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티셔츠에 팔찌와 목걸이라고?】《노망난 노인의 주책바가지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남 눈치보기보다는 내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싶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날씨가 화창하고,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다.
걷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역마살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반팔 옷을 꺼내보았다.
대부분 칼라(collar)가 없는 라운드티셔츠이다.
모자도 대부분 볼캡이다.
이런 옷이나 모자를 소화하기에는 내 연식이 너무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나이 또래들이 즐겨 입는 ‘골프웨어’나 ‘등산용 아웃도어룩’을 입고 싶지는 않다.
그런 옷을 입는 순간 내 마음도 함께 늙어버리는 느낌이다.
또르와 산책을 할 때도 젊은이들처럼 팔찌를 차고, 목걸이를 걸친다.
밋밋한 무채색의 옷보다는 예쁘고, 화려하고, 포인트가 있는 옷들을 선호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최후의 발악이다.
노망난 노인의 주책바가지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젠 남 눈치보기보다는 내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싶다.
모자를 꺼내고 신발을 손질하는 것만으로도 역마살이 발동하면서 괜히 설레고 심장이 콩콩 뛴다.
난 항상 두근거리고 설레고 싶다.
설레는 일이 있으면, 삶이 행복하고 재미있다.
우리는 해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통계를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평균이란 낱말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평균에는 기준점을 중심으로 분산이 존재한다.
그래서 평균이란 말은 허상이고 거짓 위안일 때가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나 후배들이 한둘이 아니다.
인생은 시내버스의 승객과 같아서 먼저 탔다고 반드시 먼저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사람들에게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평균 수명 90세라는 말은 모두에게 균등한 90세를 보장한다는 뜻이 아니다.
100세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60세로 생을 하직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내일까지 살아 있으라는 법은 없다.
나이가 들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생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누군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이 나이에도 여행을 꿈 꿀 때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아니,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
마법 같은 여행을 꿈꾸는 것 자체가 내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