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 2013)”]【윤경변호사】
<위조품은 진품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시네마 천국(1988)'의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위조품은 진품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버질 올드먼’이 한 말이다.
이 말이 사랑에도 적용될까?
예술 작품이라면 진품인지 아닌지 감정 평가를 의뢰할 텐데 사랑은 그게 아니니 말이다.
가짜 사랑에도 진심이 한 순간 깃드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인간의 감정은 예술작품 같은 거야. 위조 될 수 있는 거지. 원본과 비슷해 보이지만 위작일 수도 있네. 모든 걸 속일 수 있다는 말일세. 기쁨, 고통, 미움, 병, 회복, 사랑까지도….”
영화 전반에 깔린 아름다운 현악기의 선율은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특유의 기품으로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캐릭터의 심리 변화는 물론 압도적인 미장센 (Mise-en-Scène)까지 3박자가 합쳐진 몰입도 높은 영화다.
<배반의 상처>
두 대의 자동차가 고속도로에서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나는 남자 운전자가 몰던 차였고, 다른 하나는 여자 운전자가 몰던 자동차였다.
두 대의 자동차는 완전히 폐차 직전이 될 정도로 망가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두 운전자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간신히 차에서 빠져나온 두 사람,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남자이고 나는 여자이고,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차는 저렇게 완전히 찌그러졌는데 우리 두 사람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 생각해 보세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우리가 겪은 일이야말로 신의 뜻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어쩌면 신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맺어주시려고 일부러 일을 이렇게 만드신 것인지도 몰라요."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여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건 신의 뜻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자 여자가 말을 이었다.
"이거 아세요? 기적이 또 한 가지 있어요. 내 차는 저렇게 엉망이 되었지만 내 차 뒷좌석에 있던 와인 병은 깨지지 않고 저렇게 멀쩡하게 남아 있네요. 운명적인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서 와인 한 잔 하는 것은 어떨까요?"
여자는 와인 마개를 따서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와인 병을 받아들었다.
남자는 큰 사고를 당한 직후라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와인을 꿀꺽꿀꺽 들이켜기 시작 했다.
남자는 와인 병의 반을 단숨에 들이켜고 여자에게 병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여자는 와인은 마시지 않고 코르크 마개로 병을 다시 닫았다.
술기운이 오르기 시작한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왜, 마시지 않고 뚜껑을 닫는 거죠?"
여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일단 경찰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래요."
<배반은 진실하지 못한 삶의 결과이며, 성실하지 못한 사랑의 대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외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시골 촌놈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처음 상경할 때 외할머니께서 대전역까지 마중 나와 어수룩해 보이는 손자의 손을 잡으며 신신당부를 하였다.
"서울 여시 조심하거라. 남정네 홀려서 패가망신시키는 것이 서울 여시들이다."
영화 속 주인공 ‘버질 올드먼’이 사랑한 여자 ‘클레어 이벳슨’의 배반을 용서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반 당했을 때의 그 분노와 고통을 견디기는 매우 힘들다.
은혜를 원수로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에 대한 상실과 그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당한 배반감은 철저하게 영혼을 조각내 버린다.
배반의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가라 앉았다 싶으면 떠오르고, 잊혀졌다 싶으면 어느새 악어꼬리를 치켜세워 잿더미가 된 마음을 툭툭 친다.
한 번씩 툭툭 얻어맞을 때마다 아픔은 마냥 깊어간다.
하지만 예수님에게조차 ‘유다’라는 배반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어디 ‘유다’뿐이랴. ‘베드로’도 있다.
첫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예수님도 믿었던 제자에게 철저히 배반당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배반은 어쩌면 자신의 진실하지 못한 삶의 결과이며, 부족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랑의 대가일지 모른다.
유다를 용서한 '예수님의 눈빛'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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