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윤경/수필

[20년간의 동고동락 끝에 이루어진 존엄사]【윤경변호사】

윤경 대표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2016. 8. 1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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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동고동락 끝에 이루어진 존엄사]【윤경변호사】

 

광복절 연휴 중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 2016)”를 봤다.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난다.

남자 주인공 윌(Sam Claflin 분)이 ‘존엄사’를 선택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2년 전 바로 오늘 우리집 세탁기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1996년 미국 유학시절에 산 메이텍(Maytag) 봉세탁기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20년간 정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 맺힌 한을 풀어줄 때가 되었다.

위 영화를 보고 결정을 내렸다.

 

근데 기분이 묘하다.

물건도 오래되면 정이 드는 모양이다.

집을 4번이나 옮기면서 우리와 희노애락을 같이 했다.

두 놈을 한꺼번에 떠내 보낼 수 없어 가스건조기는 그대로 두었다.

 

새로 산 세탁기의 수명을 물었더니 ‘5년’이란다.

‘권장안전사용기간 5년’이라고 라벨에 박혀 있다.

이 세탁기는 정(情)도 들기 전에 우릴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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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맺힌 세탁기의 저주] 2014. 8. 15.

 

공휴일은 세탁기 돌리고 빨래 개는 날이다.

미국 유학 시절인 1996년에 구입한 메이텍(Maytag) ‘봉세탁기’와 ‘가스건조기’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검약해서가 아니고 18년 동안 사용했는데도 고장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겨워서 바꾸고 싶은데, 여전히 왕성하게 작동을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 오랜 기간 전기모터가 마찰력 때문이라도 닳아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오랜 기간 새 제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도록 튼튼하게 만든 회사라면, 그 회사는 지금은 망해서 없어졌을 것이다.

 

현대의 주거 공간에서 세탁기는 끊임 없이 박동하는 심장과도 같다.

그런 세탁기도 죽지 못하면, 한이 맺히는 모양이다.

 

가끔은 흰 옷을 넣었는데, 얼룩 옷이 되어 나온다.

흰색 옷을 세탁할 때 실수로 짙은 색 옷을 한 개 넣어 버렸을 때 얻어지는 결과물이라면 이해가 된다.

 

납득할 수 없는 불가사의는 남성용 양말 한 개의 실종이다.

세탁기에 벗어놓을 때에는 항상 한 켤레를 넣는다.

예외는 없다.

한쪽만 양말을 신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탁기와 건조기를 거치면, 양말 한 쪽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오랜 기간 ‘양말 미아보호소’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양말 미아보호소란 주인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슬픔에 가득 찬 짝 잃은 양말들을 다른 한 쪽이 발견될 때까지 모아 관리하는 곳이다.

수 없이 많은 미아들로 가득차 있다.

빨간 놈, 파란 놈, 찢어진 놈.

하지만 애처롭게 기다려도 다른 한쪽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다람쥐가 물어 갔을까?

강아지가 배가 고파서 먹었을까?

내 향긋한 발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가져갔을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납득이.

 

짝 잃은 불쌍한 양말들을 위해 ‘색이 다른’ 양말 대신 ‘같은 색’의 양말을 여러 켤레 샀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 원인을 드디어 찾아냈다.

“세탁기의 저주!”

 

세탁기가 한번 돌아갈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인의 다정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열심히 일하는 대가로 사랑하는 주인의 양말 한 쪽이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