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운명】《순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마라. 분노하라, 분노하라!》〔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난 운명, 행운, 인연을 믿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한 행운이나 운명은 모두 ‘삶’에 관한 것이었다.
‘죽음’에 관한 행운이나 운명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황망한 죽음’이 떠오른다.
☞ (신문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27/2018012700087.html
고속도로를 달리던 승용차의 유리창을 뚫고 갑자기 철판이 날아들어 운전자가 숨졌다.
조수석에 있던 아내는 경찰조사에서 “갑자기 퍽 소리가 나길래 남편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는데 반응이 없어 돌아보니 고개가 아래로 숙여지고 눈을 감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달리는 차량의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남편은 날라온 철판에 목이 찔려 즉사한 것이다.
늙어서 죽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젊어서 죽는 경우도 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젊은이나 노인이나 모두 죽기 마련이지만, 노인은 이미 삶의 즐거움을 맛보았으니 젊은이보다 사정이 낫다고 생각했다.
영혼도 하나뿐이고 죽음도 한번뿐이고 목숨도 하나뿐임을 기억한다면, 무관심해지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죽지 않았다는 말이고, 죽음이 찾아왔다면 그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황망한 죽음을 운명과 연결시키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적어도 죽음에 대한 의식적인 진화와 성찰은 가능하다.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는 순간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내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죽음에 도달하는 순간 모두 제로가 된다.
삶의 끝에서 아무도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학위를 가졌으며, 얼마나 큰 집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좋은 고급차를 굴리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삶이 더욱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이 강으로 내몰린 그 순간이다.
죽음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인생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웨일스의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는 이렇게 적었다.
“순순히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마라,
늙은이는 일생의 끝자락에 흥분하고 소리쳐야 한다;
분노하라, 빛이 죽어가는 것에 분노하라.”
죽음은 오히려 삶과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말해준다.
행복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무언가 시도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보고, 눈물을 펑펑 흘려본 적이 언제였는지?
만자레(mangiare)! 칸타레(cantare)! 아마레(amare)!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라.
살고, 사랑하고, 춤추고, 배우고, 경험하며 느껴보자.
이것이 우리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