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이해에서 온다.】《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삶을 경험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기차 안이었다.
두 아이가 좌석 사이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다른 승객들은 피곤한 얼굴로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참다 못한 한 사람이 외쳤다.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아이들을 방치하다니.
지금이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갔다가 어제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중인데, 이제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무리 해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객실 안 공기는 바뀌었다.
모든 판단이, 모든 불쾌함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때로 너무 쉽게 남을 단정하고, 너무 빨리 비난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닉 캐러웨이가 떠오른다.
“사람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항상 기억해라.
세상 사람 모두가 너처럼 유리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는 걸.”
삶은 누구에게나 불확실하고 고단하다.
지구라는 별은 시속 10만 킬로미터로 질주하고,
우리는 그 위에서 매일 흔들리는 운명을 살아낸다.
어느 날, 숲을 거닐다가 한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놀란 당신은 위협을 느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곧 개의 다리가 덫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당신의 감정은 분노에서 연민으로 바뀐다.
그렇다. 고통은 때때로 공격성의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혜로운 이들은 사람들의 이면을 먼저 본다.
상처를, 고통을, 애써 감춘 슬픔을.
그리고 말없이, 관대함으로 반응한다.
진짜 지혜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 사람의 오늘을, 그 사람의 상처를,
온전히 헤아려보려는 그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