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wine)을 좋아하는 데도 마시기는 너무 까다로워!]【윤경변호사】
<와인은 뭔가 알고 마셔야만 하는 걸까?>
젊었을 때는 술맛을 몰랐다.
그저 취하는 기분이 좋았고, 취하는 것으로 스트레스(stress)를 풀었다.
그런데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술맛을 알게 되었다.
30대에는 당시 양주 폭탄주가 유행인 까닭에 너무 많이 마셔 위스키(whisky) 향이 정말 싫었다.
그런데 지금은 위스키 스트레이트(Straight) 한 잔을 털어 넣었을 때 입 안에 퍼지는 향과 그 짜릿함이 너무 좋다. 그래서 위스키(whisky)를 온더락(On the Rocks)으로 마시지 않는다.
맥주(Beer)도 좋아한다. 부드러운 거품과 시원한 청량감 때문이다.
식사를 하면서 가장 즐기는 술은 역시 ‘레드 와인(Red Wine)’이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모든 음식에 어울릴 뿐 아니라 그 맛도 술 중에서는 으뜸이다.
그런데 맥주나 위스키를 마실 때는 아무도 술집에서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맛있어 좋아하면, 언제 어디서든 맥주나 위스키를 ‘눈치 안 보고’ 마실 수 있다.
그런데 레드 와인에 대해서는 ‘뭔가 알고 마셔야 하는 분위기’다.
내가 좋아하면 그만인데, 마시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고 신경이 거슬린다.
맥주는 그저 ‘맥주’지만, 와인은 ‘신앙’처럼 생각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맛에 다소 둔감한 편이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비싼 와인과 값싼 와인 맛을 구별하지 못한다.
양주 역시 마찬가지다. 위스키 향을 좋아하지만, 12년산과 30년산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단 한 번도 와인 전문샵(shop)에서 와인을 사 본 적이 없다.
항상 마트(Mart)에서 산다. 마트의 진열대는 내 생각과 어긋남이 없다. 진심으로 나의 결정을 돕는다.
무식한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가격에 따라 잘 정리되어 있어, 선택에 어려움이 없다.
미국 와인 품평회 1위를 차지한 와인인데도 가격은 1-2만 원선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고상하게 와인 마시는 법’>
와인을 사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주문하는 일이다.
난 소믈리에(sommelier)에게 절대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내 얼굴을 한번 훑어 본 후 “봉”이라는 것을 감지한 그들은 이상야릇한 와인을 권한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그들은 항상 이렇게 반박한다.
“이 와인은 비싸지 않아요. 손님의 취향이 비쌀 뿐! 고상한 취향의 고객에게만 권하는 와인입니다.”
내 고상한 와인 취향이 ‘싸구려’라고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한단 말인가.
그저 값비싼 취향을 인정하고 주문할 수밖에.
그래서 나는 항상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
메뉴판을 볼 때 우선 와인의 가격대를 본다. 주로 중간 가격대를 고른다.
그런 다음 그 것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는 확률을 예측한다.
어원이 분명하지 않는 프랑스 단어를 말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기침을 핑계 삼아 냅킨(napkin)을 얼른 입으로 가져 간다. 그러면 오케이(O.K.)다.
노련한 소믈리에(sommelier)라면 고객이 와인을 주문할 때 발음 따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고객의 두 번째 손가락이 메뉴판의 어느 위치를 가리키는지 주시할 뿐이다.
그 동안 나는 테이스팅(Tasting)을 권하는 소믈리에로 하여금 나를 존경하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한 모금 마신 후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내 생각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그들은 알아서 눈치 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라거나 “죄송합니다. 다른 것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라고 둘 중의 하나를 말하게 되어 있다.
그 다음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는 맞은 편에 앉은 상대방에게 와인에 대한 허풍을 떠는 것이다.
와인에 정통한 사람들이 맛을 보면서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은 ‘끝향’이라든가 맛이 남아 있는 ‘깊이’와 ‘길이’와 같은 참으로 까다로운 것들이다.
나에게 그 수준까지 이르는 길은 참으로 멀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가장 중요한 규칙은 ‘질문하는 사람이 우위에 선다’는 사실이다.
전문가와 함께 마시는 자리에서는 절대 의견을 말하지 말고 대신 항상 반문을 하라.
만약 단 한번이라도 “우와, 이거 완전 시뻘겋구먼!”과 같은 수준 이하의 발언을 내뱉게 되면 끝장이다.
그날 밤은 더 이상 구제할 방법이 없다.
정답은 “이 오묘한 빛깔을 보니 비 내리는 늦여름 숲 속에 물방울을 머금은 라스베리(raspberry)가 연상되는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다.
그러면 어떤 상대든 진땀을 흘리게 된다.
이처럼 색깔과 향에 대한 코멘트를 먼저 한 후 첫 번째 시음이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이때의 코멘트는 “지나간 세월 속에서 태양이 이 와인의 포도송이에게 베푼 일이란 실로 대단하군요!”다.
이 말은 환상적으로 들리고 언제나 잘 어울린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줄줄 나올 만한 몇 가지 문장을 반드시 외워 두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멘트를 끝내고 난 후 ‘시선을 허공에 두는 것’이다.
속으로 서른을 세면서 의미가 가득 담긴 듯한 얼굴로 뜸을 들여라.
어떤 경우라도 말을 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당신이 긴장의 끈을 잡고 있는 일분일초가 흐를수록 상대방은 의자 속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이렇게 생각한다. “제기랄! 저 작자는 아직도 감이 있군. 난 벌써 그 감을 느낀 지 까마득한데 말이야.”
그러면 승리다.
그런 뒤 막판 코멘트 한마디로 승리를 굳혀라.
“정말 이 묵직한 오크향이 뒷맛을 기분 좋게 받쳐 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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