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너의 남은 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챙겨 주마.]【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4. 8. 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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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남은 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챙겨 주마.]【윤경변호사】

 

기르던 애완견 ‘깜비’가 며칠 전부터 밥도 먹지 않고 힘 없이 누워만 있다.

병원에 갔더니 방광 및 신장결석으로 염증이 심하게 생겼고, 백혈구 수치가 ‘7만’이란다. 통상 이 정도 수치면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은 수치가 ‘3만 8천’으로 내려 갔다.

수술을 받기 전 먼저 백혈구 수치를 ‘2만’ 아래로 내려야 한단다.

 

그 동안 ‘낑낑거리는 신음 소리’ 조차 없어 이런 고통을 겪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4일째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놈과 한 집에서 지낸 지 15년이 된다.

1999년 12월 백화점에 갔다가 우연히 강아지 한 마리(말티즈와 슈나우저의 잡종견)를 보았다.

태어난 지 15일 밖에 안 된 주먹만한 강아지가 잠자는 다른 강아지들 사이로 깡충깡충 활기차고 앙증맞게 뛰어다니고, 귀엽게 하품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충동적으로 입양을 결심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 후 15년간 내 출근을 배웅하지 않은 적이 없다.

퇴근시에는 지하주차장에 차가 들어온 인터폰 입차 신호음을 들은 때부터 문을 박박 긁으면서 가장 먼저 나를 기다린다.

 

쓰다듬으려 하면, 발라당 배를 까보이고 누워 꼬리를 크게 흔든다.

목을 졸라도 반응이 똑같다.

어느 누가 이 강아지를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언젠가부터 시력과 청력이 많이 약해 졌다.

이제는 내가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할 때가 많다.

나를 가장 먼저 반겨 주던 놈인데 말이다.

 

깜비를 정말 사랑한다.

언제나 한결같은 애정과 충성심을 보인다.

사람처럼 잔머리를 굴리거나 배반을 할 줄 모른다.

강아지의 남은 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챙겨주고 싶다.

 

지금 키우는 강아지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할 것 같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의 날카로운 얼굴’이 숨어 있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만날 때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라는 글귀가 새삼 가슴 속 깊이 후벼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란 생각만 떠 올려도 안쪽에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진다.

 

‘죽음을 통한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별이 아니고 의지가 반영된 이별이 아니다.

결코 원하지 않지만 기어이 찾아오고야 마는 ‘두렵고 무서운 형태의 이별’이다. 죽음 만큼 완전한 이별은 없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보고 만날 수 없고, 아무리 찾아가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런 슬픔을 겪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할수록 두렵고 가슴 저리고 아득해진다.

 

천년을 함께 해도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늘 죽음을 통한 이별의 연속이다.

이별은 삶의 일상이자 본질이다.

사랑할 때는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서로 사랑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

사랑은 오늘 하는 것이지 내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살고자 한다.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늘 하루의 만남과 그 축복’ 속에서 ‘영원’을 찾고자 한다.

 

‘사랑하는 깜비’의 남은 생을 반드시 책임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