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감기에 동반한 우울증]【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4. 8. 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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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동반한 우울증]【윤경변호사

 

나름대로 몸 관리를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부터 컨디션이 안 좋고 몸이 찌뿌둥하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목이 아프고, 재채기가 나온다.

전날 새벽에 선풍기를 끄지 않은 게 원인이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때는 감기를 별거 아닌 짜증나는 존재로 밖에 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걸리고 나니 스페인독감이 세계인구의 1/5을 사망케 했다는 공포감이 엄습한다.

 

재채기도 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채기를 한번 하는데, 난 항상 ‘2번의 연발 재채기’를 한다.

재채기는 엄청나게 강력한 신체의 경련으로 강도로 치면 오르가즘 다음 2위에 해당한다.

코에다 모형 풍력 터빈을 매달 수만 있다면, 재채기가 보통 발생시키는 에너지는 손수건을 찾을 때까지 소형 독서용 램프를 켜두기 위한 전력을 공급하기에 충분하다.

 

재채기는 ‘에’와 ‘취’로 나뉜다. ‘에’ 할 때 힘 없이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취’할 때 천둥치는 소리로 재채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트럼펫처럼 웅장하고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밤에도 화끈하고 열정적임을 반영하는 것이며, 하는 둥 마는 둥 신경 거슬리게 ‘휘’하는 소리를 내는 사람은 깜찍하고 소박한 즐거움에 만족해야 한다.

 

때로는 빛을 뚫어지게 응시하면 나올락 말락 하려던 재채기가 시원하게 나온다.

그러나 이 방법은 운전 중에는 절대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재채기를 너무 시원하게 했다가는 이게 살아 생전 하는 마지막 재채기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아프니 누구의 위로 한 마디라도 받고 싶다.

침대에 꼼짝 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심각한 소모성 질환’임에도 ‘간편한 병’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대형 휴지통 1개를 들고 침대로 직행하면서, 마치 치울 힘도 없었다는 듯 휴지통 근처에 구겨진 티슈를 마구 던져 놓았다.

누군가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하지만 “아빠,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자는구나.”라는 작은 아이의 한마디 밖에 듣지 못했다.

 

그마나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독감에 동반되어 나오는 허스키하며 섹시한 중저음의 목소리이다.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이지만, 내가 들어도 매력이 있다.

슬프게도 독감은 뇌에도 손상을 주기 때문에 이 허스키하고 매력 있는 목소리를 자기 연민에 빠진 헛소리로 떠들어 대는데 밖에 못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