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남용의 금지, 신의칙<소멸시효의 남용, 지상물 철거청구와 권리남용,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 권리행사의 금지, 실효의 원칙, 신의칙 적용의 한계>】《소멸시효남용의 효과(권리행사의 장애상태가 해소된 때,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 상대적 소멸설과 절대적 소멸설》〔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법률사무소〕
1. 소멸시효의 남용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381-389 참조]
가. 상대적 소멸설과 절대적 소멸설
⑴ 상대적 소멸설
상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완성한 경우 권리의 소멸로 인하여 직접 이익을 받을 자에게 시효원용권이라는 실체법상 형성권이 발생하므로, 이러한 시효원용권의 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권리의 남용’을 이유로 그 권리행사를 배척할 수 있다.
⑵ 절대적 소멸설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완성한 경우 곧바로 권리가 소멸하기 때문에 소멸시효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 이를 배척하기 위한 이론구성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서도 이른바 ‘규범의 남용’ 또는 ‘자기에게 유리한 법적 지위의 남용’ 문제로 보아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할 수 있다고 한다.
나. 대법원 판례의 태도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①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②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또는 ③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④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다.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4가지 유형
⑴ 제1유형: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경우
㈎ 제1유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채무자가 의도적으로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전형적인 권리남용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제1유형으로서 권리남용이 긍정된 사례로는 ① 채무자가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한 경우[대법원 2003. 7. 25. 선고 2001다60392 판결 : 교도관(가해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수형자(피해자)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지만, 수형자가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우에 대한 각종 소송서류 등을 작성하기 위한 집필허가신청을 하였는데 교도관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도관들의 사용자의 지위에 있는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함], ② 채무자가 권리발생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채권자에게 허위의 사실을 알려 준 경우(대법원 1999. 12. 7. 선고 98다42929 판결), ③ 채무자가 채권자로 하여금 권리행사를 미루도록 유인한 경우[대법원 1997. 12. 12. 선고 95다29895 판결(행정절차 등을 거쳐 지급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경우), 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6다18129 판결(임의로 변제할 듯한 태도를 보인 경우), 대법원 2014. 7. 10. 선고2013두8332 판결(부당하게 권리행사의 철회를 권유한 경우)]가 있다.
㈐ 권리남용이 부정된 사례로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잘못된 신뢰에 특별한 기여를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대법원 2006. 8. 24. 선고 2004다26287 판결 : 상속채무를 부담하게 된 상속인의 행위가 단순히 피상속인에 대한 사망신고 및 상속부동산에 대한 상속등기를 게을리 함으로써 채권자로 하여금 사망한 피상속인을 피신청인으로 하여 상속부동산에 대하여 당연 무효의 가압류를 하도록 방치하고, 그 가압류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을 채권자에게 알리지 않은 정도에 그치고, 그 외 달리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저지하고 방해할 만한 행위에 나아간 바 없다면 위와 같은 소극적인 행위만을 문제삼아 상속인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
⑵ 제2유형: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
㈎ 판례는 이제까지 권리행사에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소멸시효기간의 개시나 진행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원칙을 견지하여 왔고, 우리 민법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 사실상의 장애사유 중 ‘일정한 객관적 장애사유’에 한하여 이를 소멸시효 완성의 정지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2유형의 의미를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권리자의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면, 우리 민법의 기본결단, 즉 권리자에게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소멸시효 정지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소멸시효의 완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입장과 정면에서 배치되는 문제가 있다.
㈏ 따라서 제2유형에 해당한다고 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권리자의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여기에 추가로 이를 의무자의 불이익으로 돌릴 수 있는 사정, 이를테면 권리자의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데에 의무자 측이 일정한 기여를 한 사정 등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판례도 “특히 채권자에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사정을 들어 그 채권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하여 변함없이 적용되어 왔던 법률상 장애·사실상 장애의 기초적인 구분기준을 내용이 본래적으로 불명확하고 개별 사안의 고유한 요소에 열려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일반적인 법원칙으로서의 신의칙을 통하여 아예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더욱 주의를 요한다.”라고 판시하여 이 유형이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것을 크게 경계하고 있다(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44327 판결 참조.).
㈑ 다만, 판례는 ‘의무자 측의 일정한 기여’라는 것을 반드시 적극적이고 비난받을 만한 언동을 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지는 않다(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17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참조). 이 유형은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기 어려운 객관적인 사정이 있음에도 소멸시효의 기산점 및 진행에 관한 해석이나 소멸시효 정지에 관한 법규정 및 해석만으로는 권리자의 합리적 이익을 충분히 배려할 수 없는 경우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것이므로, 이 유형의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리자의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 의무자 측의 적극적이고 비난받을 만한 언동에 의한 경우로 한정하여 이를 인정할 것은 아니다.
㈒ 제2유형으로서 권리남용이 긍정된 사례로는,
① 권리의 발생 여부가 모호하여 누구도 권리의 존재를 알기 어려웠던 경우
◎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 근로자들이 퇴직한 때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한 뒤에 취업규칙 부칙의 규정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회사를 상대로 이에 따른 추가퇴직금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 사안에서, 관련 사건에서 그 취업규칙 부칙의 규정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근로자들이나 회사 모두 법규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취업규칙 부칙의 규정이 정당하다고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등의 이유로, 그 대법원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는 원고 근로자들이 추가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 피고 회사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1965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나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까지도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 내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온 사정 등을 고려하여 이 사건 소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② 사건에 대한 은폐 또는 사건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재심판결이나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 또는 일정한 연구성과가 나오기 전에는 사건의 진상을 알기 어려운 경우
◎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70189 판결 : 대한민국 산하 육군 연대장이던 갑이 6·25 전쟁 중이던 1950. 8.경 정당한 사유 없이 대대장 을을 즉결처분에 의하여 총살한 뒤 을이 군사법원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것처럼 판결문 등을 위조하였는데, 을의 유족들이 2003. 12.경 재심판결을 통해 판결문 위조사실을 밝혀낸 뒤 대한민국을 상대로 을의 사망경위를 은폐·조작하여 유족들의 인격적인 법익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다.
◎ 대법원 2011. 6. 30. 선고 2009다72599 판결 : 대외적으로 좌익전향자 단체임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국가가 조직·관리하는 관변단체 성격을 띠고 있던 국민보도연맹 산하 지방연맹 소속 연맹원들이 1950. 6. 25. 한국전쟁 발발 직후 상부의 지시를 받은 군과 경찰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그들 중 일부가 처형대상자로 분류되어 집단 총살을 당하였고, 이후 정부가 처형자 명부 등을 작성하여 3급 비밀로 지정하였는데, 위 학살의 구체적 진상을 잘 알지 못했던 유족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있었던 2007. 11. 27. 이후에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다.
◎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다36091 판결 : 신병훈련을 마치고 부대에 배치된 군인이 선임병들에게서 온갖 구타와 가혹행위 및 끊임없는 욕설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전입한 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1991. 2. 3. 부대 철조망 인근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하였는데, 유족들은 위 자살사고가 선임병들의 심한 폭행·가혹행위 및 이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대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2009. 3. 16. 자 진상규명결정이 내려짐으로써 비로소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2009. 3. 16. 전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③ 공공기관의 일반적인 업무처리 과정이 고려된 경우
◎ 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173 전원합의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근로자가 휴업급여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한 뒤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으로 인하여 취업하지 못한 기간의 휴업급여를 청구한 사안에서, “근로자가 입은 부상이나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요양급여 신청의 승인 여부 및 휴업급여청구권의 발생 여부가 차례로 결정되고,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의 적법 여부는 사실상 근로자의 휴업급여청구권 발생의 전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점,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한 경우에 한하여 휴업급여를 지급하여 왔고 요양급여 신청을 승인하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휴업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 점, 그러므로 요양급여의 신청이 승인되지 않은 경우에는 휴업급여를 청구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에 의하여 거절될 것이 명백하여 요양불승인처분을 받은 근로자로서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휴업급여를 청구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점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에서 비록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원고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바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는 요양불승인처분에 대한 취소판결을 받기 전에는 휴업급여를 청구하더라도 휴업급여가 지급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의 판결확정시까지 별도로 피고에게 휴업급여를 청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바, 이와 같은 상황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채권자가 권리행사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원고에게는 객관적으로 이 사건 휴업급여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러한 경우까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여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
④ 심신상실자에 대하여 특별한 배려를 한 경우
◎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9다44327 판결은, 교통사고로 인하여 심신상실의 상태에 빠진 甲이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8년이 지난 뒤에서야 그 무렵 취임한 법정대리인(후견인)을 통하여 乙 보험회사를 상대로 그 교통사고를 원인으로 한 상해보험금 지급을 청구한 사안에서(보험금청구권은 원칙적으로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2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 보험금청구권에 대하여는 2년이라는 매우 짧은 소멸시효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보험자 스스로 보험금청구권자의 사정에 성실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하는 여러 장애사유 중 권리자의 심신상실상태에 대하여는 특별한 법적 고려를 베풀 필요가 있다는 점, 甲이 보험사고로 인하여 의식불명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그 사고 직후부터 명확하게 알고 있던 乙 보험회사는 甲의 사실상 대리인에게 보험금 중 일부를 지급하여 법원으로 부터 금치산선고를 받지 아니하고도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乙 보험회사가 주장하는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여 甲의 보험금청구를 인용한 원심판단을 수긍하였다.
⑤ 당사자 사이에 계속적인 계약관계가 유지된 경우
◎ 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7다252987, 252994 판결 : 유제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갑 주식회사의 대리점을 운영하는 을 등이 갑 회사를 상대로 갑 회사가 을 등에게 제품의 구입을 강제하였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에서, 을 등이 갑 회사의 대리점 영업을 계속한 기간에는 객관적으로 갑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등의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고, 그러한 사실상의 장애사유는 을 등이 갑 회사와 거래관계가 종료한 날 해소되었다고 보아, 을 등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위 거래종료일로부터 진행한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 반면에 권리남용이 부정된 사례도 다수 보인다.
◎ 대법원 2010. 9. 9. 선고 2008다15865 판결은, 대법원이 2004. 4. 22. 선고 2000두7735 전원합의체 판결로 임용기간이 만료된 국공립대학 교원에 대한 재임용거부처분에 대하여 이를 다툴 수 없다는 종전의 견해를 변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대법원의 종전 견해는 국공립대학 교원에 대한 재임용거부처분이 불법행위임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나아가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한 특별사정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⑶ 제3유형 :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한 경우
제3유형은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채무를 승인하였으나 시효완성 사실을 모르고 채무를 승인한 경우와 같이 시효이익의 포기로 볼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판례는 시효완성 후에 채무를 승인한 때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하고 있어 이 유형이 적용될 여지는 많지 않다.
소멸시효에 관하여는 제3유형으로서 ① 권리남용이 긍정된 사례는 보이지 않고(대법원 1997. 2. 11. 선고 94다23692 판결은 이른바 삼청교육대 사건에서 “원심은 역시 제1심판결의 이유를 인용하여 피고가 1988. 12. 3. 국방부장관의 명의로 국민화합 차원에서 삼청교육 관련자들에 대하여 그 피해를 보상하기로 하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한 사실은 인정되나, 그 담화 내용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승인함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또한 위 담화문의 발표가 있다 하여 피고의 이 사건 소멸시효 주장이 금반언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대 이 사건 기록상 1988. 11. 26. 당시의 대통령이 이른바 삼청교육과 관련한 사상자에 대하여 신고를 받아 피해보상을 할 것임을 밝히는 내용의 특별담화를 발표하였고, 이어서 당시 국방부장관 오자복이 같은 해 12. 3. 대통령의 위와 같은 시정방침을 알리는 한편 그에 따른 보상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위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일정한 기간 내에 신고할 것을 공고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대통령의 위와 같은 담화는 사법상의 법률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적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시정방침을 밝히면서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로써 사법상으로 위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채무를 승인하였다거나 또는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할 것이고, 대통령에 이어 국방부장관이 위와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고 하여 그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며,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입법조치 등을 통하여 적절한 피해보상을 해 줄 정치·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금반언의 원칙에 위배된다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라고 판시하여, 피고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② 취득시효에 관하여는 이를 긍정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1998. 5. 22. 선고 96다24101 판결 : 시효완성 후에 그 사실을 모르고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기로 하였다 하더라도 이에 반하여 시효주장을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는다).
⑷ 제4유형: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 위 사유는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큰 상태에서 채무자가 동일하게 시효가 완성된 다른 채권자에게는 임의로 변제를 하면서 당해 채권자에 대해서만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 시효 완성을 인정하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등의 경우를 의미한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당해 사안에서는 적용을 부정함)].
㈏ 제4유형으로서 권리남용이 긍정된 사례로는 국가에 의하여 간첩으로 조작된 후 세월이 흘러 재심소송을 거쳐 국가배상청구를 한 경우가 있다(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3950 판결).
라.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의 경우
국가에게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유만으로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고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하려면 일반 채무자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서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그와 같은 일반적 원칙을 적용하여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을 배제하는 것은 법해석에 있어 또 하나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을 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그 적용에는 신중을 기초하여야 한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등).
마. 소멸시효 남용의 효과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권리자는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때부터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다90194, 90200 판결).
⑴ 권리행사의 장애 상태가 해소된 때
① 권리행사의 장애 상태가 해소된 시점과 관련하여, 판례는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한 사람이 그에 이은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검찰에서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았다가 나중에 재심절차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경우, 이러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판시하면서, 검찰이 위와 같이 직권남용, 감금 등 고소사건에 관하여 ‘혐의 없음’ 결정을 하였고, 피해자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른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이나 그 후 피해자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그 통보를 받았다는 사정은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6다258148 판결).
② 이처럼 불법구금이나 고문을 당하고 공판절차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감금 등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혐의 없음’ 결정까지 받은 경우에는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국가배상책임을 청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채무자인 국가가 그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⑵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 행사
㈎ 이 경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 원인, 채권자의 권리행사가 지연된 사유 및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기까지의 경과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12. 5. 선고 2017다252987, 252994 판결).
㈏ 다만 소멸시효 제도는 법적 안정성의 달성 및 증명곤란의 구제 등을 이념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 적용요건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시효 완성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제한에 그쳐야 한다.
㈐ 따라서 위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여 단기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① 대법원 2013. 12. 12. 선고 2013다201844 판결 :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 등으로 수집한 증거 등에 기초하여 공소가 제기되고 유죄의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재심사유의 존재 사실이 뒤늦게 밝혀짐에 따라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된 후 국가기관의 위법행위 등을 원인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재심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채권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채무자인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다만 채권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장애가 해소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6개월의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여야 한다. 이때 그 기간 내에 권리행사가 있었는지는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다. 다만 재심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채권자로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 앞서, 그보다 간이한 절차라고 할 수 있는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하 ‘형사보상법’이라 한다)에 따른 형사보상을 먼저 청구할 수 있다. ‥ 따라서 채권자가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지는 아니하였더라도 그 기간 내에 형사보상법에 따른 형사보상청구를 한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항변을 저지할 수 있는 권리행사의 ‘상당한 기간’은 이를 연장할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할 것이고, 그때는 형사보상결정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면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 기간은 권리행사의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객관적으로 소멸된 재심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② 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다90194, 90200 판결 :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더라도 2007년 초경에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이 사건 ○○리 토지의 소유권에 관한 분쟁이 생겼고, 그러한 상태에서 피고는 2008. 3.경 원고 교회의 담임 목사직에서 은퇴하였다는 것이므로, 늦어도 2008. 3.경에는 원고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원고는 그로부터 민법상 시효정지기간이 훨씬 지난 2009. 3. 19.에 이르러서야 피고에게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가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 한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는 매우 특수한 개별 사정이 있어 그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가 있으나, 그 경우에도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을 넘을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① 대법원 2013. 5. 16. 선고 2012다202819 전원합의체 판결 : 이 사건의 경우에는,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된 후 2009. 4. 6. 망인들에 대한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졌지만, 다른 한편 정리위원회는 2009. 8. 21. 국회와 대통령에게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건의한 후 2010. 6. 30. 활동을 종료한 다음 과거사정리법 제32조에 따라 2010. 12. 국회와 대통령에게 보고한 종합보고서를 통해서도 같은 내용의 건의의견을 제시하였다. 국회에서도 2011. 11. 17.「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1813885호)이 발의되었으나, 그 후 당해 국회의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도 있다. 즉 이 사건에는 과거사정리법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을 받은 원고들이 과거사정리법의 규정과 정리위원회의 건의 등에 따라 피고가 그 명예회복과 피해 보상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소가 정리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비교적 단순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일로부터 2년 10개월이 경과한 2012. 2. 14.에 제기되기는 하였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진실규명결정 이후 단기소멸시효의 기간 경과 직전까지 피고의 입법적 조치를 기다린 것이 상당하다고 볼 만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할 것이고, 이를 감안하면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② 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39 판결 : 이른바 고엽제 사건에서, “고엽제 제조회사인 피고들이 고엽제에 함유된 독성물질인 TCDD에 의하여 생명·신체에 위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는 사정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음에도 위험방지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아니한 채 고엽제를 제조·판매하여 경제적 이익을 취한 점, 그 결과 베트남과 미국 정부의 파병 요청에 따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우리나라 군인들이 아무런 잘못 없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 점,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고엽제의 후유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탓에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복무 종료후 귀국하여 신체에 염소성여드름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그 이전에는 그것이 고엽제로 인하여 생긴 질병이라는 것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점, 또한 염소성여드름은 일반적인 피부질환과 구별하기 어려워 의료기관에서 그 피부질환이 염소성여드름이라고 진단받고 그 질병이 고엽제와 관련성이 있다고 고지받기 전에는 고엽제에 노출됨으로써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가 극히 곤란하였던 점, 베트남전 복무 종료 시부터 장기간이 경과한 후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하더라도 피고들이 그로 인하여 이 사건 소송에서 증거자료를 상실하는 등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지장을 받게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 사건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과관계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성과물이 축적되어 온 점 등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정들과 그 밖에 원심이 판시한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장기소멸시효기간 경과 선정자들이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하여 자신의 피부 질환이 염소성여드름에 해당하고 그것이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고엽제에 노출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됨으로써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존재에 관하여 인식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이들에게 객관적으로 피고들을 상대로 고엽제 피해와 관련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러므로 장기소멸시효기간 경과 선정자들이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후 상당한 기간 내에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였다면, 피고들이 이들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한 후 위와 같이 가압류를 신청하였거나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선정자들 중 원심판결 별지 제3목록 기재 선정자 1,725, 선정자 6,586, 선정자 9,742를 제외한 나머지 선정자들의 경우에는, 베트남전 당시 살포된 고엽제가 미국에 소재하는 피고들에 의하여 제조·판매된 것이어서 국제재판관할과 준거법에 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였고, 고엽제에 함유된 TCDD의 인체 유해성, 고엽제의 결함 등에 관한 증거자료의 상당수가 미국에 소재하고 있어, 위 나머지 선정자들 개개인이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 후 민법상 시효정지의 경우에 준하는 단기간 내에 피고들을 상대로 가압류신청을 하거나 소제기를 하는 등 권리행사를 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던 점 등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었고, 이를 감안하면 위 나머지 선정자들은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최대 3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하여다, 한편, 선정자 1,725, 선정자 6,586, 선정자 9,742는 고엽제후유증환자로 등록함으로써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존재를 인식하였고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행사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할 것이어서 객관적으로 권리행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장애사유도 소멸하였다고 할 것인데, 그때부터 3년이 경과한 후에야 가압류를 신청하거나 가압류 신청 없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하는 등 권리행사를 한 것이므로, 이들에 대한 피고들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③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230535 판결 : 한센병 환자의 국가배상 청구사건에서, “원심은 제1심 판결 이유를 인용하여, 한센인피해사건법에 따라 2010. 6. 24.부터 2012. 6. 27.까지 사이에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진 사실, 그런데 원고들에 대한 피해자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인 2009. 8. 6. 이미 한센인피해사건법에 보상금 지급규정 등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가 제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사실, 위 법률에 따라 설치된 한센인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도 2013년경에 발행한 보고서에서 한센인피해사건법의 개정 등을 통한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을 촉구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이를 기초로 하여 원심은, 한센인피해사건법에 의한 피해자 결정을 받은 원고들에게는 그 결정 시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한 다음, 나아가 원고들이 피고의 입법적 조치를 통한 피해보상 등을 기대하였으나 피고가 아무런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자 비로소 피고를 상대로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사정이 있으므로, 한센인피해사건 피해자 결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제할 만한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행사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앞서 본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소멸시효 완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
㈒ 여기서 ‘개별 사건에서 매우 특수한 사정이 있어 상당한 기간을 연장하여 인정하는 것이 부득이한 경우’라 함은, 채무자인 국가가 입법 등을 통하여 피해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보상을 한다거나 채권자의 보상 요구에 응하여 기존의 법령·제도에 따른 보상절차를 진행하는 등 피해보상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채권자가 이를 기다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경우 또는 채권자가 다른 법령에 의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에 갈음할 수 있는 보상을 청구함으로써 적어도 그 절차의 종결 시까지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등 채권자의 손해배상청구권 행사가 6개월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정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6. 12. 27. 선고 2016다243696 판결).
2. 지상물 철거청구와 권리남용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24-27 참조]
토지 소유자(원고)가 그 지상에 점유할 권리 없이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피고)을 상대로 그 지상물의 철거 및 대지의 인도를 청구하는 경우 지상물의 소유자가 하는 최후의 항변이다.
가. 권리남용의 요건
⑴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남용 금지 원칙에 관하여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라고 정한다.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권리 행사자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도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권리를 행사하거나 권리 행사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비교하여 권리 행사가 사회 관념에 비추어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정도로 막대한 손해를 상대방에게 입히게 한다거나 권리 행사로 말미암아 사회질서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0다254280 판결).
⑵ 판례 중에는 “권리의 행사가 주관적으로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입히려는 데 있을 뿐 이를 행사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고, 객관적으로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으면, 그 권리의 행사는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아니하고, 그 권리의 행사가 상대방에게 고통이나 손해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관적 요건은 권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결여한 권리행사로 보여지는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추인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기도 하였으나(대법원 2003. 11. 27. 선고 2003다40422 판결 등), 최근의 판례들은 이러한 주관적 요건을 반드시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⑶ 소유권에 기초를 둔 토지 인도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는 토지 취득 경위와 이용현황 등에 비추어 토지 인도에 따른 소유자의 이익과 상대방의 손해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토지 소유자가 인도 청구를 하는 실제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 소유자가 적절한 가격으로 토지를 매도해 달라는 상대방의 요구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하며 상대방에게 부당한 가격으로 토지를 매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 토지에 대한 법적 규제나 토지 이용현황 등에 비추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토지 인도로 말미암아 사회 일반에 중대한 불이익이 발생하는지, 인도 청구 이외에 다른 권리구제수단이 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0다254280 판결 : 도로로 이용되고 있는 토지의 소유자인 갑이 도로 관리청인 을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토지 인도를 구한 사안에서, 위 토지는 오래전부터 도로로 이용되었고 갑은 경매절차에서 이를 알면서 매수한 점, 갑은 을 지방자치단체에 높은 금액의 보상금을 요구하였으나 을 지방자치단체가 응하지 않자 토지 인도를 구한 점, 위 토지는 도로의 일부로 고가도로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차량 통행에 필수적이고 통행량도 많은 점, 위 토지가 인도되면 교통에 큰 지장이 초래되는 반면 주변 현황에 비추어 갑이 이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갑의 토지 인도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
나. 권리남용에 관한 판례의 태도
⑴ 권리남용이 아니라고 한 사례
대법원 2003. 2. 14. 선고 2002다62319, 62326 판결 : 원심은, 원고(반소피고, 이하 '원고'라고만 한다) 박○용과 소외 나△광은 1992. 12. 31. 주식회사 갑을상호신용금고에게 그들의 공유인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채권최고액을 금 2억 원으로 한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등기를 경료해 주었고, 당시 이 사건 토지는 나대지 상태였던 사실, 원고 박○용은 1993. 4.경 관할관청으로부터 이 사건 토지에 지상 4층 건물의 건축허가를 받고 1993. 7. 23. 신축공사에 착공하여 1999. 4.경 이 사건 건물을 완공한 사실, 원고 김♧관은 1994. 10. 말경(신축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고 박○용으로부터 이 사건 건물 중 1층을 분양받아 그 대금을 납부한 다음 그 이래 현재까지 이를 점유·사용하여 오고 있는 사실, 한편 피고(반소원고, 이하 '피고'라고만 한다)는 이 사건 근저당권자의 신청에 의하여 진행된 임의경매절차에서 1994. 11. 28. 이 사건 토지를 금 2억 1,000만 원에 낙찰받아 그 무렵 낙찰대금을 완납하였고, 1995. 2. 6.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친 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가 임의경매절차에서 그 지상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건물이 신축중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사건 토지를 낙찰받은 다음 특별한 사정도 없이 이 사건 건물의 철거를 구하는 것은 토지의 소유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건물의 손실이 월등히 많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므로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원고들의 항변에 대하여, 원고들의 주장과 같은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그 소유 토지 지상의 건물철거를 구하는 것이 권리남용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배척하고, 피고의 이 사건 토지 인도 및 이 사건 건물철거의 반소청구를 받아들였다. …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건물의 시가는 금 7억 원 정도임에 비하여 이 사건 토지의 낙찰가는 금 2억 1,000만 원에 불과하고, 이 사건 건물의 철거에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며 그 철거는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될 것이기는 하나, 이 사건 건물의 철거로 인한 피고의 이익과 원고들의 손해 간에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권리남용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정, 즉 이 사건 토지는 도시계획도로에 편입된 106㎡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어 피고가 이를 다른 용도에 사용할 수 있는 점, 원고 박○용이 피고의 경락사실을 알고서도 이 사건 건물의 신축공사를 중단하지 않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행한 점, 이 사건 건물의 철거가 사회일반의 공공적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점, 원고 박○용이 이 사건 건물철거 이외의 방법으로 피고의 피해회복을 위하여 성의 있는 노력을 하였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피고가 부당한 이익의 획득을 목적으로 이 사건 철거청구를 한다거나 원고들에게 이 사건 토지를 부당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거나 또는 피고가 원고들에게 이 사건 토지를 고가에 매각할 목적으로 이 사건 토지를 경락받았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의 이 사건 반소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것이므로, 같은 취지의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권리남용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⑵ 권리남용이라고 한 사례
대법원 2003. 11. 27. 선고 2003다40422 판결 : 기록에 의하면, 원고 소유의 이 사건 토지는 북서 및 남동 방향의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잡종지 24,144㎡로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데, 피고가 설치한 이 사건 송전선은 지상 30m의 높이로 이 사건 토지 중 북서쪽 모서리의 51㎡ 면적인 직각삼각형 부분만을 침범하고 있을 뿐이며, 이 사건 토지의 감정가격은 2002년 현재 ㎡당 37,000원으로서, 위 51㎡ 부분의 가격은 1,887,000원이고, 같은 부분의 구분지상권에 상응하는 월 임료는 630원 정도에 불과한 사실, 피고는 1996. 1.경부터 1998. 12.경까지 사이에 당진-신서산 송전선로 건설사업에 따라 이 사건 송전선 등을 설치한 다음, 그 직후인 1999. 2. 11.경 원고에게 손실보상 협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그 송전선 최외측으로부터 수평거리 3m를 적용하여 그 편입면적을 148㎡로 산정하고 2개 감정기관의 평가액을 산술평균한 1,531,800원을 보상금으로 제시하였으며, 이 사건 토지 이외의 석문면 일대의 다른 토지들에 관하여는 주민대책위원회의 요구에 의해 1999. 2. 23.과 2. 24.의 양일간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기준에 의한 보상금을 지급하였던 사실, 그러나 원고는 피고의 위와 같은 협의요청을 거부한 채 이 사건 토지 및 이에 접한 원고 소유의 위 교로리 839-1 잡종지 합계 약 8,600평의 시가가 이 사건 송전선 및 그 주변의 철탑 등으로 말미암아 하락하였다는 등의 막연한 이유를 들어, 피고에 대하여 7억 8,000만 원 가량의 보상금을 요구하다가 피고가 이에 응하지 않자 이 사건 송전선의 철거 등을 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고, 원심 변론 종결일 무렵에는 최소한의 보상금으로 12억 원의 거액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 이 사건 송전선은 대전과 서해안 지역에 전원을 공급하는 국가기간시설의 일부로서 이를 철거하고 송전선을 이설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손실이 예상되는 반면, 이 사건 송전선이 철거되지 않더라도 원고가 이 사건 토지를 이용함에 있어서 별다른 지장을 받지는 않는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 아래에서는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원고의 이 사건 청구 중 송전선철거청구 부분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다. 지상물철거청구가 권리남용으로 인정되는 경우의 법률관계
⑴ 토지 소유자의 지상물 철거 및 대지 인도 청구
기각될 것이다. 다만, 원고의 토지 소유권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⑵ 토지 소유자의 부당이득반환청구 또는 불법점유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가능하다. 원고의 청구가 권리남용이라 해서 토지의 소유권까지 상실하는 것은 아니고, 또한 피고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사용·수익할 수 있는 권원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⑶ 지상물의 소유자가 토지의 소유자에게 토지에 관한 용익권(지상권 또는 임차권)의
설정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토지의 소유자는 그 토지 위에 지상물이 존재하는 동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상물의 소유자로부터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 뿐이므로, 신의칙상 지상물 소유자의 위와 같은 청구에 승낙할 의무가 있다고 볼 것이다.
⑷ 지상물의 소유자가 토지의 소유자에게 토지의 매도를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이는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토지 소유자는 나중에라도 당해 토지를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있고 그때에는 이를 위해 지상물의 철거를 청구하더라도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을 것인데, 토지 소유자의 이러한 이용가능성을 법률적 근거 없이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⑸ 토지의 소유자가 지상물의 소유자에게 토지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
토지의 소유자로서는 지상물의 소유자로부터 계속해서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금을 받느니 차라리 지상물의 소유자에게 당해 토지를 매도해 버리는 것을 원할 수 있다. 그러나 토지소유자의 매수청구권을 인정한다면 지상물의 소유자는 일시에 매매대금을 전액 납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데 법률적 근거 없이 지상물의 소유자에게 그러한 불이익을 과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라. 공로에 대한 인도·철거·통행금지청구와 권리남용
⑴ 토지 소유자의 공로 철거, 점유 이전, 통행금지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할 여지 크다.
어떤 토지가 그 개설경위를 불문하고 일반 공중의 통행에 공용되는 도로, 즉 공로가 되면 그 부지의 소유권 행사는 제약을 받게 되며, 이는 소유자가 수인하여야 하는 재산권의 사회적 제약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로 부지의 소유자가 이를 점유ㆍ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로로 제공된 도로의 철거, 점유이전 또는 통행금지를 청구하는 것은 법질서상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권리남용’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3. 9. 28. 선고 93다26076 판결 등 참조).
◎ 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다229239 판결 : 어떤 토지가 그 개설경위를 불문하고 일반 공중의 통행에 공용되는 도로, 즉 공로가 되면 그 부지의 소유권 행사는 제약을 받게 되며, 이는 소유자가 수인하여야 하는 재산권의 사회적 제약에 해당한다. 따라서 공로 부지의 소유자가 이를 점유·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로로 제공된 도로의 철거, 점유 이전 또는 통행금지를 청구하는 것은 법질서상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권리남용’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3. 9. 28. 선고 93다26076 판결 등 참조).
⑵ 공로로 인정되는 경우 토지 소유자는 여전히 토지 점유자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할 수는 있으나, 인도청구 등은 권리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인도청구를 ‘권리남용’으로 배척하는 이유는, 인도청구의 요건사실인 ‘원고의 소유’, ‘피고의 점유’가 모두 인정되고 피고의 항변사유인 ‘점유할 권원’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도청구를 배척할 방법이 권리남용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⑶ 따라서 공로 부지 소유자의 부지인도ㆍ도로철거ㆍ통행금지 등 청구는 원칙적으로 기각된다. 그 이유는 소유권 행사가 ‘권리남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권리남용은 본래 예외적으로 인정되지만, 공로에 관하여서는 권리남용이 오히려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남용에 해당되는지에 관한 사실관계가 자세하고 복잡하게 심리·판단되기는 하지만. 판례의 결론은 늘 ‘권리남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3.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 권리행사의 금지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27-29 참조]
가. 의의
⑴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말하는 것으로서,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1991. 12. 10. 선고 91다3802 판결, 대법원 2006. 5. 26. 선고 2003다18401 판결,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5. 3. 20. 선고 2013다88829 판결 등 참조).
⑵ 이른바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행위의 금지, 금반언의 원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한 대항력 있는 임차권을 가진 주택임차인이 임대인의 부탁(주택의 담보가치를 높이기 위해)으로 그 주택에 관하여 저당권을 취득하려는 자에게 대항력 있는 임차권이 없다는 각서를 써준 후, 나중에 그 저당권자가 그 주택에 관하여 임의경매를 신청하여 스스로 매각을 받아 임차인에게 그 주택의 인도를 청구하자, 임차인이 그때 비로소 매수인에게 임차권의 대항력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매수인이 매각을 받을 때까지 그 주택에 관하여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경우(예컨대 매각물건명세서나 현황조사보고서에도 그러한 기재가 없는 경우)에는 임차인의 이러한 대항력 주장은 선행행위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1987. 11. 24. 선고 87다카1708 판결, 대법원 2000. 1. 5. 자 99마4307 결정 등 참조).
다만, 위 판례들은 저당권자가 직접 매각을 받은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제3자가 매각을 받은 경우까지 임차인의 대항력 주장이 선행행위에 반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있었는데, 대법원 2016. 12. 1. 선고 2016다228215 판결은 “근저당권자가 담보로 제공된 건물에 대한 담보가치를 조사할 당시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 그 임대차 사실을 부인하고 그 건물에 관하여 임차인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무상임대차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고, 그 후 개시된 경매절차에 그 무상임대차 확인서가 제출되어 매수인이 그 확인서의 내용을 신뢰하여 매수신청금액을 결정하는 경우와 같이, 임차인이 작성한 무상임대차 확인서에서 비롯된 매수인의 신뢰가 매각절차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비록 매각물건명세서 등에 위 건물에 대항력 있는 임대차 관계가 존재한다는 취지로 기재되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이 제3자인 매수인의 건물인도청구에 대하여 대항력 있는 임대차를 주장하여 임차보증금반환과의 동시이행의 항변을 하는 것은 금반언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라고 판시하여 이를 긍정하였다.
⑶ 요건
①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그 권리행사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7다258381 판결 : 甲이 국방경비법 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형이 집행된 후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확정되었고, 이에 乙을 포함한 甲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지급받았으며, 乙은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을 청구하여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았는데, 국가가 형사보상금 지급이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6조 제2항에 반하는 이중지급이라고 주장하며 乙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을 구한 사안에서, 형사보상금을 이중지급이라는 이유로 반환하여야 한다면 국가의 손해배상 및 형사보상금 지급이 정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믿은 乙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 되므로, 위 부당이득반환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한 사례).
② 상대방에게 신의를 창출한 바 없거나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권리행사가 정의의 관념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는 권리행사를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8다228868 판결 : 지목이 도로인 토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甲 교회와 乙 교회가 위 도로를 통해서만 공로로 출입할 수 있는 인접 건물과 그 대지의 소유자인 丙 주식회사를 상대로 자신들이 위 도로의 지분을 보유한 기간 동안 丙 회사가 위 도로를 통행하면서 법률상 원인 없이 사용료에 해당하는 이익을 얻고 자신들에게 그 지분에 해당하는 손해를 입게 하였다며 부당이득반환을 구한 사안).
⑷ 효과
권리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4. 실효의 원칙 [이하 민법교안, 노재호 P.27-29 참조]
가. 서설
⑴ 실효의 원칙이란, 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장기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상대방이 권리자가 더 이상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리라고 신뢰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는데, 그 뒤 권리자가 권리의 행사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원칙을 말한다.
⑵ 이는 금반언 원칙의 특수한 형태로서, 소멸시효 및 제척기간은 기간이 장기간이고 고정되어 있어 문제를 탄력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점(예컨대 해제권은 10년의 제척기간에 걸리지만 이는 너무 장기간이어서 그 동안 법률행위의 효력을 불확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소멸시효나 제척기간에 걸리지 않는 권리, 가령 소유권에 기한 물권적 청구권의 행사나 해고의 무효를 주장하는 경우에도 장기간의 권리불행사에 따른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는 점 등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나. 요건
⑴ 판례는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건으로서의 실효기간(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길이와, 의무자인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우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한 기간의 장단과 함께 권리자 측과 상대방 측 쌍방의 사정 및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한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 이 사건과 같은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분쟁에 있어서는, 징계사유와 그 징계해임처분의 무효사유 및 징계해임 된 근로자가 그 처분이 무효인 것을 알게 된 경위는 물론, 그 근로자가 그 처분의 효력을 다투지 아니할 것으로 사용자가 신뢰할 만한 다른 사정(예를 들면, 근로자가 퇴직금이나 해고수당 등을 수령하고 오랫동안 해고에 대하여 이의를 하지 않았다든지 해고된 후 곧 다른 직장을 얻어 근무하였다는 등의 사정), 사용자가 다른 근로자를 대신 채용하는 등 새로운 인사체제를 구축하여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지의 여부 등을 모두 참작하여 그 근로자가 새삼스럽게 징계해임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결과가 되는지의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⑵ 즉, ① 권리의 장기간 불행사 → ② 상대방이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하리라고 신뢰(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함) → ③ 새삼스럽게 권리 행사는 신의칙 위반이 된다.
다. 효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이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이지만, 직권탐지를 요하지는 않는다.
라. 적용범위
⑴ 소유권에 기한 권리
그 배타성, 항구성 등의 속성에 비추어 그 권리의 본질과 배치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 역시 실효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실효를 인정하여야 한다. 판례상으로도 권리가 실효되었다고 인정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⑵ 친족법상 권리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판례는 ‘인지청구권’(제863조)은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는 이유로 실효의 법리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다(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1므1353 판결).
⑶ 징계해고 무효 확인 청구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고용관계(근로자의 지위)의 존부를 둘러싼 노동분쟁은, 그 당시의 경제적 정세에 대처하여 최선의 설비와 조직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하여야 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근로자로서의 임금 수입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신속히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므로, 위와 같은 실효의 원칙이 다른 법률관계에 있어서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사용자에 의하여 해고된 근로자가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경우, 해고가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여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는 경우에 관하여는 노동조합법 제40조 제2항에 그 구제신청을 하여야할 기간이 부당노동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3월 이내로 규정되어 있으나, 해고가 무효라고 주장하여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의 소 등을 제기하는 경우의 제소기간에 관하여는 우리 법에 아무 것도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위와 같은 필요성은 더 절실하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⑷ 해제권 등 형성권
해제권을 갖는 자가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상대방으로서도 이제는 그 권리가 행사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신뢰할 만한 정당한 사유를 갖기에 이르러 그 후 새삼스럽게 이를 행사하는 것이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결과가 될 때에는 이른바 실효의 원칙에 따라 그 해제권의 행사가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1994. 11. 25. 선고 94다12234 판결).
5. 신의칙 적용의 한계 (= 금반언의 원칙은 합법성의 원칙에 의하여 제한됨)
가. 의의
⑴ 후행행위를 선행행위에 모순된다고 해서 그 효력을 제한하게 되면 민법의 기본원리(무능력자 보호 등) 또는 강행법규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이유로 권리행사를 금지할 수 없다. 전체 법질서 내에서 작동하여야 할 신의칙이 법질서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⑵ 가장 빈번하게 문제되는 유형은 애초에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인 계약을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체결한 자가 나중에 그 계약이 강행법규에 위배되어 무효임을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나중에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선행행위에 반하는 행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효 주장을 배척하는 것은 강행법규가 금지하고자 하는 결과를 방치하는 것이 되어 강행법규의 취지에 어긋나는 문제가 있다.
나. 판례의 태도
⑴ 판례는 “강행법규를 위반한 자가 스스로 그 약정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그 주장을 배척한다면, 이는 오히려 강행법규에 의하여 배제하려는 결과를 실현시키는 셈이 되어 입법 취지를 완전히 몰각하게 되므로,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되거나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여 원칙적으로 이러한 주장도 허용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① 대법원 1991. 9. 10. 선고 91다19432 판결 : 농지개혁법의 규정은 강행법규로서 당사자의 의사에 의하여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피고가 위 곽**이 재일동포로서 농지매매증명을 받을 수 없음을 잘 알고 그에게 이 사건 농지를 매도하면서 중간생략등기의 약정을 한 다음 대금까지 모두 받고 나서 이제야 농지매매증명을 구비하지 못하였음을 내세워 그 매매계약이 무효라고 항변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반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배척한 것은 정당하다.
② 대법원 1997. 11. 11. 선고 97다33218 판결 : 강행법규인 구 국토이용관리법(1993. 8. 5. 법률 제457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1조의3 제1항, 제7항을 위반하였을 경우에 있어서 위반한 자 스스로가 무효를 주장함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같은 법의 입법취지를 완전히 몰각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거래 당사자 사이의 약정 내용과 취득 목적대로 관할 관청에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하였을 경우에 그 신청이 같은 법 소정의 허가 기준에 적합하여 허가를 받을 수 있었으나 다른 급박한 사정으로 이러한 절차를 회피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러한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③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3다19961 판결 : 원고들이 30년간의 임차권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30년간의 임대료를 선납한 점,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특수성,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하게 된 경위 및 그 시기, 임차인들 중 원고들이 차지하는 비율 등에 비추어 원고들이 20년을 초과한 임대차기간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는 것은 신의칙 내지 금반언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어서 허용되어서
는 안 된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원심이 민법 제651조 제1항의 규정을 강행법규로 보는 이상 이에 위반되는 법률행위를 한 원고들이 강행법규 위반을 이유로 무효를 주장한다 하여 그것이 신의칙 또는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배척한 것은 정당하다.
④ 대법원 2018. 4. 26. 선고 2017다288757 판결 : 상법 제374조 제1항 제1호는 주식회사가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행위를 할 때에는 제434조에 따라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의 수와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수로써 결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주식회사가 주주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얻도록 하여 그 결정에 주주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강행법규라고 할 것이므로, 주식회사가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를 양도한 후 주주총회의 특별결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 그 약정의 무효를 주장하더라도 주주 전원이 그와 같은 약정에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무효 주장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다(원고가 피고 회사로부터 주주총회 특별결의 없이 영업의 중요한 일부를 양수한 사안에서, 피고의 주주 중 84%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양도계약에 동의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피고의 무효 주장을 배척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원심이 판단의 근거로 삼은 대법원 2003. 3. 28. 선고 2001다14085 판결은 실질적으로 주주 전원의 동의가 있었던 사안으로서 이 사건과 사실관계를 달리하고 있으므로 그대로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원심 판결을 파기한 사례이다).
⑵ 그러나 무효 주장을 배척하더라도 강행법규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① 대법원 1997. 11. 11. 선고 97다33218 판결 : 토지거래허가를 받지 않아 토지 매매 및 소유권이전등기가 무효라 하더라도, ‘거래 당사자 사이의 약정 내용과 취득 목적대로 관할 관청에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하였을 경우에 그 신청이 같은 법 소정의 허가 기준에 적합하여 허가를 받을 수 있었으나 다른 급박한 사정으로 이러한 절차를 회피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하였다.
② 대법원 2005. 9. 30. 선고 2003다63937 판결 : 사업영위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직권으로 폐업조치되고 법인설립허가가 취소되었으며 파산선고까지 받은 의료법인이, 그 사용 부동산에 관한 강제경매절차에서 기본재산 처분에 관하여 주무관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주어야 할 입장에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았으면서, 그 부동산을 낙찰받아 운영해 오고 있는 의료법인에 대하여 위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가 주무관청의 허가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그 말소를 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하였다. 참고로, 의료법에 의하면 의료법인의 기본재산 처분에 관하여는 도지사의 허가가 필요하고, 이에 위반한 법률행위는 무효이다. 허가기준에 적합하여 허가를 신청하였다면 허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무효 주장을 배척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유효로 보더라도 의료법의 입법취지에 반하지 않는다.
③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통상임금 사건) : 단체협약 등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에, 그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는 권리의 행사라는 이유로 이를 배척한다면 강행규정으로 정한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므로, 그러한 주장이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음이 원칙이다. 그러나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1. 5. 29. 선고 2001다15422, 15439 판결 참조). 위에서 본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 임금협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근로자 측이 임금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근로자 측에까지 그 피해가 미치게 되어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
④ 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9다277157 판결 : 甲 의료법인의 기본재산인 토지에 乙 지방자치단체가 건물을 신축하였고 甲 법인은 乙 지방자치단체에 지상권설정등기를 해 주었는데, 甲 법인이 乙 지방자치단체와 위탁경영 계약을 체결한 다음 위 건물에서 약 35년간 계속하여 병원을 운영하다가, 위 지상권설정등기가 의료법 제48조 제3항에서 정한 시·도지사의 허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그 말소를 구한 사안에서, 의료법상 지상권변경계약의 허가권자는 乙의 대표자인 경기도지사 또는 그 위임을 받은 용인시장이고 달리 위 허가신청을 불허할 사유가 없으므로 甲 법인의 신청에 따라 허가가 이루어지면 소급적으로 이 사건 지상권변경계약은 유효하게 되는 점,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자신의 의무이행을 통해 지상권설정등기에 따른 부담을 용인해야 하는 지위에 있는 甲 법인이 오히려 의무이행을 하지 않은 것을 기화로 권리자가 될 乙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그 말소를 청구하는 것인 점, 甲 법인이 위탁경영 계약을 통해 위 건물에서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상권설정등기가 필요하므로 위 지상권설정등기는 甲 법인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고, 甲 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감소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료법 규정의 취지와 입법 목적에도 어긋나지 않는 점, 甲 법인은 지상권설정등기를 한 후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위 건물에서 병원을 운영하다가 존속기간이 만료될 무렵 스스로 존속기간을 변경하는 지상권변경의 부기등기를 하였고, 그 후에도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위탁경영 계약에 따라 병원을 계속해서 운영하였던 점에 비추어, 위 지상권설정등기 말소청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