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부담부증여계약의 민법 제555조에 따른 해제와 그 제한>】《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및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대법원 2022. 9. 29. 선고 2021다299976, 299983 판결)》〔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판결의 요지
【판시사항】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적극) /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판결요지】
민법 제555조는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민법 제561조는 “상대부담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본절의 규정 외에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라고 정한다. 이처럼 부담부증여에도 민법 제3편 제2장 제2절(제554조부터 제562조까지)의 증여에 관한 일반 조항들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각 당사자는 원칙적으로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그러한 부담이 의례적·명목적인 것에 그치거나 그 이행에 특별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는 부담 없는 증여가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당사자가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는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부담부증여계약이 체결된 경우 민법 제561조에 따라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고, 민법 제559조 제2항에 따라 증여자는 그 부담의 한도에서 매도인과 같은 담보책임을 진다. 이처럼 민법에서는 부담부증여에 부담 없는 증여와 구별되는 성격이 있음을 고려하여 계약의 이행과 소멸 과정에서 증여자와 수증자의 공평을 특별히 도모하고 있다.
② 민법 제558조는 제555조에 따라 증여계약을 해제하더라도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정하고, 부담부증여에서는 이미 이행한 부담 역시 제558조에서의 ‘이미 이행한 부분’에 포함된다. 따라서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하였음에도 증여자가 증여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계약을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다고 본다면, 증여자가 아무런 노력 없이 수증자의 부담 이행에 따른 이익을 그대로 보유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③ 민법 제555조에서 말하는 해제는 일종의 특수한 철회로서 민법 제543조 이하에서 규정한 본래 의미의 해제와는 다르고, 그 사유가 증여계약 체결 당시 이미 존재했다는 측면에서 수증자의 망은행위 등을 이유로 한 민법 제556조에 따른 해제, 증여자의 재산상태변경을 이유로 한 민법 제557조에 따른 해제와도 다르다. 따라서 부담부증여에서 수증자의 채무불이행이나 각 당사자의 사정변경이 없고 오히려 수증자가 증여자의 증여 의사를 신뢰하여 계약 본지에 따른 부담 이행을 완료한 상태임에도 증여자가 민법 제555조에 따른 특수한 철회를 통해 손쉽게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게 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④ 민법 제555조에서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를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은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증여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하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부담부증여의 경우 부담 없는 증여와 달리 증여자의 재산의 수여뿐만 아니라 수증자의 부담 이행까지 의사표시의 내용이 되므로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하거나 증여 의사가 불분명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2. 사안의 개요 및 쟁점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안경록 P.330-356 참조,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2636-2638 참조]
가. 사안의 개요
⑴ 원고와 피고는 2016. 7. 4.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토지 중 마을회관 부지 부분을 증여하고 피고가 이에 따라 그 부근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원고의 숙모 소외인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는 부담을 이행하기로 하는 내용의 부담부증여계약을 체결하였다.
⑵ 위 부담부증여계약 체결 당시 원고의 증여의사가 서면에 의하여 표시되지는 않았다.
⑶ 이후 피고는 소외인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였다.
⑷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토지 중 마을회관 부지 부분 일부에 관하여 토지 인도 및 그 지상건물 등 철거를 구하는 이 사건 본소를 제기하였고, 피고는 주위적으로 매매를 원인으로, 예비적으로 증여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⑸ 원심은 부담부증여에서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먼저 이행한 경우 증여자가 아직 증여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증여의 의사가 서면에 의하여 표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본소청구를 기각하고, 피고의 예비적 반소청구를 인용하였다.
⑹ 대법원은 원고의 해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의 결론을 수긍하고 상고를 기각하였다.
나. 사실관계
⑴ 마을 주민인 원고와 마을회인 피고는 2016. 7. 4.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토지 중 마을회관 부지 부분(이하 ‘마을회관 부지’라 한다)을 증여하고 피고가 이에 따라 그 부근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원고의 숙모 소외인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는 부담을 이행하기로 하는 내용의 부담부증여계약(이하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는데, 당시 원고의 증여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는 않았다.
⑵ 피고는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 체결 직후 소외인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였고, 원고는 그 무렵 피고에게 이 사건 토지 중 마을회관 부지 부분을 인도하였으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지는 않았다.
⑶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사용대차계약 해지에 따른 원상회복을 이유로 마을회관 부지 중 일부에 관하여 인도 및 그 지상건물 철거를 구하는 본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가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이 체결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마을회관 부지에 관하여 증여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자, 원고는 민법 제555조에 따라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한다고 다투었다.
⑷ 제1심은 원고가 주장하는 사용대차계약 체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이 체결되었고 피고가 이에 따른 부담을 모두 이행한 이상 원고가 이를 해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면서, 원고의 본소청구를 기각하고 피고의 반소청구를 인용하였다.
⑸ 원심도 제1심과 마찬가지로 판단하면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다만 원고가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는 구체적 이유로 대법원 1997. 7. 8. 선고 97다2177 판결의 법리에 대한 반대해석과 공평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다. 쟁점
⑴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부담부증여계약이 체결된 후 수증자의 부담 이행이 먼저 완료된 경우에도 민법 제555조3)에 따라 그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물론 ‘부담부증여계약에 제555조가 적용되는지 여부’는 그 선결 쟁점이 될 것이다.
⑵ 관련 사례인 대법원 97다2177 판결의 법리 분석
① 원심은 수증자의 부담 이행이 완료된 부담부증여계약은 당초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더라도 제555조에 따라 해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대법원 97다2177 판결에 따른 법리의 반대해석을 제시하였다.
② 대법원 97다2177 판결의 사안은 다음과 같다. 원고는 학교법인인 피고에게 임야를 증여하면서 피고로 하여금 원고의 남편을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원고의 아들을 교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한 후 증여에 따른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었다. 그런데 피고가 그러한 부담을 불이행하자, 원고는 부담의 불이행을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한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를 청구하였다.
③ 대법원은 “상대부담 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민법 제561조에 의하여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어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비록 증여계약이 이미 이행되어 있다 하더라도 증여자는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그 경우 민법 제555조와 제558조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④ 이러한 대법원 97다2177 판결의 법리는, 부담부증여계약이 체결된 후 수증자가 부담을 불이행한 때에는 증여자가 제555조의 해제가 아닌 법정해제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제558조가 적용되지 않고, 일반원칙에 따라 이미 이행한 부분이 있더라도 원상회복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수증자가 부담을 불이행할 경우, 증여자가 그러한 사유만으로 당연히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고, 증여에 특유한 해제 규정(민법 제555조 등)을 항상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도 아니다.
⑤ 원심은, 부담부증여계약에서 ‘ⓐ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 비록 증여가 이미 이행되어 있다 하더라도 ⓒ 증여자는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대법원 97다2177 판결의 법리 중 일부에 대한 반대해석을 시도하여 ‘ⓐ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한 때에는 ⓑ 비록 증여가 이미 이행되지 않았더라도 ⓒ 증여자는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해석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리 자체는 법률이 아니므로 법률의 해석방법을 그대로 활용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법원 97다2177 판결은 ‘부담의 불이행’ 그 자체만으로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 아니므로, 원심이 반대해석 대상 법리를 제대로 전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라. 따라서 원심이 수증자의 부담 이행이 완료된 부담부증여계약은 당초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더라도 제555조에 따라 해제할 수 없다는 이유 중 하나로 ‘대법원 97다2177 판결에 따른 법리의 반대해석’을 제시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
3.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부담부증여계약에서의 해제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2636-2638 참조]
가.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의 해제
⑴ 관련 규정
● 민법
제555조(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와 해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
● 제558조(해제와 이행완료부분)
전3조의 규정에 의한 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⑵ 위 규정의 취지
①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은 증여자뿐만 아니라 수증자도 아무런 제한 없이 해제할 수 있다.
②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즉 구두로만 이루어진 증여는 이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도가 매우 낮고, 그러한 신뢰의 보호의 필요성도 낮기 때문이다.
나. 부담부증여
⑴ 관련규정
● 민법
제559조(증여자의 담보책임)
② 상대부담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증여자는 그 부담의 한도에서 매도인과 같은 담보의 책임이 있다.
● 제561조(부담부증여)
상대부담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본절의 규정 외에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⑵ 부담부증여의 특징
① 부담부증여의 경우, 상대방의 부담이 있기 때문에 쌍무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증여자의 증여와 수증자의 부담 사이에 대가관계가 없기 때문에 편무계약이다.
다만, 부담이 있기 때문에 민법에서는 쌍무계약을 준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② 부담부증여의 경우 증여자는 수증자의 부담의 한도에서 매도인과 같은 담보책임을 진다는 규정이 있다.
③ 부담부 증여는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므로 수증자가 부담을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자는 이를 이유로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위 해제는 증여자가 증여의 이행을 완료한 이후에도 가능하다.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는 해제가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규정(민법 제558조)이 있으나, 위 규정은 부담부증여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수증자는 증여자가 이미 이행한 것을 원상회복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다. 대상판결(대법원 2022. 9. 29. 선고 2021다299976, 299983 판결)의 내용 분석
⑴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
① 부담부증여라고 하더라도 서면에 의하지 않은 이상,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에서의 해제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 원칙적으로 증여자와 수증자 모두 아무런 제한 없이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② 문제는 이 사건과 같이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에서 수증자가 부담을 이행한 경우에도 증여자가 아무런 제한 없이 증여계약을 해제를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⑵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수증자가 부담을 이행한 경우, 증여자는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음
㈎ 위와 같은 대상판결의 판시는 대법원의 최초 판시이고, 위 판시는 타당하다.
①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은 당사자 쌍방이 아무런 제한 없이 해제할 수 있고,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계약 역시 마찬가지이며, 해제는 이미 이행이 완료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이 없다.
따라서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수증자가 부담을 다 이행하고 난 이후에도’ 증여자가 이를 일방적으로 해제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면, 수증자는 부담만 이행하고 이를 돌려받지도 못하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수증자에게 매우 불합리하다.
② 수증자가 부담을 다 이행을 하였음에도 증여자가 증여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증여자의 채무불이행임에도, 위와 같이 자신의 의무를 모두 이행한 수증자에게 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③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를 당사자 쌍방이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 만큼 상대방의 신뢰가 낮을 것이고, 경솔하게 그러한 증여를 약속하는 경우도 있기에 이를 막고자 하는 것인데, 부담부증여계약은 그럴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 위와 같은 이유들을 종합하여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계약의 경우,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하였다면, 증여자는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법리를 만들어냈다,
이는 민법규정의 해석을 통하여 도출해낸 결론이 아니라 공평의 원리에 입각한 창의적 해석이다.
⑶ 사안의 요지
① 원고와 마을회는, 원고가 마을회에게 마을회관 부지를 증여하는 대신 마을회가 원고의 숙모에게 300만 원을 주기로 하는 서면에 의하지 않은 부담부증여계약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마을회는 숙모에게 300만 원을 주었는데, 원고가 마을회에게 위 부지를 증여하지 않은 사안이다.
② 원고는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임을 이유로 민법 제555조에 따라 위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하겠다고 주장하였는데, 마을회가 부담을 이행한 이상 민법 제555조에 따른 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4. 부담부증여계약에도 민법 제555조가 적용되는지 여부 [=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민법 제555조에 따라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적극)(대법원 2022. 9. 29. 선고 2021다299976, 299983 판결)]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안경록 P.330-356 참조]
가. 문제의 소재
민법 제555조가 부담부증여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제555조에 근거한 원고의 해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부담부증여계약 역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제555조에 따라 해제할 수 있는지를 우선 살펴본다.
나. 부담부증여
⑴ 민법은 특수한 증여로 정기증여(제560조), 부담부증여(제561조. 법문상으로는 ‘상대부담 있는 증여’이다), 사인증여(제562조)를 규정하고 있다. 그중 부담부증여는 수증자로 하여금 일정한 급부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부관이 붙어 있는 특수한 증여를 의미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⑵ 판례 역시 “부담부증여라 함은 수증자에게 일정한 급부를 할 채무를 부담시키는 것을 말하고 단순히 증여의 목적물의 사용 목적을 지정함에 지나지 않은 경우에는 부담부증여라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72. 7. 25. 선고 72다909 판결).
⑶ 부담부증여계약은 수증자가 일정한 급부의무를 부담한다는 특수성이 있더라도, 법적 성질은 일반 증여와 동일하게 편무․무상계약이고 복수의 계약이 아닌 단일한 계약이며, 증여자의 재산 수여와 수증자의 부담 이행 사이에 대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다.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의 해제(민법 제555조)
⑴ 관련 규정
● 민법 제555조(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와 해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
● 민법 제556조(수증자의 행위와 증여의 해제)
①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때에는 증여자는 그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1. 증여자 또는 그 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행위가 있는 때
2. 증여자에 대하여 부양의무 있는 경우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
② 전항의 해제권은 해제원인 있음을 안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거나 증여자가 수증자에 대하여 용서의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소멸한다.
● 민법 제557조(증여자의 재산상태변경과 증여의 해제)
증여계약 후에 증여자의 재산상태가 현저히 변경되고 그 이행으로 인하여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⑵ 다른 해제사유와의 차이
㈎ 민법은 무상계약인 증여계약의 특유한 해제사유로, ① 서면에 의하지 않고 증여한 경우의 해제(제555조), ② 수증자의 망은행위 등을 이유로 한 해제(제556조), ③ 증여자의 재산상태변경을 이유로 한 해제(제557조)를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대법원 2022. 9. 29. 선고 2021다299976, 299983 판결)에서는 ① 서면에 의하지 않고 증여한 경우의 해제(제555조)가 문제 되는데, 이는 나머지 해제와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 증여는 계약임에도 제555조에 따라 증여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에는 구속력이 약화되고, 이로써 계약자유의 원칙 중 ‘방식의 자유’에 간접적인 제한이 가해지는 셈이다. 판례는 민법 제555조에 대하여 ①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하는 것을 방지하고 ② 당사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하여 향후의 분쟁을 방지하는 데에 입법 취지가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88. 9. 27. 선고 86다카2634 판결).
㈐ 한편 제555조의 해제에 관하여 그 법적 성질이 무엇인지 또는 해제라는 표현이
적절한지에 관하여 학설상 논의가 있으나, 판례는 ‘본래 의미의 해제와는 다른 특수한 철회’라고 판시하고 있어, 형성권의 제척기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수한 철회로 본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3다1755 판결(공2003상, 1174), 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9다37831 판결).
⑵ 해제의 효과
㈎ 민법 제558조는 ‘해제와 이행완료부분’이라는 표제를 두고 “전3조의 규정에 의한 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① 서면에 의하지 않고 증여한 경우의 해제(제555조), ② 수증자가 망은행위를 한 경우 등의 해제(제556조), ③ 증여자의 재산상태변경에 의한 해제(제557조) 모두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제555조와 제558조를 결합하여 해석하면,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 일반적으로 민법 제558조는 ① 증여의 이행이 완료되면 증여자의 의사가 분명해지고 증여가 경솔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는 점, ② 만약 이행 이후에도 증여의 해제를 허용하면 증여를 기초로 형성된 법률관계(가령, 제3자의 존재 등)를 복잡하게 만들고 수증자에게 불측의 손해를 입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입법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 민법 제558조 중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부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다. 이는 ‘해제할 수 없다.’ 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가 아닌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문언에만 치중한다면 해제권 행사 자체는 가능함을 전제로 해제권 행사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만을 정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고, 그러한 취지의 소수설도 있다.
그러나 다수설은 증여계약에 따른 급부의 성격 등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의미를 달리 해석한다. 즉, 다수설은 증여계약의 급부의무가 가분적이고 분할 이행을 하더라도 계약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 경우에는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원상회복청구권 또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제한된다고 본다(예를 들어, 1,000만 원을 증여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200만 원만 증여한 상태인 경우, 증여자는 해제를 통해 800만 원 지급의무를 면하나, 200만 원의 반환을 구할 수 없다). 반면 증여계약의 급부의무가 불가분이거나 가분적이더라도 분할 이행으로써는 계약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는 경우에는 주요 부분이 이행되면 해제권 자체를 행사할 수 없다고 본다(예를 들어, 토지를 증여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후 등기만 마쳐주고 인도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판례는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증여자가) 해제로써 수증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거나 ‘해제하였다 하더라도 증여계약이나 그 이행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대법원 2001. 9. 18. 선고 2001다29643 판결, 대법원 2005. 5. 12. 선고 2004다63484 판결, 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9다37831 판결 등).
라. 검토
⑴ 민법 제561조20)는 부담부증여에 관한 기본적인 조항인데, 부담부증여계약에는 제3편(채권) 제2장(계약) 제2절(증여)의 규정(제554조부터 제562조까지)에 관한 규정이 적용됨을 명시하고 있다. 즉, 부담부증여계약에도 제555조가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문언에 부합한다.
● 민법 제561조(부담부증여) 상대부담 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본절의 규정 외에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⑵ 제561조는 부담부증여계약에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 역시 준용(법문에는 적용으로 되어 있으나, 준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와 같은 견해가 타당하다)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이는 부담부증여계약이 증여로서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일반적인 증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무상성과 편무성이 다소 옅어졌다는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부담부증여계약에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한 것은 민법 제555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
⑶ 결국 부담부증여계약 역시 부담 없는 증여와 마찬가지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았다면 민법 제555조에 따라 해제할 수 있고, 민법 제558조에 따라 해제 또는 원상회복의 제한을 받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5. 부담이 모두 이행된 부담부증여계약을 제555조에 따라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 (= 부정)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3호, 안경록 P.330-356 참조]
가. 해제 불가능
⑴ 대상판결은 해제불가능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민법 제558조는 ‘이미 이행한 부분’의 주체와 객체를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부담부증여계약의 경우 제558조에 따라 제555조에 의한 해제에도 불구하고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은 ‘이미 이행한 증여’뿐만 아니라 ‘이미 이행한 부담’도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② 민법 제555조는 증여자뿐만 아니라 수증자 역시 해제권자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만일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제558조의 ‘이미 이행한 부분’을 증여자가 이행한 증여만으로 한정하여 새긴다면(즉, 부담에 대하여는 이미 이행되었더라도 해제의 효과가 미친다고 새긴다면), ‘증여자가 가분적 증여를 일부 이행하고 수증자가 부담을 모두 이행한 상태에서 수증자가 해제할 경우’에는 오히려 증여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이 사건을 다소 변용하여 증여자 甲이 서면에 의하지 아니하고 수증자 乙에게 서로 무관한 2필지를 증여하기로 하고 乙은 이에 대한 부담으로 甲의 친척 丙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부담부증여계약을 체결하였는데, 乙이 1필지에 대하여만 등기를 마치고 丙에게 300만 원을 모두 지급한 상태에서 제555조에 따라 해제한 경우를 가정해 본다. 이때 乙은 이미 자기 명의로 등기를 마친 1필지에 대한 반환의무를 면하는 반면(이행이 완료된 증여 부분이 해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전히 300만 원을 반환받을 수 있다(이행이 완료된 부담 부분이 해제의 영향을 받는다).
③ 따라서 제555조와 제558조를 결합하면, ‘부담부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증여자 또는 수증자는 그 부담부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으나, 이러한 해제는 증여자가 이미 이행한 증여 또는 수증자가 이미 이행한 부담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새길 수 있다.
⑵ 결국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그러한 부담이 의례적․명목적인 것에 그치거나 그 이행에 특별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는 부담 없는 증여가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당사자가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는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대상판결의 결론
⑴ 이 사건에서 피고는 소외인에게 300만 원을 모두 지급함으로써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에서 정한 부담을 모두 이행하였다. 원고 역시 피고에게 소유권이전등기만 마쳐주지 않았을 뿐 인도의무는 모두 이행한 상태였다.
⑵ 반면, 피고는 재산 출연이 자유롭지 않은 마을회(비법인사단)이고, 기록에 나타난 소가 산정 자료에 따르면 피고가 소외인에게 지급한 300만 원은 당시 증여 대상 목적물인 마을회관 부지의 개별공시지가 합계 7,791,000원의 약 38.5%에 이르는 규모이다. 이 사건 부담부증여계약이 실질적으로 부담 없는 증여계약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⑶ 따라서 원고의 제555조에 근거한 해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의 판단은 그 이유 설시에 적절하지 않은 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타당하다.
다. 대상판결의 판시 요지
대상판결은, 부담부증여계약 역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각 당사자는 원칙적으로 민법 제555조에 따라 이를 해제할 수 있다는 점, 다만 증여자의 증여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수증자가 부담의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그러한 부담이 의례적․명목적인 것에 그치거나 그 이행에 특별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지 않는 등 실질적으로는 부담 없는 증여가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각 당사자가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임을 이유로 증여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하고 있다.
6. 증여계약의 성립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974-980 참조]
⑴ 증여는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 수여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제554조).
⑵ 송금 등 금전지급행위가 증여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에 금전을 무상으로 수익자에게 종국적으로 귀속시키는 데에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한다.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금전을 이체하는 등으로 송금하는 경우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과세 당국 등의 추적을 피하기 위하여 일정한 인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 소유의 금전을 자신의 예금계좌로 송금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에게 자신의 예금계좌로 송금할 것을 승낙 또는 양해하였다거나 그러한 목적으로 자신의 예금계좌를 사실상 지배하도록 용인하였다는 것만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송금액을 계좌명의인에게 무상으로 증여한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쉽사리 추단할 수 없다. 이는 금융실명제 아래에서 실명확인절차를 거쳐 개설된 예금계좌의 경우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명의인이 예금계약의 당사자로서 예금반환청구권을 가진다고 해도, 이는 계좌가 개설된 금융회사에 대한 관계에 관한 것으로서 그 점을 들어 곧바로 송금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의 법률관계를 달리 볼 것이 아니다(사해행위 취소의 대상으로 채무자와 수익자 사이의 증여계약이 있었는지 문제 된 사례로서,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2다30861 판결).
⑶ 부부 사이에서 일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이 인출되어 타방 배우자 명의의 예금계좌로 입금되는 경우에는 증여 외에도 단순한 공동생활의 편의, 일방 배우자 자금의 위탁 관리, 가족을 위한 생활비 지급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예금의 인출 및 입금 사실이 밝혀졌다는 사정만으로는 경험칙에 비추어 해당 예금이 타방 배우자에게 증여되었다는 사실이 추정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두41937 판결).
7. 증여의 법률효과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974-980 참조]
가. 증여자의 수증자에 대한 재산수여의무(제554조)
나. 증여자의 담보책임
증여자는 증여의 목적인 물건 또는 권리의 하자나 흠결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그러나 증여자가 그 하자나 흠결을 알고 수증자에게 고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제559조 제1항). 반면 부담부증여의 경우에는 증여자는 그 부담의 한도에서 매도인과 같은 담보의 책임이 있다(제559조 제2항).
다.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의 해제
⑴ 의의
①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제555조). 그 취지는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증여자의 의사를 명확히 하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는 데 있다(대법원 1988. 9. 27. 선고 86다카2634 판결 등 참조).
② 반대로 서면으로 증여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증여자는 이를 임의로 해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서면으로 부동산 증여의 의사를 표시한 증여자는 계약이 취소되거나 해제되지 않는 한 수증자에게 목적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한 증여자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고, 그가 수증자에게 증여계약에 따라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고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여 등기를 하는 행위는 수증자와의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배임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18. 12. 13. 선고 2016도19308 판결).
⑵ 요건 (=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하였을 것)
비록 서면의 문언 자체는 증여계약서로 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서면의 작성에 이르게 된 경위를 아울러 고려할 때 그 서면이 바로 증여의사를 표시한 서면이라고 인정되면 위 서면에 해당하고, 나아가 증여 당시가 아닌 그 이후에 작성된 서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대법원 1989. 5. 9. 선고 88다카2271 판결 등 참조).
그러나 이러한 서면에 의한 증여란 증여계약당사자 사이에 있어서 증여자가 자기의 재산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취지의 증여의사가 문서를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도로 서면에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수증자에 대하여 서면으로 표시되어야 한다(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54006 판결, 대법원 1998. 9. 25. 선고 98다22543 판결 등 참조. 한편, 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9다37831 판결은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행위는 통상 반대급부의 제공 기타 그 행위의 합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종교적 신심을 근거로 즉흥적·충동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증여의사의 명확성, 신중성 및 후일의 분쟁 방지라고 하는 서면에 의한 증여제도의 입법취지상 위 서면에 의한 증여 요건의 구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다).
⑶ 해제권의 행사
① 여기서 말하는 해제란 ‘특수한 형태의 철회’일 뿐 본래 의미의 해제와 다르다. 따라서 제척기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3다1755 판결. 한편, 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9다37831 판결은 부부인 甲과 乙이 A 토지를 丙 교회의 신축건물 부지로 제공하면서 이를 증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음에도 약속과 달리 그 소유권을 丙 교회로 넘기지 않고 있던 중 丙 교회가 乙의 도움을 받아 甲이 보관하고 있던 A 토지의 등기필증에 갈음하여 甲 본인 확인서면(위조), 甲과 丙 교회 사이의 증여계약서(위조) 및 같은 취지의 교회 이사회결의서를 작성, 제출하여 丙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한 사안에서, 토지증여자 가운데 乙의 증여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甲이 자신의 증여분에 한하여 10년이 경과한 뒤에 사정변화를 이유로 위 증여계약을 해제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② 해제의 의사표시는 각 당사자가 상대방에 대하여 하여야 한다. 증여자뿐만 아니라 수증자도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⑷ 이미 이행을 한 경우
제558조는 “제555조에 의한 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의 의미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해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3다1755 판결).
예컨대 부동산을 증여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었으나 아직 인도를 하지 않은 경우, 소유권을 이전해 줌으로써 이행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해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채무인 부동산의 인도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
㈏ ‘이미 이행’의 의미
① 목적물이 동산인 경우 : 목적물의 인도
② 목적물이 부동산인 경우 : 부동산의 ‘인도’만으로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져야만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판례는 형식주의를 취하는 민법의 해석상 부동산 증여의 경우에는 그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져야만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2009. 9. 24. 선고 2009다37831 판결 :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의 경우에도 그 이행을 완료한 경우에는 해제로서 수증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할 것인바, 토지에 대한 증여는 증여자의 의사에 기초하여 그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가 제공되고 수증자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됨으로써 이행이 완료되는 것이므로, 증여자가 그러한 이행 후 증여계약을 해제하였다고 하더라도 증여계약이나 그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의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할 것이지만(대법원 2001. 9. 18. 선고 2001다29643 판결, 대법원 2005. 5. 12. 선고 2004다63484 판결 등 참조), 이와는 달리 증여자의 의사에 기하지 아니한 원인무효의 등기가 경료된 경우에는 증여계약의 적법한 이행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자의 증여계약의 해제에 대해 수증자가 실체관계에 부합한다는 주장으로 대항할 수 없다].
라. 수증자의 망은행위와 해제
⑴ 수증자가, ① 증여자 또는 그 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행위가 있는 경우 또는 ② 증여자에 대하여 부양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증여자는 그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제556조 제1항). 이는 중대한 배은행위를 한 수증자에 대해서까지 증여자로 하여금 증여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윤리적 요청을 법률적으로 고려한 것이다(헌법재판소 2009. 10. 29. 선고 2007헌바135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⑵ 여기에서 ‘범죄행위’는, 수증자가 증여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여자가 배은망덕하다고 느낄 정도로 둘 사이의 신뢰관계를 중대하게 침해하여 수증자에게 증여의 효과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할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이러한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수증자가 범죄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 및 경위, 수증자의 범죄행위로 증여자가 받은 피해의 정도, 침해되는 법익의 유형, 증여자와 수증자의 관계 및 친밀도, 증여행위의 동기와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반드시 수증자가 그 범죄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필요는 없다(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7다207475, 207482 판결).
⑶ 위 해제권은 해제의 원인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6개월을 경과하거나 증여자가 수증자에 대하여 용서의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소멸한다(제556조 제2항).
그러나 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제558조).
마. 증여자의 재산상태 변경으로 인한 해제
증여계약 후에 증여자의 재산상태가 현저히 변경되고 그 이행으로 인하여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제557조).
그러나 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제558조).
8. 특수한 증여계약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974-980 참조]
가. 정기증여
정기의 급여를 목적으로 한 증여는 증여자 또는 수증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그 효력
을 잃는다(제560조).
나. 부담부 증여
상대의 부담이 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제561조).
그러므로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비록 증여계약이 이미 이행되어 있다 하더라도 증여자는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그 경우 제555조와 제558조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대법원 1997. 7. 8. 선고 97다2177 판결, 대법원 1996. 1. 26. 선고 95다43358 판결).
다. 사인증여
⑴ 의의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이 생길 증여에는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제562조). 그런데 사인증여는 불요식의 계약인 데 비하여 유증은 엄격한 요식주의가 적용되는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이기 때문에 준용의 구체적 범위가 문제 된다.
⑵ 유증의 방식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는지 여부
유증의 방식에 관한 제1065조 내지 제1072조는 그것이 단독행위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계약인 사인증여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01. 9. 14. 선고 2000다66430, 66447 판결).
⑶ 포괄적 사인증여에 포괄적 유증의 효과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는지 여부
제562조가 사인증여에 관하여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하여, 이를 근거로 포괄적 유증을 받은 자는 상속인과 동일한 권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제1078조가 포괄적 사인증여에도 준용된다고 해석하면 포괄적 사인증여에도 상속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포괄적 사인증여는 낙성·불요식의 증여계약의 일종이고, 포괄적 유증은 엄격한 방식을 요하는 단독행위이며, 방식을 위배한 포괄적 유증은 대부분 포괄적 사인 증여로 보여질 것인바, 포괄적 사인증여에 제1078조가 준용된다면 양자의 효과는 동일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포괄적 유증에 엄격한 방식을 요하는 요식행위로 규정한 조항들은 무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제1078조가 포괄적 사인증여에 준용된다고 하는 것은 사인증여의 성질에 반하므로 준용되지 아니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4다37714 판결 : 원고가 토지 매수인으로부터 포괄적인 사인증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증여자에게 사인증여 계약상의 의무이행으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양도를 청구할 수 있을 뿐 직접 매도인에게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없다).
⑷ 태아의 권리능력에 관한 규정(제1064조)이 준용되는지 여부
증여는 증여자와 수증자 간의 계약으로서 수증자의 승낙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태아에 대한 증여의 경우에도 태아의 수증행위가 필요하다. 그런데 개별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권리능력은 태아인 동안에는 없고 살아서 출생하면 문제 된 사건의 시기까지 소급하여 그때에 출생한 것과 같이 법률상 간주되는 것이므로, 태아인 동안에는 법정대리인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법정대리인에 의한 수증행위도 불가능한 것이어서 증여와 같은 쌍방행위가 아닌 손해배상청구권의 취득이나 상속 또는 유증의 경우를 유추하여 태아의 수증능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대법원 1982. 2. 9. 선고 81다534 판결).
9.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해제를 규정하고 있는 민법 제556조 제1항 제1호의 ‘범죄행위’의 의미 [이하 대법원판례해설 제131호, 김민주 P.87-113 참조]
가. ‘범죄행위’의 제한적 해석 필요성(중대성 요건의 필요성)
⑴ ‘중대성’이 성문으로 규정된 외국의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건 조항에서 ‘범죄행위’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행위’라는 단어 자체도 형사처벌이 실제로 이루어진 행위를 말하는 것인지, 구성요건해당성만 충족되면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개념이다. 따라서 ‘범죄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⑵ 그런데 다음과 같은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해제의 본질을 고려한다면 ‘범죄행위’는 다른 입법례와 마찬가지로 중대성 요건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철회는 ‘윤리적 비난 가능성’에서 비롯된 법제도이므로 수증자의 행위가 중대하여 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 또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민법 제556조 제1항에서 수증자의 망은행위에 대하여 증여계약의 법정해제권을 인정한 입법 취지는 로마법 이래의 서구제국 입법례를 수용하여 중대한 망은행위를 한 수증자에 대해서까지 증여자로 하여금 증여계약상의 의무를 이행케 할 의무는 없다고 하는 윤리적인 요청을 법률적으로 고려한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9. 10. 29. 선고 2007헌바135 전원재판부 결정).
둘째,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좁게 해석되어야 한다.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철회는 사정변경으로 인한 해제권의 일종에 해당한다.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 해제는 ① 예상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있을 것, ② 그 사정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발생할 것, ③ 구속력을 인정할 경우 신의칙에 현저히 반할 것을 요건으로 하므로(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철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저성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셋째, 민법 제556조에 대한 개정 논의에서도 수증자의 망은행위가 현저해야 한다는 점이 논의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규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좁은 범위의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 철회사유만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나, 이는 ‘망은행위의 종류’를 제한하는 것으로서, ‘망은행위의 정도’를 제한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망은행위의 종류’를 확대하는 것은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망은행위의 정도’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넷째, 망은행위에 의한 해제권의 남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망은행위가 쉽게 인정된다면 증여자는 ‘해제가능성’을 수단으로 수증자를 지배하려 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가급적 망은행위의 개념과 요건을 명확히 하고 실무에서도 그 범위를 적절한 범위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나. 중대성 판단 기준 (= 윤리적 비난 가능성)
⑴ 중대성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는가? ‘범죄행위’라는 측면에서 보면,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해제에도 형사법에서의 [요건사실, 위법성, 책임] 단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민법의 독자적인 중대성 판단 기준으로서 ‘윤리적 비난 가능성’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형법은 사회에 필요한 수많은 법익들을 보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반면, 증여의 해제사유로서의 망은행위는 ‘수증자의 증여자 개인에 대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윤리적 비난 가능성’을 제재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통행위는 윤리적 비난의 문제로서 민사상 위자료 청구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위헌결정으로 인해 지금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법원은 이미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에서 증거능력 등에 대한 법리를 달리하여 판단하고 있으며, 그 결과 양사건의 결론이 서로 달라지는 것도 가능하다.
⑵ ‘윤리적 비난 가능성’을 중심으로 중대성을 판단하되, 먼저 객관적 측면에서는 증여자가 객관적으로 수증자의 감사함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증여자가 수증자의 망은행위를 유발하거나 동기를 부여한 경우에도 수증자에게 감사를 표할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적 측면에서는 수증자의 행동이 증여자의 시각에서 배은망덕한 태도의 표출로 볼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증여자와 수증자의 친밀도, 관계 등에 따라 동일한 행위에 대하여도 증여자가 느끼는 배은망덕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증여자의 주관적 측면도 고려하되, 여기서의 주관적 판단은 증여자의 법익과 수증자의 법익을 비례의 원칙에 따라 형량한 결과,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해제권의 행사가 충분히 합리적인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 중대성 판단 요소
법익의 형량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는 구체적 판단 요소로는, 증여자가 받은 피해의 정도,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의 관계 및 친밀도, 침해되는 법익의 유형, 수증자가 망은행위를 한 동기, 의도(고의에 의한 망은행위만에 한정할 것인지), 형사처벌 여부 등을 들 수 있다.
⑴ 증여자가 받은 피해의 정도
증여자가 받은 피해가 극히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증여자 개인이 그에 대하여 분노 및 배은망덕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증여의 해제를 쉽게 인정할 경우, 수증자의 법익 내지 신뢰를 지나치게 침해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중대한 망은행위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행위반가치뿐만 아니라 결과반가치까지도 고려하여, 증여자가 받은 피해가 심각한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⑵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의 관계 및 친밀도
수증자의 행위가 증여자의 시각에서 주관적으로 배은망덕함을 느낄만한 행위인지 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의 관계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증여자와 수증자의 관계가 부모․자식 사이 등의 가까운 사이라면 증여자가 수증자의 행위를 양해할 가능성이 더 높은 반면, 증여자와 수증자의 관계가 특별히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증여자의 시각에서 수증자에게 배은망덕함을 느낄 여지가 더 높을 것이다.
⑶ 침해되는 법익의 유형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해제가 ‘수증자의 증여자 개인에 대한 행위에서 비롯되는 윤리적 비난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개인적 법익’에 관한 죄는 강학상의 개념일 뿐이며, 개인적 법익, 사회적 법익, 국가적 법익 보호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죄도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법익에 관한 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가 곧 증여자에 대한 중대한 망은행위도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증자가 사문서위조죄, 동행사죄를 범하여 증여자의 재산 전부를 모두 자신의 소유로 하고, 증여자를 재정적으로 궁핍하게 만드는 경우에는 증여자에 대한 중대한 망은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⑷ 원칙적으로 고의에 의한 경우로 제한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철회는 ‘윤리적 비난’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제1호 망은행위는 원칙적으로 수증자가 증여사실을 알면서도 망은행위를 했을 때에만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수증자가 과실로 인하여 증여자에 대하여 범죄행위를 한 것이 수증자에게 이미 약속된 증여를 철회할 정도의 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⑸ 형사처벌의 불요
‘중대한 망은행위’에 대하여는 민법과 형법의 판단이 다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망은행위에 대하여 형사처벌이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다만 현행 민법상 망은행위는 ‘범죄행위’에 한정되므로, 적어도 현행법하에서는 구성요건해당성은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법성의 측면에서 보면, ‘윤리적 비난 가능성’이 본질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형사상 위법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제1호 망은행위를 인정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형사상 위법성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수증자의 행위가 위법성조각사유가 있거나 책임조각사유가 있다면, 수증자를 비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망은행위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임의 측면에서 보면, 수증자의 망은행위에 대하여 윤리적 비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증자가 책임능력 있는 경우여야 한다고 보인다. 그러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 등, 예외적으로 책임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의 경우에는 형법에서와 마찬가지로 망은행위를 이유로 한 증여의 해제를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소추가능성 존부 등의 소송법적 요건의 경우, 그와 무관하게 중대한 범죄행위가 있다면 망은행위에 해당할 것이다.
10. 망은행위에 의한 증여의 해제 [이하 판례공보스터디 민사판례해설, 홍승면 P.1733-1737 참조]
가. 관련 규정
● 민법
제555조(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와 해제)
증여의 의사가 서면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각 당사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다.
● 제556조(수증자의 행위와 증여의 해제)
①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때에는 증여자는 그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1. 증여자 또는 그 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행위가 있는 때
2. 증여자에 대하여 부양의무있는 경우에 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
② 전항의 해제권은 해제원인있음을 안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거나 증여자가 수증자에 대하여 용서의 의사를 표시한 때에는 소멸한다.
● 제557조(증여자의 재산상태변경과 증여의 해제)
증여계약 후에 증여자의 재산상태가 현저히 변경되고 그 이행으로 인하여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 제558조(해제와 이행완료부분)
전3조의 규정에 의한 계약의 해제는 이미 이행한 부분에 대하여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 제561조(부담부증여)
상대부담있는 증여에 대하여는 본절의 규정외에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을 적용한다.
나. 증여에는 특유의 해제 제도가 있고, 그중에는 ‘망은행위에 의한 해제’가 있음
⑴ 이 사건 조항은 수증자가 증여자 또는 그 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하여 범죄행위
를 한 경우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망은(忘恩)행위를 이유로 한 증여의
해제를 인정하고 있다.
민법 제556조는 증여를 ‘완전히 순수한 무상계약’으로는 볼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법률적으로는 대가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증여에 상응하는 상대방의 윤리적ㆍ인격적 태도에 대한 기대가 결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인사도 잘 하고, 말도 잘 듣고, 명절에 찾아도 오고, 안부도 자주 물어달라는 것이다.
외국의 입법례도 망은행위로 인한 증여계약의 해제 제도를 두고 있고, 다만 법률요건은 조금씩 표현이 다르다. 우리 민법은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 독일민법은 ‘중대한 배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⑵ 망은행위에 의한 해제는 ‘이미 이행된 부분’에는 영향이 없다(민법 제558조).
증여를 받은 후에는 망은행위나 부양의무 불이행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도, 망은행위에 의한 해제에 관한 판례는 대상판결이 최초이다. 이는 망은행위로 인한 해제와 더불어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의 해제(민법 제555조), 증여자의 재산상태 변경으로 인한 해제(민법 제557조)가 ‘이미 이행된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7다207475, 207482 판결은 공교롭게 토지에 관하여 아직 등기가 마쳐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망은행위에 의한 해제의 항변이 가능하였다.
⑶ 다만 ‘부담부 증여’라면 이미 이행된 부분의 원상회복을 구할 수 있다.
부담부 증여에는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므로(민법 제561조), 수증자가 부담을 불이행하면 증여자는 이를 이유로 증여를 해제할 수 있고, 이미 이행된 부분도 원상회복을 구할 수 있다.
증여자가 ‘구체적인 부담’을 주장하면서 수증자의 행위가 부담의 불이행에 해당한다는 내용으로 주장하면, 법원은 심리를 할 수밖에 없다.
증여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부담이 인정된다면 수증자는 이미 이전 받은 수증재산을 반환하여야 한다.
다. 배은망덕하다고 느낄 정도로 ‘신뢰관계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범죄행위’에 이르러야 함
⑴ 단순한 망은행위로는 부족하고 ‘범죄행위’에 이르러야 한다(민법 제556조 제1항 제1호).
여기서 범죄행위는 ‘형사상’ 범죄행위를 의미한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⑵ 나아가, 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7다207475, 207482 판결은 두 가지 법리를 제시하였다.
① 모든 범죄행위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증여자가 배은망덕하다고 느낄 정도로 ‘신뢰관계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범죄이어야 한다.
대상판결(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7다207475, 207482 판결)에서는 ‘증여의 효과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할 정도’라는 설시가 덧붙여졌기는 하였으나, 이는 ‘해제가 허용되지 않으면 부당한 경우에 해제할 수 있다’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표현으로 특별한 의미는 없다.
② 수증자가 그 범죄행위로 형사처벌을 받을 필요는 없다.
따라서 원고가 관련 형사사건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더라도, 곧바로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무죄의 확정판결에 반하는 내용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범죄행위 사실의 ‘증명 부족’).
대법원 2022. 3. 11. 선고 2017다207475, 207482 판결의 사안도 범죄행위 사실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가 승소할 수도 있으나, 사실심 변론종결 후 상고심 계속 중에 무죄판결이 선고ㆍ확정되었으므로 이를 이유로는 원심을 파기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