시의 사정에 현저한 변경이 생긴 경우에는 일정한 요건하에 계약 해지를 인정한다(사정변경의 원칙).
실익이 크다.
나. 계속적 계약과 사정변경의 원칙
⑴ 사정변경의 원칙
①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칙이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다44368 판결, 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다85881 판결,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1다5578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등. 다만 이들 판결에서는 결론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하는 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② 계속적 채권관계에서도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이른바 KIKO 계약에 관한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휘트니스 클럽의 운영 중단에 관한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등).
③ 다만 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그 요건을 충족하였는지를 검토하였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이유로 계약의 해제나 해지를 인정한 예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에서 견본주택 건축을 목적으로 체결된 임대차계약에서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여 대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실천적인 법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⑵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의 해지 사유로서의 사정변경의 원칙
계속적 채권관계가 상당히 긴 기간에 걸쳐서 지속된다면, 계약기간 중에 당사자들이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변경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참조). 따라서 사정변경의 원칙은 일시적, 일회적 계약보다는 계속적 계약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는 대상판결에서 원고가 주장한 여러 해지 사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사정변경의 요건으로는 ① 계약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③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 요구된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등). 각각의 요건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
우선 변경된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 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에서도 “환율의 변동가능성은 이 사건 각 통화옵션계약에 이미 전제된 내용이거나 그 자체이고, 원고와 피고는 환율이 각자의 예상과 다른 방향과 폭으로 변동할 경우의 위험을 각자 인수한 것이지,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됨을 계약의 기초로 삼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경우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사정변경에서의 예견가능성은 당사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이 발생하였는지보다는 가정적인 원인과 결과를 고려하여 당사자가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것을 예견하였다면 계약을 그대로 체결하였을 것인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장기간 계약을 예정하는 계속적 계약의 당사자들은 어느 정도 사정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하고 그 위험을 인수하므로, 경미한 불균형이 발생한 정도로는 현저한 사정변경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
다. 계속적 계약의 합의해지요건
⑴ 계속적 계약의 합의해지
계속적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은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것을 합의할 수 있다. 합의해지는 이미 체결한 계약을 종료하는 또 다른 계약으로, 그 사유는 제한이 없다.35)
특별한 사유가 없이 당사자들이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하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는 물론, 채무불이행이나 사정변경 또는 신뢰관계 파괴와 같이 해지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기존 계약에 정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합의로써 기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판례는 계약의 합의해제 또는 합의해지는 묵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이 시작된 다음에 당사자 쌍방이 계약실현 의사의 결여 또는 포기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가 일치되어야만 한다고 하여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는지 여부를 살핀다(대법원 1994. 9. 13. 선고 94다17093 판결, 대법원 1998. 8. 21. 선고 98다17602 판결, 대법원 2000. 3. 10. 선고 99다70884 판결,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5336, 5343 판결 등). 더 나아가 계속적 계약을 해지하기로 합의하는 때에는 계속적 계약의 종료에 따른 법률효과를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관계의 청산과 합의해지의 요건
계속적 계약이 종료되면 계약은 장래를 향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 이미 이행한 계약의 원상회복이 아니라, 그동안 계약으로 형성된 당사자들의 관계를 청산하여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사전 또는 사후 약정이나 개별 법령가맹사업거래의공정화에관한법률 제10조 제1항 제4호, 대규모유통업에서의거래 공정화에관한 법률 제16조 제1호 등 참조)에 따라 청산의무가 발생한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을 실현하지 않을 의사라는 것은 단순히 계약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겠다, 즉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의사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계약 자체를 해지하는 것보다 계약으로 형성된 이해관계들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묵시적 해지합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계약 종료에 따른 법률관계에 관하여 아무런 약정 없이 계약을 종료시키는 합의만 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이라고 하면서 합의해지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도 있다(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
5. 계속적 계약과 계약이행보증금 [이하 사법 56호 장보은 P.331-367 참조]
가. 계약이행보증금의 법적 성질
⑴ 초기 판례 (= 위약벌)
초기 상당수의 판례들은 계약이행보증금을 일종의 위약벌로 보았다. 특히 도급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의 약정이 있으면, 지체상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계약이행보증금은 위약벌 또는 제재금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대법원 1989. 10. 10. 선고 88다카25601 판결, 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다11436 판결, 대법원 1997. 10. 28. 선고 97다21932 판결 등).
⑵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여부 (= 의사해석의 문제)
그러나 대법원이 도급계약서에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이 함께 규정되어 있는 것만으로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이래(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35771 판결), 계약이행보증금의 성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는 판결들이 이어졌고(대법원 2001. 1. 19. 선고 2000다42632 판결, 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1다14689 판결, 대법원 2004. 12. 10. 선고 2002다73852 판결 등), 현재 다수의 판례들은 계약이행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인지 위약벌인지는 도급계약서 등을 종합하여 구체적 사건에서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의사해석의 문제라고 한다.
⑶ 원칙적으로 위약금 (손해배상액의 예정 또는 위약벌)
기본적으로 법원은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금의 일종 또는 대표적인 위약금 약정으로 보고 있다. 위약금이란 채무불이행의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지급할 것을 약속한 금전을 말하는데, 위약금의 종류나 성질에 대하여는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위약벌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⑷ 손해배상액의 예정 또는 위약벌의 구별실익 (= 재량 감액 여부)
그 구별 실익은 법원이 재량으로 위약금 액수를 감액할 수 있는지 여부에 있는데,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면 민법 제389조 제2항에 따라 그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은 이를 적절히 감액할 수 있으나, 위약벌은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해지는 것으로 손해배상의 예정과는 그 내용이 다르므로 민법 제398조 제2항을 유추적용하여 그 액을 감액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2. 4. 23. 선고 2000다56976 판결, 대법원 2013. 7. 25. 선고 2013다27015 판결 등. 다만 예외가 있어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서 당사자들이 약정한 위약금 조항이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위약벌의 성질을 함께 가진다고 판단한 예도 있다(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112032 판결)].
⑸ 위약금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
더 나아가 법원은 “위약금은 민법 제398조 제4항에 의하여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되므로 위약금이 위약벌로 해석되기 위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주장·입증되어야 한다.”라고 하여(대법원 2000. 12. 8. 선고 2000다35771 판결, 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1다14689 판결 등), 원칙적으로는 위약금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⑹ 판례의 법리
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274270, 274287 판결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즉, 위약금 약정에 대한 일반론에 근거하여 “계약 당시 일방의 책임으로 계약이 해지되면 계약이행보증금이 상대방에게 귀속된다고 정한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은 위약금으로서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라고 하였다.
나아가 추가 손해에 대한 배상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경우 다른 특약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손해가 예정액에 포함된다. 그 계약과 관련하여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채무불이행과 별도의 행위를 원인으로 손해가 발생하여 불법행위 또는 부당이득이 성립한 경우 그 손해는 예정액에서 제외되지만, 계약 당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로 예정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해를 발생시킨 원인행위의 법적 성격과 상관없이 그 손해는 예정액에 포함되므로 예정액과 별도로 배상 또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의 성질
⑴ 계속적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계속적 계약에서 당사자들은 장기간 계약을 유지하면서 해당 거래와 관련된 협력을 거듭하고, 이를 통하여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일단 계약이 체결되면 계속적 계약도 그 내용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일방 당사자가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위험을 줄여보려는 여러 노력이 동원된다. 계약기간이나 기간 만료 시 연장 여부, 주요한 급부와 그 불이행에 대한 효과, 계약의 해지 사유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고, 계약의 중도 해지와 관련하여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더해질 수도 있다.
⑵ 계속적 계약에서 손해배상액의 예정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이 있을 경우 채무자가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서,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입증의 곤란을 덜고 분쟁의 발생을 미리 방지하여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할 뿐 아니라, 채무자에게 심리적 경고를 함으로써 채무의 이행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가진다(대법원 1991. 3. 27. 선고 90다14478 판결, 대법원 1993. 4. 23. 선고 92다41719 판결 등. 손해배상액예정이 손해배상적 기능만 있다고 보는 일원적 기능설도 있으나 손해배상적 기능과 제재적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이원적 기능설이 판례와 다수설의 입장이다).
잔존기간이 장기일수록,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장래 수익을 기초로 손해배상액
을 산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에서 당사자들은 계속적 계약에 앞서 손해배상액을 미리 예정해 둠으로써 손해의 발생사실과 손해액에 대한 입증의 곤란을 덜고 분쟁의 발생을 미리방지하여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⑶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의 의미와 기능
① 계약이행의 담보
계속적 계약에서 보증금 약정은 장기간 계속적인 급부를 하여야 하는 채무자의 급부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을 담보하는 의미도 있겠으나, 장기간 계약이행에 대한 약속과 그 불이행에 보다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당사자들은 계약에서 해당 보증금을 ‘위약벌’이라고 명시하기도 한다. 당사자들이 ‘위약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하여 보증금의 성질이 그에 구속되는 것은 아님은 물론이나, 당사자들의 의사를 해석할 때 약정의 문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참고로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18969 판결과 대법원 2016. 7. 14. 선고 2012다65973 판결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당사자들이 보증금을 ‘위약벌’이라고 명시하였는데, 앞의 판결에서는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해석하여 감액을 부정하였고, 뒤의 판결에서는 그 문언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하여 감액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계약이행보증금은 계약불이행 시 예상되는 손해액과의 비례성보다는 채무자에게 계약이행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계약당사자들이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상당한 금액을 보증금으로 약정하고 이를 교부 및 지급받았다면, 계약기간 동안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행되는 것을 담보하고자 하는 강한 의도가 담겨 있다.
② 상호신뢰의 보완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자의 계약이행을 보증하는 것 이외에도 계속적 계약의 체결에 앞서 채무자가 계약이행의 의지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즉, 계약이행보증금은 채무자가 자신이 계약이행에 대하여 진지한 의지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계속적 계약에서 부족한 당사자의 신뢰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이는 신규 사업자나 채권자와 거래를 한 경험이 없는 사업자를 시장에 쉽게 참여시켜 경쟁을 촉진하는 의미가 있다.
③ 계약의 유지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은 계속적인 급부 이행을 담보하고 계약의 위반을 제재하고자 하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만큼 계약이 중도에 해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다.
다. 계속적 계약에서 계약이행보증금과 관련 쟁점
⑴ 계약이행보증금의 감액
판례는 보증금 약정을 일반적인 위약금 약정과 다름없이 취급하여, 이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하고 이에 대한 직권감액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보증금 약정이 위약벌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주장·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⑵ 계약이행보증금과 손해배상청구와의 관계 (= 계약이행보증금과 별도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채무불이행에 따른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하고자 당사자들이 미리 손해배상액을 정하여 두는 것이므로, 실제 손해액이 예정된 배상액보다 많더라도 채권자는 예정된 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하여 위약벌로 판단되면 채무자는 실제 발생한 손해를 위약금과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1988. 5. 10. 선고 87다카3101 판결 등).
당사자들이 계약이행보증금과는 별도로 지연손해금과 같은 손해배상에 관한 약정을 하였다면 계약이행보증금을 단순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이후 계약불이행이 발생하면 보증금을 몰취하는 것 이외에 적어도 지연손해금은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고 새겨야 한다.
판례는 과거에는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이 함께 규정되어 있는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았으나, 이후 계약이행보증금과 지체상금이 함께 규정되어 있다는 점만을 이유로 계약이행보증금을 위약벌로 보기는 어렵다고 입장을 변경하였다. 이는 과다한 계약이행보증금이 약정된 경우 감액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법원의 정책적인 고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계속적 계약의 계약이행보증금에 관한 판례는 아니지만, 법원이 공사도급계약에서 하자보수보증금과 관련하여 실손해가 하자보수보증금을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액의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다는 명시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도급인은 수급인의 하자보수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하자보수보증금 외에 그 실손해액을 입증하여 수급인으로부터 그 초과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도 있는 특수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0다17810 판결, 대법원 2009. 7. 9. 선고 2009다9034 판결).
6.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366-1368 참조]
가. 이행거절권의 발생 여부와 그 행사의 당부
피고들은 이 사건 대여거부의 이유로 ‘일정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가와 분양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성 악화’를 내세웠고, 재판 과정에서도 조합운영비를 포함한 사업추진경비 약정금채무 일체를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 사유로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의 존재를 내세웠다.
나. 일반론
⑴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소비대차계약의 효력 내지 대주의 권리와 관련하여서는 민법 제536조 제2항, 제559조 및 제601조를 참조할 수 있다.
● 민법 제536조(동시이행의 항변권) ①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이행하여야 할 경우에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전항 본문과 같다.
● 민법 제599조(파산과 소비대차의 실효) 대주가 목적물을 차주에게 인도하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때에는 소비대차는 그 효력을 잃는다.
● 민법 제601조(무이자소비대차와 해제권) 이자없는 소비대차의 당사자는 목적물의 인도 전에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생긴 손해가 있는 때에는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
⑵ 다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 각 규정이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
① 먼저 민법 제536조 제2항은 쌍무계약에만 직접 적용되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계약은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으로 편무계약에 해당한다.
② 다음으로 민법 제599조는 당사자 일방이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만 직접 적용되나, 이 사건 재개발조합의 경우 파산선고를 받은 사실이 없다.
③ 마지막으로 민법 제601조는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 있어서의 해제권을 인정하나, 이 사건의 경우 해제권이 직접 문제되지 않았을뿐더러,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이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상 민법 제601조에 따라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만을 별도로 해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④ 결국 재개발조합과 시공사 간의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 있어, 재개발사업이 지연되어 추후 대여금반환청구권의 행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민법 제536조 제2항, 제599조 및 제601조를 유추적용하거나 그 입법 취지를 확장함으로써 시공사 측에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다.
다. 계약준수원칙에 대한 예외 (=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원칙)
⑴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의 원칙은 모두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민법상 대원칙에 대한 예외로 모두 신의칙에 근거한다.
⑵ 불안의 항변권(민법 제536조 제2항)은 선이행의무 있는 당사자도 상대방의 불이행이 예상되는 경우 동시이행항변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행거절권능이다(권리행사저지사유).
◎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5541 판결
[1]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계약상 선이행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그와 대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채무가 아직 이행기에 이르지 아니하였지만 이행기의 이행이 현저히 불투명하게 된 경우에는 민법 제536조 제2항 및 신의칙에 의하여 그 당사자에게 반대급부의 이행이 확실하여질 때까지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2] 대가적 채무 간에 이행거절의 권능을 가지는 경우에는 비록 이행거절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행거절 권능의 존재 자체로 이행지체책임은 발생하지 않는다.
[3] 이행거절의 권능은 어디까지나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권능에 지나지 아니할 뿐 당초에 약정된 변제기를 변경시키거나 변제기의 정함이 없는 채무로 그 성질을 변경시키는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설사 이행거절 권능을 가지는 매수인이 이를 행사하지 않고 대금채무를 이행하였다고 할지라도 납부기한 전에 선납한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⑶ 대금지급거절권(민법 제588조)은 계약에 따른 의무이행이 완료되더라도 권리박탈의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인정되는 이행거절권능으로, 주로 동시이행관계에서 문제될 수 있으나 당사자가 선이행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도 행사할 수 있으며 그 본질은 담보책임에 가깝다(권리행사저지사유).
⑷ 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체결 후 사정변경이 발생하고 계약의 이행이 신의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경우 계약관계의 해소(해제ㆍ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라.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 해제ㆍ해지의 요건
⑴ 대법원 판례
◎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①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②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③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라 함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으로서,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을 포함되지 않는다.
⑵ 판례의 태도
위 판례들이 서로 다른 요건을 설시한 것은 아니다.
위 요건 ①, ②는 실질적으로 요건 ③을 판단하는 하나의 사정에 해당하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사정변경 해제ㆍ해지의 인정 여부는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⑶ 사정변경의 원칙이란 계약의 성립 당시에 있었던 환경 또는 그 행위를 하게 된 기초가 되는 사정이 그 후 현저하게 변경되어, 당초 정해진 계약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하는 것이 신의칙과 공평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법률행위의 효과를 신의, 공평에 맞도록 변경하거나 소멸시킬 수 있다는 원칙이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다44368 판결, 대법원 2012. 1. 27. 선고 2010다85881 판결,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1다5578 판결, 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6다12175 판결 등. 다만 이들 판결에서는 결론적으로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이유로 하는 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그 요건을 충족하였는지를 검토하였으므로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이유로 계약의 해제나 해지를 인정한 예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에서 견본주택 건축을 목적으로 체결된 임대차계약에서 견본주택을 건축할 수 없게 된 경우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하여 대법원이 사정변경의 원칙을 실천적인 법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사정변경의 요건으로는 ① 계약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③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 요구된다(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등). 각각의 요건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
우선 변경된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 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2다13637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에서도 “환율의 변동가능성은 이 사건 각 통화옵션계약에 이미 전제된 내용이거나 그 자체이고, 원고와 피고는 환율이 각자의 예상과 다른 방향과 폭으로 변동할 경우의 위험을 각자 인수한 것이지,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됨을 계약의 기초로 삼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당사자가 위험을 인수한 경우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마. 견해의 대립
⑴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의 재산상태에 현저한 변경이 생겨 대주의 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 대주에게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한다.
⑵ 긍정설이 타당하다.
민법 제599조에서 대주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파산선고의 존부 자체가 계약 실효의 중요한 이유가 되나, 차주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파산선고의 존부 자체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차주의 재산상태 악화가 계약 실효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따라서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의 재산상태에 현저한 변경이 생겨 대주의 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로워진 경우에도, 위 조항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대주에게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을 인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⑶ 다만 이행거절권의 실제 발생 여부는 구체적인 사건마다 당사자들의 의사, 사정변경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따져보아야 할 것인데,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의 피고들에게도 불안의 항변권 내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권이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⑷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의 가부 (= 적극)
㈎ 사정변경의 원칙의 이론적인 근거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있다.
그 용어에도 불구하고 계약준수가 원칙이고,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해제, 해지 등은 예외일 뿐이다.
계약체결 이후에는 사정이 변경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신의칙상 도저히 보아 넘기기 어려운 경우에만 사정변경의 원칙으로 계약관계 해소를 인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17다224302 판결은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에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의 사정변경을 이유로 하여 대주가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근본적으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대주의 이행거절권을 인정하였다.
위 판결은 ‘① 금전소비대차계약이 성립된 이후 차주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으로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되는 등 사정변경이 생기고, ②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대여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 대주는 대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민법 제536조 제2항, 민법 제599조 등이 선이행의무를 진 경우에 있어서의 불안의 항변권, 당사자 일방이 파산한 경우에 있어서의 소비대차계약의 실효 등을 정하고 있기는 하나, 위 각 규정은 무이자 소비대차계약에서 차주가 파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현저한 변경이 생겨 장차 대주의 대여금반환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된 경우 등에 대하여는 예정하고 있지 않다.
결국 위 각 규정은 구체적인 사안에서 금전소비대차계약의 대주를 보호하고 당해 계약의 당사자 간 형평성을 도모하기에 불충분하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위 판결은 위 각 규정의 내용과 그 입법 취지를 참조하되, 근본적으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근거하여 대주의 이행거절권을 인정하였다.
㈐ 위 판결은 위 불안의 항변권, 대금지급거절권, 사정변경의 원칙 중 ‘불안의 항변권’에 가장 가까운 사례지만, 피고들이 동시이행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불안의 항변권’을 유추적용하여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이행거절을 인정한 최초의 판시이다.
7. 대상판결의 내용 분석 [이하 사법 56호 장보은 P.331-367 참조]
대상판결은 이 사건의 계약이행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의 성격을 가진다고 하면서, 입찰공고의 기재와 이 사건 계약에서 계약이 해지된 경우 이행보증금과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특히 대상판결은 계약이 중도 해지된 경우 계약이행보증금 이외에 추가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행보증금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다른 특약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손해가 예정액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