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것】《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내 삶이 홀로 울고 있다면, 그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윤경 변호사 더리드(The Lead)〕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일들이 일상으로 투하될 때가 있다.
그리고 어떤 일들은 딱히 해결책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
과거의 실수가 현재의 발목을 붙잡는 일.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노력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는 일.
그런 일들이 들이닥칠 때 누구나 손상된 삶 따위는 내팽개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도 게임처럼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생은 폭망한 것 같으니 체념 속에서 죽은 듯이 살아가야 할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끝에는 “그래도 살아가고 싶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
그깥 일로 자신의 삶 전체를 포기하는 건 너무 억울하고,
남들이 보기엔 우리의 삶이 별게 아닐지라도 우리에겐 그게 전부이므로.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애틋했고 내가 잘 되기를 바랐다.’
너무 지쳐서,
세상이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런 자신을 내팽개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구도 내 삶을 대신 돌봐주지 않는다.
마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는 이유로,
슬픔과 고통이 밀려온다는 이유로,
힘들고 지쳐서 일어설 힘조차 없다는 이유로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내 삶이 홀로 울고 있다면
그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우리의 고단함이 별것 아니라서
혹은 다들 그렇게 사니까, 같은 이유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애틋한 우리의 삶이기에 말이다.