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신세계남산 트리니티홀’과 ‘장충동 족발집’】《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 세상은 마술 같은 일들로 가득했다. 그 오래된 느낌을 되살려 조금만 더 놀고 즐길 줄 안다면,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24. 5. 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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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남산 트리니티홀장충동 족발집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 세상은 마술 같은 일들로 가득했다. 그 오래된 느낌을 되살려 조금만 더 놀고 즐길 줄 안다면,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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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음악회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푸르고 싱그러운 봄날의 따사로움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시원한 미풍이 내 빰을 간지럽히며 스쳐 지나간다.

봄날의 황홀함에 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또한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아쉬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코로나 이전에는 신세계백화점에서 트리니티(Trinity) 회원들에게 보내주는 무료 초대 음악회에 자주 참석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오늘 콘서트에 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신세계 남산의 트리니티홀에 도착했다.

이곳은 처음 방문한다.

예전에는 신세계에서 주관하는 콘서트 장소가 모두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었는데, 이번에는 신세계 남산 트리니티홀로 바뀌었다.

장충단 부근의 족발집 등 몰려있는 곳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시설이 참 잘되어 있다.

트리니티홀 내부 인테리어는 매우 우아하고 세련되며, 고급스럽다.

홀의 규모는 작지만, 500인치 대형 스크린의 화질도 너무 좋고, 사운드 시스템도 뛰어나다.

최근에 개관한 곳인지, 화장실도 호텔처럼 잘되어 있고 천장 마감도 멋지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이 규모가 큰 대중목욕탕이라면, ‘트리니티홀은 일본 료칸의 아담하고 아늑한 노천탕같은 느낌이다.

각종 음료와 다과도 무료로 제공된다.

이젠 콘서트홀도 점점 진화를 한다.

 

오랜 만에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들었다.

25, 39, 41번도 좋아하지만, 단조(minor)25번과 40번은 항상 들어도 좋다.

역시 모차르트다.

 

콘서트가 끝난 후 바로 장충동 족발집으로 향했다.

예전에 서울고등법원에서 근무할 때 재판부 회식을 하러 와본 적이 있었다.

거의 25년만에 다시 와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다.

발레주차도 무료이고, ‘교대 근처의 족발집보다 훨씬 부드럽고 쫄깃한데다가 직원들의 서비스가 매우 친절하다.

내친김에 파전복분자도 시켰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고 너무 살기 좋아졌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이 좋은 봄날을 몇 번 더 누릴 수 있을까를 세어 본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때 주말에도 일했어야 하는데라거나 휴가를 반납하고 일했더라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취해낸 것들을 자랑스럽게 회상하면서도, 삶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일에서의 성취감이 사생활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모든 것이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은 삶을 균형 잃은 지루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지구별의 순례자이며, 삶을 누리고 놀이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흔히들 잘못 생각하고 있지만, 놀이는 아이들만의 소일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생명력이다.

놀이는 마음을 젊게 하고, 일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며, 인간관계를 잘 맺게 해 준다.

놀이는 삶을 가장 충만하게 사는 방법이며, 젊음을 돌려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이는 삶의 우선 순위에서 낮게 취급되어 왔다.

 

열심히 일해야 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항상 생산적 활동에 종사해야하고, 성공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만일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된다면, 그래서 밤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만 하게 된다면, 삶은 황폐하게 된다.

 

놀이는 모든 한계를 초월해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놀이는 삶의 모든 측면을 더 의미 있고 즐겁게 만든다.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놀이를 잊어버린다.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조금만 즐거움을 맛봐도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잘 논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주말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또르와 산책을 하고 바흐모차르트를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큰 기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주말에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느라 생산적인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린 아이였을 때 세상은 마술 같은 일들로 가득했다.

그 오래된 느낌을 되살려 조금만 더 놀고 즐길 줄 안다면,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젊은 시절의 흥분과 설레임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