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내 귓속에 황홀한 음악을 집어 넣다.] 【윤경 변호사 법무법인 더리드(The Lead)】
신세계에서 무료 콘서트 티켓을 보내왔다.
‘케이터링 이용권’과 ‘무료주차권’도 동봉되어 있다.
무료 티켓이라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하는 클래식 연주회로 러시아의 유명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다.
말로만 듣던 그 오케스트라다.
첫 번째 곡은 글린카(M. Glinka)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Rusla and Ludmila Overture)”이다.
박진감 넘치고 경쾌한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귀에 익숙한 곡이다.
두 번째 곡은 라흐마니노프(S. Rachmaninov)의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Op. 18”이다.
첫악장은 느리고 묵직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다.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다.
피아노 연주자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데니스 마추예프(Denis Matsuev)다.
총 3악장 전체에 걸쳐 그 분위기가 애절하고 슬프고 서정적이고 감미롭다.
연주 내내 아름다운 추억과 이별 등의 단어가 연상된다.
가슴이 찡해 온다.
마지막 곡은 차이콥스키(P. I. Tchaikovsky)의 “교향곡 제5번 e단조, Op. 64”.
나름 유명한 곡일텐데, 나에게는 생소하다.
4악장의 교향곡 중 제3악장은 통상 스케르초(scherzo)를 쓰는데, 여기서는 왈츠 리듬이 나오는 것이 특이하다.
그럼에도 다소 지루했고, 연주 중간에 졸기도 했다.
내 음악적 소양이 겨우 이 정도로 유치하고 치졸하다.
어릴 적 팝송을 좋아했고, 고상한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은 시절에는 무식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어떤 클래식 음악인지 외운 적도 있다.
클래식 음악을 즐긴 것이 아니라 지식을 축적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고 어리석었다.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곡만 그냥 즐긴다.
그냥 떠오르는 느낌으로 곡을 해석한다.
느낌이 없는 연주를 들으면 지금도 꾸벅꾸벅 존다.
그만큼 난 음악적 소양을 타고 나지 못했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 1984)”는 ‘모차르트’라는 천재음악가에 의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존재가 되어버린 한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의 고통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의 앞 장면 중 황제 앞에서 젊은 모차르트에게 수모를 당한 살리에리가 절규하는 대사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신이여, 당신은 제가 그토록 갈망하던 천재성을 저런 방탕한 녀석에게 주시고, 왜 저에게는 그런 천재성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 밖에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장면은 40이 넘어서도 반복되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비참한 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그 대사는 내 가슴을 고통스럽게 찌르고 들어왔다.
살다보면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전략과 사상을 읽다보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탁월한 재능과 뛰어난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 전혀 그렇지 못하다.
책을 통해서야 뒤늦게 ‘후천적’으로 깨달은 둔한 사람이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깨달은 것이 정말 다행이다.
바로 ‘늦바람’ 덕분이다.
일찍 성공하는 것보다 방황과 좌절의 시간을 겪은 후에 찾아오는 ‘늦바람’이 더 무섭고 강력하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진다.
빨리 성공한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경험이 전무한 젊은 사람이 너무 일찍 성공의 계단만 밟아 나가면, 그 성공은 오히려 실패보다 더 무서운 함정이 될 수 있다.
인생을 사는데 ‘재능’이나 ‘천재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무하고도 비교하지 않는 자신만의 능력을 발견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제는 믿는다.
‘늦바람의 힘’이 더 무섭다는 것을.
‘천재적인 인생’보다는 ‘노력하는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빨리 피는 꽃’보다 ‘늦게 피는 꽃’이 더 좋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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